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출 일과 급한 일을 잘 살펴라
<64> 조대제 도부에게 보낸 대혜 선사의 답장 ①-1
어제 일을 오늘 기억 못하는데
금생 인연 조금 짓고 내생 운운…
[본문] 보내온 편지를 낱낱이 잘 살펴보았습니다. 부처님이 말씀하시기를, “마음이 있는 사람은 다 부처가 된다”라고 하였습니다. 이 마음은 세간의 진로와 망상의 마음이 아닙니다. 이를테면 가장 높은 대보리심(大菩提心)을 발한 마음입니다. 만약 이러한 마음이 있으면 부처를 이루지 못할 사람이 없습니다. 사대부들이 도를 배우지만 스스로 장애와 어려움이 많은 것은 결정적인 믿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강설] 조대제라는 사람에게 보낸 글이다. 부처님의 가르침에 “마음이 있는 사람은 다 부처가 된다”라고도 하였지만 “마음과 부처와 중생, 이 셋은 차별이 없다”라는 말씀도 하였다. 실은 마음이 있으면 그대로가 곧 부처다. 좀 더 다른 차원에서 보면 마음이 있든 없든 유정무정과 유형무형이 모두가 그대로 본래 부처이기도 하다. 그러나 선불교에서는 차원이 달라서 세간의 진로 망상의 마음이 아니라 보리심을 발한 그 마음이 있어야 부처가 될 수 있다고 하였다. 불교에는 여러 가지 가르침이 있기 때문에 마음에 관한 견해도 이와 같이 각각 다르다. 그런데 반드시 갖추어야 할 조건은 그와 같은 가르침에 대한 확고한 믿음이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수행자가 스스로 장애를 받는 것은 믿음이 없기 때문이다.
[본문] 부처님이 또 말씀하셨습니다. “믿음은 도의 근원이며 공덕의 어머니이니라. 일체의 모든 선법을 길러내며 의혹의 그물을 걷어내고 애착의 흐름에서 벗어나서 열반이라는 가장 높은 도를 열어 보인다”라고 하셨습니다. 또 말씀하시기를, “믿음은 능히 지혜와 공덕을 길러내며 믿음은 반드시 여래의 경지에 이른다”라고 하셨습니다.
[강설] 대혜 선사가 믿음에 대한 이야기를 하시면서 화엄경 현수품의 말씀을 인용하였다. 불교에서 믿음을 이야기 할 때는 반드시 인용하는 문구다. 도를 닦는 문제라든지, 공덕을 쌓아가는 문제라든지, 착하고 훌륭하고 좋은 일을 증장하는 문제라든지 하는 것은 모두가 믿음에서 비롯한다. 의혹을 제거하고 애착과 집착에서 벗어나는 문제도 역시 믿음에 달렸다. 모든 고통에서 벗어나 편안한 열반에 이르는 일도 믿음에 달려있다. 또한 지혜를 증장하는 일과 구경에 여래의 경지에 이르는 문제도 역시 믿음에 달려있다. 그리고 보면 불교는 믿음이 그 처음이자 끝이라고 할 수 있다.
[본문] 보내온 편지에 말하기를, “근기가 우둔하여 능히 깨달아 사무치지 못한다면 마음 밭에 불종자(佛種子)나 심으리라”하였습니다. 이 말이 비록 얕은 말 같지만 그러나 또한 심원합니다. 다만 수긍하는 마음을 내십시오. 반드시 서로 속이지 않습니다. 요즘에 도를 배우는 선비가 왕왕에 늦추어야 할 것은 급하게 하고 급하게 할 것은 도리어 늦추고 있습니다. 방(龐) 거사가 말씀하였습니다. “하루아침에 뱀이 베잠방이 속으로 들어오면(죽음이 닥치면) 시험삼아 종사(宗師)에게 ‘어떤 시절인가?’를 물으라”하였습니다. 어제의 일도 오늘 오히려 기억하지 못하는데 하물며 다음 생의 일을 어찌 잊어버리지 않겠습니까?
[강설] 참선공부를 삶의 가장 소중한 가치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화두를 타파하여 생사를 초탈하는데 그 목적이 있다. 그런데 불교와의 인연을 가볍게 생각하는 불자들은 대개 부처의 종자나 심고 부처님과 인연이나 맺어두고 복이나 좀 짖자는 정도로 신행활동을 하는 사람들이 많다. 참선은 생사를 걸고 하는 수행인데 그따위 생각을 하다니, 만약 하루아침에 죽음이 닥친다면 어찌할 건가? 어제의 일도 오늘 기억하지 못하는데 금생에 복을 좀 짓고 부처님과 인연을 다소 맺은 것을 당신이 기억하여 내생에 사용할 수 있겠는가? 그와 같은 당치도 않는 말은 하지 말라. 무엇이 급한 일이고 무엇이 늦추어야 할 일인지 잘 살펴보라. 참선법을 만나서 생사를 초탈하는 길을 배우고서도 그와 같은 한가한 소리나 하고 있다면 그것은 결코 참선수행자가 아니다.
[출처 : 불교신문 2889호/2013년 2월 13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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