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 요한 바오로 2세 성하의 제31차 세계 평화의 날 담화 (1998년 1월 1일)
모든 사람의 평화는 개인의 정의에서 비롯됩니다
1. 정의와 평화는 서로 손을 마주 잡고 나아가며, 정의는 언제나 평화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정의와 평화는 개인과 전체의 선익을 추구하며, 질서와 진실을 요구합니다. 그 하나가 위협을 받으면 둘 다 휘청거립니다. 정의가 침해되면 평화 또한 위태롭게 됩니다. 개인의 정의와 모든 사람의 평화는 매우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올해 세계 평화의 날 담화에서 저는 누구보다도 모든 국가 지도자에게 호소하고자 합니다. 오늘날의 세계가 비록 여러 지역의 긴장과 폭력, 갈등으로 물들어 있기는 하지만 인류 전체의 지속적인 참 평화를 위하여 새로운 구도와 더욱 안정된 균형을 추구하고 있습니다. 정의와 평화는 추상적인 개념이나 머나먼 이상이 아닙니다. 그것은 모든 사람의 마음이 공동 자산으로 간직하고 있는 가치입니다. 개인, 가정, 공동체, 국가는 모두 정의 안에서 살고 평화를 위하여 일하도록 부름받고 있습니다. 그 누구도 이러한 책임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지금 이 순간 저는, 결코 바라지 않았는데도 격렬한 분쟁의 한가운데에서 고통받고 있는 사람들을 생각합니다. 저는 또한 소외된 이들과 가난한 이들, 모든 착취의 희생자들을 생각합니다. 그들은 평화의 부재와 불의의 참혹한 결과를 온몸으로 겪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정의와 참 평화의 삶을 갈구하는 그들의 열망을 그 누가 외면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모두 그 열망을 이루도록 해주어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모든 사람이 똑같이 정의를 누리지 못한다면 결코 완전한 정의란 있을 수 없습니다. 정의는 도덕적 덕목인 동시에 법적인 개념입니다. 정의는 때때로 무기력한 모습으로 드러나기도 합니다. 그러나 설제로 정의는 권리와 의무의 균형 유지와 책임과 이익의 공정 분배를 감시 감독하는 것이 그 본래의 임무입니다. 정의는 완전하게 하는 것이지 파괴하는 것이 아닙니다. 정의는 복수가 아니라 화해로 이끕니다. 가장 깊은 차원을 살펴볼 때, 정의는 사랑에 뿌리 그를 박고 있습니다. 정의는 자비에서 가장 뚜렷하게 드러납니다. 그러므로 자비로운 사랑에서 떠날 때 정의는 차갑고 매서운 것이 됩니다. 정의는 생명을 주는 적극적인 덕목입니다. 정의는 모든 인간의 고귀한 존엄을 보호하고 증진하며 개인 사이와 민족 사이의 관계를 보호하는 수호자로서 공동선에도 관심을 갖습니다. 사실, 그 누구도 다른 사람과 완전히 격리되어 살아갈 수는 없습니다. 생명을 갖는 첫 순간부터 모든 인간은 다른 사람과 관계를 맺고 살아갑니다. 따라서 개인의 선익과 사회의 선익은 서로 손을 잡고 나아갑니다. 이 물은 아름다운 균형을 이루고 있습니다.
정의의 기초는 인권 존중입니다 2. 인간은 보편적이고 양도할 수 없는 불가침의 천부 권리들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권리들은 별개로 존재하지 않습니다. 이와 관련하여 저의 선임자이신 요한 23세 교황께서는, 인간은 “그 본성 자체에서 직접 또 동시에 유래되는 권리와 의무를 가진다.”고 가르치셨습니다. 평화의 참된 보루는 이러한 권리와 의무에 대한 올바른 인간학적 토대 위에 또 그 본질적 상호 관계 위에 서있습니다. 근세에 들어, 이러한 인간 권리들이 원리 선언과 구속력을 지닌 법률로 조문화되었습니다. 정의와 자유를 추구해 온 민족과 나라의 역사에서, 이러한 인권 선언은 올바른 긍지로 기념되고 있습니다. 각개인과 모든 사람의 존엄에 대한 명백한 침해를 겪고 난 다음, 이 인권 선언을 흔히 하나의 전환점으로 기리는 것입니다. 50년 전, 어떤 민족의 권리, 심지어는 그 생존권까지도 부정한 전쟁을 겪고 난 다음, 국제연합 총회는 세계인권선언을 반포하였습니다. 그것은 비참한 전쟁을 경험한 뒤, 모든 개인과 모든 민족은 똑같은 권리를 지닌다는 것을 공식적으로 인정하고자 하는 열망에서 이루어진 장엄한 행위였습니다. 문서에서 우리는 시 그간이 지나도 퇴색하지 않는 다음과 같은 선언을 읽습니다. “인류 사회의 모든 구성원은 타고난 존엄성과 남에게 넘겨줄 수 없는 평등한 권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자유와 정의와 세계 평화의 기초는 바로 이 사실을 인정하는 데 있습니다.” 이 문서의 맺음말에도 똑같은 관심을 기울여야 합니다. “이 선언의 어떤 규정도 특정 국가, 집단 또는 개인에게 이 선언에 제시된 권리와 자유 중 어느 하나를 파괴하고자 하는 활동에 종사하거나, 또는 그러한 행위를 수행할 수 있는 어떤 권리를 넌지시 허용하고 있는 것으로 안됩니다.”하여, 해석되어서는 또 더 교묘하게는 세계인권선언에 담긴 말뜻 그 자체를 재해석하거나 고의로 왜곡하는 행위를 통하여, 오늘날에도 여전히 이 규정들을 공공연하게 어기고 있다는 것은 비극적인 사실입니다. 이 문서는 그 규정과 정신을 모두 온전하게 준수해야 합니다. 바오로 6세 교황께서 선언하신 대로, 이 문서는 “특히 평화에 이르는 확실한 길로서 그것이 가지는 중요성을 생각할 때” 국제연합에 그 영광을 몰려야 할 주요한 영예의 하나입니다. 세계인권선언 50주년을 기념하고 있는 바로 올해, “인권 증진과 보호는 국제 공동체의 우선 과제”라는 사실을 상기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 50주년에 인권 개념의 두 가지 본칠적 특성인 ‘보편성’ 과 ‘불가분성’ 에 대한 유보 표명을 비롯하여 어떤 그림자들이 드리워지고 있습니다. 인권 침해를 은폐하기 위하여 문화적 특수성이라는 논리를 이용하는 사람들의 비판, 사회적 경제적 문화적 권리에 대한 법적 책임을 부정함으로써 인권의 개념을 약화시키는 사람들의 비판을 물리치기 위해서는 인권의 이 두드러진 특정들을 강력히 재천명해야 합니다. 보편성과 불가분성은 모든 문화 속에 인권이 뿌리내리게 하는 동시에 인권의 온전한 준수를 보장하도록 법적 장치의 강화를 요구하는 두 가지 지도 원리입니다. 인권 존중이 인권에 대한 법적 보호만을 의미해서는 안되며,모든 인권의 기초인 인간 존엄의 개념에서 유래하는 다른 모든 측면도 포함해야 합니다. 이와 관련하여 교육에 대한 관심이 커다란 타당성을 지니게 됩니다. 인권 증진에 대한 관심도 마찬가지로 중요합니다. 그것은 바로 인간 사랑에서 나오는 의무입니다. “사랑은 정의가 줄 수 있는 모든 것을 넘어서기 때문입니다.” 인권 증진의 맥락에서, 가정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한 노력을 더욱더 기울여야 합니다. 가정은 “사회의 자연적이고 기초적인 단위 집단입니다.”
연대를 통한 세계화 3. 1989년부터 시작된 광대한 지정학적 변화는 사회 경제 분야에 실질적인 혁명을 가져왔습니다. 경제와 재정의 세계화는 이제 현실이며, 우리는 정보 기술과 관련된 급속한 진보의 결과를 점점 더 분명하게 깨닫고 있습니다. 우리는 복잡한 문제들과 더불어 커다란 희망을 안고 있는 새로운 시대의 여명에 서었습니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변화의 결과는 무엇이겠습니까? 모든 사람이 세계 시장에서 이익을 얻을 수 있겠습니까? 마침내 모든 사람이 평화를 누릴 기회를 가지겠습니까? 국가 사이의 관계가 더욱 공평해지겠습니까? 아니면 경제를 둘러싼 민족과 국가 사이의 경쟁과 적대가 인류를 한층 더 불안한 상태로 몰아넣겠습니까? 세계화의 길목에서 더욱 공평한 사회와 더욱 안정된 세계 평화를 위하여 국제 기구들이 시급히 해야 할 일은 공동선에 대한 책임 의식을 증대시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러기 위해서는 결코 인간을 잊어버리는 일이 있어서는 안됩니다. 인간은 모든 사회계획의 중심에 서야 합니다. 그럴 때에 비로소, “사회 발전을 촉진하고 더 큰 자유 안에서 삶의 수준을 더욱 향상시키는 일”을 위임받은 국제연합이 그 본래의 사명에 따라 “민족들의 가정”이 될 것입니다. 이것은 “상호 신뢰 상호 지원, 진실한 존중”에 바탕을 둔 세계 공동체를 건설하는 길입니다. 간단히 말하자면, 그 연대를 통한 세계화, 소외 없는 세계화를 보장하는 것이 과업입니다. 이것은 각국의 유기적인 경제, 사회, 문화, 정치 생활이 지닌 윤리와 더불어 정의 안에서 지는 명확한 의무입니다.
과중한 외채 부담 4. 세계 모든 나라와 지역들은 취약한 경제 또는 재정 능력 때문에 세계화 경제에서 배제될 위험이었습니다. 어떤 국가들은 자원은 많지만 불행하게도 여러 가지 이유로 그 자원을 이용할 수 없습니다. 곧 사회 불안, 내부 갈등, 적합한 구조의 결여, 환경 훼손, 만연된 부패, 범죄, 또 그 밖의 여러 가지 이유가 그것입니다. 세계화는 연대와 이어져야 합니다. 혼자 힘으로는 국제 시장 진입에 성공할 수 없는 나라들이 현재의 불리한 상황을 극복할 수 있도록 빠른 시일 안에 특별 지원이 있어야 합니다. 이것은 정의 안에서 그들에게 진 빚입니다. 진정한 “민족들의 가정”에서는 어느 누구도 배제되어서는 안됩니다. 반대로, 가장 힘없고 나약한 국가들을 지원해 주어야 그 국가들도 자신들이 지닌 풍부한 잠재력을 발전시킬 수 있을 것입니다. 여기서 저는 오늘날 가난한 나라들이 직면해야 하는 가장 큰 어려움 하나를 생각하게 됩니다. 제가 말씀 드리고자 하는 것은 국민 전체의 경제를 망치고 그들의 사회적 정치적 발전을 가로 막는 막중한 외채 부담입니다. 이와 관련하여, 국제금융기구들은 최근에 부채 경감을 보장하기 위한 중요한 조치들에 착수하였습니다. 신축적인 조건을 적용하여 모든 해당 국가가 2000년 전까지 혜택을 받을 수 있는 방향으로 계속적인 진전이 이루어지기를 저는 간절히 바랍니다. 더 잘 사는 나라들은 그러한 조치의 이행을 지원함으로써 이와 관련된 많은 일을 할 수 있습니다. 외채 문제는 그보다 더 큰 문제의 한 부분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것은 곧 빈곤의 지속, 때로는 극심하기까지 한 빈곤의 지속과 세계화 과정에 따르는 새로운 불평등의 출현이라는 문제입니다. 소외 없는 세계화가 목적이라면, 엄청난 부자와 비참하리만큼 가난한 이들, 다른 사람들에게는 절실히 필요한 것들을 아무런 생각 없이 낭비하는 자들과 생필품조차 없는 이들이 함께 사는 세상을 우리는 더 이상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그러한 빈부 격차는 인간 존엄에 대한 모욕업니다. 세계 경제 단체들의 사회 투자와 생산 투자의 지속적인 증대를 비롯하여 빈곤을 없애는 적절한 수단들이 분명히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국제 공동체가 필요한 정치적 결단을 내려 행동하겠다는 의지를 전제로 합니다. 이미 그러한 방향으로 훌륭한 조치들이 취해져 왔습니다. 그러나 영구적인 해결을 위해서는 관련 국가들을 포함하여 모든 사람의 일치된 노력이 요구되고 있습니다.
법 규정을 존중하는 문화가 절실히 필요합니다 5. 그러면 국가들 안에 존재하는 심각한 불평등 문제는 어떠합니까? 절대 빈곤의 상황은 그 상황이 존재하는 곳이라면 어디에서나 으뜸가는 불의입니다. 국가 차원뿐만 아니라 국제 차원에서도 모든 사람이 그러한 불평등을 없애는 일을 최우선 과제로 여겨야 합니다. 우리는 또한 수많은 민족의 사회 정치적 발전을 저해하는 부패의 악을 침묵으로 넘길 수 없습니다. 그것은 법을 조롱하고 정의와 진실의 법칙을 무시하면서 사회 여러 분야에 교묘히 침투하고 있는 현상으로서, 이러한 현상은 갈수록 커지고 있습니다. 부패는 여러 가지 다른 형태를 띠기 때문에 퇴치하기가 어렵습니다. 한 분야에서 퇴치하면 다른 분야에서 발생합니다. 부패를 고발하려면 오로지 용기가 필요합니다. 부패를 척결하기 위해서는 당국의 단호한 결단과 함께 확고한 윤리 의식을 가진 모든 시민의 전폭적인 지지가 필요합니다. 부패 척결을 위한 싸움에서는 공직자들의 책임이 막중합니다. 공직자들은 법의 공평한 적용과 모든 공공 행정 분야의 투명성을 위하여 꾸준히 노력할 의무가 있습니다. 국민들에게 봉사하는 국가는 국민의 자산을 보호하는 관리자이므로, 이 자산을 공동선을 위하여 관리해야 합니다. 좋은 정부는 모든 경제 행위에서 철저한 감독과 완전한 정직성을 요구합니다. 공공의 선익을 위하여 쓰여야 할 자원이 개인적 또는 범죄적 이익을 위하여 유용되는 일은 결코 없어야 합니다. 공공 자금의 유용은 그 누구보다도 가난한 이들에게 피해를 줍니다. 그들은 개인의 발전을 위하여 꼭 필요한 기본적인 도움조차 받지 못하는 일차적인 피해자들입니다. 정의의 관리에 부패가 끼여들 때, 가장 무거운 대가를 치르는 사람도 역시 가난한 이들입니다. 지체, 비능률, 구조 결함, 적절한 방어 수단의 결여로 고스란히 피해를 보는 쪽은 바로 그들 가난한 이들입니다. 그들은 권력의 남용을 견디는 수밖에는 달리 션택의 여지가 없습니다.
공격적인 형태의 불의 6. 평화를 위태롭게 하는 또 다른 형태의 불의가 있습니다. 여기에서 저는 두 가지 불의를 언급하고 싶습니다. 하나는 공정한 신용 대부를 받을 수 있는 가능성의 결여입니다. 가난한 이들은 흔히 일반적인 금융 체계 밖에 머물러있거나 터무니없는 이자를 부과하는 파렴치한 고리대금업자들의 손아귀에 놓일 수밖에 없습니다. 결과적으로 이미 위태로워져 있는 상황만 더욱 악화시킵니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사람은 가난한 이들이 공평한 조건에 알맞은 이자로 신용 대부를 받을 수 있도록 보장해 줄 의무가 있습니다. 실제로 가난한 이들에게 좋은 조건으로 소규모 신용 대부를 해주는 금융 기관들이 세계 여러 곳에 존재합니다. 이러한 일들을 장려해야 합니다. 그것은 가정과 공동체의 품위있는 발전을 위하여 필요한 경제 수단에 접근할 수 있는 길을 모든 사람에게 열어줌으로써 수치스러운 고리대금업을 뿌리 뽑을 수 있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어린이와 여성들에 대한 폭력의 증가를 두고 우리는 무슨 말을 할 수 있겠습니까? 오늘날 이것은 가장 광범위하게 확산된 하나의 인권 침해로서, 슬프게도 그 폭력은 더욱 난폭해 지고 있습니다. 여성을 인질로 잡는다든지 어린이들을 잔인하게 학살하는 일 외에도 강제 매춘, 어린이를 이용한 외설물, 일터에서 어린이들을 노예처럼 착취하는 폭력 행위 등도 언급해야 합니다. 이러한 온갖 형태의 폭력이 퍼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실질적인 조치가 필요합니다. 특히 국가적 국제적 차원에서 적절한 법률 조치들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이전의 담화에서도 제가 여러 번 언급하였듯이, 모든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인정과 존중을 위해서는 교육과 문화 증진이라는 힘든 과업에 직면해야 합니다. 사실, 인류 가족 전체와 개개인의 윤리적 문화적 유산에서 빠져서는 안될 요소가 한 가지 있습니다. 그것은 곧 모든 인간은 동등한 존엄성을 가지며 똑같이 존중받을 가치가 있고 똑같은 권리와 의무를 가진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것입니다.
정의 안에서 이루어지는 평화 건설은 개인과 모든 사람의 과업입니다 7. 우리 모두의 평화는 우리 각자의 정의에서 나옵니다. 어느 누구도 전인류를 위한 그러한 중요한 과업에서 면제되지 않습니다. 그것은 모든 사람과 관련된 것으로, 각자가 자신의 역량과 책임에 따라 그 과업을 수행해야 합니다. 저는 무엇보다도 각국 수반들과 국가 지도자 여러분에게 호소합니다. 여러분은 각자의 나라에서 볍 규정을 지키는 데 앞장서야 할 사람들입니다. 물론 임무를 수행하기가 쉽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여러분의 주요 의무입니다. 여러분이 봉사하고 있는 국가의 지배 규범이 사람들에게 정의를 보장하고 국민의 책임 의식을 더욱 증대시키게 되기를 바랍니다. 더 나아가, 정의 안에서 평화를 건설하는 일은 사회 모든 분야의 협력을 요구합니다. 각기 그 영향력의 분야에서 공동체 안의 다른 집단들과 조화를 이루며 협력할 것을 요구합니다. 특히 저는 모든 차원에서 젊은 세대의 교육과 양성에 투신하고 있는 교육자 여러분에게 격려를 보냅니다. 젊은 세대들에게 도덕적 시민적 가치들을 가르쳐주시고, 학교 공동체의 경험 자체에서 시작되는 권리와 의무 의식을 그들 안에 생생히 불어넣어 주십시오. 평화를 가르치려면 정의를 가르치십시오. 이것이 여러분의 으뜸가는 임무입니다. 교육에서 가정을 빼어놓을 수는 없습니다. 가정은 젊은 세대의 인성 교육에 적합한 환경입니다. 사랑하는 모든 부모님, 여러분 자녀의 도덕성은 여러분에게 달려있습니다. 자녀들은 여러분이 가정의 중심에서 또 가정 바깥에서 발전시켜 나가는 관계를 통하여 도덕성을 배웁니다. 가정은 삶을 배우는 첫 번째 학교입니다. 따라서 가정은 개인의 미래 발전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칩니다. 마지막으로, 저는 자발적으로 정의와 평화를 갈망하는 세계의 젊은이 여러분에게 말씀 드립니다. 정의와 평화를 끝까지 추구하고, 어떠한 상황에서든 인내와 끈기를 가지고 이 이상을 추구해 나가십시오. 부(富)와 성공의 헛된 망상을 위하여 불법적인 지름길을 택하려는 유혹을 단호하게 뿌리치십시오. 비록 그러한 세태에 거스를 때 희생과 노력이 따르더라도, 참되고 옳은 것을 존중하십시오. 그러할 때, “개인의 정의에서 모든 사람의 평화가 비롯됩니다.”
나눔, 평화로 가는 길 8. 2000년 희년이 빠르게 다가오고 있습니다. 희년은 신앙인들에게는 역사의 주님이신 하느님께 특별히 바쳐진 시간이며, 모든 피조물은 근본적으로 창조주께 의존한다는 것을 상기시켜 줍니다. 그러나 성서의 전통에서, 희년은 노예들을 해방시켜 주고 땅을 그 원래 주인에게 몰려주고 빚을 탕감해 줌으로써, 하느님께서 바라시는 상황, 곧 모든 사람이 평등한 상황을 회복하는 시기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희년은 평화로 나아가는 그러한 정의를 추구해야 할 특별한 때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사랑이신 하느님께 대한 믿음으로, 또 그리스도의 세상 구원에 동참함으로써 올바르게 행동하고, 모든 사람과 평화롭게 살도록 부름받고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에게 단지 평화만을 주시는 것이 아닙니다. 그분께서는 우리에게 당신의 정의가 함께하는 당신의 평화를 주십니다. 그분께서는 평화이시며 정의이십니다. 그분께서는 우리의 평화가 되시고 우리의 정의가 되십니다.” 저는 거의 20년 전에 이 말씀을 드린 바 있습니다. 그러나 이 말씀은 현재 진행되고 있는 근본적 변화의 상황에서 한층 더 구체적이고 중요한 의미를 띱니다. 가난하고 힘없고 고통받는 이들에 대한 사랑은 오늘날 그 어느 때보다도 그리스도인의 두드러진 특정이 되어야 합니다. 이러한 힘든 노력을 이행하는 것은 권력, 쾌락, 비도덕적인 부의 축적과 같은 자신의 이익만을 추구하게 하는 이른바 가치라고 주장하는 것들을 완전히 바꾸게 합니다. 그렇습니다. 그리스도의 제자들에게 요청되는 것은 바로 이러한 근본적인 회개입니다. 이 길을 따르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은 참으로 “성령을 통해서 누리는 정의와 평화의 기쁨”(로마 14,17)을 체험할 것이며, 정의에서 오는 “평화의 열매”(허브 12,11)를 맛볼 것입니다. 저는 모든 대륙의 그리스도인들에게 제2차 바티칸공의회의 권고를 다시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먼저 정의의 요구를 충족시켜야 할 것이니, 정의의 입장에서 이미 주었어야 할 것을 사랑의 선물처럼 주어서는 안됩니다.” 부유한 사람들이 자기들에게 필요한 것까지도 가난한 이들에게 주저없이 내어줄 때에 비로소 진정한 연대의 사회가 건설될 수 있습니다. 나아가, 물질적인 도움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진정 필요한 것은 나눔의 정신입니다. 어려움을 겪는 우리 형제자매들의 요구에 배려와 관심을 쏟을 수 있는 것을 우리는 영예로 여깁니다. 그리스도인들과 다른 종교를 믿는 사람들, 그리고 선의를 지난 수많은 사람은 오늘날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열매를 공평하게 나누는 일을 실현시키는 조건으로서 단순한 생활 방식을 선택하도록 요구받고 있음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가난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더 이상 기다릴 수 없습니다. 그들은 당장 도움이 필요하며, 즉시 그들이 필요로 하는 것을 받아야 할 권리가 있습니다.
세상 안에서 활동하시는 성령 9. 대림 첫주일은 성령께 봉헌된 2000년 대희년의 직접 준비 둘째 해를 시작하는 날이었습니다. 희망의 성령께서 세상 안에서 활동하십니다. 그분께서는 의지할 곳 없는 이들과 고통받는 이들 곁에서 순수하게 봉사하는 사람들, 이민과 난민들을 따뜻이 맞아주는 사람들, 인종이나 문화 또는 종교적 이유로 이루어지는 개인이나 집단에 대한 배척을 용감하게 거부하는 사람들안에 살아계십니다. 특히 성령께서는 한때는 적이고 원수였던 사람들 사이에 지속적이고 끈기있게 평화와 화해를 증진시키는 모든 사람의 헌신적인 활동 안에 현존해 계십니다. 사실, 평화로 나아가는 정의를 추구하도록 우리를 북돋아 주는 것은 바로 이러한 희망의 표징들입니다. 복음 메시지의 핵심은 모든 사람의 평화와 화해이신 그리스도이십니다. 제삼천년기의 문턱을 넘어서는 인류의 길 위에 그리스도의 얼굴이 빛나기를 법니다! 그리스도의 정의와 평화가 모든 사람에게 어떠한 차별도 없이 주어지는 선물이 되기를 법니다!
“드디어 하늘의 영기가 우리 위에 쏟아져 내려 사막은 과수원이 되고 과수원은 수풀이 되리라. 사막은 법이 통하는 곳이 되고 과수원은 정의의 터전이 되리라. 정의는 평화를 가져오고 법은 영원한 태평성대를 이루리라”(이사 32, 15-17).
바티칸에서 1997년 12월 8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