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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스트민스터 대요리 문답 193문, 기도⑦. 24.1.21, 박홍섭 목사
제193문. 네 번째 간구에서 우리는 무엇을 위해 기도합니까?
답/ 네 번째 간구인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에서(마 6:11) 우리는, 우리가 아담 안에서와 우리 자신의 죄로 말미암아 이 세상의 모든 외적인 복을 누릴 권리를 박탈당했고, 하나님께서 이 모든 복을 빼앗아 가시는 것이 마땅하고, 우리가 그 복들을 사용할 때 우리에게 저주가 되는 것도 마땅하며(창 2:17, 3:17, 롬 8:20-22, 렘 5:25, 신 28:15-68), 그 복들 자체가 우리를 살아가게 할 수 없고(신 8:3), 우리가 그 복들을 받을 자격도 없으며(창 32:10), 우리의 노력으로는 그 복을 얻을 수 없고(신 8:17-18), 오히려 그 복들을 부당하게 구하고 얻고 사용하려는 경향이 우리에게 있음을 인정하면서(막 7:21-22, 호 12:7, 약 4:3), 우리와 다른 사람들 모두 날마다 정당한 수단들을 사용하여(엡 4:28, 살후 3:11-12),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서 그 응답을 기다리되, 주시는 것은 하나님께서 거저 주시는 선물로 받고, 하나님의 자애로운 지혜에 가장 알맞게 보이는 그 충분한 선물들을 누리기를(빌 4:12), 그리고 그 선물들을 거룩하고 충분하게 사용하여 그것들이 계속해서 우리에게 복이 되고, 우리가 그 선물들에 만족하게 되기를(딤전 4:3-5, 6:6-8), 또 우리의 생애에서 평안을 누리며 사는데 반대되는 모든 것에서 우리를 지켜주시기를 위해 기도합니다(잠 30:8-9).
해설
1. 앞선 세 가지 간구가 하나님 아버지의 이름과 나라와 뜻에 관한 청원이었다면, 네 번째 간구는 우리를 위한 첫 번째 청원으로 일용한 양식을 구하는 기도입니다. 여기서 양식은 단지 먹고 사는 양식 정도가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는데 필요한 모든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 양식을 일 년, 한 달, 한 주가 아니라 하루 치만 구하라고 하십니다. 이왕이면 평생 먹을 양식이면 좋지 않습니까? 왜 하루의 양식만 구하라고 하십니까? 여기에는 신앙의 가장 중요하고 기본적인 내용이 함축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출애굽 시켜서 주의 백성으로 살게 하면서 가장 먼저 시키신 훈련이 일용할 양식을 구하는 일입니다. 먹을 것이 없다고 불평하는 이들에게 만나를 주셨는데 이틀, 사흘, 일주일, 한 달을 먹을 수 있게 쌓아두지 못하게 하시고 매일 하루 먹을 양만 거두라고 하셨습니다. 한꺼번에 거두어서 쌓아두면 내리시는 하나님도 편하고 거두는 이스라엘도 편할 텐데 그렇게 하지 말라 하십니다. 며칠을 먹으려고 쌓아둔 사람은 하루가 지나면 다 썩어지게 해서 쌓아놓은 것이 아무 소용이 없게 하셨습니다. 그렇게 사십 년을 매일 일용할 양식을 구하도록 훈련을 시키셨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의 돌보심이 아니면 하루도 살 수 없음을 깨닫고 매일 하나님을 의지하라는 뜻입니다.
2. 하나님은 일용할 양식을 매일 거두라고 하시면서 그들이 하나님의 율법을 준행하는지 아니하는지 시험하겠다고 하셨습니다(출 16:1-4). 하나님은 자기 백성이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을 정말로 믿는지를 일용할 양식을 구하는 것으로 시험해보십니다. 하늘에 계신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먹이시고 필요를 공급하시는 분입니다. 자녀들의 삶을 친히 돌보시고 인도하는 아버지입니다. 그런데 왜 많이 거두지 말라 하십니까? 얼마든지 한꺼번에 많이 주실 수 있는 분인데 왜 일용할 양식만 주십니까? 우리가 매일 먹는 양식이 어디서부터 오는지를 확인시켜 주시기 위해서입니다. 매일 나를 구원하신 하나님이 나의 양식을 공급하시는 분임을 믿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래서 매일 나의 양식을 공급하시는 하나님을 찾고 구하고 의지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3. 생각해보십시오. 만약 만나를 한꺼번에 주면, 그래서 한 달 동안 먹을 양식이 쌓여 있으면 그 한 달 동안 하나님을 의지할까요? 그 한 달 동안 양식을 위해 하나님께 간구할까요? 하나님은 우리를 아십니다. 우리는 쌓여 있으면 그것을 의지하지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그렇습니다. 돈이 쌓여 있고 먹을 것이 쌓여 있으면 쌓여 있는 돈과 먹을 것을 의지하지 하나님 의지하지 않습니다. 반면에 하루에 한 번씩 주면 어떻겠습니까? 매일 양식을 위해 하나님을 찾고 구하고 의지하게 됩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의 이름과 나라와 뜻을 이 땅에서 이루는 것은 거창한 사업과 큰 업적을 말하기 전에 매일 일용할 양식을 위해 하나님을 찾고 의지하는 믿음에서부터 시작됩니다.
4. 인간은 매끼 밖에서부터 무엇인가를 공급해주어야 살 수 있지 자기 힘으로 스스로 살 수 없는 존재입니다. 한 끼 배불리 먹으면 그다음은 안 먹어도 됩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어김없이 끼니가 되면 또 배가 고프고 또 먹어야 합니다. 우리는 먹을 때마다 내 생명의 유지가 나에게 있지 않음을 확인합니다. 그 먹을 것은 누가 주십니까? 마실 것을 누가 주고 입을 것을 누가 주십니까? 일용할 양식을 누가 주십니까? 하나님입니다. 광야 40년 동안 이스라엘이 훈련받은 것이 이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동안 먹을 수 있고 마실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허락하지 않으면 아무리 하늘에서 비같이 만나가 내려도 썩어버립니다. 하나님이 거두시는 날에는 먹을 수도 없고 모든 것을 빼앗길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 옵니다. 숨 쉴 때마다 먹을 때마다 우리는 이 사실을 매일 일용할 양식을 구하면서 확인받아야 합니다. 그것이 네 번째 간구의 주된 내용입니다.
5. 그러므로 우리는 일용할 양식을 위해 기도할 때마다 우리가 아담 안에서와 우리 자신의 죄로 인해서 이 세상의 모든 외적인 복을 누릴 권리를 상실했으며,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이 모든 복을 완전하게 박탈해야 마땅하며 우리가 그 복들을 사용할 때 우리에게 저주가 되는 것이 마땅하고 그 복들 자체가 우리를 유지할 수 없으며 우리가 그 복들을 받을 자격이 없다는 사실과 우리의 노력으로 그 복들을 얻을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매일 먹고 마시고 살아가는 모든 것을 내 힘과 노력으로 얻고 누린다고 생각하는 교만에 빠지게 됩니다.
6. 일용할 양식을 달라는 기도는 우리가 누구인지를 확인시키는 기도입니다. 앞의 세 청원이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의 하나님 됨을 확인시키는 기도였다면 뒷부분은 기도하는 우리의 우리 됨, 하나님의 은혜 없이는 한순간도 살아갈 수 없는 연약한 인생 됨을 자각시키는 기도입니다. 성실히 살고 열심히 살아도 우리가 먹고 살아가는 원인은 우리의 수고와 열심이 아닙니다. 원인은 오직 하나님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먹게 하시고, 마시게 하시고, 살아가게 하십니다. 네 번째 간구는 이 사실을 일깨워 나의 능력과 나의 열심과 수고와 재주를 믿지 않고 매일 일용할 양식을 주시는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는 자리로 이끌어 갑니다. 그리고 우리가 매일 살아가면서 누리는 모든 생존의 조건들이 전적으로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지는 은혜의 선물임을 고백하고 그 복을 받을 자격이 없는 우리에게 베푸시는 하나님의 긍휼히 여기심의 결과임을 확인하고 감사의 마음을 다시 새기게 합니다.
7. 만물보다 심히 부패하고 거짓된 사람의 마음은 미련함과 어리석음과 온갖 악한 것들도 가득 차 있어서 날마다 일용할 양식에 대해서 배우고 확인하지 않으면 금방 불법적인 방법으로 우리의 필요를 채우려 하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지 않는 방식으로 그것들을 사용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네 번째 간구를 통해 우리의 필요를 위해 불법적인 방법을 동원하지 않고 자기 손으로 수고하여 선한 일을 하는 데 최선의 노력을 다해야 함을 배웁니다(엡 4:28, 살후 3:11-12).
8. 우리는 필요를 위해 기도할 수 있습니다. 하루 먹을 양식이 없는 사람, 하루 동안 편히 쉴 수가 없는 사람, 하루를 견디기 어려운 사람은, 오늘 일용할 양식을 달라고 반드시 기도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오늘의 필요를 위해 기도하고 최선의 노력을 기울여 살았다면 지금 내게 없는 것들로 불평하지 말고, 갖고 싶은 것들로 탐욕 부리지 말고, 남들과 비교하면서 욕심내지 말고, 오늘 나에게 허락된 일용할 양식이 하나님께서 그의 부성적 지혜에 가장 알맞은 것으로 주시는 충분한 선물임을 믿고 감사하면서 그 선물들에 자족할 수 있어야 합니다. “나는 비천해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 곧 배부름과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빌 4:12) “그러나 자족하는 마음이 있으면 경건은 큰 이익이 되느니라. 우리가 세상에 아무것도 가지고 온 것이 없으매 또한 아무것도 가지고 가지 못하리니 우리가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은즉 족한 줄로 알 것이니라. 부하려 하는 자들은 시험과 올무와 여러 가지 어리석고 해로운 욕심에 떨어지나니 곧 사람으로 파멸과 멸망에 빠지게 하는 것이라.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탐내는 자들은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 (딤전 6:6-10)
9. 동시에 우리는 네 번째 간구를 통하여 지금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복과 은혜가 거룩하고 편리하게 사용되며 그것들이 계속 우리의 복이 되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모든 것을 가지고도 하나님을 잃어버리는 저주받은 인생이 되지 않도록, 하나님이 주신 것에 만족하지 못하고 남의 것을 탐하여 도둑질하는 어리석은 인생이 되지 않도록, 가난하게도 마시고 부하게도 마옵시고 오직 필요한 양식으로 나를 공급해달라는 지혜자의 기도를 배웁니다(잠 30:8-9). 성
10. 주님은 “오늘 나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소서”가 아니라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소서”라고 기도하라 하십니다. 내가 일용할 양식이 필요하다면 다른 사람도 일용할 양식이 필요하다는 뜻입니다. 지구의 자원은 한정되어 있기에 내가 많이 가지면 다른 사람이 가질 수 있는 양이 그만큼 적어집니다. 그런데도 나만 쌓아놓고 내 살길을 더 확보하겠다고 하면 다른 사람을 향한 하나님의 은혜를 내가 빼앗아 가겠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다른 사람을 위해 나의 내일의 양식, 나의 일 년 뒤의 양식, 십 년 뒤의 양식을 쌓아두지 말아야 합니다. 저금하지 말라는 의미가 아닙니다. 오늘 나의 일용할 양식을 하나님께서 공급해주심을 믿는다면 일 년 뒤에도 십 년 뒤에도 하나님께서 채우시고 공급하실 것을 믿고 오늘 다른 사람의 일용할 양식을 위해 내 것을 내어놓고 흘려보낼 수 있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주의 백성들이 이 기도를 하고 이 기도대로 살 때 비로소 이 땅에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는 일이 일어나고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고 아버지의 나라가 임하게 됩니다.
11. 우리에게 주어진 것은 오늘 하루입니다. 내일은 우리의 영역이 아닙니다. 내일은 하나님이 주셔야만 살 수 있는 날입니다. 그러므로 허황된 내일을 꿈꾸면서 욕망을 키우거나 쓸데없이 내일을 염려하면서 걱정하지 않고 매일 일용할 양식을 구하면서 하나님의 뜻대로 아름답고 가치 있게 살아야 한다고 네 번째 간구는 우리를 도전합니다. 아이유와 이선균이 주연한 <나의 아저씨>라는 드라마가 있습니다. 거기에 연기가 안 되어서 망한 여배우가 자신의 연기를 꾸짖고 책망했던 감독이 영화가 망하고 청소 대행업을 하고 있는 것을 보면서 이런 말을 합니다. “잘난 척하는 인간들로 바글대는 세상 너무 지겨워. 난 잘난 게 하나도 없어서 더 죽을 거 같아요. 인간이 잘난 척할 수 있는 게 하나도 없는 세상이 오면, 잘난 척할 필요도 없는 세상이 오면, 얼마나 자유로울까? 인간은요. 평생을 망가질까 봐 두려워하면서 살아요. 전 그랬던 것 같아요. 처음엔 나를 망가지게 한 감독님이 망해서 정말 좋았는데. 나중에는 망한 감독님이 아무렇지 않아 보여서 더 좋았어요. 망해도 괜찮은 거였구나. 망하는 것 아무것도 아니었구나. 망가져도 행복할 수 있구나. 망한 감독님 보면서 안심이 됐어요. 이 동네도 망가진 것 같고 사람들도 다 망가진 것 같은데 전혀 불행해 보이지가 않아요. 절대로, 그래서 좋아요. 날 안심시켜줘서.” 세상은 일용할 양식만 구하는 사람들을 어리석고 실패하고 망한 인생이라고 생각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를 만나 그의 자녀가 된 자들은 자원해서 세상이 말하는 망가진 인생을 별거 아닌 것처럼 살아갑니다. 망가져서 울고 있는 자들에게 망가져도 행복할 수 있음을 보일 수 있는 유일한 사람들이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달라”고 기도하는 그리스도인들입니다. 늘 반반한 인생을 꿈꾸면 그 자리로 가는 것을 외면하게 됩니다. 그러나 네 번째 간구는 우리가 이 사명, 이 역할 잘 감당하면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실 것이라고 도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