징홍에서 뤼춘까지 500킬로미터 정도인데 길이 어찌나 꼬불꼬불한지 무려 13시간이나 걸렸다. 북부터미널에서 7시 반 정시에 출발한 버스는 남부터미널을 거쳐 멍룬까지 익숙한 길을 달리더니 북쪽으로 방향을 돌린다. 여기서부터는 처음 가보는 지역이다. 산허리를 깎아 만든 아슬아슬한 길을 따라 달리다보면 급격한 비탈에까지 차나무와 고무나무, 바나나가 가득하다. 가끔은 강물을 따라 달리기도 하고 가끔은 높은 산꼭대기를 넘어가기도 하면서(높은 산엔 비구름이 걸쳐있어서 수시로 구름 속을 드나들었다) 제법 눈이 즐거운 여행길이다. 옆지기님의 표현으로는 호도협 트래킹 길을 차를 타고 달리는 기분이라고 했는데 비가 오락가락하는 날씨 탓일까(?) 아쉽게도 잘 찍은 사진이 없다.
그렇게 꾸역꾸역 달리던 중 어느 산골 경찰서 앞에서 당한 황당한 검문. 그저 의례적인 검문으로만 생각했는데 경찰이 7-8명이나 나와서 철저하게 검문을 한다. 신분증이 없는 사람은 차에서 끌어내리고 신분증이 있는 사람도 가방을 뒤지고 짐을 뒤지고 버스 아래 짐칸에 넣어둔 짐까지 꺼내서 뒤지고 큰 사건이 일어난 분위기다. 차 안에 폭탄이나 마약이 있다는 첩보라도 있는 것일까? 다행히 우리 부부는 외국인이라고 검문에서 열외다. 여권만 확인하고 돌려준다. 뭔 일인지 궁금했지만 경찰은 물론 승객 중에도 상황을 설명해 주는 사람이 없고(경찰 한 명이 설명인지 사과인지 우리에게 한마디 하기는 했는데......), 언어의 장벽도 높으니 그냥 앉아서 추이를 지켜볼 수밖에. 한 시간 정도 지체한 다음에야 아무 성과없는 검문이 끝나더니 경찰들은 미안하다는 말도 없이 철수하고 승객들은 화나는 기색도 없이 평온하게 다시 버스에 올라탄다. 그래, 우리도 박정희 전두환 시절에는 군인이나 경찰이 저렇게 군림했었지.
검문 때문에 늦어졌을까? 두 시가 넘어서야 어느 시골 터미널에서 늦은 점심을 먹게 되었는데 외국인이 거의 오지 않는 동네라 그런지 대화가 잘 통하지 않는다. 밥을 시켜먹기가 어려워서 우왕좌왕하다가 겨우겨우 콰이찬(快餐 직역하면 패스트푸드? 미리 해 놓은 반찬 몇 가지를 골라서 밥 위에 얹어 먹는 음식. 일종의 부페인 셈인데 반찬 가짓수에 따라 가격이 달라진다) 파는 집에 들어가서 한 끼를 때웠다.
밤 8시40분, 떠난 지 13시간이 넘어서 뤼춘에 도착했다. 일단 숙소부터 잡으려 기웃거리는데 삐끼 아줌마는 식당으로 끌고 가려 하고 택시 기사 한 사람은 밤을 새워 웬양으로 가자고 꼬신다. 지금 출발하면 일출을 볼 수 있단다. 비용도 비용이지만 일단 쉬어야겠다. 13시간 버스를 탔는데 또 밤을 새워 택시를 탈 수는 없다. 그래서 터미널 밖으로 나가니 비슷한 규모와 분위기의 빈관들이 주루룩 서 있는데 삐끼 아줌마가 잡아끄는 대로 들어가보니 널찍한 방이 40위안이라는데 너무 많이 낡았다. 옆지기님이 양변기가 없어서 맘에 들지 않는다고 하니 걱정 말라며 양변기 있는 방이 있다고 한다. 따라나섰더니 길 건너 터미널 쪽에 있는 다른 빈관으로 데려간다. 역시 허름한 건물, 방에 들어가니 과연 양변기가 있기는 하다. 그래, 하루 저녁 대충 자고 가자, 40위안을 주고 나와서 칫솔과 간식을 사서 들어가 자세히 보니 방이 정말 가관이다.콘크리트 기둥과 회벽이 그대로 노출된 벽에 날벌레들이 붙어있고 침대는 쿠션도 없는 야전침대 수준이다. 처음 보았던 방보다도 훨씬 작고 더러운 방인데 양변기만 보고 성급하게 오케이 했던 것이다. 양변기도 말이 양변기지 물통 뚜껑도 없고 물을 내리려면 물통 안에 손을 넣어서 조작해야 하는 다 부숴져가는 골동품이다. 결정적으로 더운물이 나오지 않는다. 안 되겠다. 짐을 다 꾸려서 짊어지고 나가서 더운물이 나오지 않아서 안 되겠다고 하니 더운물 나오는 다른 방을 보여준다. 더운물이 나오긴 하지만 그 방이 그 방이다. 도저히 잘 기분이 아니다. 그냥 40위안 다 포기하고 다른 숙소를 찾아나섰다.
버스타고 오면서 본 뤼춘은 골짜기에 들어선(여기까지 오는 동안 하루 종일 탁트인 벌판은 본 적이 없다. 산 아니면 골짜기) 기다란 도시였다. 대도시는 아니지만 시가지가 제법 길고 고급 호텔도 여럿 보였다. 택시를 타고 고급호텔이 있는 쪽으로 가볼까 생각하며 큰 길을 걷다보니 제법 깨끗해 보이는 큰 빈관이 보인다. 건물만 보면 호텔급인데 하면서 들어가 물어보니 커다란 방이 50위안이다. 여기도 오래된 건물이긴 하지만 아까 방들보다는 훨씬 낫다. 애초 이리로 왔으면 방값 싸다고 좋아했을지도-하긴 두 방 합해봐야 90위안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