마취술을 행한 전설적인 명의 ‘화타’
최용현(수필가)
강동의 소패왕(小覇王) 손책이 동생 손권, 명장 주유 등과 함께 오나라 창업의 기틀을 세워가고 있을 때이다. 손권이 선성(宣城)에 머무르고 있던 어느날 밤, 갑자기 도적떼가 기습해왔다.
손권의 경호를 맡은 주태는 갑옷도 입지 못한 채 맞서 싸우다가 몸에 열두 군데나 창상을 입었다. 때마침 군사를 이끌고 달려온 손책이 도적떼를 쫓아냈으나 주태는 중태에 빠졌다. 급히 의원을 찾은 바, 우번이 용하다고 소문난 의원 한 사람을 모시고 왔다.
사경을 헤매던 주태, 그 의원이 약을 쓰기 시작한 지 한 달 만에 씻은 듯이 나았다. 이때부터 그 의원의 이름은 중원에 널리 알려져 신의(神醫)로 명성을 떨치게 된다.
화타(華陀). 자는 원화(元化), 조조와 같은 패국 초현 사람으로 동안에다 학처럼 흰 수염에 신선 같은 풍모를 지닌 의원으로, 지금으로부터 1,800년 전인 서기 200년경에 마취를 이용한 외과적 수술을 행한 전설적인 명의이다.
그의 신술(神術)이 삼국지 곳곳에 나오는 걸 보면 그는 외과수술 외에도 내과, 산부인과, 뇌신경과 등 모든 의술에 두루 정통한 듯하다. 오나라의 주태를 낫게 하여 명성을 얻은 그는 촉의 관우와 위왕 조조까지 진찰, 치료하게 되어 삼국의 영웅을 두루 접하게 된다.
삼국지의 두 영걸 관우와 조조가 환자가 되어 화타 앞에 섰다. 명의의 눈에 비친 두 영웅의 모습과 함께 화타의 불행한 만년을 더듬어 보고자 한다.
형주를 지키던 관우가 위의 후방을 공략하여 기세를 올리고 있을 때, 위의 맹장 방덕이 쏜 화살에 팔꿈치를 맞았다. 화살에 묻은 독이 퍼졌다. 온몸이 부어오르고 얼굴도 사색이 되었다. 이 소식을 듣고 오에 있던 화타가 국경을 넘어 찾아왔다. 이국땅에서 온 학발(鶴髮)의 노인을 보고 모두 의아해 하자 그는 이렇게 말했다.
“오래 전부터 경모해온 호걸이 독시(毒矢)에 맞아 고통 받고 있다는 소문을 듣고 달려왔소이다. 의술에는 국경이 없지요.”
관우는 그때 참모 마량과 바둑을 두고 있었다. 상처 부위의 진찰을 끝낸 화타, 더 늦었으면 큰일 날 뻔했다며 바로 수술준비를 했다.
“살을 째고 상한 뼈를 긁어내야 합니다. 정신을 잃을 지도 모릅니다. 우선 팔을 기둥에 묶어야 되겠습니다.”
“아니, 됐소. 묶지 말고 그냥 해주시오.”
관우의 단호한 태도에 눈이 휘둥그레진 화타, 그대로 수술을 할 수밖에 없었다. 관우는 한쪽 팔을 화타에게 맡기고 다른 쪽 손으로 계속 바둑을 두었다.
수술이 시작되었다. 부어오른 팔꿈치를 절개했다. 바닥의 쟁반에 피가 흘러 넘쳤다. 독이 스며든 뼈를 긁어내었다. 드디어 수술이 끝나고 상처부위를 실로 꿰매었다. 그러나 관우는 꿈쩍도 하지 않고 태연히 바둑을 두고 있었다. 고통을 참느라 간간히 입술을 꼭 다물 뿐.
다음날 아침, 화타가 상태를 보러 와서 어젯밤 잘 잤느냐고 물었다.
“예, 잘 잤소이다. 이젠 통증이 없어졌소. 당신은 정말 천하의 명의요.”
관우가 대답하자, 화타가 이렇게 화답했다.
“아니오. 불초도 오랫동안 환자를 보아왔지만 장군 같은 환자는 아직 보지 못했소. 장군이야말로 천하의 명환자이십니다.”
그리고는, 상처가 아물 때까지 화를 내지 말라고 당부하고 총총히 떠나갔다. 마취도 하지 않은 채 살을 째고 뼈를 긁어내다니, 보통사람으로서는 상상도 하지 못할 일이 아닌가. 주사기 바늘만 봐도 겁이 나는데.
조조는 만년에 심한 두통을 앓았다. 조조의 부름을 받고 화타가 찾아왔다. 진찰 결과, 마취탕을 마시고 뇌를 절개하여 종기를 제거하면 십중팔구 완치된다고 했다. 의심 많은 조조, 버럭 화를 냈다. 화타가 같은 고향사람인데도 불구하고….
“아니 그러면 십 중의 일이라도 잘못되면 어떻게 되는가? 이 엉터리 의원 놈! 너는 내 목숨을 의도(醫刀)로 시험하겠다는 거냐?”
“아니오, 불초에겐 처음부터 자신이 있었습니다만 겸손하게 말씀드렸을 뿐입니다. 어찌하여 대왕께서는 그 정도의 수술을 두려워하고 저의 의술을 의심하십니까?”
화타가 적장 주태와 관우를 치료해준 적이 있기 때문인지, 예전에 전의(典醫) 길평이 탕재에 독약을 넣어 자신을 암살하려했던 기억이 떠올랐는지, 조조의 의심은 더욱 심해졌다.
“네 이놈! 내 머리를 절개하고 죽일 작정이지? 여봐라! 이놈은 적의 첩자가 틀림없다. 이놈을 당장 옥에 가두어라!”
옥에 갇힌 화타는 며칠 뒤 조조의 명으로 처형을 당하고 말았다. 화타가 죽자, 조조는 극심한 두통에다 악몽에 시달렸다. 조조에게 대항했다가 목숨을 잃은 복 황후, 동 귀비, 동승과 길평, 마등 등이 자꾸 꿈에 나타났다.
결국 천하의 명의를 만난 조조, 제대로 치료 한번 받아보지도 못하고 66세를 일기로 생을 마치고 만다. 의심 때문에 천하의 명의를 죽이고 마침내 자신의 수명도 재촉하게 된 셈이다. 조조가 뇌수술을 받아 좀 더 오래 살았더라면 삼국지의 스토리는 어떻게 바뀌었을지….
조조가 의심 때문에 화타의 치료를 받지 못하고 죽는 것은, 관우의 초인적인 인내력과 대비시켜 조조의 인품을 폄하하려는 의도가 깔려있지 않나 싶다.
화타가 옥중에 있을 때 그의 명성을 흠모한 옥리(獄吏)가 친절하게 돌봐 주었다. 화타는 그 옥리에게 자신의 비방을 기록한 ‘청낭서(靑囊書)’를 물려주었다.
화타가 죽자 그 옥리는 사직서를 내고 고향으로 내려갔다. 그는 자신의 아내에게 화타 얘기를 해주고 자신이 그 의서를 공부하여 명의가 되겠노라고 포부를 말했다. 그런데 다음날 아침에 일어나 보니 그 책이 없어졌다. 혹시나 하고 아내에게 물어보았더니 아내가 이렇게 대답했다.
“그 책을 읽고 당신이 명의가 되면 화타처럼 목숨을 잃을 게 아니오. 그래서 불에 태워 버렸어요.”
화타의 신술이 담긴 ‘청낭서’는 결국 후세에 전해지지 못하게 되었다.
첫댓글 부인의 생각이 옳다고 해야하나 잘못됬다고 해야하나 ?
판단이 안서는군요.
3.15 부정선거의 원흉 이기붕 씨의 아들이 그랬다죠.
우리 집안을 위해서는 아버지가 당선되어야 하고
우리 나라를 위해서는 떨어져야 한다고.
화타의 경우는 그와 반대의 케이스가 아닌가 싶네요.
그냥 평범하게 사는것이 가늘고 길~~~~~게 사는것임을 부인은 직시했겠죠. 어쨌든 영웅과 그렇지 못한 사람의 차이를 두고자 하는 저자의 의중이 담겨 있었겠죠.
동감입니다.
영웅 혹은 천재는 가늘고 길게 사는 것이 불가능하지만,
부인 입장에서는 아무래도 미련이 많이 남아 있겠죠.ㅎㅎ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화타는 외과 전문의라 할 수 있죠
여러 방면으로 도통했다고 하지만,
외과 쪽이 주전공이라고 봐야겠지요.
천하 명의 화타를 이시대에도 필요한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동감입니다. 요새 명의는 돈 잘 버는 사람이라고 하던데...
긴 호흡으로 보면 부인은 큰 죄인 입니다.
동감입니다. 그런 주옥 같은 책을 태우다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