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결함을 위해 경어체를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아침이다. 눈을 떠서 시계를 보니 7시 30분이 조금 넘은 상태였다.
내가 일어나는 소리에 제임스도 잠에서 깨어서 멍하니 앉아있다.
이내 몸을 씻고 옷을 챙겨입은 후 아침을 먹으러 갔다. 호텔에서 제공되는 부폐식의 조식이었는데
직접 만들어먹는 와플이 재미도 있었을 뿐더러 맛도 훌륭했다. 다른 주를 대표해서 출전한 몇몇 선수들은
이미 식당에 와서 가볍게 아침을 즐기고 있었는데, 몇몇 선수들은 자신이 원하는 체급에 등록하기 위해서 체중조절을
하는 중이었기에 아주 가볍게 식사를 하거나 커피만을 즐기고 있었다. 나같은 경우에는 별 상관이 없었기에
와플에 버터도 듬뿍 바르고 메이플 시럽도 넉넉히 얹어서 신나게 먹음으로써 몇몇 선수들의 부러움을 사기도 했다.
에그 스크램블의 경우도 맛이 아주 좋았지만...계란은 그동안 질릴만큼 먹었기 때문에 그다지 땡기지가 않았다.
식사를 다 하고 앉아있는데 가장 늦게 일어난 폴 워써 (Paul Walther) 가 내려오더니 웃는 얼굴로 선언을 한다.
"3장의 와플과 8개의 계란을 먹어야 해." 그는 이미 무제한급 출전이 확정된 상태였기 때문에 계체량은 별 의미가 없었다.
여기서 잠시 폴 워써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폴 워써는 국내에 잘 알려지지 않은 팔씨름 선수다. 이유는 간단하다. 폴은 전세계를 돌아다니며 팔씨름을 하지도 않았고
방송에 출연을 하는것도 아닌데다가 월드클래스급 팔씨름 선수들을 이기는『영상』역시 찾아보기가 힘들다.
(즉, 영상만 없을뿐 실제로 이긴적은 꽤 많이 있다.)
그리고 그는...단백질 보충제조차 섭취하지 않는 말그대로 100% 자연주의자이다. 연어, 아몬드, 브로콜리를 가장 훌륭한
식품이라고 치켜세우고 자신의 아내가 집에서 해주는 음식은 과도할만큼 칭찬을 해가며 남기지 않고 싹싹 먹는 폴이다.
어린아이처럼 순진하고 또 너무나 착해서 다른 팀 멤버들이 맨날 놀리고 괴롭혀도 그저 씩 웃고 마는 그런 폴이다.
닭을 한마리 통째로 "뼈째" 씹어먹는걸로 유명해서 제임스는 그를 "Caveman (원시인)"이라고 부른다.
그의 이름을 검색해보면 잘 알려진 팔씨름 선수인 마르시오 발보자 (Marcio Barboza) 에게 굉장히 쉽게 패하는 영상이
있는데 (내가 2008년도에 참가했던 대회이다.) 이에 관해서 제임스에게 물어보니 제임스는 딱 한마디를 해줬다.
"난 스테로이드로 충전되지 않은 버전의 마르시오를 잘 알아. 정상적인 방법으로 마르시오가 폴을 이길 수 있는 방법은 없어."
얼마전 제임스와 출전했던 OBX Bike Week 팔씨름 대회를 다녀오면서 약물에 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이 때 제임스가
했던말이 굉장히 인상깊었다.
"폴 워써는 단순히 100% 자연식을 한다는 이유만으로 팔씨름계에서 그가 받아야 할 대우를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있어. 힘과 육체미가 개입되는 스포츠에서는 총 3부류의 사람들이 있지. 스테로이드, 내츄럴...그리고 라이프타임 내츄럴. 흔히들 자신을 내츄럴이라고 소개하는 사람들을 보면 과거에 스테로이드를 한 경험이 있지만 현재는 하고 있지 않은 경우야. 라이프타임 내츄럴은 말 그대로 한평생 단 한번도 약물을 하지 않은 경우를 얘기하지. 최상위 헤비급 팔씨름 선수들 중 폴은 내가 알고 있는 정말 몇안되는 라이프타임 내츄럴 (Lifetime Natural) 중 한명이야. 미국을 통틀어서 폴을 이길 수 있는 라이프타임 내츄럴은 손에 꼽을 정도야. 그 중 한명을 얘기해주자면 톰 넬슨 (Tom Nelson) 이고."
폴은 한국을 굉장히 방문하고 싶어한다. 언젠가 그를 초청해서 한국의 팔씨름 선수들에게 그의 힘과 품성을 느끼게 해줄날이
오리라 믿는다.
아무튼...이렇게 우리모두 식사를 끝나고 대회장으로 향했다. 제임스가 이번 대회의 진행 및 주심을 맡았기 때문에 (동시에
선수로 출전까지 하면서 말이다.) 우리는 일찍 도착해서 대회준비를 도와줘야만 했다. 이미 이번대회를 주최하는 플로리다의
팔씨름 선수들이 도착해 있었다. 딱 한번 만났을 뿐인데 다들 어찌나 반갑게 맞이해주는지 너무나 감사했다. 또한 성열이의
최근 근황에 대해서도 깊은 관심을 보이며 그의 컴백을 고대하고 있다고 했다.
▲ 플로리다의 팔씨름 선수들 (스텀프 버튼, 토드 킹, 칼 스탠리, 토마스 에잔 등)
클래스 등록의 경우 한국복귀를 앞두고 미국에서의 마지막 대회였기에 최대한 많은 경험을 하고 싶었다.
그래서 총 4개 클래스에 등록을 했는데 프로 70kg급과 아마추어 80kg급을 양손 모두 등록을 했다.
대회 당일날 내 체중은 148lb 약 67kg이었다.
무대에서 적당한 거리에 있는 큰 테이블 하나를 팀 NC (노스 캐롤라이나) 용으로 찜해놓고 앉아있으니 선수들이 하나 둘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대부분의 선수들의 북미게시판이 northeastboard.com에서 얘기를 나눴던 사람들이어서 그런지
아무런 어색함 없이 오랫동안 알고 지내온 것처럼 서로를 반갑게 맞이해줬다.
이 때만 해도 론 배쓰 (Ron Bath) 가 출전할 것으로 알고 있었기에 나는 그의 모습이 비춰지기만을 기다렸지만 그는 끝내
나타나지 않았다. 대부분의 선수들이 6~8시간을 운전해서 이번 대회를 참가했는데, 겨우 2시간 거리에 살고 있는 그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는 점에서 많은 선수들이 실망감을 금치 못했다. 더군다나 이번 대회는 전설 클리브 딘의 죽음을 기리는 자리가
아니었던가.
대회는 2시 정각에 시작이 되기로 했는데, 프로 154lb (70kg) 오른팔 먼저 시작을 한다고 했다. 내가 속한 체급이었다.
나를 비롯한 많은 선수들이 끊임없이 각종 음식을 먹으며 몸에 에너지를 불어넣어주고 있었다. 그 와중에 몇몇 거대한
선수들이 모습을 드러냈는데, 팀 브레스넌이나 숀 라띠메르같은 거대한 선수들을 봐왔음에도 그들의 덩치는 정말 인상깊었다.
그런데 아무리 덩치가 크고, 거대한 팔을 지니고 있고, 인상이 험악하더라도...팔씨름판에도 짬밥이라는게 존재함은 확실히
느낄 수 있었던게, 대부분의 선수들이 다 제임스에게 와서 먼저 자기소개를 하며 인사를 청했다는 것이다.
▲ 남부에서는 팔씨름 천재라고 불리는 칼 스탠리 (Karl Stanley)
▲ 150kg이 넘는 체중으로 12~15회의 턱걸이를 할 수 있다는 존 포르틸로 (John Portillo)
2시가 가까워짐에 따라서 다들 긴장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나 역시 아무리 경험을 위한 대회라고 스스로를 위안하면서도
단 1승이라도 거두고 싶은 마음에 괜히 가슴이 두근거리고 멀쩡한 팔을 자꾸 주물럭 거리게 되었다.
가만히 앉아있기가 뻘쭘해서 대회장을 돌아다니며 사진을 찍고 있는데, 한 여성분이 나에게 다가오더니 묻는다.
"You are Seung Min, right? I'm Cleve's daughter LeeAnn."
바로 클리브 딘의 딸인 리안이었다. 우리는 온라인 상에서 몇번 대화를 한 적이 있는데 내가 한국에도 클리브 딘이 잘 알려져
있다는 말에 깊은 감명을 받았는지 이번 대회때 꼭 서로 안면을 트자고 다짐을 한 터였다.
▲ 클리브 딘의 딸 리안 (LeeAnn)
그녀는 자신의 아버지에 대해서 굉장히 자랑스러워 했으며, 그를 기억해주는 한국의 팔씨름 선수들에게도 감사하다는 말을
꼭 전해달라고 했다. 그녀는 대회 내내 나를 전폭적으로 응원해주고 또 격려해줬는데 얼마나 감사했는지 모른다.
어느덧 2시가 되었고, AAA 협회장인 캐런 빈이 대회의 시작을 알렸다.
154lb 프로 클래스 오른팔...그리고는 바로 내 이름이 불렸다.
-2부 끝-
첫댓글 재밋어요~ 어느운동쪽 종목이던간에 약물은 암암리에 많이 사용되지 않나요~ 비정상적으로 큰 혈관 등등 ㅠㅠ
보디빌딩은 거의 다(거의다가 아니라 모두) 파워리프팅이며 팔씨름 등등 암암리에 쓰는게 아니라 허용인가요? 외국에서 스테로이드 불법인가? 모르겟네요 주워들은 지식이라 다 쓴다는건 아는데 ...
님 .. 말씀대로 .. 보디빌딩 이나 , 파워리프팅 , 월드스트롱맨 등등 모두 사용 합니다..
프로 라면 .. 약물 이다 라고 말해도 좋습니다 . .더이상 논란 의 여지가 없죠 ..
그리고 미국 내 에서도 스테로이드 불법 입니다만 .. 굉장히 구하기는 쉽습니다 .. 인터넷으로도 쉽게 구할수 있
구요 . 기 이외 약물도 쉽게 구할수 있습니다 .
요즘 네츄럴 이란 단어 도 무의미 합니다
우리나라에서도 딱히스테로이드 구하는건 어렵지않습니다..ㅎㅎ
올림피아등등은 합법적으로 약물을사용한다구하구요
최근에 격투기나 뭐기타운동등에서도 많이사용하는거같더라구요~.
싸이클도 잘맞추고 여러방법을통해서 이리저리 잘들빠져나가더군요 ㅎㅎ
폴워써 한국오면 소고기뷔페 대려가야겠네요!!!
그냥 목장에 데려가서 소 한마리 고르라 그래야돼.^^
아니면 강남이나 삼성동에있는 스테이크무제한점에...ㅋㅋㅋ한국기록깨겠는데요
자연식만으로도 저렇게 거대해질수 있군요 ...;; 영상을 몇개 찾아봤는데 인형이랑 팔씨름 하는 영상도 있고 아무튼 참 재미있어보였습니다^^
기본적으로 타고난 뼈대 및 체격이 상당히 좋구요, 직업적 특성상 별도의 훈련없이도 매일매일 강력한 중략운동이 가능하답니다. (토목환경/조경사업 쪽 일을 담당하고 있는데 매일매일 많은 양의 통나무들을 상대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인지 손이 굉장히 두텁습니다. 그다지 크지는 않구요.)
톰넬슨이 라이프타임내츄럴인것도 좀의외네요.ㅎㅎ
톰 넬슨 한성질 하는거 알지? 예전에 제임스랑 톰이랑 만나서 얘기하는데 제임스가 이랬데. "톰, 너는 솔직히 스테로이드의 힘을 조금만 빌리면 세계정상에 설 수 있을텐데 왜 남들도 다 하는 약물을 하지 않니?"
그러니까 톰이 이랬데..."내 주변에 스테로이드 하는 사람들 보면 나름대로 유순했던 사람들도 넘쳐나는 에너지(남성호르몬)와 자신감을 주체하지 못하고 굉장히 다혈질이 되서 문제를 일으키는 경우를 종종 봤어. 나는...이미 필요이상으로 다혈질이기 때문에 스테로이드까지 했다가는 사람 죽일수도 있을것 같아서...그렇게 인생 종치고 싶지는 않거든."
그말을 들은 주변의 팔씨름 선수들이 다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했다는...
수긍이 갈만한 내용이네요....... 본인을잘알기때문에 약을쓰지않는다라 ㅋㅋㅋㅋ 톰넬슨이 평소에경기에서 하는거보면 이해가갑니다.ㅎㅎ
어느 스포츠나 약물이 문제군요.ㅜㅜ 앞으로 폴워써님 팬해야 겠습니다. 내츄럴이란 어감부터 참 좋은 거 같아요. 클리브 딘 따님도 왠지 뭉클하네요. 3부도 기대됩니다.^^
사람들이 때로는 그렇게 비싼 돈주고 왜 스테로이드를 하냐고, 그렇다고 팔씨름에 무슨 큰 상금이 걸린것도 아니고...
그런데 인간이란 존재는 이성의 동물이기도 하지만 때로는 가장 비합리적인 판단을 하는것 같기도 합니다. 종종 "명예"나 "자존심" 등과 같은 무형의 퀄리티를 위해서 많은 희생 및 기회비용을 감수하기도 하니까요.
돈으로도 살 수 없는 명예는 얻을 수 있겠지만 그것을 약물도움 없이 쟁취하면 더 좋을텐데 말이죠. 돈도 돈이지만 언젠가 자신에게 치명적일지도 모르는데...
근데 워써님 스펠링을 다시 보니 '발터'(독일제 총기 메이커)네요. 혹시 독일쪽 출생이신지.ㅎㅎ
너무재밌습니다......... 너무 3부가 기다려지네요 ㅜㅜㅋㅋ
지승이 잘 지내지?^^
약물을 안하는게 존경받을일이 아니고 당연한건데 너무 프로 대회에서 약물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니 안타깝습니다.다행인점은 올림픽이나 월드컵같은 세계적규모의 대회는 도핑을 확실히 해서 추후에도 도핑에 걸리면 메달을 박탈하는 점이란거죠.어느대회나 올림픽처럼 도핑을 강화했으면 좋겠어요.아니면 미국에선 스테로이드를 너무 큰문제로 안받아들이는 것일지도 모르겠네요.올림피아만 해도 잘 유지되고 있으니까요.
삭제된 댓글 입니다.
아, 전태준 아우님이셨군요.^^ 제가 듣기로 일반 보충제 정도는 Lifetime Natural에 포함시켜주는걸로 알고 있는데 좀 더 정확히 알아봐야 겠습니다. 그나저나 이번 여름에는 꼭 한번 팔씨름 해봤으면 좋겠네요~
이탄도 재밋네요 ㄷㄷ 톰 넬슨이 정말 어마어마한 선수였군요 ㄷ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