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본주의의 혜택들(2) ◇◇
◇ 자본주의는 삶의 질을 향상시킨다
자본주의는 무엇보다 영아사망율을 낮추고 기대수명을 연장시킨다.
오늘날 한국인의 평균수명은 세계적으로 상위권에 속한다. 유엔인구기금(UNFPA)의 ‘2013년 세계인구현황 보고서’ 한국어판을 보면, 한국 남성과 여성의 기대수명은 각각 78세, 85세로 1년 전보다 1살씩 늘었다.
조선시대 왕의 수명은 얼마일까? 모든 면에 부족함이 없는 왕의 평균수명은 46.1세였다.
서유럽에서 산업화가 막 시작되던 1800년 유럽의 평균수명이 35세 내외, 100년 전에도 39세 미만이었다고 한다.
20세기초 미국인들도 45세가 안되었다. 한국의 경우 일제시대인 1925~30년에는 37.4세, 1960년 52.4세, 1980년 65.8세, 2007년 79.2세, 2012년 81.4세로 늘어났다.
이전에 평균수명이 이처럼 낮은 것은 영양부족과 질병으로 인한 높은 영아사망률 때문이었다.
필자의 형제 자매만 해도 제일 맏이가 출생 후 곧 숨졌다. 많은 가정에서 한두 명의 영아는 사망했다.
그래서 필자도 1년 후 호적신고를 하여 공식 생년월일이 실제 보다 1년 늦다.
그런데 한국인의 기대수명이 높아진 것은 그동안 경제가 꾸준히 발전해 왔기 때문이다.
한국인의 체격은 북한인 보다 훨씬 월등하다. 남북 분단은 체제뿐만 아니라 인종이 달라졌다고 할 정도로 두 쪽 사람의 체격에 차이가 난다.
2005년 현재, 남북 간 키 차이는 20~39세의 경우 남자 6.9cm, 여자 4.2cm나 차이가 났다. 이 추세 대로 가면 2025년에는 남북 간 키 차이는 남자 11cm이상, 여자 6cm이상 차이 날 것으로 전문가들은 예측한다.
경제 수준 차이로 인한 영양의 차이가 이런 결과를 초래한 것이다.
자본주의로 인한 경제 발전은 신체지수나 기대수명에만 좋은 영향을 끼친 것이 아니다.
자본주의는 인류의 삶의 수준을 높여왔다. 페르낭 브로델은『자본주의와 물질문명』에서, 어떻게 해서 자본주의가 한때의 사치품이나 희귀품을 일상 용품으로 만들어서 사람들의 삶의 질을 향상시켜왔는가를 밝히고 있다.
예를 들어, 설탕은 12세기에는 왕이나 귀족들만 먹을 수 있는 초고가 사치품이었지만, 17세기에는 희귀품, 19세기에는 호사품, 이후에는 생활픨수품이 되었다.
후추, 커피나 초콜릿도 이전에는 사치품이었지만 이제는 필수품이 되었다.
승마, 골프, 스키, 펜싱 같은 스포츠도 이전에는 '귀족 스포츠'였지만 요즈음에는 초등학생들도 방과 후에 이런 스포츠를 즐긴다.
자본주의를 통해 경제 수준이 높아지면서 이전에는 왕이나 부자들만이 누렸거나 혹은 누리지 못한 것들도 이제는 일반 서민들도 누리게 된 것이다.
한국도 1960~70년 대에는 냉장고나 세탁기가 귀중품이었고, 일반 전화도 시스템 미비로 고가품이었다. 그러나 요즈음에는 어른은 물론 초등학생도 휴대폰을 갖고 있다.
1970년 당시에는 당시에는 반포아파트 정도에만 냉온수가 제공되었지만 일반 주공아파트는 연탄아파트도 있었다. 그러나 요즈음에는 아파트는 물론 빌라나 고시원에도 냉난방과 냉온수가 공급된다.
1970년대에 봉제공장에서는 작업에 영향을 끼친다고 해서 선풍기를 틀지 못하는 찜통에서 작업을 했다.
그러나 요즈음에는 대부분 시원한 에어컨이 설치되어 있다. 1970년대에 자동차는 사치품이라 운전기사가 딸린 검정차가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국민 2명 당 한 대 꼴로 마이카 시대가 되었다.
탈북자들의 경험을 소개하는 유튜브를 보면, 북한의 고위층들 보다 남한의 서민들이 더 풍요로운 삶을 산다고 한다.
북한에서는 전기가 부족하여 밤에 찍은 위성사진을 보면 남한과 중국 사이의 북한은 암흑의 바다처럼 보인다.
고위층(중앙당 간부)이 사는 아파트에도 전기가 배급제로 공급되어 엘리베이터도 잘 운용되지 않으며, 수도시설도 열악하여 계단을 걸어서 양동이로 물을 나른다고 한다.
식량이 부족하여 북한의 고위 공무원이나 장교들도 식량 배급이 제한되고 있다.
남한에서는 달걀, 라면, 휴지, 쌀, 치약 같은 흔하고 저렴한 생필품들이 북한에서는 귀한 고가품들이다.
북한은 남한의 1960년대처럼 지금도 신문지를 화장실 휴지로, 소금으로 치약을 대신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북한에서는 연금 제도가 있어도 실제로는 장관급 고위층도 은퇴하면 엄동설한에 냉방에서 겨우 끼니를 이어간다고 한다.
그것도 재직 시에 뇌물을 많이 챙긴 사람은 그런 대로 살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은 가난에 찌든 삶을 산다고 한다.
한때 남한 보다 더 살았던 북한이 왜 이렇게 쪼그라들었는가? 무엇이 이런 차이를 가져왔는가? 자본주의와 사회주의의 제도 차이가 삶의 질의 차이를 가져온 것이다.
이처럼 자본주의는 사람의 삶을 편리하고 윤택하게 한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은 좋은 것을 누리면 그것에 금방 익숙해지고 그것을 당연하게 여긴다. 북한에 비하면 한국은 ‘천당’이다.
그런데 좌파들은 자본주의가 주는 여러 가지 혜택은 당연하게 여기고 부족한 것에 대해서는 제도 자체가 잘못된 것처럼 호들갑을 떤다.
◇ 자본주의를 통한 경제 성장은 정치 민주화에 기여한다
상당수 정치학자들은 '민주주의 성공을 위해서는 일정 수준의 경제성장이 이뤄져야 한다'는 주장을 펴왔다.
립셋(S.M. Lipset)과 애덤 쉐보르스키(Adam Przeworski) 등이 그들이다.
권위주의 체제에서 진행된 경제발전이 나중에는 권위주의 체제를 몰락시키는 현상이 일어난 것이다.
따라서 매우 가난한 나라보다는 경제가 어느 정도 반열에 오른 나라에서 민주화가 이뤄질 가능성이 더 높다.
한국이 노태우 정권부터 '절차적 민주주의'에 의한 대통령 직선제를 수용할 수 있었던 이유도 자본주의를 통한 경제 성장이 뒷받침되었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민주화 요구 목소리는 종전부터 있었지만, PPP(구매력 기준 소득) 기준 1인당 GDP가 4000 달러를 돌파한 1980년대 중반에 이르러 한층 뚜렷해졌다.
민주화 운동을 한 좌파들이 우파에게 말한다.
"우리가 민주화 운동을 하는 동안 당신들은 뭐 했나?"
우파는 좌파에게 당당하게 말해야 한다.
"우리가 산업화에 힘쓰는 동안 당신들은 뭐 했나?"
좌파나 우파 모두 민주화 운동과 산업화 운동을 통해 대한민국의 선진화에 기여했다.
중요한 것은 그 이후이다. 민주화 운동에 기여한 좌파는 그 이후에 뭐 했나? 피 흘려 민주화를 이룬 후에 민주화된 한국을 북한 김일성 도당에 바치려는 주.사 파 운동을 왜 하는가?
◇ 자본주의가 발달한 국가일수록 행복지수가 높다
국민총행복지수(Gross National Happiness, GNH)는 부탄에서 1970년대에 만들어낸 행복 개념이다.
점차 관심이 높아져 2007년 4월, OECD는 국민총행복을 목적에 따라 평균행복(Average Happiness), 행복수명(Happy Life Years), 행복불평등(Inequality of Happiness), 불평등조정행복(Inequality-Adjusted Happiness)의 4개의 세부 행복지수로 구분하고 각 국가의 GNH 정도를 측정하였다.
2021년(2020년 기준) 『유엔행복보고서』에 의하면, 행복지수 세계 1위는 핀란드, 2위 덴마크, 3위 스위스, 4위 아이스란드, 5위 노르웨이, 6위 네덜란드, 7위 스웨덴, 8위 뉴질랜드, 9위 오스트리아, 10위 룩셈브루크 등 순이었다.
반면에 대한민국은 62위로(행복지수 5.845)였으며, OECD 37개 국가 중 하위 그룹 국가로 나타났다.
특히 YTN뉴스는 '부탄을 세계 제1위의 행복국가'라는 가짜뉴스로 국민을 기망한 적이 있는데, 덩달아서 국내 언론 및 진보시민단체들이 세계적인 행복국가로 칭송한 '부탄'과 '네팔'은 2015년 이후 한국보다 행복지수가 훨씬 낮은 국가로 밝혀졌다.
행복보고서 조사 대상 국가들 중 상위권은 자본주의가 발달하여 소득 수준도 높고 정치적 자유도 풍성하게 누리고 복지제도도 잘 되어있는 서구 선진국들이다.
그러나 자본주의가 발달하지 못하여 정치적 자유도 제대로 누리지 못하고 복지 수준도 낮은 국가들은 행복지수가 낮다. 돈이 모든 것은 아니지만 사람의 행복에 있어서 돈이 차지하는 역할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한국의 행복지수는 OECD 37개 국가 중에서는 35위이고, 전세계 조사국 146개 국 중에서는 61위(5.845)다.
아시아에서는 타이완(24위. 6.584), 싱가포르(32위. 6.377), 타이(53위, 5.985), 일본(55위, 5.94), 필립핀(60위. 5.88), 홍콩(75위, 5.477), 중공(82위, 5.339)순이다.
소득이 한국의 1/10정도 밖에 되지 않는 필립핀(60위. 5.88)이 한국 보다 행복 지수가 한 단계 높다.
전세계에서 한국 보다 소득이 높으면서 행복 지수가 더 낮은 나라는 홍콩뿐이다. 최근 중공의 홍콩 자주권 박탈로 인한 영향이 큰 것으로 보인다.
한국인의 행복 지수가 이처럼 낮은 이유는 무엇일까? 한국인은 돈을 행복의 요소로 생각하는 성향이 강하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있다.
2021년 11월, 미국의 여론 조사기관 퓨리서치센터가 한국을 포함한 17개 선진국 성인 1만90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진행하였는데, 그중 한 항목의 결과가 화제가 되었다.
‘삶을 의미 있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이었는데, 이에 대해 14개국 사람들이 ‘가족’이 가장 중요하다고 응답했다.
가족을 1순위로 꼽지 않은 나라 3개국 중 스페인은 ‘건강’, 대만은 ‘사회’라고 답했다. 그런데 한국인만 유일하게 '물질적 풍요'(Material well-being)를 1순위로 꼽았다.
우리나라는 거의 물질적인 것에 치우쳤는데 외국의 경우는 우리와 달랐다. 서양에 '노블레스 오블리주'란 말이 있다. '사회적 신분에 상응하는 도덕적 의무'를 뜻하는 말이다.
이는 초기 로마시대에 왕과 귀족이 보여준 투철한 의식과 솔선수범하는 공공정신에서 비롯되었다. 이런 정신은 현대에도 계승되고 있다.
돈은 많은 문제를 해결하고 많은 유익을 준다. 그러나 돈이 모든 것의 해답은 아니다. 돈이 주는 행복에는 한계가 있다.
이스털린이 말했듯 돈이 어느 정도까지는 행복을 주지만 어느 수준을 넘으면 돈이 주는 행복도는 한계가 있다. 이것을 '이스털린의 역설'(Easterlin’s Paradox)이라고 한다.
자본주의 사회에 사는 사람들은 돈을 열심히 벌어야 하지만 동시에 돈이 주지 못하는 행복의 기술도 배워야 한다.
취미생활, 봉사활동, 신앙생활 등 돈 외에 성장욕구를 채워주는 활동을 통해 행복을 증진하는 기술을 배울 필요가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