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 안에 있는 사람이 죽어야 교회가 산다(롬12:1)
2016,3,6(김상수목사, 안흥교회)
새봄이다. 아직 날씨는 아직도 쌀쌀하지만 3월이라는 이름 자체가 마음에 따스함을 준다. 지난 주중에 각 학교가 일제히 개학을 했고, 멀리 남쪽에서는 벌써 꽃게잡이가 시작되었다는 소식도 들리고, 우리 주변 상가에서도 손님 맞을 준비를 하고 있다. 새로운 계절 3월의 첫 주일에 주님이 주시는 말씀은 “교회 안에(더 정확하게 말하면 교회 건물 안에) 있는 사람이 죽어야 교회가 산다”는 말씀이다. 여기서 “사람이 죽어야 한다”는 말은 실제로 호흡이 멈추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옛사람에 대한 철저한 자기부인(自己否認)과 주님을 향한 헌신(獻身) 말한다.
오늘 본문 로마서 12장 1절이 이것을 말씀한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롬12:1)
이 말씀에서 “산 제사”란 ‘살아있는 제사’를 말한다. 이 말씀은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서 나의 옛사람의 성품과 불신앙, 세상풍속을 쫒는 악한습관들을 다 버리고, 나의 몸 즉 삶을 하나님께 살아있는 제물로 드려지는 자기부인과 헌신의 삶을 살아야 한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드릴 참된 영적예배다.
또한 “교회가 산다”는 말은 곧 ‘예수님이 산다’는 말이기도 하다. 왜나햐면 교회의 주인은 예수님이기 때문이다(엡1:22). 그러니까 교회 건물 안에 있는 사람들이 철저하게 자기를 부인하고 헌신할 때, 비로서 교회의 머리되신 예수님이 드러나고, 성경적인 교회다운 모습이 회복되고, 부흥이 일어난다는 말이다. 머리되신 예수님의 자리에 다른 것이 있으면 안된다. 교회는 민주주의도 아니고, 왕정도 아니고, 일반 기업체도 아니다. 교회의 주인은 예수님이다.
성도란 교회의 머리되신 예수님과 함께(with Jesus) 십자가에서 죽은 사람이요, 예수님 안에(in Jesus) 사는 사람이요, 예수님을 위해(for Jesus) 사는 사람이다. 근자에 일어나는 수많은 한국교회의 문제들은 사람이 머리 노릇하려는데서 기인한다. 목회자가 목회자 답지 못하고, 성도가 성도답지 못하고, 교회가 교회답지 못했다. 그래서 교회가 소금의 역할을 못했기 때문에 성경말씀대로 밖에 버리워 밟히고 있는 것이다(마5장).
그러나 개인이나 가정이나 교회나 참된 행복은 욕심을 채울 때가 아니고, 버릴 때 온다. 예수님의 삶이 이미 이것을 충분히 증거하고 있다. 지금 주님이 한국교회와 우리들에게 원하는 것은 큰 교회 이전에 참 교회가 되는것요, 큰 종이 되기 이전에 참 종이 되는 것이요, 큰 성도가 되기 이전에 말씀의 반석 위에 집을 짓는 지혜로운 참 성도가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 죽어야 교회가 산다. 자기포기와 내려놓음과 예수님의 마음을 품고 더 많이 섬기자. 이를 위해 성령님의 도우심을 구하자. 이것이 오늘 말씀의 핵심이다.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교회 안에서 누가 죽어야 하는가?
1. 목사가 죽어야 교회가 산다.
교회 안에서 가장 먼저 죽어야 할 사람은 목사다. 목사가 죽지 않고 살려고 하며 반대로 교회(성도들)가 죽는다. 우리는 이미 우리 주변에서 또는 방송 언론들을 통해서 이런 실례를 너무도 많이 경험했다. 예수님의 보스(Boss)가 아니라 리더(Leader)이셨다. 예수님의 리더십은 섬김의 리더십이셨다. 목회자는 예수님의 양떼를 위임받아 목양하는 청지기다(요21:15,“ 내 어린 양을 먹이라”). 그러나 자칫하면 교만의 영이 들어가서 양들을 자기 양으로 착각하고, 교회를 내 것으로 착각하며 군림하며 지배하기 쉽다. 사실 대부분의 교회들의 문제들은 성도보다는 목회자의 문제인 경우가 많다. 이 말씀을 준비하면서 다시 한 번 냉정하게 나 스스로에게 말씀의 잣대를 대보았다. 목사가 죽어야 교회가 산다
2. 직분자가 죽어야 교회가 산다.
교회 안에서 목회자 다음으로 죽어야할 사람들은 직분자들이다. 흔히 말하면 집사, 안수집사, 권사, 장로 또는 교사나 구역장이나 각 기관의 임원들이 산 제물이 되어야 한다. 하나님이 주신 직분은 분명히 존경받을 만한 고귀한 것이다. 그러나 존경은 직분이 주는 것이 아니라, 섬김이 주는 것이다.
마가복음 10장 44절에서 주님은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고 하셨다. 10명을 섬기면 10명의 으뜸이고 100명을 섬기면 100명의 으뜸이다. 이 세상에서 가장 고약한 냄새는 향수 썩는 냄새라는 말이 있다. 만약 교회 안에서 직분자가 죽지 않으면 이와 같이 된다.
이런 면에서 교회 안에서 직분을 맡은 사람들은 날마다 말씀 앞에서 자기를 죽여야 한다. 직분자들은 대부분 교회를 오래 다닌 사람들이다. 직분자들은 교회 안에서 작은 목회자들과 같다. 그렇기에 직분자들은 아비의 마음을 품고 먼저 마음의 문을 열고, 믿음이 약한 사람들에게 먼저 손을 내밀어야 한다. 특히 교회 안에서 초신자나 새로 전입한 분들은 아직은 연약한 유리그릇과도 같다. 그중에서도 특히 어떤 원인에서든지 아직 치료되지 않은 상처가 있는 사람들은 금 간 유리그릇과도 같다. 그래서 신앙생활을 오래한 사람의 눈에는 때로 좀 답답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그러나 참고, 이해해 주고, 품어 주고, 기다려 주고, 사랑해주자. 사랑은 오래참는 것이다(고전13장). 나이에 상관없이 먼저 본 사람이 먼저 웃으면서 인사하자. 먼저 인사하는 것도 섬김이다. 칭찬해 주고, 먼저 말을 걸어주고, 옆에 앉아주자. 봉사할 때는 기쁨과 감사함으로 하고, 모였을 때는 교회의 덕을 세우는 모임이 되게 하자. 역사가 오래된 교회들 안에서는 ‘묵은 닭’, ‘박힌 돌’, ‘굴러운 돌’, ‘끼리끼리’ 같은 말들이 있기 쉽다. 모두가 사람이 살아있기에 생긴 말들이다. 그러므로 모든 직분자들은 철저하게 자기를 부인하고, 마음과 몸을 주님께 산 제물로 드리자. 직분자가 죽어야 교회가 산다.
3. 성도가 죽어야 교회가 산다.
마지막으로 교회 안에 있는 모든 성도가 죽어야 교회가 산다. 목회자나 직분자들을 포함해서 모든 성도들은 이 세상에 빛과 소금이다. 예수님을 믿으면 ‘앞으로’ 빛이 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예수님을 영접한 순간에 빛이 되었다(“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마 5:14). 이 빛을 비춰야 한다. 성도들이 학교에서나 동네에서 성도답지 못하고, 세상 사람들과 똑같이 행동하면 전도의 문이 닫힌다. 그렇기에 모든 성도들의 삶은 그 자체가 살아있는 전도다. 성도의 얼굴이 가장 확실한 전도지다. 예수님을 믿는 성도들이 언제든지 화낼 준비가 된 사람처럼 늘 인상을 찌뿌리고, 누가 한 마디만 하면 열마디 백마디고 되갚아 주려는 자세는 그다지 아름다운 모습이 아니다.
사실 말이라는 것은 가장 어려운 것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가장 쉽게 섬기는 방법이기도 하다. “미고사축”이라는 찬양이 있다. 미고사축이란 ‘미안해요’, ‘고마워요’, ‘사랑해요’ 그리고 ‘축복합니다’라는 네 마디 말을 앞글자만 합한 것이다. 이런 말들을 들으면 마음이 따뜻해 진다. 이러한 우리들의 말 한 마디가 자신과 세상을 따뜻하게 만든다. 이렇게 하면 전도의 문도 쉽게 열린다.
빛이 있는 곳에 어둠은 물러가고, 따뜻한 불이 있는 곳에 추운 사람은 다가오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마찬가지로 우리 성도들은 이 세상의 빛이고, 따뜻한 사랑의 불이다. 우리들의 사랑의 성령으로 따뜻하면 이 세상의 추운 사람들은 모여들게 되어 있다. 그러므로 십자가의 사랑으로 더 많이 섬겨서 다함께 행복해지는 모두가 되자.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교회 안에 있는 사람이 죽어야 교회가 산다. 기독교 역사상 수많은 순교자들의 삶이 그것을 증명한다. 죽어야 사는 것, 바로 이것이 복음의 역설이요, 십자가와 부활의 비밀이다.
그러므로 오늘 새봄 3월의 첫 주일에 다시 한 번 우리 우리교회는 담임목사로부터 모든 직분자들과 성도들 그리고 주일학교 어린아이들에게 이르기까지 더 철저하게 십자가 앞에서 죽자. 주님의 사랑으로 얼어붙은 사람들의 마음을 녹이자. 그래서 교회가 살고, 주님이 사는 교회다운 교회, 교회의 본질을 회복하는 건강한 교회가 되자. 성령님께서 우리에게 새 힘을 주신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