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라 안토니 루이스"(Ella Anthony Lewis : 유의선) (1863~1927)
1. 한국에 온 첫 "퀘이커"(Quakers)교도.
루이스는 펜실베이니아 포츠빌의 퀘이커 집안에서 태어나 퀘이커 교도로 성장했으며,
1888년 뉴욕의 감리회 여집사 요양소에 입학하여 간호원 교육을 받았다.
그곳에서 사감으로 있을 때 "로제타 셔우드" 의사를 만나 친구가 되었다.
조선에 간 "셔우드"가 간호원을 요청하자 자원하여 1892년 1월 내한했다.
2. 한국에 온 감리회의 첫 정식 간호원
미국 북감리회 해외여성선교부(W.F.M.S.) 뉴욕 지부를 통해 조선에 파송된 루이스는
건강을 회복한 후 "보구녀관"에서 첫 정식 간호원으로 일했다.
1886년 "제중원"에 온 "애니 엘러즈"는 간호원이었으나 여의사로 활동했다.
한국에서 활동한 첫 정식 간호원은 1891년 10월에 내한한
성공회의 "Gertrude Heathcote"이다.
루이스는 그보다 3개월 후에 내한했다.
"셔우드"가 "홀" 의사와 결혼하고 평양에 임명된 후,
"루이스"는 "커틀러" 의사를 도왔으며 이화학당 학생 간호도 담당하며 생리학을 가르쳤다.
1895년 콜레라 유행 때 왕실과 궁녀의 간호를 맡았다.
1895년부터 동대문시약소에서 일했으며, 1897년부터 의료 사역을 중단하고,
정동제일교회 여성과 어린이 전도 사역에 전념했다.
3. 조선에서 첫 유치원 사역
그녀는 처음으로 유치원 사역을 시작했다.
1901년 안식년 휴가 후 1902년부터 상동교회 여성 사업과
수원 등 경기도 남부 지역 여성 전도 사역을 전개했다.
1905년에는 병에 걸린 "커틀러" 의사를 간호하고 이화학당 학생들을 검진했다.
4. 동대문 밖 창신동에서 고아원과 "덴만요양원"(Denman Medical Hostel)을 운영.
1904년 "루이스"는 북감리회 여성해외선교부를 은퇴하고 독립 선교사로서
동대문 밖에서 여자 고아원과 "Denman Medical Hostel"을 운영했다.
1912년 동대문부인병원이 설립되자 병원의 간호 사업도 도왔다.
5. 조선여자의학교에 집과 토지 기증--현 고려대 의대 전신
"로제타 홀" 의사가 평양에서 1917년 서울 동대문부인병원 원장으로 부임해 오자
"홀" 의사와 "루이스"는 다시 협력하기 시작했다.
1927년 9월 14일 35년간 조선 선교에 헌신하고 별세하여 양화진에 안장되었다.
"로제타 셔우드 홀" 의사는 오래 전부터 구상해 오던 조선 내 여자 의학교 설립을 추진했다.
"홀"은 1926년 자신의 회갑연에서 한국에 여자의학교를 세워야 한다며 공개적으로 제안했다.
그 결과 1928년 3월 31일 14명의 여성 의료인들이 모여 조선 여자의학교를 설립하자는 데 뜻을 모았고,
4월 14일 명월관에서 발기인대회를 가진 후,
5월 19일 창립총회를 열어 조선여자의학전문학교 기성회를 조직했다.
이 자리에서 전문학교 설립 전단계로 조선여자의학강습소를 설립하기로 결정하고
장소는 창신동의 고(故) "루이스"씨 집을 빌려 임시 사용하기로 하였다.
강습소가 들어선 건물의 주인 "루이스"가 바로 엘라 안토니 루이스(Ella Anthony Lewis)였다.
이 강습소는 해방 후 우석대 의대에서 고려대 의대로 발전했다.
1927년 9월 14일 별세. 양화진에 안장되었다.
묘비에는
遠涉大洋. 初到朝鮮. 廣傳福音. 多救靈魂.
"멀리 대양을 건너 처음 조선에 와 널리 복음을 전하여 많은 영혼을 구원하였다"라고 새겼다.
뒷면 아래에는
ONE OF THE FIRST SERVANTS OF GOD IN THE LAND OF MORNING CALM
"멀리 대양을 건너 처음 조선에 와 널리 복음을 전하여 많은 영혼을 구원하였다"
라는 내용이지만 조선이라 쓰지않고 "IN THE LAND OF MORNING CALM"
흔히들 서양사람들이 사용하는 "조용한 아침의 나라"라는 표현을 썼다.
윤화정(尹和鼎)이란 분이 비를 세웠는데 이분에 대해서는 알지 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