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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엄경보현행원(부사모)
 
 
 
카페 게시글
보현명상언어2 부처님 섬김 후 마시는 한 잔 막걸리는 참 시원하다 번뇌 없는 밝은 자리부처님만 계시는 자리그곳에 맑은 막걸리
普賢. 추천 0 조회 27 24.05.18 18:25 댓글 5
게시글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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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작성자 24.05.18 20:00

    첫댓글 651) 이 시대의 보현보살로 오신 불광의 금하광덕은 저희들에게 큰 가르침을 주고 가셨다. 바로 ‘반야’와 ‘보현행원’ 인데, 스님은 반야에 체(體)를 두고 광대행원을 전개(用)함으로써 스스로 빛이 되어 부처님의 찬란한 빛(佛光)을 저희에게 비추시고 가셨다. 그런데 스님의 가르침을 ‘반야’에만 국한되어 보시는 분들이 적지 않은 것 같다. 스님께서 상대적으로 반야법문을 많이 하셨고 마하반야바라밀 염송을 일러주셨으니 그렇게 보시는 것도 어쩌면 당연할 것이다. 그러나 필자가 보기에는 화엄, 보현행원을 함께 보지 않으면 스님의 진정한 모습은 보기 힘들 것으로 생각한다. 반야만 가지고는 스님의 불가사의한 삶이 이해되지 않으니, 스님의 반야는 ‘화엄반야’였고, 스님의 바라밀행은 ‘행원바라밀’ 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행원의 세계는 ‘실천의 세계’ 이다. 실천을 하지 않으면 행원의 소식을 제대로 이해하기 어렵다. 그것도 광대행원을 지어나가야 비로소 행원의 참뜻을 희미하게나마 알 수 있다. 따라서 행원을 실천하지 않고 머리로만, 이론으로만 행원을 이해하려 든다면 스님이 가신 반야행원의 길을 깊이 알기는 어려울 것이다. 스님의 부사의한 세계를 이해하시려면, 실지로 행원을

  • 작성자 24.05.18 20:00

    664) 금하광덕의 주요 사상은 반야행원으로, 살아있는 반야, 생명의 반야가 화엄이다. 금하광덕의 반야는 죽은 반야, 정적의 반야가 아니라 ‘살아있는 반야, 생명의 반야’이니, 반야가 살아서 펄펄 뛰고 있다. 그렇게 살아있는 반야, 생명의 반야가 화엄이다. 꽃으로 피어난 반야가 바로 화엄인 것이다. 살아있는 반야, 생명의 반야는 필히 행동의 반야, 행의 반야로 나타날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렇게 나타난 행의 반야가 바로 보현대행이다. 이런 이유로 불광은 행동 불교, 보현행의 길을 가실 수밖에 없으니, 참으로 밝고 큰, 그리고 깊고 넓은 금하광덕의 세계이다. 반야를 꿰뚫어보지 못하면 결코 할 수 없는 일, 반야를 그야말로 철저히 보신 분이 아니면 갈 수 없는 길을 가신 것이다. 반야는 죽은 것, 고요한 것(寂靜)이 아니라 날뛰고 격정적인 것이다. 그러기에 반야가 살아 숨 쉬는 화엄의 해인삼매는 정(靜)의 삼매가 아니라 동(動)의 삼매다. 해인에 비친 법계는 그저 고요한 것이 아니라 만물이, 만유가 서로 조우(遭遇)하며 서로 의존하며 서로 주고 받는 살아있는 생명으로 가득한 것이다. 이렇게 살아 숨쉬는 진실 법계에 의해 우리 세계는 끝없이 열려간다(開顯).

  • 24.05.20 14:48

    나무마하반야바라밀..._()()()_

  • 24.05.23 09:48

    마하반야바라밀 _()()()_

  • 24.06.02 23:55

    마하반야바라밀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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