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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우림 선생님 어르신 글쓰기 모임 '생글생글' 이야기 나눕니다.
지난해에는 코로나19 속에서도 이웃 사이 식정을 나누는 모임을 이뤘었지요.
그 이야기는 <이웃 동아리 활동 사례집>에 소개했습니다.
외로움이 질병 수준으로 심각하게 여겨지는 시대,
이웃 서로 부담 없이 어울리며 일상을 나누는 모임이 많아지기를 기대합니다.
삶을 나누는 이웃 모임이 많아지기를 바랍니다.
사회사업가들이 이를 거들면 좋겠습니다.
싱글생(生)글_어르신 자기 기록 모임
맑고 밝게_‘싱글생(生)글’
2023년 새로 맡은 사업 ‘싱글생(生)글’. 그 시작은 작년 3월 즈음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역시 내부 공모전. 아쉽게 입상하진 못했지만 올해 신규 사업, 부서 정규 사업으로 편성됐다.
‘싱글생(生)글’은 ‘싱그럽다’(싱싱하고 맑은 향기)와 ‘생(生)’글을 이어 붙인 단어이다.
쉽게 말해 어르신 여섯 분의 살아있는 글, 살아가는 글을 묶어내는 모임,
함께 하는 어르신 삶에 맑고 밝은 빛이 가득하길 기도하는 마음으로 시작했다.
영감_채 씨 어르신과 아버지
사실 이 모임의 최초 영감은 채 씨 어르신 메모에서부터였다.
어르신은 어린 시절 홍역으로 시력을 잃었는데 그때가 벌써 칠팔십 년 전, 이념 갈등으로 온 나라가 핏빛으로 물들었을 때다.
큰 병원에 가기 위해서는 지역 경계를 꼭 넘어야 했다. 당시에는 그게 지금처럼 간단하지 않은 문제였다.
그러던 중 알게 된 게 바로 ‘보도연맹’이다. 보도연맹에 가입하면 도민증 검사 없이 지역을 넘나들 수 있었기에
이 말을 들은 어르신의 아버지는 큰 의심 없이 이에 가입했다. 우리 딸 빨리 병원 가자. 눈 고쳐줄게, 아버지가 고쳐줄게.
하지만 그 소망은 얼마 가지 않아 산산조각 났다. 아니, 온 집안이 풍비박산 났다. 아버지는 보도연맹 가입 탓에 한순간 ‘빨갱이’로 몰려 감옥에 투옥됐다. 채 씨 어르신은 그 어린 나이에도 아버지 갇힌 감옥을 몰래 서성였다.
“말이 감옥이지. 광목으로 둘러놓은 울타리 같았거든. 구멍이 숭숭 뚫려 있는 거야. 그래서 그 구멍으로 눈을 대고 아버지를 찾기 시작했어. 근데 아버지가 나를 딱 알아보더라고. 그 눈만 보고 말이야. 그때 아버지가 빨리 돌아가라, 곧 갈게, 하며 나를 보냈는데 그게 마지막이 될 줄 어떻게 알았겠어.”
다음 날 새벽 채 씨 어르신의 아버지는 큰 트럭에 실려 뒷산으로 끌려갔다. 그리고 이내 수십, 수백 발의 총알이 새벽의 적막을 깨부쉈다. 어르신은 마치 엊그제 일인 듯 온몸을 들썩이며 눈물을 쏟아냈다. “이 눈. 이 눈 때문에….” 삐뚤빼뚤 적은 메모와 어르신의 증언을 듣던 나는 입을 닫고 눈을 감고 그렇게 한참을 침묵했다. 어떤 말을, 어떻게 해야 할까.
지역에서 만나 뵙고 있는 어르신 다수가 기본 칠십 대 중후반, 많은 분은 구십 대 초반이다 보니 한국전쟁과 피난, 또 온 데에 ‘널려있던’ 죽음의 장면은 나름 익숙한 주제였다. 그런데, 그런데 채 씨 어르신의 한국전쟁은, 아버지의 죽음은 그간 수도 없이 들어왔던 다른 어르신의 경험보다 더 깊고 짙게 다가왔다. 팔십 살이 넘은 어르신은 아이처럼 엉엉 울기 시작했다. 한참 울고 난 뒤 채 씨 어르신은 말을 이어갔다.
“가끔 이렇게 글을 써요. 가만히 있으면 그때 생각이 나거든요. 하고 싶은 말이 아직 많이 남았어요. 잘 쓰진 못하지만 그래도 이렇게 쓰고 나면 또 마음이 나아지고 그래요.”
나는 이때 번뜩했다. 사회사업으로 도울 만한 일이었고 돕고 싶은 일이었다. 채 씨 어르신의 못다 적은 그 말이 ‘글’이 되어 이어지길, 때로는 오늘처럼 엉엉 소리 내어 울길, 또 가끔은 빙긋 웃음 짓길, 글을 읽고 쓰고 나누며 기쁨은 더 짙어지고 슬픔은 옅어지길.
“어르신, 아직 아무것도 결정된 건 없는데요. 우리 내년 즈음해서 같이 한 번 써보면 어떨까요? 이렇게 따로 만나 써도 괜찮고요. 주변 어르신 몇 분과 같이 쓸 수도 있어요.”
“그래요? 나는 그런 글 한 번 써보는 게 소원이야. 근데 그걸 누가 읽어주긴 하나. 그래서 그냥 가끔 한번 씩 써보고 말고 그랬지. 그렇지 않아도 우리 집에 오는 생활지원사가 이 메모를 보더니 자서전 한번 써보면 좋겠다 하더라고. 그런데 할 수 있을까? 눈도 잘 보이지 않고 필체도 엉망이고.”
“그건 걱정하지 마세요. 쓰는 과정이 더 중요해요. 어르신이 마음 편히 지난 삶을 적어가실 수 있게 도울게요. 내년즈음에요. 그때 꼭 함께해요.”
그렇게 근 일 년을 계획했고 올해 1월과 2월 최종 점검, 그리고 3월 첫 모임을 시작했다.
시작하며
멋진 백발의 김 씨 어르신은 작년과 재작년 ‘다 함께 밥상’에 이어 올해 역시 ‘싱글생(生글)’ 모임에 참여한다.
“근래 들어 몸이 좀 힘들다 싶었는데. 우리 아들 죽은 게 딱 이때거든. 할아버지 가신 때도 이즈음이고. 머리는 깜빡깜빡하는데 몸은 기억을 해.”
어르신은 매년 2월마다 몸이 아파 고생한다. 먼저 떠난 아들 생각, 남편 생각, 또 최근에는 본인 앞에 있는 땅과 집을 아들, 딸 명의로 옮겼는데 그렇게 하고 나니 마음이 더 공허하다 했다.
어르신은 그 힘든 와중에도 글을 한 편 썼다.
“나는 아버지 사랑을 참 많이 받고 자랐어요. 그리고 지금도 사랑을 많이 받고 있어요. 이런 모임에도 참여하고 말이에요. 사실 요즘 마음이 참 힘들거든. 그런데 이렇게 글도 쓰고 책도 받고 하니 마치 학교에 들어온 것 마냥 기분이 들떠.”
모두 모인 자리에서 되려 더 크게, 많이 웃던 김 씨 어르신. 그리고 나는 안다. 김 씨 어르신이 숨긴 그 마음을. 두 눈에 그렁그렁 맺힌 눈물의 의미를.
첫 모임과 두 번째 모임 사이 하 씨 어르신과 따로 만나기로 했다.
“어르신, 혹시 다음 주쯤에 시간 한번 내주실 수 있으세요? 우리 모임에서 쓸 공책, 볼펜을 사려 하는데요. 같이 가서 골라 주시면 좋겠어요.”
“그럼. 좋지. 우리 금요일쯤 볼까요? 열 시나 열 시 반이면 좋을 것 같아. 근데 살 곳은 정했어요?”
“두 군데 정도 알아보긴 했는데요. 한 군데는 초등학교 앞 작은 문구점이고요. 또 다른 한 곳은 백화점 앞에 있는 아트박스예요.”
“아트박스? 거기 가본 적 있지. 그럼 그쪽으로 같이 가요”
“아트박스 가본 적 있으세요? 와, 역시 어르신은 참 멋쟁이예요.”
“그래? 물병 하나 사고 싶어 가봤는데 마음에 드는 게 없더라고. 거기 공책, 볼펜도 있어? 그날 같이 가서 한번 골라 봐요.”
금요일 오전, 하 씨 어르신과 아트박스에 갔다.
“어르신, 공책은 어떤 걸로 사면 좋을까요?”
“어디 보자. 너무 크고 두꺼우면 가지고 다니기 힘들어서 안 돼. 가격도 적당해야 하고. 아, 이게 좋겠다.”
어르신이 고른 공책은 온통 분홍색에 한가운데 공주 그림이 있는 일명 ‘공주 노트’였다. 생각지도 못한 선택. 나는 이유를 여쭤봤다.
“나이 들수록 귀여운 걸 봐야 해. 기분이 좋아지거든.”
하 씨 어르신 말씀에 나는 고개를 연신 끄덕이며 깊이 수긍했다.
“어르신과 같이 오길 참 잘했네요. 혼자 왔음 어떻게 그런 생각을 했겠어요. 젊은 사람 취향대로 골랐겠지요.”
본인 쓸 공책, 볼펜이니 어르신이 직접 보고 고르는 게 맞다. 어르신은 공책 여섯 권과 적당히 촉이 두껍고 부드러운 볼펜 여섯 자루, 그리고 여분의 볼펜 심지를 역시 여섯 개 고르셨다.
“나이 들면 볼펜에 맞는 심지 찾는 것도 쉽지 않더라고. 새로 사긴 아깝잖아. 사는 김에 심지도 같이 사면 편리하고. 아마 한참 쓸 거야.”
삼십여 분 필기도구 쇼핑을 마친 후 어르신은
“선생님, 햄버거 하나 먹고 갈래? 내가 사줄게.”
“햄버거요? 햄버거 말고 커피 한 잔 사주시면 안 될까요?”
“그럼. 되지! 나는 햄버거 먹고 선생님은 커피 한잔하고.”
그렇게 찾은 곳은 인근 맥도날드, 어르신이 주문했고 금방 햄버거와 사이다, 또 커피 한 잔이 준비됐다.
“한 이십 년, 이십오 년 전쯤에 서울 한복판에 있는 롯데리아에 간 적 있었거든. 근데 할아버지 한 분이 혼자 햄버거를 주문해서 천천히 드시더라고. 깔끔하게 차려입은 분이었어. 그 모습이 참 좋아 보이더라. 세련되고 멋진 느낌 있지? 만약 그 할아버지가 혼자 국밥을 드셨으면 그런 느낌이 안 들었을 거야. 가끔 이렇게 햄버거를 먹을 때면 그 할아버지 모습이 생각난다니까.”
어르신 말씀을 듣던 나는 이십오 년 전 롯데리아 할아버지와 마주 앉은 ‘맥도날드 할머니’ 하 씨 어르신이 어스름히 겹쳐 보이기 시작했다.
“어르신, 저는 어르신이 딱 그런 느낌이에요. 세련되고 멋진 어르신이요. 햄버거에 대한 좋은 기억이 하나 생긴 것 같아요. 바로 지금이요.”
곽 씨 어르신은 한 쪽 눈이 불편하다. 십 년 전 사고였다. 어르신은 지나가며 이런 말씀을 하신 적이 있다.
“나는 자서전 쓰면 수십 권은 나와.”
곽 씨 어르신을 만나 이번 모임을 제안했다. 흔쾌히 허락하실 줄 알았다. 그래서 큰 부담 없이 부탁을 드린 건데 곽 씨 어르신의 대답은 예상치 못한 것이었다.
“선생님, 하고 싶긴 한데. 내가 읽고 쓸 줄을 몰라. 자서전이면 기본적으로 글을 써야 하잖아.”
“아, 그 부분은 알지 못했어요. 그러면 어르신. 이렇게 하면 어때요? 어르신 말씀을 녹음해서 나중에 받아 적는 방법이요. 어르신이 부담 없이 참여하실 수 있게 도울게요. 이번 모임 함께 하면 좋겠어요.”
“그렇게 해주면 좋지. 나는 선생님 믿고 하는 거야.”
곽 씨 어르신과는 조금 다르게 ‘자기기록’을 하기로 했다.
며칠 지나 다시 만난 곽 씨 어르신.
“선생님, 매번 녹음하고 또 나중에 옮겨 적고 하면 너무 번거롭잖아. 내가 사실 그림을 꽤 잘 그리거든? 우리 생활지원사 선생님이 그걸 보고 칭찬을 하는 거야. 그림 그릴 종이도 가져다주고 응원도 해줬어. 생활지원사 선생님이 도와주겠대. 그림 위에 설명을 적겠다고. 그 모임 꼭 해보라고.”
“와, 그래요? 정말 좋은 생각이에요. 그럼 언제 한번 그림 보러 갈게요.”
아이 업고 머리에는 수건 한 꾸러미를 이고. 열린 문은 다 찾아 들어가며 수건을 팔아야 했던 이십 대 곽 씨 어르신, 주말마다 전국 각지의 산과 계곡을 찾던 삼사십 대 곽 씨 어르신, 온 가족이 함께 간 세부에서 손녀에게 수영 특훈을 받던 육십 대 곽 씨 어르신. 흰 종이 위에 어르신 지난 칠팔십 년이 색색의 점, 선, 면이 되어 살아났다.
최 씨 어르신과 신 씨 어르신, 약속 잊는 법이 없고 해야 할 일은 꼭 해내는 두 분. 최 씨 어르신은 본인 아들 말고 아들 친구에 대한 글을 썼다.
“어르신, 여기 (97)은 무슨 의미에요?”
“1997년도에 쓴 글을 다시 옮겨 적었어요.”
“와, 삼십 년쯤 된 글이네요.”
만성 신장질환으로 약을 함부로 먹을 수 없는 최 씨 어르신은 눈, 귀, 관절 마디마디 불편하지 않은 곳이 없다. 그럼에도 최 씨 어르신은 틈이 나면 지난 글과 사진에서 부지런히 글감을 찾고 신문지 한편에 글씨 연습을 좀 하다 선물 받은 ‘공주노트’에 글을 옮겨 적곤 했다. 최 씨 어르신의 글은 어르신을 닮아 곧고 단정하다.
신 씨 어르신은 더듬더듬 본인 글을 읽어가며 몇 번을 울컥했다. 주말에 딸을 만나기로 했는데 그때 이 글을 보여주려 한다, 엄마가 이런 모임에 참여하는 걸 참 기쁘게 생각한다, 이렇게 함께 하게 되어 고맙다. 그렇게 다섯 분의 언니 앞에 감사와 소망을 나누었다.
첫댓글 최우림 선생님 글 읽으면, 당사자를 빛나게 합니다.
언젠가 나도 최우림 선생님 글의 주인공이고 싶다는 마음이 들게 합니다.
최우림 선생님 기록은 당사자를 낮게 보거나, 미숙하게 보거나, 부족하게 보거나, 추하게 보지 않습니다.
객관적 기록이라는 건 실체가 없습니다.
숫자 금액 주소 따위를 제외하고, 다른 건 주관적일 수밖에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