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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일 神父의 - 외줄위를 걷는 人生
40. 망미동성자
새벽에 출근해 보니 탈의실에서 ‘생쥐’라고 별명이 붙은 40대 남자가 여러 명에게 둘러싸여 치도곤을 당하고 있었다.
거의 숨도 못 쉴 정도로 몰아치는 분위기를 보니 밀고자로 낙인 이 찍힌 모양이었다.
그는 처음 만나 통성명을 했을 때 나에게 천주교신자라며 묵주를 보여 주었었다.
동료들은 옆에서 코웃음을 쳤다.
그는 남들이 경멸을 하든 말든 작업반장에게 달라붙어 냉정한 얼굴로 동료들을 감시했다.
그렇다고 그에게 별다른 혜택이 가는 것은 없다고들 했다.
단지 그 역할에 따른 미미한 권력을 즐기는 것 같았다.
내가 오기 한 달 전에 거의 말 한마디 없이 노동만 하다 간 천주교수사님이 있었다고 했다.
그가 왜 이곳에서 막노동을 하고 있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얼마간 있는 동안에도 한없이 나누고 베푸는 모습을 보여주어 매우 존경을 받았던 모양이다.
수사님이 떠난 뒤 그는 갑자기 천주교신자가 돼버렸다는 것이다.
그는 작업반장의 각별한 비호를 받는다. 그래서 그를 겁주는 것도 한도가 있다.
여기서도 기술자는 특별우대를 받는다. 기술이 없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삽이 부착된 연장 취급을 받는다.
지하철 현장에서 사람들이 제일 부러워하는 기술자는 여기 저기 웅덩이에 고인 물을 퍼내는 게 임무인 양수기 기술자다. 비가 올 때만 바쁜 척 하는데 평소에는 양수기 몇 대 설치해 놓고 특별히 하는 일 없이 빈둥거리고 노는 것 같다.
일이 고되다 보니 노가다들은 틈만 있으면 더 쉬운 일에 대한 정보를 교환한다. 가만히 옆에서 들어보면 타일 붙이는 현장의 데모도가 가장 쉬운 일이라고 입을 모은다.
문제는 매일 일거리가 있는 게 아니기 때문에 결국 일당 칠천 원의 지하철 노가다로 사람들이 몰리는 것이다. 노동은 고되다. 그러나 더 힘든 것은 평생 육체노동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절망감이다.
특히 과거 사무실에 앉아 볼펜 돌리며 일했던 사람들이 가장 고통스러워했다.
오늘은 지하 25미터 아래로 배치를 받았다.
모두들 삽질을 하면서도 목은 일제히 하늘로 쭉 뽑고 있다.
머리 위에서는 대형 크레인이 쉴 새 없이 철제 빔을 옮기고 있어 언제 갑자기 수십 톤 무게의 철제 빔 묶음이 굴러 떨어질 줄 모르기 때문이다.
철제 빔이 바닥 쇠판에 놓일 때마다 굉음과 함께 흙먼지와 녹슨 쇳가루들이 지하로 쏟아져 내린다.
현장은 소음이 심한 탓인지 모두들 비명을 지르거나 고함을 질러 주의를 환기시킨 뒤 손짓 발짓으로 의사소통을 한다.
아! 소음들!
육교 도로 건축 등 모든 시설들이 임시로 만든 가설이기 때문에 이런 것들이 서로 하중을 받아 비틀거리면서 처참한 신음소리를 낸다.
가만히 들어보면 온갖 소리가 다 들린다.
흐느껴 우는 소리 같기도 하고 장타령 같기도 하고. 철제빔 끊어내는 소리, 중장비 엔진소리에 뒤섞여 쇳덩어리에 깔려죽은 원혼들마저 탄식소리를 보태는 모양이다.
모든 사물들이 거대한 규모로 앓고 있다.
밤이면 철제 빔에 깔려 빠져나오려고 애쓰는 꿈을 꾸곤 한다.
“나는 원래 용접전문이 아니요. 도면보고 하는 전기마끼가 내 전공이요.
배에 있어서는 우리나라에서 나를 따를 사람이 없을 거요.
지금 조선공사 생산부 이사하는 사람도 내 밑에서 기술을 배운 사람이요. 그 친구가 서울대 조선공학과 나와서 처음에 인천에 왔을 때, 나하고 니 내 해가며 술 먹었었지요.
그런데 내가 그 좋은 거제도에서 복잡한 일이 터지는 바람에 나와서 여기 저기 돌아다니다가, 조선공사 취직할라꼬 그 노마한테 케이크 5만 원짜리 사들고 찾아 갔었소. 얼마나 반가와 하든지.
그런데 마 결과적으로 안됐소. 오랜 친구처럼 대해주고, 술은 비싼 걸로 사줘서 잘 얻어 묵었지만. 밑에서 틀어 뿌리는데 될 수가 있능교? 밑에 놈도 뭐 좀 달라 이거지요.
거제도에서 괜히 나왔소. 부산에도 그렇게 좋은 아파트는 없을 끼요. 삼성 대우에서 아파트 지었으니 오죽 하겠소?
아이 많이 낳지 마시오. 그저 하나만 만드소. 나는 지금 셋인데, 하나만 없어졌으면 싶은 생각이오.”
“조금 전에 학교 갔다 오다 인사하고 간 그 따님 참 예쁘던데 왜 그렇게 말씀하십니까?”
“예쁘면 뭐 하요? 이제 겨우 초등학교 들어갔는데 키울 생각하면 앞이 캄캄 하요. 그런데 학생! 여기 온 지도 꽤 되었을 낀데 몇 대가리 했소?”
“거의 스무 대가리 쯤 했을 낍니다.”
“봉투가 두툼하게 배가 부르겠는데? 나는 며칠 직장 알아보러 다녔드마는 이번 달에는 몇 대가리 못 했소.”
“철야하면 한 대가리 더 쳐 준다던데 사실 입니까?”
“기술 없는 사람이나 사무실 빽 없는 사람은 해당사항 없고. 마 기대하지 마소.”
“그런데 왜 일당을 대가리라고 합니까?”
“사무실에서 일당을 머리 숫자로 치는 모양이요.”
“애기 낳는데 돈 얼마쯤 듭니까?”
“십만 원이면 떡을 치고 남소.”
“그것 밖에 안 듭니까?”
“떼돈 들면 누가 애기를 낳겠소? 그냥 저절로 나오는 건데 괜히 돈 쳐 들이는 거요. 병원이 하도 어렵다 해서 돈 보태 줄라꼬.”
노가다만 할 수 있는 최대한 편한 자세로 자재더미 위에 누워 부산역 앞 인파를 구경한다.
모두들 나만 빼놓고 저희들끼리 행복하게 살아가는 것 같다.
여기서 어깨 너머로 배운 막걸리 타령을 흥얼거린다.
‘막걸리 막걸리이요, 경상도 막걸리이요. 먹기만 먹으면 내 기분 좋더라. 우리가 살면은 몇 백 년을 살 꺼나. 즐거운 내 청춘 다 늙어 가구나.’
“야 이 양반아! 삽 좀 더 팍팍 세워 팔 수 없어? 아침밥 굶었어?”
“내 몸이 쇠로 만든 줄 아요? 그렇게 팍팍 파다가는 노가다 생활 길게 못 해요.”
공수부대 출신 사나이 목소리에 날이 섰다. 아래쪽 현장에서 나는 소리다.
사무실직원과는 항상 긴장이 흐른다. 노가다들은 사무실 사람들을 독사 보듯 경멸하고 증오한다.
사무실 사람들도 노가다들과는 눈을 맞추지도 않으려 하고, 그저 기계처럼 그들도 감정이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철저히 무시한다.
다투는 소리를 들으니 갑자기 배가 고프다. 그래서 그런지 시간이 더 안 간다.
분초가 지옥처럼 도통 흐르질 않는다. 그러니 배고픈 놈은 인생을 길게 산다고나 할까.
오후 5시 이후 시간이 더디 가는 것은 참을 시원찮게 먹은 탓이다.
공장에 다니는 친구들이 군것질이 심한 이유도 시간을 빨리 가게 하려는 것인 가보다. 점심시간 참시간 기다리며 하루하루를 견딘다.
드디어 월급날이다. 내 나고 처음 받아보는 임금봉투!
줄을 서서 회사입구 경비실에서 받아든 임금봉투! 가슴이 떨린다. 손에 든 누런 봉투가 너무 대견해 몇 번이고 쓰다듬었다.
이제 겨우 사람노릇을 하게 되었다는 대견함 때문인가. 아내 뱃속의 아기에게도 애비구실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약간 붙었다.
저녁에 일마치고 교회청년들을 불러 저녁을 같이 먹었다. 얘기 끝에 지속적으로 기도모임을 가질 사글세방을 얻기로 했다.
모두들 희망에 부풀어 이런 저런 안을 내놓았다. 교회를 아예 개척하자는 안도 나왔다.
“다윗! 노가다 자리 한번 알아 봐. 지하철노가다는 아무래도 틀렸어. 자꾸 요령 피우고 눈치만 보게 돼.
그렇잖아도 일이 서투른데 꾀만 늘면 어떻게 되겠냐? 현장분위기가 열심히 일하면 이상하게 왕따 되는 분위기야.”
“지하철노가다가 그나마 쉬운 편인데. 너무 무리하지 말고 천천히 살살 하이소. 몸 다치면 말짱 황입니더. 내 한번 알아나 보께요. 요즘 노가다 자리 구하기가 하늘에 별 따기입니더.”
“경일씨는 어떻게 할거야? 안 나올 거야?”
“예! 다른 일을 해볼 생각입니다.”
“사귈 만하니 가는군.”
작업반장은 잠시 눈을 맞추고 무슨 말인가 하려다 입을 다물었다. 꼭 한 달 반을 일하고 그만두었다. 때마침 존경하고 따르던 신학교교수님에게서 만나자고 연락이 왔다. 급히 상경하여 아내를 데리고 함께 만났다.
“오히려 이렇게 된 것이 하느님의 축복이라고 생각지 않나? 자네가 생활을 해 나가면서 교회의 본질적 모습을 추구한다면 그게 오히려 더 위대한 진전이 아닐까.
나는 이왕 받은 사제직을 어쩔 수 없지만, 자네는 굳이 그 길을 갈 이유가 무언가. 자유롭게 살 순 없는가? 예수처럼 말일세.”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아내는 입을 꼭 다물고 땅만 내려다보며 걸었다.
사제직을 이쯤에서 포기하고 이제 먹고 살 길을 찾으라는 통고로 들은 것이다. 놀랄 것도 새로울 것도 없는 얘기였지만 대화의 분위기는 무거웠다.
교회청년인 다윗이 전화를 했다. 자기가 우연히 알게 된 사람인데, 사람이 워낙 좋으니, 오늘 무조건 현장에 찾아가서 사정얘기를 해보라는 것이었다.
그는 그저 가정집보일러를 시공하러 다니는 평범한 노가다 십장이지만, 깡패든 전과자든 그 밑에서 참고 일을 배우기만 하면 사람이 반듯하게 변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 중에는 실력을 키워 독립해 나간 사람도 꽤 있다고 하였다.
다윗은 나를 망미동 골목의 어느 허름한 집으로 데려갔다.
그가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곳을 보니, 얼굴이 희고 뼈대가 굵은 사람이 대낮부터 불콰한 얼굴로 지나가는 아줌마는 죄다 붙들고 막걸리를 권하고 있었다. 막상 말을 꺼내려니 막막해서 현장을 몇 번 빙빙 돌며 마음을 다잡았다.
“저는 백수인데요. 아내는 점점 배가 불러오고. 손에 쥔 건 없고. 소문 듣고 무작정 찾아왔습니다.”
“막걸리나 한 잔 하소.”
“고맙습니다.”
“노가다 해 봤소?”
“지하철에서 한 달 일했는데, 배운 것은 없습니다.”
“담배 한 대 피우고, 모래나 한 쪽으로 정리해 주소. 곧 점심 먹을 시간이니.”
멀찍이 간판 뒤에 숨어서 지켜보던 다윗은 안심했는지 벌써 저만큼 가고 있었다. 그 날 오후 내내 일머리가 없는 나는 괜히 허둥대기만 하다 시간을 다 보냈다.
“보소! 나는 이병곤이라 하는데, 삽질 한 번도 안 해 봤소? 그래 갖고 밥 묵겠소?”
“이 사람 보게요. 니 처음 여기 들어왔을 때 생각해 봐라. 누구든지 처음에는 다 그런 기라. 차차 배워야지 우짜겠노. 열심히 하면 다 묵고 사요. 걱정 마소.”
“십장님도 참 내. 일에 도움은 안 되고, 오히려 더 신경 쓰게 만드니 하는 말 아니요.”
“니는 마 밥이나 묵어라. 얼른 밥 드소. 배고플 낀데.”
“형요! 설비사 자격증 시험은 어찌 됐소?”
“실기 시험 쳤는데 난생 처음 치는 시험이라 너무 긴장한 탓인지 손에 마비가 온 기라. 시험 떨어지는 갑다 싶어서 파이프 깎는 기계에다 손을 여러 번 내리쳤다 아이가. 다행히 피가 나면서 감각이 돌아오데. 그 다음 부터는 늘 하던 거라 여반장인기라.”
“그라몬 합격이요? 진짜 축하 하요. 술 한 잔 받으소”
“내사 마 모르겠다. 설비사 자격증은 땄지만 한편 기쁘면서도, 이제 노가다 벗어나기는 텄다 싶어서 눈물이 나는 기라. 초등학교도 제대로 못 다닌 내가 밥 먹고 사는 것도 복이다 싶기는 한데.”
“에헤이. 또 울라 카네. 합격 되었으면 된 거지. 뭔 말이 많소? 형수는 철물점 운영. 형은 노가다십장. 돈은 갈쿠리로 긁고 있고. 어쨌든 한 턱 내소.”
“김군이라 했제? 노가다 가르친 것을 나중에라도 원망할까봐 두렵다 카이. 얼마든지 좋은 직업이 많은데. 여기서 이러다 헤어 나오지 못 하게 되면 어쩌나 늘 걱정이오.
노가다 하다보면 돈 따박 따박 받아먹는 재미에 다른 직업을 알아 볼 시간이 없어 묶이기 십상이오.”
“노가다가 뭐가 어떻다고 그라요? 사기 치는 것도 아니고. 땀 흘려 일해서 먹고 사는데.
우리처럼 정직하게 묵고 사는 직업이 어디 있소? 맹출이형 오늘 진짜 마음에 안 드네. 처음 온 양반 마음 약해지게.
형님이 말을 저렇게 해 싸도 일 년 내내 하루도 안 쉬고 일해 갖고 큰 집이 벌써 두 채나 되요. 속지 마소.”
“내일부터 여기로 나오소. 부르기 좋게 김군이라 하지.”
그는 아무 소리 말고 받으라며 하루일당을 다 주었다.
“보소! 형요. 나이 몇 살 묵었소? 나보다 열 살은 더 묵은 것 같은데 우째 그래 일을 못 하요?
노가다판에서는 삽 한 자루로 집 짓는다 안 하요. 삽질이 기본인데 삽 한번 다시 잡아보소.
자세가 그기 뭐요? 그래 가지고 밥 묵겠소?”
“잘 좀 가르쳐 도고. 나도 묵고 살자.”
“형! 찔통 어쨌소?”
“글쎄 찾고 있는 중이다.”
“형요! 앞으로 찔통이라 하지 말고 밥통이라 하소.”
“그래. 밥통이다.”
“그런데 밥통이 모래만 얹으면 엎어지니 그래 가지고 밥 먹겠소? 찔통에 삽 올릴 때 자세와 삽 놓는 위치를 한 번 눈여겨보소. 찔통 질 때도 등을 바짝 붙이고 줄을 땡기야죠.”
“기초부터 잘 가르쳐 도고. 밥은 내가 사께.”
“십일 뒤에 중국인촌에 집 고치러 초량동에 간답니다. 공사기간도 길고 하니 정신 바짝 차리소. 목돈 만질 기회요.
미장이 타일 조적공 꾼들 다 모이니 인사 잘 하소. 앞으로 그 양반들하고 자주 만날 끼요. 눈치 빠르게 움직이소.”
한여름 복더위에 모두들 늘어지는데 덥다고 일을 안 할 수는 없는 일. 큰 집을 기둥만 세워두고 몽땅 털어 거의 새로 집 짓듯 하는 공사라 죽음의 행진이 따로 없다.
호사다마라고 방해꾼이 생겼다. 등이 맞붙은 뒷집 아주머니 한 분이 담 위에 걸터앉아서는 공사를 일일이 감독한다.
빗물이 튄다고 소리쳐서 새로 한 철근 콘크리트 지붕을 톱날을 몇 개째 깨 먹어가며 잘라냈더니, 이제는 담이 한 자 더 들어왔다고 동사무소 직원가지 대동해 물리라고 해서 신축한 담을 다 무너뜨려야 했고, 나는 며칠째 자빠뜨린 담벼락잔해에서 고른 블록에 붙은 시멘트똥을 깨내느라 혀가 쭉 빠질 판이었다.
법적 지위가 약한 화교는 문밖으로 얼씬도 하지 않고 숨어 지내니, 공기는 늘어만 가고 손해 보는 공사라는 말까지 새나온다.
그래도 십장은 얼굴표정 하나 바꾸지 않고, 아주머니의 요구를 다 들어준다. 아주머니는 재미 붙였는지 담벼락에 원숭이처럼 올라 앉아 계속 요구사항을 쏟아놓는다.
그 날도 시멘트똥을 망치로 깨내며 블록을 다듬고 있는데 아주머니가 또 머리 위에서 무어라고 소리를 지른다.
“야 이 00년아! 집에 불 난 것도 아닌데 너도 사람 탈을 썼다면 이제 그만 좀 해라!”
내가 욕지거리를 했고, 병곤이도 질세라 함께 쌍욕을 퍼부었다. 아주머니가 쏜살같이 담을 타고 내려오더니 하얗게 질린 얼굴로 보일러선을 깔고 있던 십장에게 삿대질을 했다.
“십장! 저 개새끼들! 인간 같지 않은 것들이 노가다나 해 쳐 먹으면서 어따 대고 욕이야 욕이! 저것들 일당 주지마쇼. 일당 주면 내 가만 안 놔두겠어.”
“아주머니! 하루 벌어 하루 사는 노가다에게 일당을 주지 말라면 굶어 죽으란 말이요? 땀 흘려 일해 먹고 사는 사람을 왜 그렇게 무시합니까? 하늘이 무섭지도 않습니까? 우리도 사람입니다. 밥은 먹어야 살 것 아닙니까?”
하늘이 쪼개지는 듯 귀가 멍멍해지는 고함소리에 우리가 다 놀랬다. 화내는 것을 처음 보았기 때문이었다. 순간 아주머니는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도 않았다.
“이 사람들아! 노가다는 직업 중에 제일 밑바닥이야. 그래서 노가다는 이력서도 필요 없고 시험도 없는 거야. 찔통을 스무 번을 지면 뭐하냐?
감정이 났을 때 한번 참는 것이 더 어렵다. 그게 수양이다.”
“잘못했습니다.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주의하겠습니다.”
“노가다가 그 고생을 하고 살면서 인간수양 그것밖에 못 했냐는 말을 들으면 더 비참해진다. 오늘 내가 화 낸 것은 내가 내 자신에게 진 거다.”
아주머니는 그 사건 이후로 통 얼굴을 비추지 않았다. 십장은 여전히 바위처럼 화를 내지 않았고, 나는 참을성이 없어 그 뒤로도 툭 하면 화를 냈다. 어찌 보면 십장이 너무 참는 통에 답답해진 우리가 대신 화를 폭발시키는 꼴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