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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진도고등학교총동문회 원문보기 글쓴이: 김 고신
2011-07-01
어제 테이무리 사장 집에 갔습니다. 얼굴을 보니 울컥 눈물이 납니다. 심장 쪽으로 가는 핏줄에
문제가 있어서 수술을 했는데 의학 용어라서 알아 듣기가 쉽지 않습니다.
가슴 위에 수술 자국이 있는데 아마 심장에 피를 강제 공급 해 주는 장치를 집어 넣은 것
같습니다. 심장 박동기 라고 해야 하나 뭐라고 하나..,
아이고!
그런데 아프고 난 뒤라 사람이 바짝 늙어 보입니다.
근황은 알고 있었지만 이리 심한 고생을 하고 있으리라는 생각은 안 했는데 그 과정이 너무나 힘들었나 봅니다. 워낙 위험한 상태라서 지방 도시에서 이 곳 테헤란으로 옮겨 올 수가 없었다고 하네요.
이란은 엄청 큰 나라입니다. 땅 덩어리는 우리 한반도의 7배 반정도가 됩니다.
인구도 8천만이 되는 이 일대에서는 가장 강력한 나라입니다.
그런데 이 곳 테헤란을 제외하면 지방 도시에는 변변한 의료 시설이 되어 있지 않다고 합니다.
그 뿐이겠습니까마는 국민들의 복지 시설이나 편의 시설들은 국가의 규모에 비해 많이 뒤떨어져 있습니다.
온 가족이 매달려서 죽은 사람이 살아 났다는 생각이 듭니다.
지금은 많이 좋아 졌다는데 얼마나 안 좋았었다는 것인지 짐작이 갑니다.
그래도 천운이라는 생각입니다.
테이무리 부인이 저를 보자 엄청 반가워 합니다. 또 꼬맹이 바란이 저한테 와 와락 안깁니다.
그런데 부인의 얼굴을 보니 남편의 수발을 하느라 얼마나 신경을 많이 썼는지 그 이쁘던 얼굴이 아주 많이 상했습니다. 아픈 사람도 아픈 사람이지만 간호하는 사람이 더 힘들었을 것 같습니다.
제가 한국에서 가져 간 홍삼 정과 건삼을 주면서 먹는 법을 일러 줬더니 점심을 먹고는 홍삼 정 8알을 꺼내 먹습니다.
빨리 회복되어서 남편도 챙기고 온 가족이 밝은 생활을 하게 되기를 마음속으로 빌어 봅니다.
건강이 중요하다는 말들을 합니다.
정작 건강 할 때에는 잘 느끼지 못하는 것이 사실인데 저 같은 경우는 제가 다리를 다쳤을 때에
불편함이 일을 하는데 큰 영향을 주었다고 생각이 듭니다.
몸이 성한 상태로, 그리고 좋은 컨디션으로 일을 해야 일이 잘 되는데 보이지 않게 남에게 주는
느낌이 어딘가 불안한 느낌을 주었는지 모든 일이 의도하는 대로 잘 되지 않았고 힘이 들었습니다.
언제 어디서나 누구를 만나도 좋은 인상을 줄 수 있다는 것이 너무나 중요합니다. 더구나 저 같은 경우는 사업이 한참 힘들 때에 다치게 되어서 정말 힘든 시간을 보내야 했습니다.
이 친구가 저한테 왜 제가 담배 냄새를 싫어했는지를 알겠다고 하면서 지금은 담배를 끊었다고 합니다.
피울 수가 없었겠지요. 어느 누구라도 피우면 죽는다고 하고 거기에 이렇게 대 수술까지 했으니 피울 방법이 없지요.
무척 피워댔었습니다.
2011-07-05
며칠 동안 무지 바쁘게 시간을 보냈습니다.
이 곳 이란은 지금이 영업을 하기에는 참 적절한 타임이란 생각이 듭니다.
많은 회사들이 새로운 아이템에 투자를 하고 있는데 잘 아시다시피 미국하고의 껄끄러운 관계
때문에 유럽에서 설비를 들여 오는 것이 힘이 들어서 중국에서 많이 들여 오다 보니 품질
저하의 문제가 발생됩니다.
실은 이 곳에는 보이지 않게 많은 한국의 업체들이 나와서 일을 하고 있으며 우리의 D그룹 같은
경우에는 많은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으면서 이란 사람들로부터 아주 두터운 신임을 받고
있다고 합니다.
여기 온 다음날 택시를 불러서 타게 되었는데 이 친구가 한국말을 합니다. 그래서 물어 보았더니 한국에서 5년을 일하다 왔다고 하는데 나이 40에 결혼을 하지 않았다고 하면서 저더러 꼭 한국에 가게 해 달라고 오늘까지 졸라댑니다. 약간 말이 통하고 해서 어디를 가려면 이 친구한테 전화를 해서 타고 가는데 오늘도 여지 없이 가는 도중에 빨리 갈 수 있게 해 달라고 하면서 한국에 가서 예쁜 아가씨를 만나 결혼도 하고 싶고 열심히 일을 해서 돈도 많이 벌고 싶다고 하는데 왜 예쁜 이란 여성에게 장가를 가지 않느냐고 했더니 이란에서 장가를 가려면 돈이 많이 든다고 합니다.
미친 놈!
한국 사람들이 약간 코가 큰 사람들에게는 약한 면이 있는 것이 틀림 없나 봅니다.
생긴 것도 괜찮고 아주 붙임성이 있는 모센이라는 친구인데 한국 사람들이 참 좋고 한국이라는 나라가 참 좋다고 합니다.
돈을 조금 더 벌 수 있다는 이점이 있어서 그러리라는 생각이 듭니다.
저녁을 먹고 저녁 운동 삼아 조그만 공원에 가서 몇 바퀴를 걸었습니다.
그런데 보니 가설 무대를 차려 놓고 한쪽에서는 조그만 개미 시장 겸 바자회를 하고 있습니다.
무대에서 무엇인가 할 것 같아서 한참을 기다렸는데 9시가 조금 지나자 조그맣게 차려진 무대에 젊은 사람이 올라 가 쿠란을 읽습니다. 그리고 조금 지나서 남자 가수인지가 올라가서 무슨 노래를 부르면서 얘기를 하는데 무엇을 하는 지를 모르겠습니다.
다음에 루싸르를 두른 여자 진행자와 남자 진행자가 무대에 올라 무언가를 진행을 하는데 더 보아야 지루하기만 할 것 같아 그냥 돌아 왔습니다.
우리는 무대 의상이라도 차려 입고 흔들면서 노래도 하고 그러는데 그냥 꼿꼿이 서서 노래하는 광경이 너무 낯 설게 느껴지는 이 곳은 아직 그런 부분에는 사람들이 익숙해져 있지 않은 가 봅니다.
온 몸을 둘러 사고 머리에 스카프를 써야 하는 이 곳 사람들이 말 만한 아가씨들이 웃통을 홀딱 벋고 노래하며 춤 추는 광경을 직접 옆에서 본다면 아마 혼이 나가지 않을까 싶습니다.
잠시 거기에 머무르는데 우리 어렸을 때 철마 광장에서 공 굿을 보던 기억이 납니다. 그때는 공 굿 이라고 해서 군에서 홍보용으로 뉴스와 영화를 큰 포장(스크린)을 치고 보여 줬는데 워낙 오락 시설이 별도로 없었던 때라 많은 사람이 몰렸습니다.
포장도 안된 광장에 필름 영사기 덜덜 떨면서 돌아 가는 소리와 까딱하면 필름이 끊기고 해서 연결 할 동안 청년들이 크게 소리 지르고 한 손을 입에 대고 휘파람을 불기도 하고 그랬습니다.
2011-07-09
아주 덥습니다. 어제 이곳 택시를 탔는데 이 택시 기사 말로는 이제까지 자기가 살아 온 이래로 테헤란이 이렇게 더운 적은 없었다고 합니다.
그런데도 대부분 택시 운전사들이 에어컨을 틀지 않고 문을 연 채로 달려 다닙니다.
왜 그러냐고 물었더니 기름 값이 많이 비싸다고 하길래 얼마냐고 물었더니 1리터에 약 700원 한다고 합니다. 전에는 무척 싼 것으로 알았는데 이 가격이면 이곳으로 써는 별로 싼 가격이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 곳은 택시들의 크기가 작아서 에어컨이 비교적 시원하지 않고 차가 오래 된 것들이 많아서 에어컨 자체가 부담스러울 것 같습니다.
이곳에는 주로 기아 자동차의 프라이드가 많은데 최근에는 새로운 한국 승용차들이 참 많이 보입니다.
우리 나라는 비가 온다고 하는데 이곳은 그냥 날씨가 확 개어 있지는 않으면서도 화끈거리는 열기 때문에 차 없이는 움직이는 것이 정말 쉽지 않습니다.
이 곳 테헤란은 그래도 덜 더운 편이라고 하면서 이란 남부 지방은 정말로 많이 덥다고 하는데 호무르즈 해협을 사이로 카타르와 두바이, 그리고 사우디와 국경을 맞대고 있으니까 그쪽 기후하고 같다고 생각 해보면 넉히 짐작이 됩니다.
2011-07-12
이란에 와서 보면 왠 기아 자동차의 프라이드가 이렇게 많나 싶어 깜짝 놀랍니다.
우리가 만들던 기아 자동차의 프라이드 모델 생산 라인을 한국에서 이란으로 옮겨 와 이곳 국민차가 된 듯싶습니다. 돌아 다니다 보면 가장 많이 보이는 차가 프라이드이고 또 하나는 프랑스의 프조 자동차입니다. 최근에는 한국 자동차가 더욱 다양해져서 현대의 그랜져 모델부터 기아 자동차의 소형차까지 절반 이상의 차가 한국 차입니다.
이 사람들의 운전 습관은 조금 거친 편인데 잠시라도 틈만 생기면 끼어들기를 하고 길 건너는 사람들에게 양보하지를 않습니다.
또 한가지는 차 선이 그려져 있는데도 꼭 그 선 안으로 가지 않고 선을 밟으면서 운전을 해 가는데 그러다가 어느 쪽이던 잠시만 끼어들 틈이 생기면 바로 끼어들고 또 그러면서 거칠게 운전을 합니다.
이 곳은 밖에서 생각 하는 것 과는 달리 최근에 아주 안정되고 돌아 다니는 것에 대한 불안함이 없습니다.
단 시내를 돌아 다니게 되면 택시 운전사들 대부분이 영어가 잘 되지 않기 때문에 불편한 것이 있고 또 계량기를 달지 않고 운행을 하기 때문에 택시비가 기사에 따라 많은 차이가 나서 다툼을 많이 하게 되는 것 하고 간판들이 거의 페르시아 어로만 되어 있어서 이쪽 글을 읽지 못하는 사람은 엄청 불편을 겪게 됩니다.
이 지역을 여행을 하게 되면 꼭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 이 사람들이 외국인에게는 바가지를 씌우기 때문에 조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어제는 거래처에서 돌아 오는 길에 전에 팔레비 국왕이 살던 궁에 들러서 이것 저것 구경을 하고 왔습니다.
이란 혁명이 일어나기 전까지 국왕이 살던 곳이라서 역사적으로 그리 오랜 시간이 지나지 않아서인지 현대적인 것들이 많이 남아있습니다.
우리 세대에는 이란 혁명에 대한 많은 뉴스를 듣고 보면서 지내 온 세대라서 국왕의 사진이나 그 가족들에 대한 기억을 어느 정도 떠 올릴 수가 있습니다.
떠나오는 길에 이 곳 이란의 크리스탈 종류가 좋다고 그래서 이란에서 제일 크다는 시장에 들러서 선물이나 하나 살까하고 들렀는데 이란 것은 전혀 찾아 볼 수가 없고 중국 것 대부분에 타일란드 제품이 약간 보입니다.
이미 이들의 시장은 중국제로 꽉 차 있고 그들의 제품에 길들여져 가고 있습니다.
카타르 도하에서 하도 더워 지나가다 이슬람 문화센터에 들렀더니 에어콘 바람이 씽씽 나와서 엄청 시원합니다.
에어콘이 없으면 절대로 살 수 없을 것 같은 나라입니다.
앉아 있는 동안 이슬람에 관한 한글 안내판이 있어서 잠간 읽어 보니 이슬람이란 말은 하느님께 복종하고 따른다는 의미라고 합니다. 갖고 가도 된다고 하기에 한 권 집어들고 나와서 이상 많이 읽어 보았습니다.
테헤란에 있는 가장 큰 시장 일부입니다.
시장 길이가 7킬로 미터가 된다고 하는데 주변은 모스크 건축물 처럼 되어 있는데 그 안쪽에 좁은 길로 여기 저기 얽혀 있습니다.
시장에서 나와 보면 이런 건물 안쪽에 시장이 있습니다.
카페트 시장에 들렀더니 보기 좋은 카페트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란 각지에서 만들어진 카페트들이 모여 있는데 이 카페트 상점은 이스파한 부근의 나인 이라는 시의 카페트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제일 유명한 카페트는 타브리즈에서 나오는데 이 사람들은 자기들 것도 똑 같은 품질이라고 말합니다
팔레비 국왕이 업무를 보던 니아비안 궁의 집무실입니다. 벽면에 크리스탈 장식과 스테인드 글라스, 그리고 바닥 카페트의 조화가 아주 잘 어울립니다.
팔레비 국왕과 그의 왕비 그리고 왕자입니다. 사진을 넣어서 도자기를 잘 만들어 놓았습니다. 중앙에 있는 장식장 같은 것은 텔레비전 함이라고 합니다.
이 곳은 왕이 살던 궁입니다. 샹들레와 응접 테이블, 바닥의 카페트, 그러나 그렇게 화려하거나 호화롭게 꾸며져 있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궁 바닥에 사람의 얼굴들을 카페트에 담이 놓았습니다. 특이합니다.
우리가 한참 나이에 제복을 입은 팔레비 왕을 뉴스에서 자주 보았습니다. 그 때에는 우리의 근로자들이 이란에 돈을 벌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와서 일을 했었습니다. 지금도 이 사람들은 이 때를 많이 그리워 하는 사람도 있다고 하며 아직도 이 사람들이 살고 있는 집이나 만들어져 있는 도로같은 것은 그 당시에 만들어졌던 규모로는 꽤나 크게 만들어져 있고 아주 잘 만들어져 있습니다.
3층에 올라 와서 내려 다 본 바닥의 모습입니다.
왕비가 입던 옷이 그대로 걸려 있는 옷장입니다. 옆에 가방도 같이 놓여 있습니다.
프랑스하고 관계가 아주 좋았었던가 봅니다. 나폴레옹이 그려진 식기와 프랑스에서 선물들이 있는데 이 카페트도 프랑스에서 보내 온 것이라고 합니다.
국왕의 침실입니다.
바깥에서 본 국왕의 궁 모습입니다. 이 곳 말고도 몇개의 궁이 있다고 하는데 주변에 아주 나무가 많이 있습니다.
첫댓글 오빠 잘 봤어요,많이 더워요 건강 챙기세요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