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당 정면에 부처님을 높이 모시기 위해 만든 단(壇)을 불단 또는 수미단이라 한다. 불단을 일명 수미단이라 부르는 것은 석가모니 부처가 그의 어머니 마야부인을 위하여 설법한 곳이 수미산 정상이었다는 설화와 관련이 있다. 불단의 일반적인 형태는 정방형 또는 장방형이며, 불교 상상의 산인 수미산의 모습을 상징한다.
불단은 부처님의 상을 직접 모시는 자리인 만큼 아름답고 신비로운 장식문양들로 가득하다. 신령계의 환상적인 동물들과 현실계의 길상 상징물, 그리고 불교적인 상징형들이 한데 어우러져 있는 불단은 불교 장식문양의 보고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신비스럽고 아름다운 문양으로 장식된 불단 가운데 영천 은해사 백흥암 극락전에 있는 불단이 특히 유명하다. 장방형 불단의 전면과 좌우 각 측면에는 각양 각색의 신비스러운 문양들로 가득하다. 그 가운데 쌍을 이루고 있는 물고기를 제외하면 대부분 상상의 새나 동물들이다.
연꽃봉오리를 손에 들고 있는 인두조신(人頭鳥身)의 가릉빈가와 당초를 입에 물고 있는 귀면(키르티무카), 모란꽃 사이를 날고 있는 봉황이 있는가 하면, 박쥐 날개를 단 익룡(翼龍)과 인두어신(人頭魚身)의 물고기, 자라 껍데기를 등에 진 괴인(怪人) 등 기이하고 초현실적인 동물들도 있다. 이와 비슷한 문양을 부산 범어사 대웅전과 양산 통도사 대웅전의 불단에서도 볼 수 있는데 범어사에는 봉황이, 통도사에는 사람 머리에 물고기의 몸을 한 동물이 있다.

은해사 백흥암 극락전의 불단
초현실적인 장식문양들로 가득 차 있어 우리나라에서 가장 화려하고 아름다운 불단으로 손꼽힌다.
ⓒ 유남해
가릉빈가나 귀면처럼 앞에서 따로 설명한 것을 제외하고 익룡과 인두어신의 물고기, 자라 껍데기의 괴인에 대해 좀더 자세히 살펴보겠다. 먼저 익룡은 팔부중의 하나로서 불법을 수호하는 용에 해당된다. 인두어신의 물고기는 물고기의 몸을 가진 사람이라고도 할 수 있는데, 그 괴기한 형태가 팔부중의 하나인 긴나라를 연상케 하지만 확실한 것은 알 수 없다. 자라 껍데기의 괴인 역시 그 이름이 무엇인지 확실히 알 수 없으나, 고대 인도신화에 등장하는 여러 신들 가운데 불교에 수용된 것으로 추측된다.
그런데 불단이라고 해서 백흥암의 경우처럼 상상의 동물이 주류를 이루는 것만은 아니다. 금산 청곡사 대웅전의 불단 장식을 보면 백흥암의 불단과 달리 일상에서 볼 수 있을 것 같은 장면이 묘사되어 있다. 활짝 핀 연꽃과 봉오리가 어우러진 연밭에 두 명의 동자가 연잎줄기를 잡고 놀고 있으며, 줄기 사이로 물고기가 헤엄쳐 다니고 있다. 뒤집어진 연잎 위에 흰 개구리가 떨어질 듯 붙어 있는가 하면, 포도를 따먹는 동자와 다람쥐, 그리고 연밭에 놀고 있는 물새가 정겹게 묘사되어 있다. 이런 형식의 장식문양은 청곡사 외에도 대구 파계사 원통전 등 많은 사찰의 불단에서 볼 수 있다.
이 문양들 가운데 특별히 흥미를 끄는 것은 동자가 연잎줄기를 잡고 있는 모습과 연밭에서 노니는 물새이다. 이런 문양은 표현 형식이 어느 정도 정형화되어 있고, 불단의 장식 소재로 자주 나타난다는 점에서 고유한 상징 의미를 지닌 것으로 여겨진다.
동자가 연잎줄기를 잡고 있는 문양을 편의상 동자집연경문(童子執蓮莖紋)이라 부르자. 동자집연경문의 원형으로 생각되는 것이 인도 아잔타석굴의 천장화와 벽화 등에 나타난다. 그 형태는 우리나라 사찰의 불단에서 보이는 것처럼 난쟁이(동자)가 연잎줄기를 손에 쥐고 있는 모습이다.

청곡사 대웅전 불단의 동자집연경문
연꽃줄기를 잡고 있는 동자는 신성(神性)의 또 다른 화현이며, 동자가 손에 쥔 연꽃은 불·보살의 현존을 상징한다.
인도신화를 보면 주인공의 하나인 비슈누신이 여러 가지 동물과 식물의 모습으로 화현하는데, 필요에 따라 나무 밑에 졸고 있는 신동(神童)의 모습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이와 관련해서보면 동자집연경문의 동자를 신성(神性)의 또 다른 화현으로 생각할 수도 있다. 또한 현실적으로 불·보살의 모습이 나타나 있지 않더라도 동자가 손에 쥔 연꽃을 불·보살의 현존을 상징하는 징표로 볼 수 있다.
한편 불단에는 물새를 장식하기도 하는데 대부분 관념적으로 표현된다. 목이 긴 것은 거위 같기도 하고, 짧은 것은 오리 같기도 하여 정확한 종류를 알 수 없으나 물새라는 것만은 확실하다.
물새는 생활 방식에 있어 이중적인 성질을 지니고 있다. 수면에서 헤엄을 치지만 물에 속박되어 있지 않고, 물을 벗어나면 창공을 날아오르는데 이때 하늘은 아래에 있는 땅 못지않게 물새에게 편안한 곳이다. 물새는 위에 있는 천상과 아래의 땅, 어느 쪽에나 구속받지 않고 산다. 물새가 지니고 있는 이와 같은 상징성은 불교에서 말하는 무애(無礙) 혹은 해탈의 의미와 서로 통한다. 이것이 물새를 불단 장식의 소재로 택한 이유 가운데 하나이다.
인도신화에는 창조의 신 브라마(Brahmā)의 화현으로 거위가 등장한다. 브라마는 거위의 등을 타고 하늘로 치솟는다. 거위는 브라마를 통해 신인동형적(神人同形的)으로 구현되는데, 그것은 때묻지 않은 영성(靈性)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최상의 자유를 상징한다. 이것이 바로 힌두교에서 연기(緣起)의 멍에로부터 벗어나 자유로워졌다고 믿는 탁발 수도사 또는 성자를 빗대어 거위, 혹은 ‘가장 높은 거위의 서열에 도달한 사람’이라고 하는 이유이다.
밀양 표충사 대광전 불단의 경우는 앞에서 살펴본 것과는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연꽃, 모란꽃과 함께 비천, 흰 코끼리, 물고기, 새우 등의 그림으로 전면이 가득 채워져 있으며 토끼가 자라를 타고 파도를 헤치며 어디론가 향해 가는 장면을 묘사한 그림도 있다.
표충사 대광전 불단에 등장하는 동물들
토끼와 자라, 물고기, 흰 코끼리, 새우 등을 비롯하여 연꽃과 모란 등이 불단 전면을 가득 채우고 있다.
코끼리는 보현보살의 탈것으로 표현되는 동시에 길상(吉祥)의 의미를 상징한다. 코끼리의 상(象)이 상(祥)과 발음이 같아서 길상의 상징형으로 간주되는 것이다. 새우는 딱딱한 껍데기를 가지고 있는 갑각류(甲殼類)로 원래부터 불교와 인연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껍데기를 의미하는 갑(甲)이 갑·을·병·정······의 첫번째 순서에 해당하기 때문에, 새우는 제1인자 또는 ‘최고’라는 길상의 상징성을 얻게 되었다.
한편 불단 장식문양 가운데 빼놓을 수 없는 것이 꽃인데, 나주 다보사를 비롯한 많은 사찰의 불단에서 찾아볼 수 있다. 꽃 장식 가운데 주종을 이루는 것은 연꽃이며, 그밖에 민간에서 길상화(吉祥花)로 널리 애호되는 모란, 작약, 국화, 당초, 초화(草花) 등도 불단 장식으로 많이 사용된다.

다보사 대웅전 불단의 꽃 장식
민간에서 길상화로 알려진 모란, 작약, 국화 등이 장식되어 있다.
이렇듯 불단에는 신비스럽고 환상적인 물상들과 신성의 또 다른 화현으로 생각되는 조류와 동자상, 부처님과 그의 세계를 수호하는 벽사상, 그리고 길상과 상서(祥瑞)의 상징물들이 장식되어 있다. 이 모든 불단 장식문양은 표면적으로 화려하게 보이지만 그 배후에는 감성이나 쾌락이 배제된 숭고미(崇高美)가 잠재되어 있으며, 수승(殊勝 ; 세상에서 제일 뛰어남)한 부처님과 그의 자리를 장엄하게 꾸미기 위한 불자들의 종교적 열망과 신심이 짙게 배여 있다.
불단 - 현실과 환상의 신비로운 공존 (사찰 장식 그 빛나는 상징의 세계, 2000. 5. 01., 돌베개)
첫댓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