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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 시험하기 위해 부르시는 하나님
창 22:1-2 “그 일 후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시험하시려고 그를 부르시되 아브라함아 하시니 그가 가로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내가 네게 지시하는 한 산 거기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
오늘은 아브라함을 시험하기 위해 부르시는 하나님이라는 제목으로 시험에 대하여 좀 살펴보려 합니다.
평온하고 행복한 아브라함의 가정에 회오리바람이 몰아 닥쳤습니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번제로 드리라는 부름을 받았을 때의 이삭은 어린 나이가 아니었습니다.
성경에 자세한 정보는 없지만 번제를 위하여 산으로 갈때에 나무 짐을 지고 갈 만큼 아브라함보다 더 힘이 강한 그런 청년이었음을 성경은 말해 주고 있습니다.
tk라의 권고로 하갈과 이스마엘은 떠나고 남방에 가서 살다가 헤브론으로 돌아온 아브라함의 가정은 그야말로 행복한 생활이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러한 행복을 시샘이라도 한 듯한 하나님의 명령이 아브라함에게 전달됩니다.
그것이 어떤 내용입니까?
창 22:1 절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창 22:1 “그 일 후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시험하시려고 그를 부르시되 아브라함아 하시니 그가 가로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나님이 무엇을 하시려고 부르셨다고 합니까? 시험하시려고.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어떤 말씀을 전하십니까?
그 다음절입니다 .
창 22:2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내가 네게 지시하는 한 산 거기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
여러분들은 하나님께서 이런 말씀도 하실 수가 있다고 믿겨 집니까?
아들을 데리고 가서 뭐하라고 합니까? 번제로 드리라.
번제가 어떤 말입니까?
하나님께서 아담이 범죄 하였을 때 죄의 용서함을 받을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것은 예수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상징하는 어린양을 잡아 각을 뜨고 돌로 제단을 쌓고 그 위에 나무를 올려놓고 그 위에 각을 뜬 어린양을 올려놓아 불로 사르는 제사를 번제라고 합니다.
그럼 아브라함은 지금까지 무엇으로 하나님께 번제를 드렸을까요?
성경에 보면 아브라함은 가는 곳 마다 제단을 쌓은 내용을 우리에게 전해주고 있습니다. 제단을 쌓을 때마다 무엇을 드렸다는 말씀이 됩니까?
예수그리스도를 상징하는 어린양을 번제로 드렸습니다.
그것은 죄인이 용서 받을 수 있는 한 가지 방법 예수그리스도의 죽음만이 우리가 용서를 받을 수가 있다는 사실을 가르쳐 주고요.
그분을 믿는 믿음으로 죄의 용서를 받고 하나님의 아들로 살아갈 수 있는 길임을 하나님께서 직접 가르쳐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지금은 어린양이 아니라 누구를 번제로 드리라고 합니까?
성경에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은 더 아브라함의 마음을 아프게 합니다.
우리가 금방 읽은 창세기 22장2절을 다시 한 번 자세히 읽어보겠습니다.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땅으로 가서 내가 네게 지시하는 한 산 거기서 그를 번제로드리라”
아니 아들을 번제로 드리라고 하시면 그냥 네 아들을 번제로 드리라고 하시면 되지 않습니까?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이삭을 어떻게 불렀습니까?
처음에는 네 아들이라고 불렀고요. 그리고 다음에는 사랑하는 독자라고 불렀습니다.
그리고 이삭이라고 불렀습니다.
이 말씀은 무엇을 기억나게 하는 말씀입니까?
너에게 허락한 아들 네가 25년이나 기다려서 아무런 소망이 없다는 생각을 하였을 때 잉태하는 힘을 얻어 태어난 아들 웃음이라고 지으라고 하여서 웃음이라고 지은 그 아들을 지금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부르고 그 아들을 번제로 드리라고 하십니다.
아브라함의 가슴을 더 아프게 하는 말씀이 아닙니까?
누구나 다 아들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지만 아브라함과 이삭은 좀 다릅니까?
다 귀한 아들인데 무엇이 다른가 라고 할 수가 있지만 참 많이 다릅니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아들이고요.
25년이나 기다린 끝에 얻은 아들이고요.
하나님의 약속을 믿지 못하여서 많은 실수들을 저지른 끝에 얻은 아들이고요.
죽은 나무에서 싹이 나는 듯한 모든 가능성이 다 끊어진 가운데서 얻은 아들이고요.
하나님께서 친히 이름을 지어주신 아들입니다.
이런 아들 이 세상에 또 있습니까?
그런 아들을 어떻게 하라고요? 번제로 드리라.
이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을 때에 아브라함의 마음은 어떠하였을까요?
아브라함은 이해하지 못하였어도 우리는 말씀이 있기에 이해를 할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사랑하는 아들 독자 이삭을 번제로 드리라는 말씀은 무엇하기 위한 말씀이었다고 합니까?
22장1절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그 일 후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시험하시려고”
하나님께서 무엇 하시려고 아브라함을 부르셨다고 합니까? 아브라함을 시험하시려고
아브라함을 시험하시기 위하여 부르신 하나님께서는 오늘 저와 여러분들에게도 시험을 하시려고 부르시는 일들이 있을까요?
아브라함을 시험하신 시험에서 우리는 아주 중요한 교훈 하나를 배울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실 때 부르심의 목적이 무엇이었나요?
아브라함을 부르신 창세기 12장을 보면 아브라함을 부르신 목적을 알 수가 있습니다.
창 12:1-3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지라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니라 하신지라”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신 목적이 무엇이라고 합니까?
너는 무엇이 될 지라 합니까? 복의 근원.
복의 근원이라는 말씀은 어떤 말씀입니까?
근원이라는 말의 의미를 사전을 찾아보니 물줄기의 근본이라고 되어 있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제일 긴 강이 어떤 강입니까? 낙동강
낙동강 700리라고 하죠. 낙동강이 흐르는 곳마다 이런 아름다운 경치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곳은 대구 화원입니다.
그 낙동강의 물줄기의 근본이 어딘지 아십니까? 황지라고 하는 곳입니다.
바로 이 조그만 물 웅덩이를 황지라고 합니다.
이곳에서 시작하여 흘러가는 물이 낙동강으로 흘러 들어가 낙동강 700리를 이룬다고 합니다.
그곳에는 매일 매일 신선한 물이 뿜어져 나오고 있습니다.
매일 이렇게 물이 나오느냐고 물었더니 그때 만난 사람의 말로는 일 년 열 두달 물이 나오지 않을 때가 없다고 함.
매일 나오는 물의 량은약 5000톤 정도라고 합니다.
낙동강의 근원이 그렇다는 말입니다.
복의 근원을 삼겠다는 말씀은 무슨 말일까요?
우리가 즐겨 부르는 찬미가에 이런 찬미가 있습니다.
“복의 근원 강림하사 찬송하게 하소서”
찬미가에는 복의 근원을 어떤 분이라고 합니까? 성령님.
그렇습니다. 인간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분은 분명 성령이십니다.
근데 아브람을 복의 근원으로 삼으시겠다는 말씀은 어떤 말씀일까요?
성령님과 동등하신 한 분이 아브람의 혈통을 통해 태어나시겠다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이미 이루어진 예언의 시대에 살고 있기때문에 그 말씀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알고 있습니다.
누구의 조상으로 삼으시겠다는 말씀입니까?
그리스도의 조상으로 삼으시겠다는 말씀입니다.
엄청난 복이라는 생각이 드십니까? 사람에게 주어진 최고의 복이 아닙니까?
그래서 아브라함의 자손 마리아가 그리스도의 임신 사실을 알고 이런 노래를 불렀습니다.
눅1:48 “그 계집종의 비천함을 돌아 보셨음이라 보라 이제 후로는 만세에 나를 복이 있다 일컬으리로다”
이제 후로는 무엇이라 합니까?
“만세에 복이 있다 일컬으리로다”
구약의 이스라엘 여인들 아브라함의 자손들은 이런 복을 기대하면서 살았습니다.
이 세상에 수많은 사람들중 누구를 선택하여 이런 특권을 주셨습니까? 아브람을
그럼 아브람이 좀 특별한 점이 있어야 할까요?
특별한 점은 몰라도 무엇은 없어야 될 것 같습니까?
허물과 약점은 좀 없었으면 하는 마음 여러분들은 그러한 마음 들지 않습니까?
그런데 우리가 지금까지 살펴본 아브라함의 모습은 정말 믿음의 사람의 모습처럼 그런 모습 우리에게 모본이 될 만한 어떤 모습 보여 주었습니까?
좋은 모본은 고사하고 어떤 모습을 보여 주었습니까?
하나님의 약속을 불신하고 지금까지 보여주신 하나님의 말씀처럼 종을 상속자로 삼으려 했고요.
틀림없이 아들을 주실 것이라고 하니까 그 하나님의 약속을 자신들의 힘으로 이루어 보려고 한 남자와 한 여자로서의 가정의 원칙을 깨트려 버리고 첩을 취하는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 주었습니다.
그뿐입니까?
자신의 목숨을 지키기 위하여 아내를 동생이라고 하는 하얀 거짓말을 두 번이나 하였습니다.
물론 아브라함에게는 변명이 있습니다.
동생을 동생이라고 하는 것이 무엇이 잘못이었는가 하는 것이죠.
그렇다면 동생이라고 했을찌라도 왕들이 당신의 동생을 나의 아내로 달라고 할 때는 어떻게 하여야 하였습니까?
그런 면에서 아브라함은 여러분들보다도 못한 모습을 보여 주었다는 것이죠.
이런 사람이 믿음의 조상이 될 수가 있습니까? 여러분들의 생각은 어떠합니까?
우리가 믿음 지키기 힘드니 우리 믿음의 조상도 적당하게 순종하고 좀 타협도 하고 이런 사람이었으면 좋겠습니까? 그럼 우리도 적당하게 살면 되고요.
문제는 우리가 어떻게 사는 것이 아니고요. 어디 사람처럼 살아야 합니까?
하나님의 나라의 사람으로 살아야 하는데 하나님의 나라는 적당하게 사는 사람들 죄송하게도 한 사람도 들어갈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에게 그런 시험을 허락하신 것입니다.
왜 허락하신 것이라는 말씀입니까?
잘못된 모습을 회복할 수 있는 기회를 주셨다는 것입니다.
무슨 말씀인지 이해가 가십니까?
어떤 회사에 유능하게 보이는 한 사람이 낙하산 인사로 중책을 맡았습니다.
그런데 입사하자마자 여러 가지 실수를 하여서 그를 낙하산으로 중책을 준 회장에게 심각한 타격을 주었습니다.
그래서 회장은 그를 불러서 말을 합니다.
자네가 능력이 있다고 내가 다른 사람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중책을 맡겼는데 자네가 이렇게 해서 되겠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자네에게 자네의 자리를 지킬 수 있는 프로잭트 하나를 주겠네 이것을 성공 하면 아마도 우리 회사 사람들이 자네를 신임할 것일세 하고 회사 이미지를 크게 할 수 있는 프로잭트를그에게 맡겨 주었습니다.
제가 지금 드린 이야기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시험하신 내용과 비슷하다는 것입니다. 이해가 되십니까?
그런 의미에서 하나님께서 주시는 시험은 좋은 것입니까?
예 하나님께서 주시는 시험은 언제나 좋은 것입니다.
시험은 두 종류의 시험을 성경은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하나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시험이고요.
이것은 다른 말로는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는 시험이라고도 합니다.
다른 하나는 누가 주는 시험일까요?
예 사탄이 주는 시험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시험은 제가 지금 말씀드린 것처럼 우리를 일어 서도록 하기 위해 그리고 우릴 하늘나라 데려 가시기 위해 주시고요.
사탄이 주는 것은 우리를 넘어뜨리기 위하여 멸망하도록 주어지는 것입니다.
그럼 이러한 시험들 분별할 수 있을까요?
아 이거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시험이다. 이것은 사탄이 주는 시험이다 하고 분별할 수가 있을까?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그러한 것을 알 수가 있다면 좋겠습니까?
성경이 말하는 것을 한번 찾아보겠습니다.
약 1:13-14 “사람이 시험을 받을 때에 내가 하나님께 시험을 받는다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악에게 시험을 받지도 아니하시고 친히 아무도 시험하지 아니하시느니라 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
아 이곳에는 하나님께서 아무도 시험하지 않으신다고 합니다.
우리가 읽은 창세기에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시험하려고 라는 말씀을 읽었지 않습니까?
창세기의 말씀하고 이곳 야고보서의 말씀하고 일치되지 않지 않습니까?
어떻게 보아야 할까요?
제가 시험에 몇 종류가 있다고 말씀드렸습니까? 두 종류의 시험.
하나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믿음의 성장을 위하여 우릴 하늘 사람 만들기 위하여 주시는 것. 또 다른 말로는 아까 회사의 낙하산 인사로 중책을 맡았지만 실수를 연발하는 자의 이미지를 쇄신하기 위하여 주어지는 시험이고요.
다른 하나는 사탄이 우리를 넘어뜨리기 위하여 주는 것.
이렇게 말씀 드렸습니다.
그럼 야고보가 말하는 시험은 하나님께서 주시지 않는 것이라고 하였으니 누가 주는 시험일까요?
사탄이 주는 시험입니다
그 시험이 어떻게 오는지 말씀을 자세히 살펴보시길 바랍니다.
시험을 받는 것은 무엇에 끌려 시험을 받는다고 합니까?
욕심에 끌려서 시험을 받는다.
그럼 욕심에 이끌려서 받는 시험은 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시험이 아니라고 생각하면 되겠습니까? 그럼 그 시험은 누가 주는 시험이라 생각할 수가 있습니까?
사탄이 주는 시험을 받지 않으려면 어떻게 하면 될까요?
그럼 무엇을 버리면 그런 시험 당하지 않습니까? 욕심을 버리면.
욕심 버리기가 쉽습니까? 어렵습니까?
저의 이종사촌 형이 어렸을 때 포탄을 주어서 쇠 뭉치인 줄 알고 엿을 바꾸어 먹으려고 가지고 있다가 터져서 죽었습니다.
저희들 마을 하고 약 8킬로 떨어져 있는데 포탄터지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동네 어른들 말씀에 저곳에 어떤 사고가 났구나 했는데 저의 이종사촌의 죽음이었습니다.
그는 포탄을 무엇으로 알았습니까? 달콤한 엿을 바꾸어주는 쇠뭉치로.
그가 터지면 죽는다는 것을 알았을까요? 알았음.
동네 사람들이 말을 해 주었기 때문에. 근데 왜 버리지 않았을까요? 달콤한 엿생각에
욕심이 포탄과 같은 것이라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아까 우리가 읽어본 야고보서그 다음 말씀에는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약 1:15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욕심이 잉태한즉 이 말씀은 욕심을 가지고 있으면 이라는 말씀이죠?
욕심을 버리지 못하고 안고 있으면 이라는 말씀입니다.
닭이 계란을 품으면 무엇이 됩니까? 병아리
그런데 사람이 욕심을 품으면 무엇을 낳게 된다고 합니까?
죄라는 것을 낳게 된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욕심을 품고 죄를 잉태하지 말길 바랍니다,
그럼 그 다음엔 그 잉태한 죄가 장성하면 죽음이라고 성경은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우리 사랑하는 성도님들이시여 품고 있으면 결국 죽음을 가져다 주는 욕심을 버리지 않으시렵니까?.
작은 욕심이라도요. 포탄과 같은 욕심 안고 있으면 나만 죽이는 것이 아니라 나와 함께한 사람을 같이 죽이는 위력이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욕심을 버릴 수가 있을까요?
성경은 또한 거기에 대한 답까지 가르쳐 줍니다.
갈 5:16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좇아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욕심을 버리기가 참 어려운 모양입니다.
성령을 좇아 행하라 그리하면 욕심은 버려지리라 하지 않고요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합니다.
그 말씀은 어떤 말씀입니까? 욕심을 버릴 수는 없다 할찌라도 욕심을 따라 살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말해 주고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욕심을 이루지 않을 수가 있다고 합니까?
성령을 좇아 행하라 라고 합니다.
그럼 성령을 좇아 행하는 것은 어떤 것일까요?
성령의 통로가 있다는 것을 생각해 보셨나요?
성경의 외적인 통로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구약성경 스가랴에서그렇게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성령의 내적인 통로는 우리의 양심입니다.
제가 성경으로 지금 다 정립해서 드릴 수가 없고요.
언제 기회가 되면 다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그럼 무엇과 무엇이 하나가 되면 성령을 따라서 살 수가 있다는 것이 나오죠.
우리의 양심이 무엇과 일치되게 하라고요. 말씀과
우리 사랑하는 성도님들 여러분들의 양심을 항상 하나님의 말씀으로 검토하고 채우시길 부탁드립니다.
우리의 양심이 하나님께서 지배하시도록 하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럴 때 우리는 성령을 따라 살게 될 것이고 아브라함을 통하여 이루셨던 하나님의 뜻들이 오늘 우리 모두를 통하여 이루어질 것입니다.
우리의 모본이 되시는 예수그리스도께서는 그렇게 사셨습니다.
우리도 그렇게 살 수가 있다고 주님께서는 본을 통하여 보여 주셨습니다.
그와 같이 되는 방법은 그를 항상 순간마다 바라보는 것입니다.
예수님처럼 살아가기를 원하십니까?
그분처럼 살기 위한 노력보다 그분을 바라보면 그분처람 살아가게 된다는 것이 성경이 가르쳐 준 답입니다.
우리 사랑하는 성도님들 매일 매일 우리의 본으로 주신 예수그리스도를 바라봄으로 우리에게 오는 시험들을 이기고 아브라함처럼 믿음의 사람들로 살아가시길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