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의 친절
The Kindness of Strangers 2018 베를린영화제 개막작
론 쉐르픽 감독
해피앤딩이 이처럼 안도감을 주는 미국 영화는 처음이다. 그동안 할리우드 영화의 해피엔딩이란 고난과 싸워 이겨낸 보상으로 상상하지도 못한 천국에 입장하는 엔딩으로 분에 넘쳐 감당할 수도 없는 억지 행복과 같아서 불안하기까지 한 앤딩이었다. 해피는 욕심 많은 사람들이 만들어 낸 엔딩이다. 마약처럼 더욱 자극적인 해피가 필요한 것으로 봐 진정으로 행복하지 않은 것 같다. 또한 할리우드 영화들은 행복을 규정하고 가르치려 한다. 때문에 마지막은 해피해야 한다는 이상한 암묵적 규정이 생겼고 현실의 평범함을 불행의 범주로 전락시키는 것이다. 그리고 행복이나 불행이 문제가 아니라 그것들에 대한 과장이 문제인 것이다. 과장은 현실에 없는 불필요한 불안이기 때문이다. 행복은 환상과 다르다. 환상은 꿈에서 필요한 것이고 현실에서는 행복보다는 만족이 더 어울리는 가치인 것이다.
이 영화의 앤딩은 해피가 아니다 다시 평범한 생활로 돌아오는 그냥 엔딩이다. 내용도 매우 평이하다 남편의 폭력으로 집을 탈출한 엄마와 두 아들이 뉴욕에서 고생 끝에 모르는 타인들의 도움으로 다시 평상으로 돌아간다는 이야기이다. 여기서 악한은 폭력남편 한 사람뿐이며 폭력 장면도 단 한 번만 나온다. 그리고 더 이상 욕심내지 않고 ‘여기까지만...’과 같이 과장되어 전개하지 않는 적당한 앤딩이라서 마음이 놓이는 영화다.
제목이 ‘타인의 친절’인 것처럼 그 타인들도 정의감에 휩싸여 희생정신으로 돕는다기 보다는 그냥 일상적인 배려와 상냥함일 뿐이다. 평범하고 일반적인 일상의 사람들이 주변에 대다수라는 것이 놀라운 것은 그만큼 이사회는 과장된 선의와 악의로 물들어 있다는 증거이다.
아무리 나쁜 나라라고 지적된 나라라도 거기에 나쁜 권력과 소수의 범죄자가 있을 뿐 그 나라의 평범한 국민들까지 악한 나라는 없다. 다만 상업언론들이 그것을 과장하기 때문에 과장되지 않은 평범한 사람들과 평범한 일상은 그 과장에 가려져 안 보이는 것이다. 상업언론에 비친 세상은 지극히 착하거나 지극히 악한 이 두 가지만 있다 그리고 사람들은 그 두 가지로 사람들을 분류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정작 개개인은 영웅이나 악인과 상관없는 주변 사람의 평범한 친절로 삶의 의미와 행복을 생산하며 사는 것이다. 그런 빛나는 타인의 친절이 아직 세상을 이끌어 가는 중이다.
[영화감상]
https://drive.google.com/file/d/1DzFcV8H4lE5N9p5dt_fS_Xb09G293t_t/view?usp=shar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