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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주목사 任焴은 정조19년(1795년)9월3일 부임하여 정조24년(1800년)4월24일 이임하였다. ○승정원 일기에 보면 -정조 원년 8월 21일 (갑인) /生員任焴 -정조 원년 8월 25일 (무오)/進士任焴 -任焴爲肇慶廟參奉, 任焴爲繕工奉事, 任焴爲典牲直長, 以任焴爲獜蹄縣監, 任焴爲高陽郡守, 任焴爲寧海府使, 任焴爲洪州牧使, 任焴爲羅州牧使, -순조 즉위년 8월 23일 (계유)/ 副司果任焴 -參贊官任焴, 新除授承旨任焴, 義州府尹任焴, 任焴爲刑曹參議, 副護軍任焴 ○사마방목에 보면 - 영조 50년(1774) 갑오 식년시(式年試) 생원 2등(二等) 23위 -자는 汝輝, 1736년생, 본관은 풍천, 거주지는 서울이다. |
七載莅民作頌聲(칠재리민작송성)/7년간 백성을 다스리면서 칭송의 소리 들었고
兼公慈惠最神明(겸공자혜최신명)/겸하여 공께서 인자하게 돌보아 주는
은혜 가장 신명스럽도다.
從遊舊誼非徒爾(종유구의비도이)/그대와 놀던 옛정은 보람 없는 것이 아니니
錦水長流抱錦城(금수장류포금성)/영산강 길게 흐르면서 나주를 보듬는 듯하네.
(해설)
*7년간 : 원문 七載는 7년을 말함. 즉 임육이 나주목사를 7년 했다는 뜻인데, 정확히 근무 햇수로 보면 6년간 목사를 역임하였다
*도이(徒爾) : 보람이 없다.
이재유고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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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나주목사 任 焴은 이재공과 같은 本庵:金鍾厚 밑에서 사사받았고. 스승 사후에 임육이 본암집을 간행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