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화. 짐승의 숫자 '666'
신성한 매실 758
국장이 말을 이었다.
“일반적으로 바이러스 분포도가 가장 심한 곳을 집중적으로 타격합니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주위에 세가 약한 곳은 쉽게 제압할 수 있죠.”
국장의 말에 최림은 금방 이해가 되었다.
“아하! 마찬가지로 한국에 있는 주요 악령만 제거하면, 나머지도 가능하다?”
“O.K”
국장은 최림의 양손을 꼭 잡았다.
“앞으로 힘을 합쳐 잘해봅시다.”
“물론입니다.”
국장은 최림에게 자리를 권했다.
그리곤 파일 하나를 꺼냈다.
“아시겠지만, 놈들은 영역을 확장하여 이제 합법적인 사업체도 운영하고 있습니다. 이 사진을 보시죠.”
최림은 파일 속 사진을 보자 깜짝 놀라고 말았다.
‘이놈은 ….’
그날 꼬마 여자아이, 아니 미오의 뺨을 친 놈이었다.
“누구입니까?”
그래도 최림은 모르는 척하고 국장에게 물었다.
“사성물산 회장, 전두태입니다. 몇 년 새 재벌급으로 성장한 그룹의 회장이지요.”
“그렇다면 이 자가?”
국장이 미오의 얼굴을 슬쩍 쳐다보더니 입을 열었다.
“짐작하신 대로 악령의 우두머리입니다.”
“아니, 놈이 확실하다면 바로 체포하면 되지 않습니까?”
최림이 되묻자 옆에 있던 미오가 웃었다.
“야! 너 경찰 맞아? 아무 증거 없이 사람을 막 체포해도 돼?”
미오의 말에 국장도 따라 웃었지만, 표정이 묘했다.
“미오 씨 말이 맞습니다. 불법적인 정황은 파악했지만, 결정적인 증거가 없어요. 그래서 미스터 최, 같은 분이 필요하단 겁니다.”
“알겠습니다. 힘닿는 데까지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오늘은 첫날이니 이 정도까지만 하겠습니다. 나머진 우리 예쁜 꼬마 아가씨, 나미오 씨가 충분하게 설명할 것입니다.”
이후, 최림은 미오와 함께 국장의 방을 나왔다.
미오가 최림에게 한마디했다.
“놈은 완전체야. 쉽지 않을 거야.”
미오는 최림을 데리고 건물 곳곳을 보여주었다.
겉으로 보기엔 폐건물이었지만, 이곳은 완벽한 시스템을 갖춘 사무실이었다.
메인 사무실은 두 군데로 나누어져 있었다.
미오는 편의상 A, B조로 구분했다.
“뭐가 다르지?”
“왼쪽에 있는 A조는 너와 같은 부류야.”
“나와 같은 부류?”
“응. 너처럼 비범한 능력을 지닌 전직 경찰, 전직 신부, 퇴마사, 무당, 해커, 특수부대 출신, 조직폭력배 등이지.”
“그럼, 오른쪽은?”
갑자기 미오의 눈이 빛이 났다.
“B조는 나처럼 천계에서 내려온 자들이지.”
“휴거 때 너처럼 올라간 사람들?”
“그래, 어쩜 나같이 불행한 사람들이지.”
그들은 미오처럼 일반사람들 눈에 보이지 않는 자들이었다.
악령식별은 물론이고 투시, 순간이동, 염력, 축지법, 검술 등에 출중했다.
이들이 악령을 모두 잡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미오는 최림에게 그들을 소개해주었다.
B조 요원들은 최림을 반겼다.
하지만 A조 요원들은 대체로 시큰둥한 반응이었다.
민감한 최림은 금방 이 사실을 눈치챘다.
미오에게 물었다.
“왜지? 왜 A조 사람들은 하나같이 못마땅 표정이야?”
그 질문에 미오가 웃었다.
“너도 신경 쓰지 마. A조 사람들은 네가 예비된 사람인 줄 잘 몰라. 그냥 이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들어온 사람이니까, 별 신경 쓰지 않는 거야.”
“그렇다면 B조 요원들은 내가 그렇고 그런 사람인 줄 안단 말이야?”
“그럼. 널 데려오기 전에 B조 팀장이 요원들을 모아두고 브리핑했는걸?”
“그가 왜? B조 조장이 누군데?”
최림은 갑자기 그가 궁금해졌다.
“궁금해? 하긴, 너와도 특별한 인연이지.”
“나랑?”
미오가 알 수 없는 말을 지껄이자 최림은 더욱 그가 보고 싶었다.
그때 미오가 고개를 주억거렸다.
“마침 저기 오시네.”
저벅저벅 ….
그가 다가오고 있었다.
눈매는 선량했고 스타일이 멋진 남자였다.
그는 마이클처럼 먼저 손을 내밀었다.
“최림 씨. 잘 오셨어요.”
그가 손을 내밀자 최림도 엉겁결에 그의 손을 잡았다.
“제 이름을 아시네요.”
“…….”
그가 잠시 침묵을 지켰다.
언뜻 보니 그는 최림의 얼굴을 자세히 보는 것 같았다.
“똑같아요. 젊었을 때 아버지 모습 그대로입니다.”
“네?”
“음, 군데군데 어머니이신 이미림 집사님의 얼굴도 보이는군요. 이리 잘 커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최림은 그의 말에 깜짝 놀랐다.
그가 도대체 누구이기에 자신을 아버지와 닮았다고 한단 말인가.
더군다나 그가 말한 이미림 집사님은 바로 어머니였다.
“누구십니까?”
하지만 그는 대답 대신 미오에게 말했다.
“자리 좀 비켜줄 텐가?”
“그러죠.”
거짓말처럼 미오가 사라졌다.
그가 스쳐 가듯 말했다.
“옥상에 가서 바람이나 쐽시다.”
최림은 재차 뭔가에 홀린 듯 그를 따라나섰다.
서울 변두리가 한눈에 보였다.
어스름 해가 지고 있었고, 군데군데 밥 짓는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도심과는 딴판이었다.
이곳은 마치 시골 같은 곳이었다.
무심코 하늘만 바라보던 그가 드디어 입을 열었다.
“최림아!”
그런데 그는 갑자기 최림을 하대했다.
최림은 우습지만, 이 상황에서 그의 권위에 복종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네.”
“넌 내가 누구라고 생각하지?”
“…….”
그건 최림이 묻고 싶은 말이었다.
어째서 그가 자기 부모를 알고 있는지 궁금했다.
하지만 최림은 그가 보통 사람이 아니란 걸 직감적으로 눈치챘다.
그는 휴거 때 천계로 올라갔다, 다시 세상으로 온 사람이었다.
“하늘에서 내려오신 분입니다.”
그러자 그가 큰소리로 웃었다.
하. 하. 하
“왜 웃으십니까?”
그는 손을 저었다.
“아니야. 맞아. 그래, 내가 하늘에서 오긴 했지.”
“…….”
“어머님이 보고 싶지 않아? 어떻게 사시는지도.”
최림은 그의 뜬금없는 말에 또 놀라고 말았다.
“어떻게 제 어머님을?”
그는 또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놀라운 그의 이야기는 대략 이랬다.
그의 이름은 이요한.
1987년 오대양 사건 때 공장 천장에서 죽은 32명 중 한 명이었다.
당시 교주로부터 믿음을 인정받아 천장에 올라갔다가 순교했다.
반면, 최림의 어머니인 이미림은 천장에 올라가지 못하였다.
아버지 최이군은 당시 병원에 입원하고 있었다.
셋은 비슷한 시기에 오대양에 입사한 일종의 신앙동기생이었다.
한때 그가 이미림을 좋아했지만, 그녀는 최림의 아버지, 최이군을 선택하였다.
이후, 오대양이 궁지에 몰리자 교주는 그를 포함한 32명을 천장에 데려갔다.
그는 오대양 사건으로 순교한 자 중 교주와 함께 유일하게 천국으로 직행했다.
제10 천국의 심판 때, 교주와 그는 오로지 ‘믿음’으로 5 천국에 갈 수 있었다.
그러니 그는 ‘휴거’와는 상관없이, 세상으로 내려오게 되었다.
모든 게 제5 천국 심판관의 배려였다.
‘세상에!’
그의 정체를 알자 최림은 머리가 어지러웠다.
“그래서 우리 부모님을 아시네요.”
“그래, 신앙이 좋은 분들이었지.”
“그렇다면 천국에서 어머님을 뵈었다는 말씀인가요?”
그는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 아버지는요?”
이번엔 그가 고개를 저었다.
‘아 ….’
“너도 알다시피 어머니는 오대양을 떠나서도 믿음을 잃지 않았다. 하지만 네 아버지는 그곳을 나오자마자 배교했어. 어쩔 수 없었다.”
“어디 계신다는 말씀인지요?”
“어머님은 제5 천국, 아버지는 … 지옥.”
그러자 최림이 고함을 질렀다.
“말도 안 되는 소리입니다!”
“뭐가?”
“저도 압니다. 오대양이라면 세상 사람들이 모두 ‘이단’이라고 불리는 곳이잖아요. 그런데 그곳 사람들이 어떻게 천국에 가고 지옥에 갈 수 있단 말입니까?”
최림의 항의에 그는 답답한지 한숨을 쉬었다.
“그건 그야말로 세상 사람들의 생각이란다. 오대양은 결코 이단이 아니었어. 박 교주님은 살아있는 그리스도의 또 다른 현존이야. 오대양은 초대교회처럼 순수하고 맑은 신앙공동체였다.”
최림은 그의 말이 맞는다고 가정해도 이건 아니다 싶었다.
어머니가 천국에 있어 다행이었다.
하지만 지옥불과 유황이 끓는 곳에 아버지가 있다는 게 너무 괴로웠다.
“아니야!”
최림은 자신도 모르게 눈물이 나왔다.
이날 이때까지 오로지 부모님의 복수만을 꿈꾸며 살아온 그였다.
그런데 아버지가 지옥에 있다는 소식은 청천벽력 같은 말이었다.
그때 그가 최림의 손을 잡았다.
“무슨 생각하는지 다 알고 있다.”
흑흑.
“하지만 방법이 있어.”
“…….”
최림은 반신반의하면서도 그의 말을 듣기로 했다.
“무슨?”
“그래서 내가 온 거잖아. 또 넌 예비된 자고.”
그는 눈물을 닦는 최림에게 단호히 말했다.
“제2의 휴거가 멀지 않았다!”
“네?”
“그전까지 놈들을 대부분 제거해야 한다는 말이야.”
“휴거가 또 일어난단 말입니까?”
최림은 차마 믿기지 않아 이렇게 물었다.
“조만간에. 그래서 천계에서 나를 비롯하여 대거 이렇게 내려왔잖니.”
최림은 의아했다.
“그것과 제 아버지와 무슨 연관이?”
“이번 휴거 땐 믿는 자와 안 믿는 자의 구분 없이, 짐승의 표시 ‘666’이 없는 자라면 모두 데려갈 거다.”
“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