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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경요집 제15권
23.10. 사견연(邪見緣)
대개 처음으로 부처님의 법에 들어가서는 반드시 믿는 마음을 제일 우두머리로 삼아야 한다.
비유하면 마치 어떤 사람이 보배가 있는 산에 이르렀을 때 믿을 만한 일꾼이 없으면 아무것도 얻지 못하는 경우와 같다.
그러므로 경전에서 말하였다.
“어리석은 사람이 인과(因果)를 알지 못하고 망령되이 삿된 견해를 일으켜서 삼보(三寶)와 사제(四諦)는 없는 것이라고 비방하며 화(禍)도 없고 복(福)도 없으며, 마침내는 선(善)도 없고 악(惡)도 없으며, 선악의 업보도 없고 금생과 후생의 중생들이 받는 생도 없다고 하면서 부처님의 법을 비방한다.
이와 같이 하는 사람은 선과 악의 법을 다 깨뜨리나니, 이것을 선근(善根)을 끊는 것이라고 말하는데, 그는 결정코 아비지옥(阿鼻地獄)에 떨어질 것이다.”
『대품경(大品經)』에서 말한 것과 같다.
“만약 어떤 사람이든 믿음이 없어서 『대승반야경(大乘般若經)』을 비방하면 곧 바로 아비지옥에 떨어져서 한량없는 백천만억 년 동안 극심한 고통을 받을 것이다.
한 지옥으로부터 또 다른 한 지옥에 이르며 만약 이 겁이 다하면 다른 곳의 큰 지옥에 태어나며 다른 곳의 겁이 끝나면 또 이 곳의 큰 지옥에 태어나나니, 이와 같이 전전(展轉)하여 시방 세계를 두루 돌아다닐 것이다.
다른 곳의 지옥에서 겁이 끝나면 다시 이 사이에 있는 큰 지옥에 태어나고 지옥의 죄가 끝나면 축생의 세계에 태어나나니, 이렇게 또 시방 세계를 두루 돌아다닐 것이다.
축생의 죄가 끝나면 다음 세상에 인간 세계에 태어나되 부처님의 법이 없는 곳에 태어나며, 가난하고 궁색하고 하천(下賤)하며, 모든 감관이 갖추어지지 못하며, 어리석고 미치광이 같고 아둔하여 아무것도 분별하여 알지 못할 것이다.
비록 어리석은 축생이 아니고 또한 총명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망령되게 다른 집착을 일으키면 그 또한 삿된 견해라고 말하느니라.”
그러므로 『성실론(成實論)』에서 말하였다.
“어리석음에도 차별이 있다. 왜냐 하면 일체의 어리석음이 다 착하지 못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만약 어리석음이 점점 늘어나서 그것이 변하여 삿된 견해를 이룩하면 곧 불선(不善)한 업도(業道)라 이름하나니 그런 까닭에 어리석음을 따라 삿된 견해가 점점 늘어나면 곧 중한 죄가 된다. 그리하여 틀림없이 아비지옥에 들어갈 것이다.
곧장 삿된 견해에 대하여 말하면 거기에는 가볍고 무거운 것이 있다.
가벼운 것은 변할 수 있는 것이요 무거운 것은 변하지 않는 것이다.”
그러므로 「보살지지경(菩薩地持經)』에서 말하였다.
“삿된 견해에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변할 수 있는 것이요, 다른 하나는 변할 수 없는 것이다.
인과(因果)를 비방하고 성인이 없다고 말하면 변할 수 없는 것이요,
인(因)이 아닌 것을 인이라고 보고 과(果)가 아닌 것을 과라고 보면 이것은 변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악한 업을 삿된 견해라고 말하고 선한 업을 바른 견해라고 한다.
네 가지 진리에 대하여 비방하지 않더라도 성인의 도에 대하여 미혹되면 도리(道理)가 자기 마음에서 나오는 것임을 알지 못하고,
오직 항상 몸을 괴롭힘으로써 해탈을 구하니,
마치 개가 흙덩어리를 쫓아다니면서 그 근본을 찾을 줄 모르는 것과 같다.
그러므로 『대장염론(大莊嚴論)』에서 말하였다.
“비유하면 사자는 사람이 쏜 화살을 맞았을 때에 저 사자는 곧 그 사람을 찾아내어 쫓아오는 것과 같고,
비유컨대 어리석은 개는 사람이 때리게 되면 기와장이나 돌을 쫓아가면서 그 근본을 찾을 줄 모르는 것과 같다.”
사자를 말한 것은 지혜로운 사람을 비유한 것이니, 그것은 그 근본을 찾아서 번뇌를 멸할 줄 아는 것에 비유한 것이요,
어리석은 개를 말한 것은 곧 외도(外道)들을 비유한 것이니,
다섯 가지 열(熱)로 몸을 굽건만 마음의 근본을 알지 못하는 데 비유한 것이다.
[사방에 불이 있고 위에는 뜨거운 태양이 있는데 그 속에 몸을 구우면서 괴로운 가운데에서 도를 구하는 것을 말한다.]
다만 여러 어리석은 범부들은 대부분 참다운 도에 미혹하여 몸과 마음에 나라는 것이 없음을 관찰할 줄 모르고, 다만 고행(苦行)만을 배우면서 그것을 도라고 말하고 있으니,
이것은 곧 외도들이 쓸데없이 삿된 법을 닦고 잘못 집착함으로써 진실에 어긋나 오직 악한 법만 이루는 것과 같은 것이다.
그러므로 『지도론(智度論)』에서 말하였다.
“삿된 견해의 죄가 중하기 때문에 비록 지계(持戒) 등을 실천하여 몸ㆍ입의 업이 다 좋다 하더라도 그것은 다 삿된 견해와 악한 마음과 착하지 못한 것을 따르는 것이다.”
부처님께서 스스로 비유하여 말씀하신 것과 같다.
“마치 쓴 종자를 심으면 비록 또 네 가지 요소[大]로 이루어진 것이라 하더라도 다 쓴 맛이 나는 것처럼,
삿된 견해를 가진 사람도 또한 이와 같아서 비록 지계(持戒)ㆍ정진(精進) 등을 실천한다 하더라도 모두가 악한 법을 성취한다.”
그러므로 조그마한 보시를 실천하는 데에 집착하지 않는 것만 못하다.
집착이 없으면 교화하기 쉽지만 집착이 있으면 제도하기 어렵다.
그것은 다만 스스로를 파괴할 뿐만 아니라 또한 다른 사람까지도 손해를 보게 한다.
그러므로 『성실론(成實論)』에서 말하였다.
“차라리 행하지 않고 그만둘지언정 삿된 도는 행하지 말라. 삿된 도를 행하면 몸이 무너지고 목숨을 마친 뒤에는 악한 세계에 떨어지게 되느니라.”
또 『정법념경(正法念經)』에서 염라왕(閻羅王)은 게송을 읊어 죄인을 꾸짖었다.
너는 삿된 견해 지녔고 또한 어리석기도 하구나.
어리석은 그물에 꼭꼭 묶여 있는 사람이여,
너는 지금 이 지옥에 떨어져서
큰 고통의 바다에 있게 되었다.
악한 견해는 모든 복을 다 태워 없애고
인간 세계에 태어나도 가장 평범하고 비루한 사람 될 것이다.
너는 지옥의 속박을 무서워하지만
여기가 바로 너의 집이니라.
만약 저 삿된 견해에 소속되면
그 사람은 총명하고 지혜로운 사람이 아니다.
이들 모두는 다 지옥으로 가나니
원수의 마음에 속임을 당했기 때문이다.
마음이 바로 제일가는 원수이며
이 원수를 가장 악하다고 말한다.
이 원수는 능히 사람을 결박하여
저 염라왕이 있는 곳으로 보낸다.
그 때 세존께서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어리석은 마음은 미니어(彌泥魚)이다.
이 고기는 애욕의 사택(舍宅)에 머무르며
업을 지을 때에는 기뻐하면서 웃다가
고통을 받을 때에는 울부짖으며 통곡한다.
또 『수행도지경(修行道地經)』의 게송에 말하였다.
그의 입은 어리석고
사람의 마음 속에 어둠[闇冥]을 품어
그는 전혀 악한 것도 생각하지 못하고
또한 착한 마음을 생각하는 일도 없다.
어리석고 멍청하여 항상 혼미해 있으면서
온갖 일을 어느것 하나 할 수 없다.
마치 사나운 폭염에 삶아지고 구워져서
어느 것 하나 제대로 성숙(成熟)하지 못한 것과 같다.
어리석음을 많이 익힌 사람은
여러 가지 감각기관을 완전하게 갖추지 못한다.
그는 소나 양의 세계에 태어나게 되고
그런 뒤에는 지옥에 떨어지게 된다.
『월광동자경(月光童子經)』은 또한 『불설신일경(佛說申日經)』이라고도 하는데,
이 경전에서 말하였다.
“어느 때에 장자가 있었으니, 그 장자의 이름은 신일(申日)이라고 하였다.
그는 외도 육사(六師)의 계획을 따라 부처님과 스님들을 초청하려고 하였다.
외도들은 장자로 하여금 그 집의 중문(中門) 밖에 깊이가 다섯 길 여섯 자쯤 되는 깊은 구덩이를 파고, 그 절반쯤은 이글거리는 숯불로 채우고 가는 철사로 석가래처럼 걸쳐 그 위를 흙으로 얇게 덮어놓게 하였다.
그리고는 갖가지 음식을 만들어서 그 음식 안에 독약을 넣어두고는 부처님을 초청하여 그 불구덩이 위를 밟고 오게 하고 독약이 든 밥을 먹게 하여 그를 충분히 해칠 수 있게 하였다.
이렇게 일을 도모했으니 부처가 죽지 않을까 하여 어찌 걱정할 필요가 있겠는가?
장자가 그들이 시키는 대로 하자 외도들이 모두 기뻐하였다.
그 때 신일(申日)이 곧 부처님 계신 곳으로 나아가 부처님과 여러 성중(聖衆)을 은근하게 초청하였다.
그 때 세존께서 그의 지나치게 어리석은 것을 불쌍하게 여기시고 그를 구제하여 해탈시키기 위해 잠자코 초청을 받아들이셨다.
신일은 내심 기뻐하면서 과연 그들의 계획대로 되어간다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수미산 같은 독과 천 찰토를 태울 만한 불과 예리한 칼날은 부처님의 터럭 하나조차도 움직일 수 없는 힘이었다.
지금 그 불구덩이와 독약이 든 밥으로 부처님을 훼손시키려고 하는 것은
비유하면 마치 모기와 등에가 태산을 무너뜨리려고 하는 것과 같고,
파리와 하루살이가 그 날개를 햇빛과 달빛을 가리려고 하는 것과 같아서
부질없이 자신만을 훼손하고 무너뜨릴 뿐이니 빨리 참회하는 것만 못할 것이다.
그 때 장자는 죄의 덮개에 덮여 마음이 열리거나 풀리지 않았으므로 세존께서 마음 속으로 생각하였다.
‘지금 장자 신일의 초청을 받은 것은 평상시와 같은 것이 아니다.’
그리고는 위신력(威神力)을 널리 나타내시자 시방세계가 진동했고 백천의 거룩한 대중들과 온갖 용ㆍ귀신 등과 허공을 날고 땅으로 기어다니는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무리들이 한꺼번에 그 집에 이르렀으니, 그것은 이익을 주기 위해서였다.
부처님은 신비한 덕으로써 곧 불구덩이를 변화시켜 철보(七寶)의 못으로 만드셨고 음식은 여덟 가지 맛을 구족하도록 변화시켰다. 그리하여 음식들이 하늘의 감로처럼 되어 그것을 먹은 사람들마다 기쁨이 충만하였다.
육사외도는 두려워서 각각 도망쳐 숨어버렸고 장자는 항복하여 귀의하고 머리를 땅에 댄 채 부처님의 발에 엎드려 슬퍼하다가 꿇어앉아 스스로 진술하였다.
그는 지금 깨달았으므로 부처님으로부터 제도를 받았으며, 그 모임에 모여든 대중들은 다 부처님의 법음(法音)을 듣고서 복을 얻고 제도를 받았는데 그 수효는 이루 다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았다.”
또 『관불삼매경(觀佛三昧經)』에서 말하였다.
“그 때 세존께서 부왕(父王)에게 말씀하셨다.
‘사위성(舍衞城) 안에 살고 있는 수달(須達) 장자에게 늙으신 어머니가 있었으니, 그 이름은 비저라(毘低羅)라고 하였다. 그 어머니는 삼가 가업(家業)에 열심이었다.
장자는 하인에게 명하여 손수 창고의 열쇠를 집어주면서 재산의 출납(出納)과 취여(取與)를 다 그에게 위임하였다.
수달장자는 부처님과 스님들을 초청하여 필요한 물품을 다 공급해 주었다.
그 때 병이 든 비구가 요구하는 것이 너무나 많았다.
그런데 수달의 늙은 어머니는 간탐이 많아 부처님의 법과 대중 스님들을 미워하고 꺼려하여 이런 말을 하였다.
‘우리 장자는 어리석고 미혹하여 사문의 술수에 속고 있다.
이 모든 걸사(乞士)들은 구하는 것이 많고 염치도 없는데 무슨 도가 있다고 할 수 있겠는가?’
이와 같은 말을 마치고는 다시 악한 원(願)을 내었다.
‘언제쯤 되어야 부처라는 이름을 듣지 않고 스님이라는 이름도 듣지 않을 수 있을까?’
이와 같은 악한 소문이 퍼지고 퍼져서 사위성에 두루 알려졌다.
말리(末利)부인은 이 말을 듣고 난 뒤에 이와 같이 말하였다.
‘수달장자는 아름다운 연꽃과 같아서 사람들마다 만나 보기를 좋아하는데, 어째서 저런 독사를 보호하고 있을까?’
그래서 수달장자의 아내를 불러서 말하였다.
‘너희 집 노비(老婢)는 악한 말을 하고 비방을 일삼는데 어째서 내쫓지 않는가?’
그 때 수달의 아내는 꿇어앉아 부인(夫人: 未利)에게 아뢰었다.
‘앙굴마(央掘魔)처럼 폐악(弊惡)한 사람조차도 부처님께서는 오히려 항복받으셨는데 하물며 저런 노비쯤이겠습니까?’
말리부인은 그 말을 듣고 기뻐하면서 말하였다.
‘내가 내일 부처님을 초청할 것이니 너는 그 노비를 여기로 보내어라.’
이튿날 공양할 때가 되자 장자는 그 노비를 보내고 자신은 병에 금을 가득 담아 가지고 가서 왕의 공양을 도왔다.
말리는 노비가 오는 것을 보고 이런 말을 하였다.
‘이 삿된 견해를 가진 사람을 부처님께서 만약 교화하여 제도하신다면 나는 반드시 이익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부처님께서는 그 때 정문(正門)으로 들어오셨다. 난타(難陀)는 왼쪽에서 모시고 아난(阿難)은 오른쪽에서 모셨으며, 나후라(羅睺羅)는 부처님의 뒤를 따라왔다.
노비(老婢)는 부처님을 뵙고 마음으로 놀라 털이 온통 곤두섰다.
그리하여 이렇게 말하였다.
‘이 악한사람이 내 뒤를 따라오고 있다.’
그리고는 즉시 달아나 개구멍으로 빠져 나가려고 하자 개구멍이 곧 닫혔고 네 문마저 다 막혔으며 오직 정문만 열려 있었다. 노비는 곧 부채로 자신의 얼굴을 가렸다.
부처님께서는 그 노비의 앞에서 부채를 거울처럼 만들어 아무 장애가 없게 하셨다.
그러자 그녀가 머리를 돌이켜 동쪽을 보면 동쪽에 부처님이 계셨고, 또한 남쪽ㆍ서쪽ㆍ북쪽도 모두 다 이와 같았다.
머리를 들고 우러러보면 거기에도 부처님이 계셨고 머리를 숙이고 땅을 내려다 보면 땅이 변하여 부처님이 되어 버렸다.
손으로 얼굴을 가리면 손의 열 손가락이 다 변하여 부처님이 되었다. 비는 눈을 감아버렸다. 그러자 곧 미음의 눈이 열려 허공의 화신불(化身佛)이 시방에 가득하였다.
그 당시 성 안에는 스물다섯 명의 전다라 여자가 있었고, 또 오십 명의 바라문 여자가 있었으며, 여러 부류의 여인들과 말리부인, 궁에 있는 여인 등 도합 오백 명의 여인들이 있었는데, 부처님을 믿지 않았던 사람들은 불ㆍ여래께서 허공을 걸어다니시며 노비를 위해 수없이 많은 몸을 나타내시는 것을 보고는 다 삿된 견해를 깨뜨려 버리고 머리와 이마로 부처님께 예배하고 ‘나무불(南無佛)’ 하고 칭송하였다.
그렇게 부르고 나서 조금 있다가 화신불이 숲처럼 많은 것을 보고 곧 보리심을 내었다. 노비(老婢)는 삿된 견해 때문에 지금까지 믿음을 내지 못했으나 부처님을 뵈었기 때문에 팔십만억 겁 동안 생사(生死)의 죄가 없어졌다.
그녀는 부처님을 뵙고 난 뒤에 빨리 집으로 돌아가 장자에게 말하였다.
‘저는 오늘 크게 악한 상대를 만났습니다.
구담(瞿曇)을 보았는데 그는 왕궁의 문 앞에 나타나 온갖 환술과 변화를 부렸습니다.
몸은 금산(金山)과 같았고 눈은 푸른 연꽃과 같았으며 뛰어난 광명을 놓았습니다.’
이와 같이 말하고는 나무로 만든 장롱 안에 들어가 일백 장의 가죽으로써 그 농을 덮고 흰 모직 천으로 머리를 싸매고 깜깜한 곳에 반듯이 누웠다.
부처님께서 기원정사로 돌아오려고 하시자 말리부인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부디 삿된 저 여인을 교화시켜 주사기를 원하오니, 정사로 돌아가지 마십시오’
부처님께서 말리부인에게 말씀하셨다.
‘저 노비는 죄가 중하여 부처와는 아무 인연이 없고 나후라와 큰 인연이 있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이윽고 정사로 돌아오셔서 나후라를 보내며 말씀하셨다.
‘너는 수달의 집으로 가서 저 노비를 구제해 주어라.’
나후라는 전륜성왕(轉輪聖王)으로 변하고 그 때 천이백오십 명의 비구는 천왕자로 변화하여 수탈의 집에 이르러서는 저 노비를 옥녀보(玉女寶)로 변화시켰다.
그 때 성왕이 곧 여의주(如意珠)로써 그녀의 얼굴을 비추어 그녀로 하여금 옥녀보와 같이 된 모습을 보게 하자,
그녀는 갑절이나 더 크게 기뻐하면서 이렇게 말하였다.
‘모든 사문들은 고상한 논리로 큰 소리를 치면서 스스로 도가 있다고들 말하지만 무엇 하나 효험이 없다.
그런데 성왕은 이 세상에 출현하여 많은 곳에 커다란 이익을 주었고 나같이 늙고 보잘것없는 몸까지도 옥녀보로 만들어주었다.’
이와 같은 말을 하고 나서 온몸을 땅에 던져 성왕에게 예배하였다.
그 때 창고를 맡은 선하는 왕의 열 가지 선한 일을 펼쳐 말하였다.
그녀는 열 가지 선행을 듣고 마음에 큰 기쁨이 생겨 이렇게 말하였다.
‘성왕께서 말씀하신 이치는 착하지 않은 것이 없구나.’
그리고는 왕에게 예를 올리고 허물을 뉘우치면서 스스로를 책망하여 마음이 이미 조복되었다.
그 때 나후라와 여러 비구들이 다시 본래의 형상을 회복하자, 노비(老婢)는 그것을 보고 이렇게 말하였다.
‘부처님의 법은 청정하여 중생들을 버리지 않고 나같이 폐악(弊惡)한 사람까지도 오히려 교화하여 제도하셨구나.’
그리고는 곧 다섯 가지 계를 받고서 수다원을 이루었다. 그러자 부처님 계신 곳으로 가서 부처님께 예를 올리고 지난번에 지은 죄에 대하여 참회하였다. 그리하여 부처님께 출가하기를 구하여 아라한이 되어 허공에서 열여덟 가지 변화를 보였다.
파사닉왕과 말리부인은 다 함께 부처님께 아뢰었다.
‘이 노파[婢]는 전생에 무슨 죄를 지었기에 노비[婢使]로 태어났으며, 또 무슨 복을 지었기에 부처님을 만나 도를 증득하였습니까?’
부처님께서 왕에게 말씀하셨다.
‘과거 먼 옛날에 어떤 부처님께서 세상에 출현하셨는데, 그 명호는 보개등왕(寶蓋燈王)이라고 하였습니다.
그 부처님께서 열반에 드신 뒤에 상법(像法)시대에 어떤 왕이 있었는데, 그 왕의 이름은 잡보회광(雜寶華光)이었습니다. 그 왕에겐 아들이 있었는데, 그 이름은 쾌견(快見)이었답니다.
그 아이는 출가하여 도를 배웠으나 스스로 왕자임을 믿고 항상 교만하게 굴었으므로 화상(和上)이 그를 위하여 매우 심오한 이치가 담긴 『반야바라밀경(般若波羅蜜經)』의 크게 공(空)한 커다란 진리를 설명해 주었습니다.
왕자는 그 설법을 듣고 나서 그것을 삿된 말이라고 잘못 이해하였다가 스승이 멸도(滅度)하신 뒤에 이런 말을 하였습니다.
〈우리 큰 화상께선 공허하고 지혜가 없으셔서 다만 공의 이치만을 찬양하셨습니다.
나는 후생(後生)에 그를 만나는 것이 즐겁지 않으나 우리 아사리(阿闍梨)는 지혜와 변재(辯才)가 있으니, 바라건대 태어나는 생마다 선지식이 되어 주소서.〉
이렇게 말하고 난 뒤에 모든 대중들로 하여금 다 삿된 견해대로 실천하게 하였습니다.
그는 비록 금계(禁戒)를 잘 지켰지만 반야(般若)를 비방하여 잘못 삿된 말이라고 이해하였기 때문에 목숨을 마치고 난 뒤에는 아비지옥에 떨어져 팔십억 겁(劫) 동안 한량없이 많은 고통을 받았으며
죄를 다 마치고 지옥에서 나와서는 가난하고 천한 사람이 되어 오백 번 몸을 받는 동안 귀먹고 어리석었으며, 눈이 없었고, 일천이백 번 몸을 받는 동안 항상 남의 노비가 되었습니다.’
부처님께서 이어 대왕에게 말씀하셨다.
‘그 때 그 화상은 바로 지금의 내 몸이었고 그 때 그 아사리는 바로 지금의 나후라였으며, 그 왕자비구는 바로 지금의 노비요, 그 때의 대중 제자들은 바로 지금 저 삿된 견해를 가진 여인들로서 보리심을 낸 자들입니다.’
또 『살차니건자경(薩遮尼乾子經)』에서 말하였다.
“옛날 부처님께서 세상에 계설 때의 일이었다.
울사연성(鬱闍延城)에 엄치(嚴熾)라는 왕이 있었는데 그 왕이 살차니건자에게 물었다.
‘만약 어떤 사람이 삼보로 믿지 않고 탑사(塔寺)ㆍ경전ㆍ불상 따위를 불사르면서 악한 말로 헐뜯고 꾸짖으며 말하기를
〈조작(造作)된 것에는 아무런 복덕이 없다. 거기에 공양하는 것은 현재 세상에 부질없는 일로서 손해만 될 뿐 미래세계에도 아무런 이익이 없다〉라고 하고
혹 탑사와 불상을 혐오하여 그런 곳에 있는 것을 방해하거나 그것들을 부수어 없애거나 다른 곳에 옮겨다 두거나,
혹은 사문이 사는 방사나 토굴 따위를 부수거나,
혹은 부처님의 물건ㆍ법의 물건ㆍ스님의 물건인 원림(園林)ㆍ전탑ㆍ집ㆍ코끼리ㆍ말ㆍ수레ㆍ노비ㆍ육축(六畜)ㆍ의복ㆍ침구와 일체의 보물을 가져가거나,
혹은 사문을 잡아다가 채찍을 가하며 부리고 그들에게 조공할 것을 책망하며 그들로 하여금 속세로 돌아가게 하거나, 혹은 때로 업신여기는 마음으로 갖가지로 희롱하거나,
혹 때로는 헐뜯고 나무라며 꾸짖고 비방하거나, 혹은 나무 막대기로 스스로 때리거나
혹은 갖가지로 그들의 몸을 상해하는 등 이와 같이 악한 사람은 어떠한 중생의 분류에 속합니까?’
니건자가 대답하였다.
‘대왕이시여, 그런 사람은 악역(惡逆) 중생의 분류에 속합니다.
대왕이시여, 그런 무리들은 마땅히 상품(上品)으로 그 죄를 다스려야 합니다. 왜냐 하면 지극히 근본죄를 짓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다섯 가지 죄가 있는데 그것을 근본죄라고 말합니다.
어떤 것이 그 다섯 가지인가?
첫째는 탑과 절을 파괴하고 경전이나 불상(佛像)을 불사르며 삼보의 물건을 스스로 하거나 남을 시켜서 취하도록 하고는 그것을 보고 도와주거나 기뻐하면
이것을 첫 번째 근본중죄(根本重罪)라고 합니다.
둘째는 삼승(三乘)의 법을 비방하고 헐뜯고 나무라며 억류하여 수행하기 어렵게 만들며 은폐하고 덮어 감추어 주는 것이니,
이것을 두 번째 근본 중죄라고 말합니다.
셋째는 만약 어떤 사문이 신심(信心)을 내어 출가하여 수염과 머리를 깎고 몸에는 가사를 입으며,
혹은 계율을 지니거나 혹은 계율을 지키지 않거나 간에
그를 감옥에 가두어 두고 수갑과 쇠사슬을 채우거나 묶으며 채찍질하며 부리거나 심부름을 시키며 부역을 빨리 하라고 꾸짖으면서
혹은 강제로 가사(袈娑)를 벗겨 핍박하여 그들로 하여금 환속하게 하거나
혹 그의 목숨을 끊으면 이런 것을 세 번째 근본 중죄라고 말합니다.
넷째는 오역(五逆)죄 중에 그 어느 것 하나라도 비기면
이것을 네 번째 근본 중죄라고 말합니다.
다섯째는 일체의 선악 업보는 없는 것이라고 비방하고 긴긴 밤 내내 항상 열 가지 착하지 않은 겁을 행하며 후세(後世)를 두려워하지 않고 스스로 하거나 남을 시켜서 거기에 굳게 안주케 하여 버리지 않으면
이것을 다섯 번째 근본 중죄라고 말합니다.
만약 이와 같은 근본 중죄를 범하고도 스스로 뉘우치지 않으면 그는 결정코 일체의 선근(善根)을 소멸하여 큰 지옥에 들어가서 간단 없는 고통을 받으면서 영원히 벗어날 기약이 없을 것입니다.
만약 나라 안에 이와 같이 악한 사람이 있으면 삼보를 훼손하고 없앰으로써 일체의 아라한과 모든 부처님과 성인들이 다 나라를 떠날 것입니다.
그리하여 모든 하늘들이 슬피 울고 선신(善神)들이 보호하지 않을 것이며, 각각 서로를 죽이고 사방에서 도적떼들이 일어날 것이며,
용왕(龍王)이 숨어버려 장마와 가뭄이 고르지 못하고 바람과 비가 때를 잃어 오곡(五穀)이 익지 못할 것이며,
백성들이 굶주리게 되어 서로 잡아 먹기 때문에 백골(白骨)이 들판이 가득하고 유행성 질병이 많아 무수한 사람들이 죽게 될 것입니다.
그런 대로 인민(人民)들은 그것이 스스로의 허물임을 알지 못하고 도리어 모든 하늘들과 착한 신령들을 원망하는 것입니다.’
또 『관불삼매경(觀佛三昧經)』에서 말하였다.
“일곱 가지 중죄(重罪)가 있다. 그 하나하나의 죄마다 능히 중생들로 하여금 아비지옥에 떨어져서 팔만 사천 대겁(大劫)을 지나게 한다.
첫째는 인과(因果)를 믿지 않는 것이요,
둘째는 시방의 부처가 없다고 헐뜯는 것이며, 셋째는 반야(般若)를 배우는 것을 중단하는 것이요,
넷째는 네 가지 중죄를 범하면서 헛되이 시주의 음식을 먹는 것이며,
다섯째는 스님의 기물(祇物)을 쓰는 것이요,
여섯째는 소행이 깨끗한 비구니를 겁탈하는 것이며,
일곱째는 육친(六親)들과 부정(不淨)한 행을 저지르는 것이다.”
또 『소오탁경(小五獨經)』에서 말하였다.
“오역죄인(五逆罪人) 외에 따로 오역죄가 있다.
첫째는 양친(兩親 : 어버이)에게 교만하게 굴고 귀신을 섬기는 것이요,
둘째는 임금을 질투하는 것이며,
셋째는 후생을 경박하게 여기는 것이요,
넷째는 그 몸과 목숨을 천하게 여기고 그 재물만 귀하게 여기는 것이며,
다섯째는 복을 버리고 화(禍)로 나아가는 것이다.”
또 『중아함경(中阿含經)』에서 말하였다.
“부처님께서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만약 어리석은 범부가 몸으로 악을 행하고 입으로 악을 행하며 뜻으로 악을 행하면 그는 목숨을 마치고 난 뒤에 악한 세계인 지옥[泥犁]에 태어나서 극심한 고통을 받고 한결같이 즐거움이란 없느니라.
비유하면 마치 어떤 사람이 도둑질을 하였을 적에 왕에게 보내 그 도적질한 죄를 다스리게 하면,
왕이 곧 사람을 보내 이른 새벽에 일백 개의 창으로 찌르게 해도 그 목숨이 그대로 있고
한낮이 되어 왕이 다시 이백 개의 창으로 찌르게 해도 그 목숨이 그대로 있으며,
저녁때가 되어 왕이 또 명하여 삼백 개의 창으로 찌르게 해도 그 사람의 몸은 산산조각이 나서 다 파괴되어 없어졌으나 그의 목숨만은 그대로 있는 것과 같느니라.’
부처님께서 또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들 생각은 어떠하냐? 이 사람이 창에 찔림을 당할 때 고통스럽겠느냐?’
비구들이 부처님께 대답하였다.
‘한 개의 창에 찔릴 때에도 오히려 고통스럽거늘 더구나 삼백 개의 창에 찔리는 것이겠습니까?’
부처님께서 곧 손으로 콩만한 작은 조약돌 하나를 집어 비구들을 보이시며 말씀하셨다.
‘내 손 안에 있는 이 돌 하나와 저 설산(雪山)의 돌을 비교하면 어느 쪽이 더 많겠느냐?’
비구들이 부처님께 대답하였다.
‘설산의 돌이 많습니다. 그것은 비교할 만한 것이 못 됩니다.’
부처님께서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삼백 개의 창에 찔리는 고통은 저 니리(泥犁 : 地獄)의 고통에 비하면 이 작은 조약돌만 하고, 니라의 고통은 설산의 돌처럼 많아 백천만 배로도 비유할 수 없느니라.
저 니리 속에서의 고통은 그 일이 어떤 것인가?
만약 어떤 중생이 니리 속에 떨어지면 그 지옥의 옥졸은 벌겋게 달군 도끼로 지독하게 그의 몸을 찍어 네 조각 또는 여덟 조각을 내나니, 이렇게 백천 년 동안 지내면서 극심한 고통을 받아도 목숨은 끊어지지 않느니라.
그런 고통이 끝나고 나면 다시 쇠평상에 앉히고 철사로 입에 자갈을 물리고 뜨겁게 달군 철환(鐵丸)을 삼키게 하면서 백천 년을 지낸다.
또 쇠평상에 앉히고 구리쇠 녹인 물을 입에 부으면서 백천 년을 지내며 다음에 쇠땅에 눕히고 뜨거운 쇠못을 그 몸과 머리에 박으면서 백천 년을 지낸다.
또 그 혀를 내어 그로 하여금 쇠땅을 핥게 하고 혀에 못을 박아 마치 쇠가죽처럼 펼쳐서 백천 년을 지내고,
또 목의 힘줄을 잡아당겨 수레에 얽어 매고 백천 년을 지내며,
또 그로 하여금 타오르는 쇠땅 위를 걸어가게 하면서 이렇게 백천 년을 지낸다.
다시 불타는 산에서 그로 하여금 발을 들게 해 거꾸로 세우면 피와 살이 다 녹고 발을 들면 다시 살아나 백천 년을 지내고,
또 펄펄 끓는 가마솥에 삶기우면서 백천 년을 지내나니, 이렇게 극심한 고통을 받으면서도 목숨이 끝나지 않고 반드시 죄가 다 사라진 뒤에야 비로소 벗어날 수 있을 뿐이다.
이것이 니리 지옥에서 받는 고통이니라.
지옥의 죄가 끝나면 온갖 축생들 속에 태어나서 항상 어둡고 깜깜한 곳에서 서로서로 잡아 먹으면서 받는 그 고통은 한량없어서 이루 다 말할 수조차 없다.
축생의 죄가 끝나면 혹 어쩌다가 인간 세상에 태어나기도 하지만 축생의 몸으로 있다가 사람이 되기란 매우 어렵나니
마치 눈먼 거북이가 떠다니는 나무의 구멍을 만나는 것과 같은 경우이다.
설령 사람으로 태어나더라도 빈궁(貧窮)하고 하천(下賤)하여 남에게 부림을 당하고 얼굴 모양은 추하고 더러우며, 혹 감각 기관에 결함이 있기도 하고 혹은 수명이 짧기도 하느니라.
만약 악업을 지으면 몸이 죽어 다시 태어날 때 지옥에 들어가서 끝없이 윤회하나니, 이런 것들은 이루 다 말할 수 없느니라.’
부처님께서 계속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어리석은 범부로서 몸과 입과 뜻으로 세 가지 악행을 지은 이는 그 죄를 얻음이 이와 같느니라.’
또 부처님께서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만약 지혜 있는 사람이 몸으로 선을 행하고 입으로 선을 행하며 뜻으로 선을 행하면 목숨이 마친 뒤에 좋은 곳인 천상에 태아나서 한결같이 즐거움을 누리게 되느니라.
그것은 마치 전륜왕(轉輪王)이 일곱 가지 보배와 더불어 인간 세계의 네 가지 오묘함을 갖추는 것과 같느니라.’
부처님께서 계속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비구들아, 그대들의 생각은 어떠한가? 이것을 즐겁다고 하겠는가?’
비구들이 부처님께 대답하였다.
‘일보(-寶)와 일묘(一妙)만으로도 오히려 지극한 즐거움이라고 하겠거늘 더 구나 칠보(七寶)와 사묘(四妙)로 살아가는 것이겠습니까?’
부처님께서는 다시 콩만한 작은 조약돌을 집어 비구들에게 보시면서 말씀하셨다.
‘내 손 안에 있는 돌과 저 설산에 있는 돌을 비교하면 어느 쪽이 더 많겠느냐?’
비구들이 부처님께 대답하였다.
‘저 설산에 있는 돌이 많습니다. 비교할 만한 것이 못됩니다.’
부처님께서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전륜성왕의 즐거움도 천상(天上)의 즐거움에 비하면 이 작은 조약돌과 같고 저 천상의 즐거움은 설산의 돌과 같아서 백천만 배로도 비유할 수 없느니라.
천상의 즐거움이란 그 일이 어떤 것인가?
만약 누구라도 천상에 태어나면 그가 받는 육진(六塵)은 뜻대로 되지 않는 것이 없으므로 지극한 쾌락을 누리리니 이루 다 갖추어 말할 수조차 없느니라.
만약 천상에서부터 내려와서 인간 세상에 태어나면 제왕(帝王)의 집에 태어나거나 혹은 큰 성바지의 집안에 태어나서 큰 부자로 살거나 크게 귀한 사람이 되어 재물이 풍족하고 보배도 많으며 명예 또한 멀리까지 퍼지고 얼굴은 단정하고 특별히 빼어나서 모든 사람들이 다 사랑하게 되리라.’
부처님께서 이어 여러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만약 지혜로운 사람이 몸ㆍ입ㆍ뜻이 세 가지로 선행(善行)을 짓는 이는 이와 같은 복을 얻느니라.’
부처님께서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그러나 이런 것들은 다 세간 유루(有漏)의 즐거움이다.
만약 선근을 닦아 보리(菩提)에 회향(回逈)하면 그는 나고 죽음 가운데에서 받는 과보와 나아가 열반에 이르기까지가 끝끝내 다함이 없을 것이다.’”
정보송(正報頌)을 말한다.
육적(六賊 : 眼ㆍ耳ㆍ鼻ㆍ舌ㆍ身ㆍ意)은 간사하고 거짓되며
칠식(七識)은 진실을 어지럽혀 어긋나게 하여
현묘하고도 바른 이치를 비방하고 헐뜯으며
거짓말도 하고 또 탐내며 성내기도 한다.
종횡무진하게 악한 업을 짓고
충정어린 말 즐겨 듣지 않다가
일단 무간 지옥에 들어가면
온갖 고통이 다투어 몸을 얽어맨다.
습보송(習報頌)을 말한다.
삿된 소견 때문에 어리석은 업을 익히면
아비지옥에 들어가 혹독한 고초 당하고
겁(劫)이 다하여 인간 세계에 태아나더라도
다시 삿된 것과 서로 관련한다.
삿된 것과 바른 것은 이미 서로 어긋나
저절로 아첨하고 비뚤어짐 이루었으니
이 마음을 만약 고치지 않으면
고리처럼 연이어져 지옥 고통 끊지 못하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