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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애굽기 강론 73강
출애굽기 30:11-16
생명의 속전
생명의 속전에 대한 말씀인데 회막 봉사를 위해 쓰도록 말씀하셨다. 매일의 번제를 통해 살펴보았듯이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사람이나 짐승을 막론하고 태에서 처음 난 모든 것은 다 거룩히 구별하여 내게 돌리라 이는 내 것이니라 하시니라”(출 13:2)라는 말씀에 근거하여 “내가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레위인을 택하여 이스라엘 자손 중에 태를 열어 태어난 모든 맏이를 대신하게 하였은즉 레위인은 내 것이라”(민 3:12)라고 말씀하셨다. 이 말씀을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맏아들의 역할을 대신한 레위인을 하나님의 것으로 인정하고 확인한다는 차원에서 속전을 낸다. 이 율법 역시 언약의 말씀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율법 속에 하나님께서 나타내고자 하신 복음을 생각해야 한다.
“11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12 네가 이스라엘 자손의 수효를 조사할 때에 조사받은 각 사람은 그들을 계수할 때에 자기의 생명의 속전을 여호와께 드릴지니 이는 그것을 계수할 때에 그들 중에 질병이 없게 하려 함이라”(11-12절). “말씀하여 이르시되”(11절)란 하나님께서 자기 언약의 말씀을 모세에게 선포하신다는 것이다. “조사”(12절)의 ‘로쉬’는 ‘머리, 꼭대기, 우두머리, 시작, 처음’이라는 뜻이다. “생명의 속전”(12절)이란 ‘코페르 네페쉬’인데 ‘코페르’는 ‘카파르’(덮다, 화해하다, 속죄하다)에서 유래하였는데 ‘몸값, 속전, 역청’이라는 뜻이고, ‘네페쉬’는 ‘호흡하는 존재, 영혼, 생명’이라는 뜻이다. 따라서 생명의 속전이란 영을 갈구하는 존재로서 사람의 값을 의미한다. “계수할 때에”(12절)의 ‘파카드’는 ‘세다, 계수하다, 돌보다, 방문하다, 임명하다’라는 뜻이다.
그가 별들의 수효를 세시고 그것들을 다 이름대로 부르시는도다(시 147:4)
너희는 눈을 높이 들어 누가 이 모든 것을 창조하였나 보라 주께서는 수효대로 만상을 이끌어 내시고 그들의 모든 이름을 부르시나니 그의 권세가 크고 그의 능력이 강하므로 하나도 빠짐이 없느니라(사 40:26)
수효를 센다는 것은 이름을 부르신다는 의미와 같다. 이스라엘 백성을 계수한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머리로 한 자들을 자기 이름이 되게 하시고 돌보신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한마디로 하나님의 소유가 된 자들을 다스리신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속전이라는 돈을 낸다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머리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한 몸이 된 자들이 생명으로 속량된 것을 확인할 수 있다는 뜻이다.
“질병”(12절)의 ‘네게프’는 ‘타격, 재앙’이라는 뜻이다. 출애굽기 15:26에서 “이르시되 너희가 너희 하나님 나 여호와의 말을 들어 순종하고 내가 보기에 의를 행하며 내 계명에 귀를 기울이며 내 모든 규례를 지키면 내가 애굽 사람에게 내린 모든 질병 중 하나도 너희에게 내리지 아니하리니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여호와임이라”라고 말씀하셨다. 애굽에 내린 재앙이 질병이라고 하였다. 즉 애굽에 내린 것과 같은 심판으로 말미암아 생명이 확인된 자에게는 주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의미이다.
그러니까 질병은 단순히 육체의 병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애굽에 내려진 재앙으로 인한 심판을 의미한다. 결국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건지신 것은 유월절 어린 양의 피로 대가를 치루셨다는 것을 전제하고 그것을 알라는 의미에서 생명의 속전을 내라는 것이다. 따라서 생명의 속전은 이스라엘이 구원을 얻는 조건이 아니다. 이미 출애굽이 이루어진 상태에서 말씀하신 것이기 때문이다.
“무릇 계수 중에 드는 자마다 성소의 세겔로 반 세겔을 낼지니 한 세겔은 이십 게라라 그 반 세겔을 여호와께 드릴지며”(13절). “세겔”은 당시 무게로 환산하는 화폐의 단위이다. 성소의 세겔과 왕의 세겔(삼하 14:26) 그리고 일반 세겔이 있다. 왕의 세겔은 일반 세겔의 두 배 정도 된다고 하고 그중에 성소의 세겔이 가장 가볍다고 한다. “게라”는 이스라엘의 무게 단위 중 가장 작은 단위로 약 0.6g의 은을 말한다. “이십 게라”는 약 12g의 은이고, 이를 한 세겔이라고 한다. 생명의 속전이 “반 세겔”이니 약 6g 정도가 된다. 값으로 따지면 아주 작은 돈이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작은 값으로 생명의 속전을 낸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가? 시편에 보면 이런 대목이 나온다.
6 자기의 재물을 의지하고 부유함을 자랑하는 자는 7 아무도 자기의 형제를 구원하지 못하며 그를 위한 속전을 하나님께 바치지도 못할 것은 8 그들의 생명을 속량하는 값이 너무 엄청나서 영원히 마련하지 못할 것임이니라(시 49:6-8)
시편 기록자는 값으로 따지면 엄청난 것이어서 도저히 생명을 속할 수 없는 것이라고 하였다. 그러니 인간 편에서 생명의 속전은 불가능한 것이라고 선언한 것이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생명의 속전을 치루셨다면 분명 그것은 은혜이다. 이런 점에서 이미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하나님께서 생명의 속전을 유월절 어린 양의 피로 치루셨다는 것을 확인하라는 의미이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왜 “성소의 세겔로 반 세겔을 낼지니 한 세겔은 이십 게라”라고 말씀하셨는가? 속전으로 내는 세겔은 반 세겔인데 ‘반 세겔은 십 게라’라고 말씀하시지 않고 반 세겔을 생명의 속전으로 말씀하시면서 “한 세겔은 이십 게라”라고 말씀하셨는가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한 세겔에 의미를 두고 말씀하신 것이다. 다시 말해서 이십 게라라는 단위를 설명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속적의 반 세겔이 한 세겔로 밝히실 것이라는 의미이다. 이스라엘의 역사 속에서 속전은 후에 성전세가 되었는데 성전세를 거두는 자들이 베드로에게 “너의 선생은 반 세겔을 내지 아니하느냐”라고 묻자 베드로는 “내신다”라고 하고는 예수님을 만나니 예수님께서 “세상 임금들이 누구에게 관세와 국세를 받느냐 자기 아들들에게냐 타인에게냐”라고 물으셨다. 그때 베드로는 “타인에게”라고 답했고, 예수님께서 “그렇다면 아들들은 세를 면하리라”라고 하셨다. 그리고는 이 말씀을 하셨다.
그러나 우리가 그들이 실족하지 않게 하기 위하여 네가 바다에 가서 낚시를 던져 먼저 오르는 고기를 가져 입을 열면 돈 한 세겔을 얻을 것이니 가져다가 나와 너를 위하여 주라 하시니라(마 17:27)
예수님은 성전의 주인이시기에 성전세를 낼 필요가 없었지만 그들이 실족하지 않기 위해서 내신다는 것이다. 그래서 낚시하여 물고기에 입에서 나온 한 세겔로 성전세를 주라는 것이다. 이 이적은 단순히 물고기 입에서 한 세겔을 얻을 수 있었다는 것이 아니라 한 세겔의 성전세를 “나와 너를 위하여 주라”라는 말씀이다. 예수님께서 세를 면제받는 자를 “아들들”이라고 하셨다(마 17:26).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셨고 자기 백성들을 불러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관계로 만드신다. 이런 점에서 “아들들”이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에 하나 된 자로 곧 교회를 지칭한다.
26 너희가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아들(들)이 되었으니 27 누구든지 그리스도와 합하기 위하여 세례를 받은 자는 그리스도로 옷 입었느니라 28 너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남자나 여자나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 29 너희가 그리스도의 것이면 곧 아브라함의 자손이요 약속대로 유업을 이을 자니라(갈 3:26-29)
4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5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6 이는 그가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는 것이라(엡 1:4-6)
그렇다면 물고기 입에서 한 세겔을 얻은 이적은 단순한 이적이 아니라 표적으로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가리키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단순히 생명의 속전 반 세겔을 낸다는 것에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라 유월절 어린 양의 죽음에 의한 것을 확인해야 하는 것이라면 진짜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반 세겔이 되어 주셨고, “나와 너”가 하나 되어 한 세겔로 완성된 진리로 드러내신 것이었다. 그래서 의도적으로 “한 세겔은 이십 게라”라고 한 세겔을 지향하는 말씀이었다. 결국 유월절 어린 양의 죽음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을 가리키는 것이었고 생명의 속전을 통해 십자가 죽음 안에 완성된 교회를 계시하는 말씀이다. 교회 된자요 성도는 예수 그리스도의 속전, 곧 속량으로 말미암아 생명을 누리는 아들들이다. 그래서 베드로 사도는 이렇게 선언하였다.
18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이 물려 준 헛된 행실에서 대속함을 받은 것은 은이나 금 같이 없어질 것으로 된 것이 아니요 19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 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된 것이니라(벧전 1:18-19)
여기서 “헛된 행실”을 “조상들이 물려 준” 것이라고 하였다. 조상들이 물려 준 것은 단순히 “세상을 착하게 살아라, 남에게 피해를 입히지 말고 정직하게 살아라”라고 하는 교훈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율법을 문자로 행하는 것이다. 조상 대대로 율법 행함을 자기 의로 삼는 것이 유대인들의 모습이고 죄인의 본질적인 모습이다. 그러므로 헛된 행실에서 대속함을 받았다는 것은 문자의 율법에서 대속함을 받았다는 뜻이고 이는 곧 문자의 율법을 행함으로 영생을 얻으려고 한 죄악에서 대속함을 받았다는 의미이다. 이 대속이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4 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에 나게 하신 것은 5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을 속량하시고 우리로 아들의 명분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갈 4:4-5)
13 그가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사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으니 14 그 아들 안에서 우리가 속량 곧 죄 사함을 얻었도다(골 1:13-14)
“14 계수 중에 드는 모든 자 곧 스무 살 이상 된 자가 여호와께 드리되 15 너희의 생명을 대속하기 위하여 여호와께 드릴 때에 부자라고 반 세겔에서 더 내지 말고 가난한 자라고 덜 내지 말지며”(14-15절). “계수 증에 드는 모든 자”(14절)란 하나님의 소유가 되어 돌보심의 은혜를 입은 자를 지칭한다. “스물 살 이상 된 자”(14절)란 전쟁이 나갈 수 있는 성인 남자라는 의미이다. 이들이 생명의 속전을 낸다는 것은 이스라엘이 유월절 어린 양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애굽에서 나올 수 있었던 것은 전쟁이었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그래서 이스라엘을 “내 군대, 내 백성”(출 7:4)이라고 하셨다. 그러나 이 전쟁은 이스라엘이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친히 자기 백성을 애굽과 같은 죄악의 세상에서 빼내시는 전쟁이다. 따라서 하나님의 소유가 되는 은혜를 입은 자는 속전을 통해 하나님의 은혜를 확인하는 것이다. 그러기에 은혜 안에서는 부자나 가난한 자의 구별이 없다.
21 이제는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으니 율법과 선지자들에게 증거를 받은 것이라 22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 23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24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 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롬 3:21-24)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서 속전을 취하여 회막 봉사에 쓰라 이것이 여호와 앞에서 이스라엘 자손의 기념이 되어서 너희의 생명을 대속하리라”(16절). “회막 봉사”란 제사장들이 제사로 섬기는(히, ‘아바드’) 속죄에 있다. 곧 예수 그리스도 십자가 죽음의 온전한 섬김이다. 따라서 생명의 속전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을 나타내는 것이다. “기념”의 ‘직카론’은 ‘자카르’에서 온 단어로 ‘기념(물), 생각나게 하는 것, 기억, 회상’이라는 뜻이다. 하나님께서 기억하심으로 그 언약을 계속 이어가시고 결국에는 언약을 온전히 성취하실 것이라는 말씀이다(20260628 강론/주성교회 김영대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