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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글은 SPACE 2006년 03월에 연재된 것임을 밝힙니다.
첨단건축한옥, 그 가능성을 찾아서
글_황두진
왜 한옥인가
가회동 취죽당, 한옥은 건축의 총체성을 증거한다
연재 막바지인 지금 이 질문을 다시 한 번 정리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예상되는 답은 여러 가지가 있다. 우선 한옥이 객관적으로 뛰어난 건축이라는 이유다. 이에 추가하여 현대건축의 효과적인 보완, 나아가 대체물로서 그 가능성을 내포한다는 설명도 가능하다.
물론 상당히 설득력이 있지만 나름대로 한계는 있다. 한옥은 전 세계의 수많은 전통건축 중 하나이며, 객관적 장점이라는 것 또한 주어진 조건으로부터 결코 자유롭지 않다. ‘객관적’이라는 것이 상황을 초월한다는 의미이므로, 한옥이 한반도라는 상황을 떠나 얼마나 객관적으로 우수한가에 대해서는 그리 쉽게 답할 수 없다. 따라서 얼마나 주어진 환경에 맞게 발전되어 온 건축인가라는 입장에서 보는 것이 보다 유효한 태도다.
두 번째 답은 단순하다. 우리 것이기 때문이다. 한옥을 우리 건축, 나아가 우리 자신의 정체성과 관련된 중요한 요소로 보는 것이다. 이런 입장은 종종 식민지 경험에 대한 부정적 인식, 민족주의적 성향 등과 결합하여 상당한 사회적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그러나 우리 사회가 한옥에 의미를 부여할 만큼 많은 물량을 공급하지도 않았고, 그나마 있는 한옥들도 지속적으로 헐려 나가는 마당이므로 현실적으로 매우 제한적인 설득력만을 가질 뿐이다. 게다가 이미 나라 밖의 세계와 너무도 긴밀하게 엮어 있으며, 우리 자신의 삶의 조건들 또한 극심하게 변화하고 있으므로 고정된 성질이라는 의미의 정체성이란 개념 자체가 충분히 의심받고 있는 상황이다. 따라서 한옥을 통해 우리의 건축적 정체성을 찾으려는 시도는 여전히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나는 제3의 답을 제시해 본다. 그것은 한옥이 진화의 기회를 충분히 갖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생각은 몇 가지 사실에 기초하고 있다. 우선 연재 전반부의 글에서 언급했듯이 서유구와 같은 조선 후기 실학자들이 한옥의 개량을 매우 강력하게 주장하였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유감스럽게도 이러한 주장들이 이후 적극적으로 실험되고 현실에 적용되었다는 증거는 찾아보기 어렵다. 수원 화성에 당시로서는 신 재료인 벽돌이 적극적으로 사용된 점, 혹은 일제 치하에서도 여러 지역에 대규모 도시형 한옥이라는 새로운 형식이 시도된 점 등은 주목할 만한 사실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일반 살림집들은 매우 집요한 관성을 갖고 큰 변화 없이 오늘날까지 남아 있다. 예를 들어 우리나라는 동아시아에서도 유일하게 지붕개량이 있는 한옥들을 본다면 ‘도대체 그 사이에 한 일이 무엇인가’라며 개탄할 지경이다.
따라서 만약 역사가 좀 다르게 진행되어 한옥이 지속적으로 진화했더라면 그 결과가 어떠했을까 자문하게 된다. ‘과연 오늘날 우리 도시와 건축의 상황이 지금과 같을 것인가’ 라는 의문을 지울 수가 없다. 서구의 근대건축은 이전 시대건축의 견고한 체제에 반발하고 저항하면서 소위 전위적(avant garde) 건축으로서 새롭게 출현하였다. 이처럼 한옥도 충분히 진화과정을 거쳤다면 우리 스스로가 이것을 해체하고 이에 대한 적극적인 대안을 모색했을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 문제는 그런 자발적인 과정이 일어나기도 전에 한옥의 진화, 아니 그 이전에 우리의 자주적인 역사발전 자체가 일시적으로 중단되었다는 것이다. 지금 우리가 한옥에 대해서 갖고 있는 여러 가지 부정적인 생각들, 즉 춥고 불편하고 부실한 집이라는 것 등은 진화의 과정을 통해 얼마든지 개선될 수 있었다. 게다가 1970년대까지도 비교적으로 대량으로 한옥이 공급되었고, 1980년대 들어서부터 본격적인 보존 노력이 시작되었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면 사실 한옥의 공백 기간이 그리 길었던 것도 아니다. 어느 때보다도 우리 역사와 전통의 문화콘텐츠에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지금이야말로 중단된 한옥의 진화, 그 나머지 단계를 실험해볼 수 있는 좋은 기회일 수 있다. 서로 다른 역사적 경험을 지닌 서구와 우리가 전통건축에 대해서 같은 입장을 취하기 어렵다는 것 또한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낡은 것을 새롭게 보다
고딕성당의 내부. 그 위대한 건축술의 성과
한옥이 첨단 건축일 수 있는 가능성은 건축에 대한 우리의 입장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 전반적인 현대건축의 흐름에서, 한옥은 매우 독특한 입장을 보인다. 현대건축은 미디어의 발달, 자본과의 결합, 시장의 논리 등으로 인해 갈수록 시각적이며 파편화되는 경향을 보인다. 반면 한옥으로 대표되는 우리 전통건축의 세계는 내부와 외부, 구조와 공간, 전체와 부분, 인공과 자연 사이의 불연속성을 인정하지 않는, 매우 견고하며 정밀하게 짜여진 건축적 사고에 근거하고 있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건축의 총체성을 믿는 사람이라면 한옥의 가치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우리는 이것을 단순히 복고적 회귀가 아니라 건축에 대한 심오한 질문을 던지는 기회로 삼을 필요가 있다.
이러한 상황은 서구건축에서 고딕에서 르네상스로 넘어가는 상황과 비교할 수 있다. 이 과정은 이렇다 할 기술적인 진보와는 무관하게 전개되었다. 오히려 건축의 기술자체는 퇴보한 듯한 느낌도 있다. 고딕건축은 구축술에서 지금 보아도 놀라울 정도의 성취를 이룩하였다. 가히 당시대 인간이 만들어 낼 수 있는 최고 수준의 인공물이라고 할만하다. 이에 비해 르네상스시대의 건축물들은 상대적으로 열세에 놓인다. 흔히 르네상스건축의 기원을 브루넬레스키가 설계․감독한 피렌체의 거대한 두오모에서 찾지만, 사실상 르네상스건축의 본질은 개별 건축의 형식적 성취 이전에 건축을 바라보는 시선과 더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 관심의 대상이 신에서 인간으로 옮겨온 것이 바로 그것이다.
부르넬레스키의 고아원 인간적인 그래서 첨단의 건축
인간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건축을 새롭게 보게끔 한 것이다. 그래서 고딕건축의 웅장하고 화려하며 인간을 압도하는 듯한 느낌과 구별되는, 소박하고 아기자기하면서 현실 세계의 이야기를 담고자 하는 건축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소박하고 친근하나, 그러나 더 없이 정교한 비례에 의해 구성된 부루넬레스키의 고아원 건물이나, 지금도 독자로 하여금 옅은 웃음을 자아내게 하는 보카치오의 데카메론, 한 인간의 우주적 스케일로 확장된 가치를 부여하는 듯한 다 빈치의 모나리자 등은 각기 다른 분야에서 같은 가치를 담아 낸 성과이다. 특수효과로 중무장한 헐리우드 블록버스터영화와 인간적인 드라마가 담긴 예술영화의 차이 정도가 여기에 존재한다.
물론 고딕건축을 현대 건축에, 한옥을 르네상스건축에 비교하려는 것은 아니다. 다만 건축에서 첨단의 가치란 이처럼 건축을 바라보는 시선의 변화에 의해서도 생겨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려는 것이다. 바로 이런 이유로 해서 르네상스건축이 그 이전의 고딕건축과는 또 다른 건축세계를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다고 할 수 있는 것이며, 현대건축에 대한 한옥의 가능성 또한 이러한 생각의 연장선상에서 이해될 수 있는 것이다. 한옥은 어떤 의미에서 건축이라는 단어의 의미 자체를 다시 반추하게 하는 강력한 메시지를 담고 있다.
매크로한 문제, 마이크로한 접근
건축은 필연적으로 매크로(macro)한 문제들을 다룬다. 우주의 질서에서 시작하여 방위, 지형, 기후, 문명, 인간, 자연 등이 그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문제들에 접근하는 방식은 차이가 있을 수 있다. 예를 들어 냉방이라는 문제를 보자. 전기에 의해 작동되는 기계인 에어컨에 의지하여 냉방을 해결하는 것은 기후라는 매크로한 문제에 대해 역시 매크로한 접근으로 해결하는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에어컨 자체의 크기가 아니다. 전기는 국가적 인프라의 하나이며 기계를 만들어내는 과정 또한 공장을 포함한 방대한 시스템을 필요로 한다. 그래서 아무리 기계가 작고 전기 소모량이 적다고 해도 에어컨은 매크로한 사고의 소산이다. 그런데 한옥의 경우 자연형 냉방시스템이라고 할 만한 구조를 갖고 있다. 이것은 깊은 처마와 개방적 구조의 대청마루, 텅 비어 있으며 햇살을 직접 받아 달아오르는 앞마당, 건물에 의해 항상 그늘이 지는 뒷마당과 그 그늘을 보강하는 대나무와 같은 적절한 식재 등 그야말로 건축의 제반요소가 총동원되어 만들어지는 매우 정교한 시스템이다. 그리고 그 성격은 본질적으로 마이크로(micro)한 것이다. 왜냐하면 어떤 거대한 인공 시스템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고 개별 건축물과 이를 둘러싼 상황에 이러한 시스템이 내포되어 이TSms 것이기 때문이다. 또 다른 예로서 습기에 약한 목판을 장기간에 걸쳐 보관하는 해인사 장경각의 뛰어난 능력 또한 이러한 사고의 소산이다.
무엇보다 놀라운 것은 이러한 기능적 시스템이 상징적 시스템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앞마당이 양(陽)이면 뒷마당은 음(陰)이다. 이 원리에 따라 한옥의 마당에는 나무를 심지 않는다. 항간에는 집의 형상을 닮은 입 구(口)자 속에 나무 목(木)자가 들어가면 괴로울 곤(困)자가 되어 뜻이 좋지 않기 때문이라고도 설명한다.
가회동 무무헌 비오는 날 창을 열 수 있다는 것은 행운이다
그러나 동시에 이런 설명도 가능하다. 위에서 말한 자연형 냉방시스템에 의하면 마당이 달구어져야 공기가 위로 올라가고 상대적인 기압차에 의해 바람이 불게 되므로 앞마당에는 나무를 심지 않는다는 것이다. 동시에 나무의 뿌리로 인해 집의 기초가 상하는 것을 막기 위함이었다고도 볼 수 있다. 이 모든 것이 다 유효한 설명이라는 사실에 한옥의 묘미가 있다. 각각의 설명들은 다만 작동하는 차원이 다를 뿐이다. 이것이야말로 오랜 시간에 걸쳐 형성되어 온 전통 문화 특유의 유기적 연관성이다. 무엇하나 독립하여 존재하는 것이 없고 모든 것이 서로서로 연관을 맺는다. 기능, 재료, 상징, 배치 등 건축 전반이 하나의 거대한 시스템 속에서 결정되고 작동하는 것이다. 제 아무리 뛰어난 천재라도 이러한 시스템을 혼자서 만들어낼 수는 없다. 그만큼 한옥은 동양인, 그중에서도 한국인의 사유체계를 뼛속 깊이 담고 있는 건축이다. 결국 새로운 시도를 위해서는 어딘가의 연결 고리를 끊어야 하는데, 과연 어디를 끊을 것인가가 그만큼 중요한 문제가 된다.(이에 대해서는 연재 마지막에 다시 언급할 것이다.)
에너지와 환경 문제가 중요하게 대두되면서 한옥이 갖는 이러한 측면은 새롭게 조명될 필요가 있다. 나아가 매우 적극적으로 실험하고 적용할 필요도 있다. 예를 들어 습도 문제를 보자. 역시 이에 대한 매크로한 해결 방식은 에어컨이나 제습기를 사용하는 것이다. 둘 다 별도의 에너지를 필요로 하는 것은 물론이다. 또 다른 방법은 숯이나 황토 등 천연 재료의 능력을 빌리는 것이다. 이것은 마이크로하게 문제에 접근하는 방식으로서 별도의 에너지가 필요하지 않으며 자연 현상 그 자체를 최대한 이용하는 방식이다. 창문의 형식도 문제가 된다. 습도가 많은 우리나라의 경우 여름에 비가 오면 반드시 창을 열 수 있어야 한다. 공기 중의 수증기는 잠열을 품고 있으며 공가기 있는 곳이면 집요하게 어디에나 구석구석 침투한다. 그런데 차양이 깊지 않아 비가 들이치는 구조라면 창을 열 수 없다. 이렇게 되면 실내의 습도는 갈수록 높아만 가고 사람이 견디기 어렵게 된다. 그러나 처마 깊이가 넉넉하여 창문을 열 수 있으면 어느 정도의 통풍이 이루어지면서 그럭저럭 견딜 만한 상황이 된다.
이런 입장에서 보면 지금 우리가 익숙해져 있다고 생각하는 현대건축이 우리의 기후 및 생활 조건과 얼마나 무관한 것인지 쉽게 알 수 있다. 이를 잘 느끼지 못하는 이유는 문제 자체가 없어서가 아니라 에너지의 왕성한 소비를 통해 이를 매크로하게 해결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비가 오는 한여름에 정전이 되는 상황을 가정해 보면, 처마 깊은 한옥과 처마가 없는 소위 모더니즘 박스의 성능은 비교하기조차 어렵다.
형태 없는 기술
가회동 쌍희재, 문자는 한옥의 일부이다
낮은 수준의 기술은 고유한 형태를 가지며 일정한 공간을 점유한다. 그것을 우리는 보통 기계라고 부른다. 사실상 근대건축은 건축이라는 기계가 그 안에 또 다른 많은 기계들을 담고 있는 것이다. 도서관이 좋은 예이다. 도서관은 도서의 분류 방식에 따라 서고와 서가들이 배치되며 따라서 본질적으로 도서관이라는 기계는 그 안에 품고 있는 도서라는 기계의 속성에서 자유롭지 않다. ‘형태는 기능을 따른다’는 유명한 말은 이러한 기계적 세계관의 반영이다. 그런데 도서가 담고 있는 지식과 정보가 방대해지고 복잡해지면서 종래의 도서 분류 방식의 한계가 드러나게 되었다. 예를 들어 도시생활을 주제로 한 글을 모은 책은 건축으로 분류될 수도 있고, 도시로 분류될 수도 있고, 심지어 에세이, 사진이 많다면 포토에세이로 분류될 수도 있다. 그래서 비슷한 내용을 가진 책들이 전혀 다른 공간에 배치되는 경우도 흔히 발생한다.
그런데 지식과 정보를 전달하는 수단이 도서에서 인터넷으로 대치되면서 상황은 매우 달라졌다. 인터넷 도서관이라는 단어가 등장하기는 했지만 사실상 모순어법(oxymoron)에 가깝다. 왜냐하면 새로운 시대의 지식정보 기술은 사실상 형태가 없으며 공간을 점유하지 않거나 매우 제한된 공간만을 점유하기 때문이다. 야후(Yahoo)와 구글(Google)은 대표적인 포털 사이트들이지만 그 디자인은 극단적으로 다른 생각에 바탕을 두고 있다. 야후가 여전히 체계적인 분류 방식에 의한 도서 시대의 낡은 형태를 고수하고 있다면, 구글은 섬뜩하리만큼 단순하다. 단 하나의 검색창만이 있을 뿐이다.
여기서 이야기하고자 하는 바는 기술이 발달하면서 건축과 결합되는 형식이 변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지금의 건축은 기술에 대한 의존도는 커지는 동시에 기술의 형식과 형태로부터는 자유로워지는 역설적인 상황에 놓여 있다. 더 이상 첨단의 기능을 위해서 첨단으로 보이는 건축이 필요한 시대가 아니다. 요즘 지어지는 한옥들은 무선 인터넷과 보안 시스템 등으로 상징되는 첨단 디지털 기술과 자연형 에어컨이라는 첨단 아날로그 기후 조절 장치가 공존하는 매우 특별한 실험무대가 되고 있다. 그렇다고 한옥에 이렇다 할 건축적 변형을 요구하지도 않는다. 마치 처음부터 그랬던 것처럼 자연스럽게 침투해 들어온다. 앞으로 기술이 발달하면 발달할수록 이러한 결합의 정도는 심해질 것이다. 첨단건축 한옥의 미래는 이런 현상과 무관하지 않다.
또 다른 가능성은 이미지와 문자, 즉 정보가 건축과 결합하는 방식이다. 한옥은 이런 점에서 매우 깊은 역사를 갖고 있다. 편액이나 주련 등은 건축과 떨어져서 생각할 수 없는 주요한 요소였다. 이들은 단순히 집의 이름이나 시의 구절이 아니라 집주인의 세계관을 담는 일종의 선언(manifesto)과도 같은 것이었다. 이것이 의미 있는 것은 오늘날의 건축이 어떤 방식으로든 이러한 정보전달 시스템의 일부로 편입되고 있기 때문이다. 아니 건축 자체가 거대한 정보의 전달체가 되어 가고 있다. 매우 새로운 경향인 것 같지만 이미 우리는 이것을 오랜 시간에 걸쳐 실천해 오고 있는 셈이다.
첨단시스템건축, 한옥
아름지기 한옥의 나무 촉
얼마 전 인터넷에서 작은 화제가 되었던 사건이 있었다. 온라인 경매사이트에 ‘80년 된 한옥 팔아요’ 라는 글이 올라온 것이다. 집주인측은 대지를 포함하지 않고 집만 파는 것이므로 구입하는 사람이 한옥을 옮겨가는 조건을 단서로 달았다. 다소 코믹하게 느껴지는 상황이기도 하지만 이 광고야말로 한옥이라는 건축의 본질을 꿰뚫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옥은 옮겨 지을 수 있다. 한국건축사에는 옮겨 지은 집에 대한 기록이 수두룩하다. 예를 들어 광해군은 임진왜란 이후 인왕산 기슭에 인경궁이라는 거대한 궁궐을 조성했는데, 병자호란 당시 창덕궁이 소실되자 이곳의 건물들을 뜯어다가 보수했다는 기록이 있다. 이제는 흔적조차 남지 않은 인경궁이지만 그 부재들은 지금도 창덕궁 건물들 어딘가에 남아 있을지 모른다. 또 다른 예로는 역시 창덕궁의 대조전을 들 수 있다. 원래 건물이 1917년에 소실되자 1920년에 경복궁 교태전을 옮겨다 지은 것이다. 지금 경복궁에는 복원된 교태전이 서 있어 어느 것을 진짜 교태전으로 부를 것인가라는 즐거운 논쟁이 벌어지기도 한다. 무슨 레고 집짓기 같은 이야기가 아닌가. 우리는 보통 건물과 그것이 놓이는 장소와의 깊은 관계를 한옥의 중요한 가치 중 하나로 생각하지만 한옥이라는 시스템 자체는 본질적으로 장소를 초월한다.
또 다른 예를 들어 보자. 안국동 아름지기 한옥 사옥에는 도리와 기둥이 만나는 부분의 나무 촉이 밖으로 나와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 건물을 시공한 박석규 대목은 그 튀어나온 부분을 깨끗하게 잘라내어 정리할 수 있지만 일부러 그렇게 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 이유는 간단하지만 심오하다. 언젠가 집을 다시 해체 수리해야 할 때를 대비해서 나무 촉을 빼낼 수 있게 한 것이다. 그러니까 집을 지으면서 다시 고치는 상황까지 대비한 것인데, 변화 그 자체를 포용하는 이런 태도야말로 한옥의 중요한 성격이다.
이러한 사실들로부터 즐거운 상상을 해볼 수 있다. 다름 아닌 한옥 반제품 키트(kit)이다. 한옥 중에 명품으로 일컬어지는 것들, 이를테면 도산서원의 도산서당 같은 것을 키트로 만들어 컨테이너에 담아 판매하는 것이다. 아니면 현대건축가가 설계한 표준한옥으로 키트를 만들 수도 있다. 집주인은 필요한인․허가를 거친 후 대지 조건에 맞게 약간의 수정만 가하면 깊은 내용이 담긴 좋은 한옥을 손쉽게 가질 수 있다. 이런 개념이 확산되면 공자에서 대량으로 치목하는 것이 가능하기 때문에 현장 작업을 줄일 수 있고 품질 관리도 용이해지며 한옥의 가격 또한 비약적으로 낮출 수 있다. 심지어 수출도 가능하다. 세계무대에 뛰어들 수 있는 길이 열리는 것이다. 세상에 이런 것이 가능한 건축은 극히 드물다, 궁극의 조립식 건축, 이것이 한옥이다.
대담. 건축가 김석철의 한옥
늦겨울의 게으른 해가 창가에 비끼던 2월 초, 아키반 건축도시연구원을 찾았다. 아키반은 가회동 11번지의 인접한 한옥 두 채를 개조하여 사무실로 쓰고 있다. 그 리더인 건축가 김석철에 대해서는 별도의 설명이 필요하지 않을 것이다. 이번 연재를 통해 그가 한옥과 맺고 있는 특별한 관계에 대해서 소개하고자 한다.
건축가로서 한옥을 어떻게 접하게 되었나.
어느 순간 갑자기 한옥이 의미 있게 다가온 것은 아니다. 경남 밀양 출신인 나는 어려서 남천강변 영남루를 오르내리면서 주변의 거대한 풍광을 아우르는 영남루의 넓은 포용력에 감탄했다. 또 할아버지가 한옥을 짓는 것을 옆에서 지켜보기도 했는데, 기계처럼 만들지만 만들어진 결과는 자연의 일부가 되는 것에 감동받았다. 밀양에서 부산으로 옮기면서 제대로 된 일본식 집에 살았는데 그 집이 한옥과 아주 다른 것에 놀랐다. 일본식 집은 아주 정교했고 무엇보다 내부와 외부의 관계가 아주 정교하고 치밀했다. 이에 비하면 한옥의 마당은 오히려 버려지는 듯한 느낌이었다. 그래서 한옥이 큰 그림은 좋은데 세부적인 부분에서 약하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서울에 올라와서는 가회동의 한옥에서 하숙을 했는데 도시형 한옥이라는 것이 매우 졸렬하여 그 느낌이 좋지 않았다. 이후 아주 좋은 일본식 집으로 이사하면서 나에게 한옥과 일본집의 대비는 더욱 선명한 것이 되었다.
김중업 선생 사무실에 있을 때 성북동의 한옥을 증축하는 일을 내가 맡게 되어 장기인 선생의 책을 봐 가며 작업했다. 이렇게 보통의 건축가들과는 다른 방식으로 한옥과 관련된 경험을 쌓아 갔다. 거기서 2년쯤 일하다가 김수근 선생 사무실로 갔고, 3년 후 독립하면서 전시회를 열었는데 그 제목이 ‘한옥 이후’ 였다. 한국의 건축가가 한옥이 가진 한계를 뛰어넘어야 자기 것을 할 수 있다는 생각에서였다.
동숭동의 사무실을 떠나 한옥을 개조하여 사무실로 사용하고 있다. 설계자가 아닌 사용자의 입장의 생각을 이야기한다면.
가회동 아키반 사옥
동숭동에 있다 보니 주변이 시끄러워서 1990년대 초반 가회동 1번지로 가려고 했다. 그런데 이미 1번지는 한옥들이 헐려 나가고 있었다. 마침 베니스대학 출강 중이어서 50명이던 사무실 인원도 10명 내외로 줄어 있었다. 그래서 한옥을 지키고 싶은 마음에서, 이 동네로 온 것이다. 원래 의도는 이 블록 전체를 다 사서 작업하려는 것이었으나 서울시가 중간에 있는 집을 사는 바람에 무산되었다. 이 사무실의 경우, 한옥이라기보다는 한옥의 골조 속에서 일하는 것이라고 하는 것이 옳다. 한옥은 원래 대청을 빼놓고는 닫힌 집인데 이 집은 유리를 많이 사용하여 열려 있다. 집과 담장 상이의 공간도 시각적으로 끌어들이고 있다. 결국 구법은 한옥이지만 느낌이나 쓰임새는 다른 것이다.
한옥에 사는 사람들 중에는 겉멋 든 경우가 많다. 하지만 건축가들의 경우 강제로라도 이러한 한국의 유전자를 직접 체험할 필요가 있다. 자기의 모국어를 잘 배워야 하는 것이다. 모든 위대한 작가들은 자기가 받고 태어난 유전자와 자기가 호흡하는 세계 상이의 갈등이 있다고 생각한다.(예를 들어 백남준 선생은 이런 유전자가 그리 강하게 느껴지지 않고, 윤이상 선생에게는 강하게 느껴진다.) 한옥에서의 삶이 그나마 이러한 원초적 체험을 가능케 한다는 점에서 우리 직원들에게 좋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교통이 불편하다는 등의 이유로 동숭동으로 돌아가자는 의견이 없지 않으나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기억상실증에 걸려 모든 것을 잊게 되지 않겠는가.
원서동의 한샘 DBEW 디자인센터는 매우 충격적인 작업이었지만 충분한 논의의 대상이 되지 못했다. 이 건물에 담긴 건축적 생각은 무엇인가.
한샘 DBEW 디자인센터는 초기안과 최종안이 완전히 다르다. 처음에는 연립주택이었으나 이것은 심의를 통과하지 못했고, 그 다음 안은 완전히 현대건축으로 설계한 것인데 이것은 서울시와 문화재 심의, 그리고 허가를 모두 통과했다. 그런데 심의 의원 중 한 분인 한영우 선생이 현장을 보더니 이런 자리에 양옥을 할 수 있는 사람은 많으나 양옥과 한옥을 어울리게 하는 것은 어려우니 이를 해보는 것이 어떻겠냐고 나에게 권유했다. 이에 공감, 허가 받은 안을 버리고 처음부터 다시 설계한 것이다.
이 건물에서 한옥은 루이 칸이 이야기하는 소위 ‘served space'와 ’servant space' 중에서 후자에 해당하는 부분을 구성하고 있다. 왜냐하면 일하고 거주하는 공간보다는 복도, 계단실, 입구 등의 부분에서 건축을 더 잘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전제 면적으로 보면 15% 내외 정도만 한옥인 셈이다. 건물의 그 나머지 부분을 아주 단순하게 처리해서 마치 전체가 한옥인 것처럼 느껴지도록 하는 것이 의도였다. 또한 스케일을 줄여서 창덕궁을 압도하지 않도록 했다. 좋은 건축이란 그 집이 들어서서 주변이 좋아지는 집이라고 생각한다. 당초 나는 반사 유리의 효과가 싫어 이를 쓰고 싶지 않았으나 내부의 보가 노출되지 않기 위해서는 아주 비싼 디테일을 써야 했으므로 어쩔 수 없이 반사유리를 썼다.
우리 시대가 요구하는 첨단의 건축 사고를 담을 수 있는 그릇으로서 한옥에 대한 생각은.
먼저 철학적 태도를 이야기하고 싶다. 한국건축은 자기를 해체할 줄 안다. 스스로를 무너뜨려서 오히려 주변을 자기 것으로 만드는 기묘한 성격이 있는 것이다. 마치 자식을 위해 희생하는 어머니와도 같다. 일본건축에도 명품이 있고 중국건축도 그 문법(grammar)의 완벽한 아름다움이 있지만, 한옥의 이러한 특징은 매우 고유한 것이다. 이것은 삶의 지혜에서 오는 것이다.
건축에서 첨단적 사고라고 하면 기술과의 결합이라는 측면에서 이야기 할 수 있다. 소위 말하는 러시아 구성주의식 하이테크는 기술의 표현을 가리키는 것으로 이것은 우리에게 별로 필요하지 않다. 우리는 기술의 방법론에 집중해야 한다. 산업구조에 맞고, 상황에 적합한 기술을 찾아야 하는 것이다. 첨단은 결코 우리보다 앞선 나라를 흉내 내는 것이 아니다. 예를 들어 지금 진행 중인 원불교 뉴욕 총부 건물의 경우 약 300개 정도의 부품으로 만들어지는 조립식 기계와도 같다. 전체 1,500평 중에서 15%정도만 한옥이지만 전체적으로는 한옥으로 느껴진다. 이런 건물을 평당 500만원에 지을 수 있게 설계하고 있다. 기와도 현장에서 간단히 조립하여 시공한다. 그것도 우리 인력이 아닌 외국 인력을 사용해서 짓는 집이다. 현대화에 성공한 일본과는 달리 한옥은 진화를 멈췄다. 그래서 한옥은 골동품이 되고 말았다. 나는 한샘 DBEW 디자인센터에서 한 걸음 더 나가서 그 진화가 다시 시작되도록 노력하고 있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대단히 현실적이면서 동시에 매우 첨단의 사고가 필요하다.
그 다음의 첨단적 사고로서는 디지털시대의 특징인 자유를 들 수 있다. 우리나라의 석가탑과 다보탑을 보자. 그중에서도 다보탑을 좋아하는데 거기에 자유가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다보탑은 자세히 보면 엄청나게 정교한 기하학의 세계다. 그러나 전체적인 느낌은 오히려 유기체와도 같다. 아주 정교하게 만들어졌으면서도 조립된 느낌이 없다. 대단한 경지가 아닌가.
디지털시대에는 모든 것이 원점이다. 미스의 바르셀로나 파빌리온을 보면 끊임없이 원점이 이동한다. 보자르 시대의 건축과 가장 큰 차이가 이것이다. 컴퓨터회사인 오라클을 방문했을 때 화장실이 따로 없는 것을 알았다. 자신이 있는 곳이 바로 원점인 것이다. 그리고 그런 상황에서 오히려 자기의 실재를 느낄 수 있다. 한옥의 경우 공부방과 침실, 놀이방의 구별이 없다. 이것은 소위 말하는 유비쿼터스와도 다른, 우리식의 디지털 문화다. 우리가 이런 것을 느낄 수 있는 것은 여기에 오랜 세월에 걸쳐 형성된 어휘가 녹아 있기 때문이다. 항상 변화하며 사람을 자유롭게 한다는 점에서 한옥은 다른 건축과 차이가 있다.
한옥과 관련된 작업은 복제의 과정이 수반된다. 여기에 대한 생각을 듣고 싶다.
한샘 디자인센터
생명체의 가장 큰 특징은 자기 복제를 한다는 것이다. 창조란 자기 유전자를 복제하는 것이다. 컴퓨터의 선구자인 튜링이 말하기를 인간은 20년 정도 세상을 흡입하고 나야 자기 소리를 낼 수 있다고 했다. 자기 소리의 근본은 유전자지만 이것이 세상의 소리와 등가가 되었을 때 비로소 자유로울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한옥만 아는 사람이 한옥을 만들면 그것은 복제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세계의 건축을 알고 이를 폭 넓게 이해하는 사람이 하는 일은 다르다고 생각한다.
또 하나의 사고
한샘 디자인 센터
오랜 시간 동안 장인의 세계에 속해 있던 한옥을 바라보는 건축가들의 시선은 그리 단순하지 않다. 그중에서도 김석철은 한옥을 자기 건축의 근본에 놓고 작업하겠노라고 천명한 드문 경우에 해당한다. 그의 청년시절 전시회의 제목이 ‘한옥 이후’인 것만 보아도 잘 알 수 있다. 한샘 DBEW 디자인센터는 이러한 그의 생각이 매우 여과 없이 드러난 결과인데, 이에 대한 당시의 반응은 그다지 긍적적이지 않았다. 그러나 하나의 건축적 사고로서 작가의 설명을 듣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에서 질문을 던졌고, 당시 상황을 비교적 소상히 전해들을 수 있었다. 지금 그는 원불교 총부 건물을 통해 또 다른 시도를 하고 있는 중이라고 했다. 아직 그 실체는 드러나지 않았지만 그가 한옥이라는 겱과 이전에 그것이 생산되는 과정에 주목하고 있다는 점은 관심의 대상이 아닐 수 없다. 그는 하나의 특수해로서 소위 ‘작품’을 만드는 것 못지않게 어떤 시스템을 통해 한옥을 보급하고 진화시킬 것인가에 골몰하고 있는 듯하다. 이런 점에서 그 실험의 무대가 한국이 아닌 미국이라는 점은 오히려 더 장점일 수 있다.
아시아와 유럽, 미국을 오가며 학생들을 가르치고, 한강에서 새만금, 나아가 세계의 주요 도시들을 아우르는 작업을 진행하며, 한편으로는 일반인들에게 세계의 건축을 소개하는 책을 쓰기도 한 김석철, 그는 건축가로서 자신의 삶의 중심에 한옥이 있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첫댓글 잘 보고 갑니다
좋은자료 고맙습니다
감사 함니다 잘 봐 습니다
감사합니다 잘 보았습니다
잘보왔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