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어에 三人行에 必有我師焉이니 擇其而善者而從之하고 其不善者而改之니라는 글귀가 있습니다. 세 사람 있으면 반드시 나의 스승이 있는 법 착한 일을 하는 사람으로부터는 착한 행실을 본받고 나쁜 행실하는 사람으로부터는 나는 저렇게 하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함으로 배울 수 있다고 했습니다. 공자는 남녀노유, 빈부귀천,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본받을 점만 있으면 각자에게 스승이 될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한훤당 선생의 희천 유배시절에 조광조와의 있었던 일화가 있습니다.
효심이 지극하신 한훤당께서는 유배생활 중에서도 평소 어머님께서 좋아하시는 꿩고기를 구해서 말리는 과정에서 하인의 부주의로 고양이가 고기를 물고 가버린 일이일어 났습니다. 그때 낮을 붉혀가며 하인을 나무라는 장면 을보고 어린 제자 조광조가 “스승께서 어떻게 하인에게 그런 모습을 보이실 수 있습니까?” 라고 했을 때 그 즉시 잘못을 깨닫고 “네가 바로 내 스승이구나. 라면서 제자의 손을 잡으며 잘못을 뉘우쳤다는 일화가 있습니다.
한훤당으로부터 실행의도를 보고 배운 제자 조광조는 훗날에 신분이 가장 낮고 비천한 갖바치와도 교유하며 세상이치를 배우고 논하였다고 합니다 만약 그 당시 조광조의 개혁정치가 좌절되지 않고 성공 했더라면 나라가 더욱 일찍 개화되고 발전 할수 있었지 않았겠느냐고 생각해봅니다.
점필재 김종직 문하에 들어간 한훤당은 소학을 행동의 최고의 지침서로 삼고 스스로 소학동자라 칭하며 공부에 몰두했으며 사람들이 나라 일에 대해 물으면 소학을 읽는 아이가 어찌 대의를 알겠습니까? 하고 대답하며 한결 같이 자신의 마음을 닦고 다스리는데 전념했다고 합니다.
讀小學이라는 詩에서 글공부를 해도 天氣를 알지 못하더니 소학에서 어제까지의 잘못을 깨달았구나(業文猶未識天機 小學書中悟昨非) 라는 구절에서 나타나는 바와 같이 대부분의 도학을 공부한 학자들이 경서강독이나 문장을 짓는 일에 전념 하며 학문만을 위한 학자로서 일관 하는데 반해서 오로지 몸을 닦고 겸손을 익히고 참다운 실천을 행한 사람은 오직 한훤당 한 분이었다는 기록을 퇴계 이황이 남겼다고 합니다.
말로서야 못할 일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그러나 실천하기란 힘든 법인데 도학이 추구 하는 바를 몸소 실천함으로서 學行一致를모범으로 보이신 어르신으로서 후일 퇴계선생으로 부터 도학의 주종이라는 칭송을 받고 문묘에 이조五賢의 首賢으로 모셔진 것으로 생각됩니다.
우리 주변에 신분과 지위고하를 떠나서 마음속으로 존경하고 본받고 싶은 사람이 있는가 하면 정말 닮지 말아야 되겠다고 생각되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럴 때 생각으로만 그치지 않고 선생의 실천의도를 본받아 논어의 글귀를 교훈 삼아 착한 사람한테는 착한행실 을 본받아 실천에 옮기고 나쁜 사람으로 부터는 반면교사로 나쁜 습성을 몸에 익히지 않도록 노력함으로서 우리의 마음과 행동을 갈고닦아 나가는 것이 선생의 후손으로서 우리들이 취할 태도가 아닌 가 생각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