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북도 대표사찰 선운사
전라북도 고창군 아산면 삼인리 도솔계곡과 선운계곡이 만나는 자리에 선운사(禪雲寺)가 있다. 선운사는 김제의 금산사(金山寺)와 함께 전라북도를 대표하는 사찰이며, 대한불교조계종 제24교구 본사이다. 이러한 선운사 창건에 관해서는 두 가지 이야기가 전해진다. 하나는 신라의 진흥왕(540~576)이 꿈에서 ‘미륵삼존불’을 보고 감동하여 절을 세웠다는 이야기이고, 다른 하나는 백제 위덕왕 24년(557)에 백제의 고승 검단선사가 용이 사는 못을 메우고, 그 자리에 선운사를 지었다는 이야기이다. 그러나 당시 선운사가 있던 곳은 백제의 영토였던 지역이므로 진흥왕보다는 검단선사의 이야기에 더 힘이 실린다. 선운사의 이름은 검단선사가 ‘구름 위에 누워 참선한다.’는 뜻인 ‘참선와운(參禪臥雲)’에서 따와 지었다고 한다.
용이 사는 못을 메우고 절을 지은 노인
옛날 백제시대 선운산 기슭의 선운 고을에는 가끔 해적과 산적들이 나타나 주민들을 괴롭혔는데, 오순도순 서로 도와가며 사는 이 마을 사람들에게는 도적 떼들이 큰 골칫거리였다. 하루는 선운 고을에 한 노인이 찾아와서 이 마을이 소금과 종이를 만들기에 좋은 곳이라 생각되니 오늘부터 마을에서 살게 해달라고 부탁했다. 마을 사람들은 비록 행색은 초라했지만, 인자한 노인의 모습에 흔쾌히 허락했다. 그날부터 노인은 마을에 살며 바닷물로 소금을 만들었다. 마을 사람들은 노인의 일손을 돕고, 소금 만드는 법을 배우기도 했다. 노인은 마을 사람들에게 친절했고, 어려움이 있으면 해결해 주다 보니 자연스럽게 마을 사람들은 노인을 따르게 됐다.
어느 날, 마을 앞바다에 배가 한 척 나타났다. 그 배는 사람의 기척이 있으면 가라앉고, 기척이 없으면 떠오르는 이상한 배였다. 소식을 들은 노인은 마을 사람들과 함께 바닷가로 향했다. 그러자 바다 한가운데 있던 배는 노인을 향해 다가왔다. 배가 다가오자 노인은 배에 탔고, 갑자기 어디선가 백의 동자가 나타나 하는 말이 “저는 인도 공주님의 심부름으로 동쪽 바다에 소금을 만드는 노인에게 두 분의 금불상을 전하러 왔습니다. 이 불상을 성스러운 땅에 모셔야 합니다.”라고 했다. 그 말은 들은 노인은 금불상을 모시고 마을로 왔다. 당시 마을에는 용이 사는 못이 있었는데, 노인은 용을 몰아내고, 연못을 메워나갔다. 그때 아랫마을에 눈병이 돌았는데, 신기하게도 연못에 숯을 부으면 눈병이 씻은 듯 나았다. 이 사실을 알게 된 마을 사람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숯과 돌을 날라 못을 메웠다. 못이 메어지자 노인은 그 위에 절을 짓고, 백의 동자가 전해준 금불상을 정성스럽게 모셨다. 이때 지은 절이 바로 ‘선운사’였다고 한다.
하루는 도적들이 노인을 찾아와 소금을 내놓으라고 협박했다. 노인이 소금이 없다고 하자 화가 난 도적들이 노인을 해치려했는데, 그때 어디선가 큰 호랑이가 나타나 도적들의 앞을 막아섰다. 깜짝 놀란 도적들이 겁을 먹자 노인은 호랑이를 쓰다듬고, 괜찮다며 돌아가라고 했다. 그러자 호랑이는 노인에게 공손히 절을 하고 산으로 올라갔다. 이 모습을 본 도적들은 노인에게 절을 하고 새사람이 되겠다고 했다. 다음날 노인은 이제 자신이 할 일은 다 했다며 마을을 떠나려고 하는데, 마을 사람들이 떠나기 전에 이름이나 알려달라고 했다. 그러자 노인은 “검고 붉다는 검단(黔丹)이라 하오.”라고 말하며, 홀연히 마을을 떠났다고 한다.
새로운 문화를 전파한 검단선사
선운사에 얽힌 설화는 검단선사가 창건한 선운사에 대한 내력을 담은 이야기이다. 검단선사는 마을 연못에 사는 용을 물리치고, 용이 살았던 연못에 선운사를 만든다. 이것은 토착신앙을 몰아내고, 외래종교인 불교가 뿌리내리는 과정을 보여주는 것이다. 또한 불교적 가르침으로 교화된 대중으로 도적들이 등장하며, 이들을 교화한 인물은 바로 검단선사이다. 검단선사는 도적들에게 소금 만드는 법을 가르쳐주어 삶의 터전을 마련해 주었고, 교화된 도적들은 검단선사의 은혜를 보답하기 위해 매년 선운사에 ‘보은염(報恩鹽)’을 올렸다고 한다. 이처럼 선운사에 얽힌 설화는 검단선사를 중심으로 선운사가 창건되었고, 새로운 문화가 전파되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