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기행>
강화도 교동 대룡 시장
2024년 4월25일에 강화도로 강서문협 문우들과 문학기행을 다녀왔다.
예년 같으면 봄기운이 완연했을 4월인데, 초미세먼지로 시야는 희부옇고 날씨는 추웠다. 봄이 실종되어 가는 느낌이 드는 4월이지만 함께 한 문우들과의 문학기행은 만나는 순간부터 헤어지는 순간까지 화기애애하였다.
이번 문학 기행은 여러 곳을 들르는 패키지 여행코스 같았다. 그리하여 여러 곳을 갔는데, 그 중에 교동에 있는 대룡시장이 인상적이었다. 갈 수 없는 북녘의 고향을 그리워하고 가고 싶어 하는 실향민들의 애통한 마음과 삶의 흔적을 직접 보았기 때문인 것 같다.
강화도 교동의 대룡시장은 6·25전쟁 때에 실향민들이 생계를 위해 고향인 황해도 연백군에 있는 연백시장을 본떠서 만든 곳이라고 하였다. 세월이 흘러 그 시절 모습을 그대로 재현하였다는 시장은 입구부터 현대적 느낌이 물씬 풍겨 옛 모습을 재현한 곳인가 싶었는데, 시장 안 골목은 1960년~70년대 가게 모습이 있었다.
대룡 시장이라고 새긴 캘리그라피 글씨체 입간판은 화려하게 느껴졌고, 시장 입구에는 좌판이 펼쳐져 있었다. 좌판에는 쑥, 오이, 고사리 등 봄철 야채가 싱그럽게 진열되어 있어 오고 가는 관광객들의 발길이 머물렀다. 강화도 들판에서 자란 야채라고 상인이 설명을 하며 사갖고 가기를 권했지만 관광객들은 값을 묻거나 눈요기만 할 뿐 사는 이는 보이지 않았다.
나는 돌아오는 길에 쑥을 사겠다고 상인에게 언질을 하였다. 내 또래로 보이는 상인은 지금 사갖고 가라고 하면서, 시장 안으로 들어가면 이곳으로 오게 되지 않는다면서 개시를 해 주기를 바라는 눈치가 보였다.
나는 들고 다니기 번거로울 것 같아 이따 오겠다고, 주차장과 가까우니까 꼭 들르겠다고 하고 그곳을 떠나왔다. 나물을 사가기를 바라며 친절하게 응대를 한 상인은 한 개도 팔지 못해 허무했을 것 같은 상인에게 실망을 주고 싶지 않은 마음을 안고, 시장 안으로 들어섰다. 시장을 구경하면서 그곳이 실향민들의 귀향의 마음이 담긴 곳이라 생각하니 애달프고, 상인의 말이 귓가에 맴돌았다.
“지금 사갖고 가세요.”
피난 시절에 실향민들은 지금 저 상인의 마음보다 더 절실하게 그 말을 하지 않았을까 싶었다.
요즘엔 시장이 관광 필수 코스라더니 좁은 골목 시장에 관광객이 많았다.
오고가는 사람들과 옷깃이 스칠 정도로 시장 골목은 좁고, 다닥다닥 붙은 천정이 낮은 목조 건물의 상가들이 그 시절이 연상되고, 그 시절 내음이 짙게 풍기는 것 같았다.
진열된 상품들은 그 시절과는 다른 상품들이지만 사려는 사람, 구경하는 사람들로 북적거리고 와글와글한 가운데 이리 저리 발길이 옮겨지고, 문우들이 건넨 간식거리로 입이 즐거웠다. 문우들이 건넨 간식거리는 강정 종류였다. 시장 골목 한 편에 발길을 멈춘 문우들의 손에는 강정이 두어 개씩 들려있었다. 둘씩, 셋씩 여럿이서 화담을 나누며 강정을 먹는 문우들의 대열이 이 간식거리에 대한 공감대 같아 보였다.
문학 기행 코스에 교동 시장이 있는 줄은 알았지만 물건 구입은 내 계획에는 없었다. 그런데, 시장에 오니 교동 시장의 유례는 마음 한 편으로 넘어가고, 주부의 마음이 봄날 새싹 올라오듯 파릇파릇하게 피어났다.
재래시장인 교동 시장에서도 현금과 카드로 물건을 구입할 수 있었다. 발걸음을 옮겨가는 동안 내 손엔 반찬거리와 간식거리가 담긴 검정봉지가 늘어갔다. 과용하지는 않았지만, 충동구매 이유는 여러 가지였다. 주부 문우들이 한 마디씩 하였다. 마트보다 싸, 물건이 좋네, 시중에서 구하기 힘들어, 화곡 시장에 있어, 뭐, 비슷비슷한데 온 김에…
손님이 몰린 가게가 있어서 들여 다 보았다. 그곳에서는 채소나 야채, 생선을 건조하여 튀긴 음식을 팔았다. 상가 앞에는 시식을 할 수 있게 마련되어 있어서 시식이 가능하였다. 덤으로 넉넉하게 담아 주는 후한 인심은 물건 사는 사람의 기분을 좋게 하였다. 그곳에서 이루어지는 시식과 덤은 현재와 과거의 공존과 공생. 그들의 방식이 신선하게 느껴졌다.
교동 시장에서 주어진 짧은 자유 시간에 부지런히 장을 보고 하는 구경은 즐거웠다. 내가 산 것은 황태껍질 튀각과 게 튀각, 알록달록한 예쁜 양말 몇 켤레, 기름 냄새 구수한 호떡이다. 호떡 5개를 달라고 하였더니 주인이 1개는 덤이라면서 같이 포장해주었다. 로스팅 되고 있는 볶음 땅콩 가게 앞에도 시식을 할 수 있는 땅콩이 있었다. 알이 굵고 맛이 고소한 땅콩 한 봉지를 사고, 영양 많고 맛이 좋다는 미숫가루도 샀다.
돌아오는 길에는 들르기로 했던 시장 입구에 있는 좌판에 갔다. 좌판에는 쑥이 수북이 쌓인 체였다. 봉지 대여섯 개를 양 손에 들고 쑥을 사러 갔다. 채반에 수북이 담긴 쑥은 5천원이었다. 그 쑥으로 쑥국을 끓여 먹을 생각이었다.
내 연배로 보이는 여인이 카드와 영수증을 내게 주면서 개시해줘서 고맙다고 하였다. 손님이 없는 동안 쑥을 파는 그 여인과 잠시 이야기를 나누었다. 다른 가게는 손님이 많이 있더라는 이야기를 들려줬더니, 여인이 말하기를 평일에는 사는 사람이 별로 없고 주말에나 손님이 좀 있다고 하였다. 내 손에 든 봉지를 바라보는 여인에게 내가 산 물건 목록을 알려주었더니 고개를 끄덕이며 들었다.
옛 모습이 재현된 대룡시장에서 즐거운 구경, 정겨운 이야기를 나누며 장을 보고 구경을 하였다. 황해도 연백 시장을 본떠 만든 실향민들의 시장인 강화도 교동의 대룡 시장. 오늘처럼
가볍고 즐거운 마음으로 좋은 사람들과 문학기행을 다녀 온 것처럼, 황해도 연백 시장으로 문학 기행을 가는 날을 상상해 보았다.
전쟁이 끝났다는 소식에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으리라 꿈이 부풀어 올랐을 실향민들. 실향민들을 포함하여 모두가 오늘은 좋은 소식이 있겠지 하며 기다리는데 정전 70년이 되도록 북녘으로 가는 길이 열리지 않으니 참으로 비통한 일이다. 통일의 문이 열리면 세계가 부러워할 우리나라인데, 자라나는 우리의 후세들은 통일된 나라에서 살기를 바란다.
강화도 날씨는 서울 날씨와는 다르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이 있었는데, 강화도 날씨도 서울 날씨처럼 춥고 초미세먼지에 휩싸여 있었다. 오후로 가면서 기온이 점차 따뜻해지고 미세먼지가 걷혀갔다. 강산이 바뀌기를 수 십 번의 세월이 흘렀어도 지금도 갈 수 없는 황해도 연백, 저 북녘 땅에 아침 안개가 서서히 걷히듯이 철조망이 조금씩 걷어지는 날이 강화도 교동의 대룡시장을 발걸음 옮기면서 하루 빨리 오기를 소망하였다.
약력
2005년 한맥 문학 수필 등단, 작품명 ‘백묘국’
방송대 국어국문학과 졸업, 한국 문협 회원, 강서문협 회원
작품집 : 「꿈이 오는 소리」외 공저 다수
수상 경력 : 2007년 서울시 교육청 외부강사 부문 은상
2012년 한국언론진흥재단 신문논술 대회 장려상
2016년 강서문학 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