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개인의 삶이든지 성공을 가로막는 가장 큰 공통의 적은 바로 막연한 두려움입니다. 이 두려움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불안해하고, 두려워하고, 놀라게 되고, 피로를 느끼고 삽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죽음에서 다시 부활하신 다음 제자들에게 자신을 나타내실 때마다 하시는 말씀은 "두려워 말라, 놀라지 말라" 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앞으로 이 세상에 임할 모든 일들을 말씀하실 그때에도 그는 "난리와 난리 소문을 듣겠으나 너희는 삼가 두려워 말라"(마24:6)고 말씀하셨고, 또 다른 경우에도 예수님은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요14:27). 그리고 마태복음 6:25에서 예수님은 우리에게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라고 권면하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들의 삶의 문제들, 예컨대 경제, 건강 그리고 다른 모든 삶의 필요들에 관해 생각할 때 가장 먼저 염려를 하게 됩니다.
여기서 우리에게 더 좋은 길을 말씀하시는 예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여 보십시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지 아니하며 몸이 의복보다 중하지 아니하냐
공중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기르시나니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하냐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라도 더할 수 있겠느냐
또 너희가 어찌 의복을 위하여 염려하느냐 들의 백합화가 어떻게 자라는가 생각하여 보라 수고도 아니하고 길쌈도 아니하느니라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솔로문의 모든 영광으로도 입은 것이 이 꽃하나만 같지 못하였느니라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져지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 일까보냐 믿음이 작은 자들아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마6:25~32)
여기서 25절을 주의해서 보십시다. "...염려하지 말라,,," 우리가 생각을 많이 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계획을 세우는 것도 당연합니다. 그러나 "이 일을 어떻게 하지? 이자율이 계속 올라 25%가 넘어가고 있어. 아 예수님, 이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하며 염려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오직 두려움과 의심 그리고 불신앙만 가져다줄 뿐입니다. 그렇게 염려한다고 해서 결코 우리에게 믿음이 생기지 않습니다. 믿음은 예수님의 말씀을 듣는데서 옵니다. 염려에서 결코 오지 않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뭔가를 말해야 한다면, 예수님의 말씀으로 들어가서 사도 바울이 고백한 말씀을 말하십시오
"나의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 가운데 그 풍성한 대로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빌4:19)
이 말씀에서 '너희'라는 단어에 당신의 이름을 집어 넣어서 고백하십시오.
"나의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 가운데 그 풍성한 대로 OOO(자기 이름)의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
에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말은 이 우주 가운데서 가장 강력한 힘입니다. 그것이 제대로 사용되어진다면 그것은 당신에게 생명을 가져다 주고, 당신을 복되게 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잘못 사용되어지면, 그것은 당신의 믿음을 파멸시키고, 당신의 인생을 비참하게 만듭니다. 예수님은 여기서 당신에게 매우 중요한 진리를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것은 "...이라고 말하면서 열려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몇 번 그런 염려하는 생각을 할 수는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결코 그것을 입밖으로 말하지는 말라는 것입니다.
사탄이 당신의 생각속에 의심과 두려움을 집어넣는 일을 당신이 막을 수는 없지만, 그러나 만일 당신이 사탄이 넣어준 그 생각을 말하기를 거부한다면 그 사탄의 생각은 결국 알을 까지 못하고 죽고 마는 것입니다. 의심과 두려움은 당신이 그것을 말하지 않는 한 결코 알을 까지 못하고 죽고 맙니다. 당신이 한번 그것을 말해버리면 그것은 알을 까고 나오게 됩니다. 그러면 의심과 두려움은 그때 비로서 불신앙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입술을 꼭 깨물고 입을 다물고 있어야 합니다. 말을 해야 할 때가 있고, 입을 다물고 있어야 할 때가 있는 것입니다.
당신의 말씀의 수준이 떨어져 있고, 당신의 믿음이 떨어져 있을 때는 믿음의 고백을 하려고 시도하지 마십시오. 이럴 때는 두려움 가운데서 고백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당신이 예수님의 말씀을 고백하는 그 수준까지 당신은 자라게 되고, 세워져갈 수 있습니다.
"나의 하나님이 영광 가운데서 그 풍성하신 대로 나의 필요를 채우시리라"
당신은 기도했고, 예수님의 말씀을 고백했습니다. 당신의 필요는 이미 채워진 줄로 믿습니다. 예수님께 감사를 드렸습니다. 당신이 그것을 이미 받은 줄로 알기까지 당신의 생각에는 전혀 의심이 없습니다. 당신은 그것을 마음으로 믿습니다.
그러나 닷새가 지나도록 그것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사탄은 당신에게 의심을 심어주고 그럼 모든 것이 당신을 거부하는 것처럼 보일 것입니다. 이때 당신은 매우 불리한 위치에 놓이게 됩니다. 이럴때 당신의 믿음을 고백하려고 하지 말아야 합니다. 물론 두려움 가운데서도 올바른 말을 할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이때는 당신이 닷새 전에 믿음 안에서 고백했던 그 고백을 근거로 해서 안식을 누리십시오
마가복음 5장에서 야이로가 믿음으로 예수님을 찾아옵니다. 그는 말합니다.
"간곡히 구하여 이르되 내 어린 딸이 죽게 되었사오니 오셔서 그 위에 손을 얹으사 그로 구원을 받아 살게 하소서 하거늘"(23절) 그때 그의 말은 믿음의 말이었습니다. 야이로는 그의 믿음이 높이 있을 때 그런 말을 한 것입니다. 그는 예수님이 자신의 딸을 치료하실 수 있음을 믿었습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이 와서 말합니다.
"야이로, 당신의 딸은 이미 죽었어요. 이제 포기하고, 더 이상 선생님을 괴롭히지 마세요"
야이로는 믿음으로 말했었지만 이제는 의심의 찬바람이 그를 대적해서 불고 있습니다. 그는 지금 좋지 않은 상황 가운데 놓인 것입니다. 이때가 바로 그가 믿음의 고백을 하려고 시도해서는 안되는 시점입니다. 지금은 그의 믿음의 수준이 높아 있을 때 그가 고백한 자신의 믿음의 고백 위에서 안식을 누려야 할 때입니다.
제 말을 오해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런 때도 당신은 예수님의 말씀으로 돌아 가서 그런 상황과 비슷한 상황에 있는 말씀을 인용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믿음을 행사하는 것으로서의 예수님의 말씀을 고백하는 것과 두려운 나머지 두려움 속에서 말씀을 고백하는 것과는 차이가 있다는 것입니다.
나는 사람들이 두려움 가운데서 그렇게 고백하는 것을 종종 보아왔습니다. 그들은 말씀을 고백하고는 있지만 그것은 그들의 마음속에 있는 믿음 때문이 아니라 바로 그런 일이 벌어질 것이라는 두려움 때문에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일이 잘못되지 않을까'라는 두려움 때문에 고백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야이로는 그냥 그의 입을 꾹 다물고 있었습니다.
당신은 이런 상황에서도 예수님의 말씀을 인용할 수 있을 것입니다. 계속해서 몇 번이고 당신 자신에게 말씀을 인용할 수 있습니다. 그 후 당신이 어떤 것에 영향을 주기 위해 믿음의 말을 하기 원할 때, 당신은 예수님의 말씀으로 충만해 있을 것입니다. 당신의 믿음과 당신의 말씀의 수준은 높아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당신 안에 심기 위해 그것을 말하는 것과 어떤 것에 영향을 끼치기 위해 예수님의 말씀을 선포하는 것과는 차이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이라 할지라도 어떤 때는 어느 정도 의심을 가질 수 있습니다. 그런 때는 믿음의 말을 하려고 시도하지 마십시오. 그때는 예수님의 말씀을 당신의 마음속에 심어서 믿음을 가져올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말씀을 말하십시오. 그렇지 않다면 야이로처럼 입을 꾹 다물고 계십시오.
예수님은 "... 이라고 말하면서 염려하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왜 예수님은 우리가 염려하는 말을 하면서 그 문제를 생각하는 것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말씀하시는 것일까요 그 이유는 우리의 말은 믿음을 낳든지 아니면 두려움을 낳든지 둘 중에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믿음으로 충만한 말을 하십시오. 그러면 그것은 믿음을 낳을 것입니다.
두려움으로 가득찬 말을 하십시오. 그러면 그것은 두려움을 낳게 될 것입니다.
당신은 당신 안에 어느 정도의 믿음을 생산할 수 있는 말을 할 수도 있고, 그 반대로 당신 안에 두려운 느낌을 가져올 수 있는 말을 할 수도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어떻게 하지? 이 청구서, 이 것들은 어떻게 갚지?"
이같은 말들은 두려움을 낳습니다. 당신이 두려워할 때, 당신은 사탄으로 하여금 당신에게서 예수님의 말씀을 빼앗아가도록 허락하게 됩니다. 당신이 그런 말을 할 때마다 당신은 사탄에게 당신의 육신적인 마음속에 말할 수 있도록 문을 열어놓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결국 사탄에게 문을 열어주게 되는, 두려워하는 말들을 하면서 염려해서는 안됩니다.
진정으로 당신이 예수님의 부요하심 가운데 살기를 원한다면 당신이 처리해야 할 하나의 중요한 영역이 바로 그런 생각들로 당신의 마음을 어둡게 하는 이런 사탄의 역사를 대적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우리에게 "... 말을 하면서 염려하지 말라"고 말씀하신 이유는, 인간의 영은 우리가 우리의 마음속에 심은 그 씨앗대로 열매를 맺도록 창조되었기 때문입니다. 만일 당신이 걱정에 근거한 생각들을 심는다면 당신의 영은 당신이 두려워하는 바로 그것을 낳고 그런 일로 당신을 인도해 갈 것입니다.
이것을 기억하십시오. 당신이 두려워하지 않으면 사탄이 할 수 있는 일들은 극히 제한되어 있다는 사실입니다. 두려움은 당신을 대적하는 사탄의 능력을 풀어주는 것입니다. 만일 당신이 두려움없이 행할 때 사탄은 더 이상 당신을 이기지 못할 것입니다. 믿음은 우리의 삶의 현장에 예수님을 모셔오지만, 두려움은 사탄을 불러들입니다.
당신이 사용하는 말을 다스리고, 당신의 혀를 재갈먹이는 법을 배우십시오. 왜냐하면 당신은 당신의 말로 인해 당신의 재정, 당신의 가정 그리고 당신의 몸을 대적하는 사탄의 능력을 풀어놓기도 묶어 놓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묵상하시면서 성령님의 도움으로 은혜받으시길 기도드립니다.
PS: 묵상하신 내용 답글 달아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