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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조문학>2018, 겨울호 계간평
봄을 향한 새로운 도약
野城 이도현
(국제펜한국본부 자문위원)
기해년 새해를 맞이하면서
그간 얼어붙었던 정치, 경제도 조금씩 풀리는 모양새다. 때를 같이하여 우리 시조문단도 새로운 도약이 새싹처럼 전국 각지에서 발돋움하고 있으니 밝은 미래가 예견된다.
시조문학 겨울호엔 많은 작품이 수록되어 풍성한 시조잔치를 벌이고 있다. 표지작가 특집을 비롯하여 시조문학 작가상, 신인상 수상작, 소시집, 신작특집, 단시조특집, 가을시조단 등 무려 63명의 작품을 수록하고 있다. 그중 읽을 만한 작품 중심으로 살펴보기로 한다.
가다가 다시 보면 이슬 문 고운 입술
날개 접은 작은 나비 단꿈을 꾸고 있네
발자국 조심스러이 살펴가는 저 바람
-김경희의 <풀꽃사랑>전문
김경희 시인은 단시조에 명수다. 조그만 자연 하나하나를 놓지 지 않고 붙잡는다. 풀꽃 한 잎, 스쳐가는 바람자락 등이 김경희 시의 소재다. 그러한 작은 소재들을 꿰어 작품으로 구성한다. 어디 한 군데나 꾸민 데가 있는가? 천의무봉(天衣無縫) 신선의 세계다.
‘풀꽃’ 한 잎을 이슬을 문 고운 입술로, 날개 접은 작은 나비로 환치하면서 나비가 잠을 깰까봐 바람이 발자국도 조심스러이 살펴간다 하였다. 이름 모를 풀꽃 하나에 인격을 주어 이렇듯 사랑을 쏟을 수 있을까? 첫 작품부터 독자를 기쁘게 한다.
하늘에 흰 구름이 한가롭게 흘러가고
꽃들은 피어나서 볼마다 붉은 연지
새싹들 햇살 받으며 몰려오는 저 봄날
막 나온 은행잎은 하늘로 길을 내고
가지마다 쏟아내는 연둣빛 눈부시고
텃밭의 장다리꽃엔 봄을 아는 흰 나비
-김경희의 <봄날에>전문
김경희 시인의 <봄날에>전문이다.
화창한 봄날이 몰려오고 있다. 하늘에 흰 구름이 한가로이 뜨고 꽃들은 피어나 연지를 찍는다. 막 나온 은행잎은 하늘 길을 트고, 부스스 잠을 깨는 장다리꽃엔 나비란 놈 날아들어 봄을 알린다.
참으로 정겨운 봄날의 향연이다. 솟아나는 새싹을 바라보며 싱그럽게 몰려오는 저 봄날 우리도 희망을 갖자. 가지마다 쏟아내는 연두 빛에 눈을 씻고 나비처럼 훨훨 날아보자.
지울 건 잊어버리자 끝과 시작의 경계
남은 기억 사르면서 이미 강을 건넜으니
하지만 한 줄 서러움은 저 바위에 새기리라
-김토배의 <망각의 강>전문
김토배 시인의 <망각의 강>전문이다.
한해를 보내는 연말, 다사다난했던 지난해의 어려웠던 일들을 잊어버리자. 이미 강을 건넜으니 남은 기억을 사르면서 잊어버리자. 그러나 강을 건넜다고 나룻배마저 버릴 건가. 아니 모두를 버릴 수는 없다. 한 줄 서러움은 저 바위에 새기겠다는 다짐이다.
여기서 한 줄 서러움은 무엇일까? 그 서러움이 얼마나 머리에 각인되었으면 바위에 새길까? 그 서러움은 필경 덧없이 보낸 한 해의 세월, 빼앗긴 시간일 게다. 시간, 그것마저 잊어버리자.
마지막 남아 있는
한 소절 음악처럼
우수의 감긴 몸짓
살포시 쌓이는 정
판타지
춤사위 펼치듯
하얀 눈이 내린다
알몸의 겨울나무
싸목싸목 감싸주는
탐닉하는 저 몸부림
네온은 불 밝히고
이 밤을
탄주하는 백설
사랑이여, 부른다
-김토배의 <눈내리는 헤이리>전문
지금 ‘헤이리’엔 포근한 눈이 내린다. ‘헤이리’는 경기도 파주시 통일동산지구에 위치한 국내 최대 규모의 예술인 마을이다.
마지막 남아 있는 한 소절 음악이 우수에 감긴 몸짓을 덮고 판타지처럼 아니 경쾌한 춤사위를 펼치며 하얀 눈이 내리고 있다.
둘째 수에선 떨고 있는 알몸 겨울나무를 싸목싸목 감싸는 네온 불, 그 밤을 연주하는 백설이 겨울밤을 찬미하고 있다.
김토배 시인은 시를 싸목싸목 감싸면서 몸으로 시를 쓴다. 눈 내리는 헤이리 정경을 찍어낸 한 폭의 동영상이다. 눈 내리는 밤은 우리를 정겹게 한다.감성적이면서 경쾌해서 좋다.
다음은 신작특집을 보자.
깊은 밤 정막 속에 고요가 예 서 있다
휘영청 밝은 달이 머물다 떠나가고
그리움 지울 수 없어 낙엽위에 쓰는 편지
-이석희의 <가을편지>전문
이석희 시인은 지금 가을 속에 앉아 고향을 그리워하며 낙엽위에 편지 한 장 쓰고 있다. 나이가 들수록 고향을 그리는 마음이 눈덩이처럼 커진다. 만날 수 있는 친구는 줄어드는데 고향을 그리는 마음은 더 곱게 물이 든다. 화자의 시작노트의 말이다.
휘영청 밝은 달이 잠시 머물다 떠나고 그리움이 밀려든 밤 낙엽 한 장 붙잡고 그 위에 가을편지를 쓴다. 이 작품은 종장 마지막 구절 ‘낙엽위에 쓰는 편지’에서 주제를 한껏 끌어올린다. 멋진 서정을 일구어내는 대목이다. 그리고 명사로 뚝 끊어 여운을 남긴다. 이 대목에서 이석희는 가점을 얻는다. 쓸쓸한 조락의 계절, 그 감각을 잘 묘사한 풍경화 한 폭이다.
동산 위 해 떠올라 눈부시게 찬란할 때
서녘으로 지는 달은 창백해 서러우나,
‘진달은 다시 뜨더라’. 달맞이 꽃 덕담이다.
-이성욱의 <달맞이꽃 덕담>전문
이성욱 시인의 <달맞이꽃 덕담>이다. 달맞이꽃은 달밤에 피기 때문에 월견초(月見草)라 부르기도 한다. 저녁에만 피었다가 해가 돋는 아침이면 꽃이 지니 얼마나 서러울까? 그래서 ‘진달은 다시 뜨더라’ 라고 스스로 덕담(德談)으로 자위한다.
달맞이꽃은 달이 다시 뜨기를 얼마나 고대할까? 그래서 꽃말이 ‘기다림’이다. 초장에서 해가 뜰 때, 중장에서 달이 진다. 이 자연스런 오버랩을 대구(對句)와 대조(對照)로 구성하면서 덕담을 활용하여 작품을 구성한 솜씨가 특기할 만하다.
사고(思考)의 작은 씨앗 마음을 좌우한다.
사유(思惟)의 차이 따라 사상도 달라지니
두 개의 정치철학이 남과 북을 가른다.
-이정자의 <사고의 씨>전문
세계의 경제사정 트럼프가 좌우하고
일본의 호황경제 아베가 일으키니
우리의 경제지표는 그 누구의 손인가?
-이정자의 <나라경제는>전문
이정자 시인은 요즘에 느끼는 정치, 경제, 세상사를 짚어 보고 있다. 앞의 작품은 정치이념을 다룬 것이요, 뒤의 작품은 요즘 모두 어렵고 힘들다는 경제문제를 다루고 있다.
앞의 작품 <사고의 씨>를 보자. 사고(思考)의 씨앗이 마음을 좌우하고, 사유(思惟)의 차이 따라 사상이 달라진다. 이러한 두 개의 정치철학이 남과 북을 가른다고 한다. 그동안 남과 북은 사상의 대립과 갈등으로 동족간의 전쟁으로 피를 흘렸고, 70년 동안 벽을 쌓고 적대시하면서 살아오지 안했는가? 다행스럽게도 작년부터 화해무드가 조성되어 DMZ 철책을 헐고, 끊긴 철로를 연결, 평화 분위기가 시작되고 있으니 얼마나 다행스러운가?
초장과 중장에서 사고와 사유, 마음과 사상의 비슷한 단어를 대구(對句)로 짝지어 놓고 종장에서 이러한 두 개의 정치 철학이 남과 북을 가른다고 의미를 점층 시키고 있다. 정치 이념을 다룬 작품이다.
다음엔 <나라경제는> 작품을 보자.
지금 나라경제가 퍽 어렵다고들 한다. 영세자영업자가 문을 닫고, 80대 노인이 리어카를 끌며 생존에 허덕이는가 하면, 20대 청년들은 고시촌에서 가난과 싸우고 있다. 이러한 와중에 트럼프와 시진핑은 경제패권을 다투고 있고, 아베는 군국주의를 다시 부활시키려는 음모를 꾸미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이들은 우리의 어려운 경제를 더 힘들게 부채질하고 있지 않은가? 이러한 판국에 우리의 경제는 지금 어디를 향해 무엇을 하느냐고 걱정을 하면서 일침을 놓는다.
위정자들이 치산치수(治山治水)를 잘해야 백성들이 격양가(擊壤歌)를 부른다. 치산치수는 정치의 수단이요, 격양가는 경제, 문화의 결과물이다. 국민을 위한 정치력이 나라 경제를 살리고, 국민을 행복한 삶으로 이끈다고 걱정을 하는 작품이다.
머리가 무거워서 숙인 게 아닙니다
손끝이 시려워서 오무린 게 아닙니다
정담을 가눌 길 없어 숨은 듯이 섰습니다
기다려 지친 넋이 꽃으로 태입니다
인종에 매달린 삶 그게 그리 서러워서
눈물을 속으로 태우며 장승처럼 섰습니다
-채규판의 <해바라기>전문
채규판 시인의 두 수로 된 <해바라기>전문이다. 해바라기는 해를 향해 피는 꽃이다. 그래서 향일화(向日花)라고도 한다. 그런데 채규판 시인의 해바라기는 첫수에서 머리를 숙인 채, 손끝을 오무린 채 숨은 듯이 서 있다. 그 까닭은 정담(情談) 곧 마음에서 우러나는 진정한 이야기를 나눌 대상이 없고 따라서 몸을 가눌 길이 없어 숨은 듯이 서 있다고 한다.
둘째 수에서는 해바라기가 해를 향해 고개를 돌리지 못하고 장승처럼 서 있다. 그 까닭은 인종(忍從) 곧 묵묵히 참고 따라야만 할 운명이기에 그것이 서러워 눈물을 속으로 태우며 장승처럼 서 있다는 것이다.
지금 채시인의 해바라기는 정상적인 해바라기가 아니다. 어디 시인만의 해바라기뿐인가? 우리들 모두의 해바라기는 건강하게 서 있는가? 해를 바라보면서 밝게 활짝 피어야 할 해바라기가 이웃과 정담을 나누고 몸을 가눌 길이 없어 숨은 듯이 서 있고, 인종에 매달려 자유를 잃고 눈물을 태우며 장승이 되어 마을 수호신처럼 묵묵히 서 있는 모습이다. 참으로 답답하고 우울한 현상이다.
해바라기가 정담을 나누고 몸을 가눌 수 있도록 토양을 개량하고, 인종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성장을 할 수 있도록 여건을 풀어주어야 한다.
시인은 그의 시작 노트에서 어느 기억의 자리를 오르다보면 살아온 날의 이야기가 간절하게 매달리게 된다고 한다. 화자는 지금 살아온 날의 이야기가 간절하게 매달리는 인종(忍從)의 시간이다. 잠시 검은 구름이 끼는 시간에 멈춰, 그것이 서러워 장승처럼 우두커니 서있는 지경이다.
화자는 이 어두운 분위기에서 빨리 벗어나야 한다. 우리네 삶은 희로애락의 해바라기다. 해가 뜨면 웃고 구름이 끼면 우울하다. 해를 향해 돌아가는 해바라기, 향일화(向日花의 궤도를 찾자.
생존의 무게를 마디마디 쌓았구나
미풍에도 흔들리는 네 작은 숨소리가
청청한 바람이 되어 하늘땅을 비질한다
-한병윤의 <죽림(竹林)>전문
두드려야 내가 살고 울어야 네가 살지
바람을 품에 안고 세상을 울려다오
네 울음 심금을 울려 한과 원을 삭혀 다오
-한병윤의 <고수(敲手)>전문
한병윤 시인의 작품 <죽림>을 보자. 마디마디 생존의 무게를 달고 미풍에도 흔들리는 대숲의 숨소리가 청청한 바람이 되어 하늘땅을 비질한다고 의인화 하고 있다. 대숲의 바람소리는 요란하다. 의태어와 의성어가 함께 작용하여 하늘땅을 비질하는 역동적(力動的)인 자세요 동작하는 모양새다. 생각이 활달하고 스케일이 큰 시편이다.
고수(鼓手)는 북을 치는 사람이다. ‘두드려야 내가 살고 울어야 네가 살지’라고 초장에서 작품의 주제를 긴장시킨다. 초장에서 분위기를 긴장시키면 그 작품은 성공한다. 중장에서 주제를 잇고 종장에서 반복하면서 시의 의미를 한껏 끌어 올려 시원스레 경(境)을 열고 있다. 북을 힘껏 두드려 치면서 한과 원을 삭히고 풀어 달라고 기원한다. 독자에게 위로와 용기와 힘을 갖게 하는 밝고 건강한 작품이다.
그것은 마음 여린 목관 악기 하얀 아픔
흐르는 물에 씻으면 실안개로 사라질 공기
해맑은 오솔길 날아오른 사랑의 화음 그림자
-황다연의 <산울림>전문
도포 입은 유생(儒生)들 한자리 모이는 소리
풀 먹인 모시옷 널어서 말리는 소리
명상의 누각 스치는 하현달 옷자락 소리
-황다연의<대숲소리>전문
황다연 시인의 <산울림>과 <대숲소리> 두 편이다.
황시인은 시조는 물론 현대수필가 100인선에 오를 만큼 중량급 수필가이기도 하다. 작품 두 편 모두 고도의 은유로 구성하고 있다.
산울림을 1) 목관악기 하얀 아픔 2) 실안개로 사라질 공기 3) 사랑의 화음 그림자로 병치은유(竝置隱喩)하고 있다. 산울림이라는 소리를 하얀 아픔과 공기와 그림자로 상상한다. 다시 말하면 산울림을 색깔과, 보이지 않는 공기와 그림자로 상상한 은유가 놀랍다.
황다연의 이러한 은유는 <대숲소리>에서 더욱 깊어진다. 작품 <대숲소리>를 조용히 읽고 음미하면 초, 중, 종장 3장 모두가 은유로 범벅이 된 표현이다. 대숲소리를 1) 유생들 한자리 모이는 소리 2) 모시옷 널어서 말리는 소리 3)하현달 옷자락 소리로 은유한다. 참으로 예리한 관찰, 놀라운 상상이 아닌가?
다만 초, 중, 종, 3장을 ‘소리’로 병치(竝置)시키지만 말고, 초장과 중장을 연결어미로 이으면서 종장에서 의미를 전환(轉換) 또는 비약(飛躍) 또는 반전(反轉)시킴으로 은유의 절정을 이루는 방법을 찾을 수는 없었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이것이 시조에서의 종장(終章)의 비법이요, 시조 특유의 기법이기 때문이다.
다음은 단시조 특집을 보자.
시조는 단시조(單時調)가 기본이며 시조의 묘미를 갖는다. 3장 6구 12소절 45자 내외로 구성된 단수(單首)이기에 고도의 압축과 절제미(節制美)를 갖는다. 이 짧은 단수 안에 우주를 담는다 하였으니 얼마나 정제된 가락인가? 그러기에 단시조를 지으려면 감각적 언어감각을 쌓는 훈련과 치밀한 절차탁마(切磋琢磨)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 각별한 언어훈련과 고도의 기술이 요구된다는 말이다.
막걸리 한 잔에도 세상이 녹아 있다.
보성시장 국밥집 사발 가득 따르며
꼭, 두 손 받들어 마시게 하는 K형의 인생 한 수
-고성기의 <막걸리 한 잔>전문
‘막걸리 한잔에도 세상이 녹아 있다’는 행 속엔 깊은 의미가 들어 있다. ‘막걸리’ 하면 흔히 일반 가정에서 만들고 온 국민이 즐겨 마시는 농주(農酒)로 널리 알려져 있다. 이러한 민속주 한 잔에도 세상이 녹아 있다고 일침을 던진다. 그러면서 보성시장 국밥집 사발 가득 따르며, 꼭, 두 손을 받들어 술잔을 마시게 하는 K형의 주법을 기리고자 하는 멋진 발상이다.
막걸리는 하늘이 내린 겨레의 소중한 전통주요 고향의 향수와 어머니의 손맛이 담긴 고유한 명주(名酒)이다. 때문에 술잔을 두 손으로 거룩하게 받들어 마셔야 한다는 화자의 평소의 생각을 K형의 인생 한 수를 빌어 표현하고 있다. 대대로 이어오는 조상의 향이 담긴 술이기에 경건한 자세로 잔을 두 손으로 받들고 마셔야 한다는 것이다.
이 작품 속엔 우리가 세상을 경외하면서 살아가야 하는 민족의 정기와 윤리와 철학이 내재되어 있다. 향토와 민족정신을 고양시키는 좋은 작품이다.
여기서 종장 첫 3음절 ‘꼭, 두 손’ 에서 ‘꼭’을 강조하기 위해 앞에 놓고 쉼표를 찍었는데 ‘꼭’을 빼고 ‘두 손을’로 표기하여 문맥을 자연스럽게 연결하면 어떨까? 아니면 종장을 다음처럼 3행으로 행갈이 하면 시각적 효과를 극대화할 듯싶다.
꼭, 두 손
받들어 마시게 하는
K형의 인생 한 수
그 섬이 그리운 건 갈매기가 아닙니다
몽돌 밭에 같이 누워 밤하늘 별을 세다
못다 센 별을 두고 온 아쉬움 때문이다.
-김명호의 <그리움>전문
김명호 시인은 아직 젊고 낭만적이어서 좋다. 그 섬에 찾아가 갈매기 나는 모습을 바라보고, 몽돌 밭에 누워 밤하늘에 떠 있는 별을 세고 있으니 얼마나 멋이 있고 낭만적인가? 이제 그 섬에서 돌아와 못다 센 별을 두고 온 아쉬움 때문에 그것을 못내 그리워하고 있음이다.
하 많은 밤하늘의 별을 어찌 다 헤아릴 수 있을까? 몽돌 밭에 같이 누웠던 이는 누구였을까? 갈매기도 좋고 연인도 좋다. 그 멋진 낭만, 잊을 수 없는 추억을 한 수에 담으면서 그리움에 젖는다.
그 섬에 그리운 건 갈매기가 아니라고 극구 부정하는 것은 그때 그 갈매기가 너무 그리워 잊을 수 없음을 반어(反語)로 표현하고 있다.
비바람 몰려오면 몸으로 막아내고
갈바람 입맞춤에 빙그르 도는 낙엽
온종일 묵언의 수행 별 한 모금 삼킨다.
-신미경의 <허수아비>전문
신미경 시인은 들녘에 서서 새를 쫓고 있는 허수아비를 의인화 하여 묵언(默言)의 수행자(修行者)로 묘사한다.
온 종일 물 한 모금 마시지 않고, 비바람 몰려오면 몸으로 막아내고, 썰렁한 갈바람 입 맞추며, 밤에는 별 한 모금 삼키고, 묵언의 수행자가 된다.
여기서 허수아비는 남의 명령에만 따르는 별 볼일 없는 존재가 아니요, 불교에서 스스로의 마음을 정화하기 위해 침묵으로 참선(參禪)하는 불자(佛者)를 말한다.
허수아비를 온갖 번뇌(비바람)를 다스리며 묵언의 수행자, 곧 불자(佛者)로 환치(換置)한 솜씨가 일품이다.
한가위 핑계 삼아 떡값 쬐끔 챙겼는데
용코로 걸렸네요, 된코에 딱 걸렸네요.
설마가 사람 잡아요. 물찌똥도 똥이래요.
-윤상희의 <구시렁구시렁>전문
윤상희 시인의 <구시렁구시렁>전문이다. 구시렁구시렁은 어떤 일이 못마땅하여 군소리를 자꾸 하는 짓을 말한다. 제목부터 익살스러워 호감이 간다. 한가위 명절에 떡값 쬐끔 받아 챙겼는데 그것도 뇌물인가? 용코, 된코 걸렸다네. 설마가 사람 잡네요. 물찌똥도 똥이니까요. 라는 내용이다.
한가위 명절에 떡값 조금 챙긴 것도 정녕 뇌물이거늘 구시렁구시렁 할 것 없이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내용이다.
떡값, 쬐끔, 용코, 된코, 물찌똥 등의 익살스런 언어를 적재적소에 잘 배치하고, 구절 끝에 ‘~요’를 반복하여 작품을 유머로 재미있게 구성한 솜씨가 돋보인다.
마지막으로 겨울 시조단의 작품을 보자.
무려 27명의 작품이 수록되었다. 그중 지면관계로 몇 작품만을 살펴보기로 한다.
연서(連書)를 읽고 있는 소녀의 얼굴이다
살며시 다가온 봄바람이 훔쳐볼까
발그레 상기된 볼에
가득 고인 부끄러움.
답서(答書)에 담고 싶은 절절한 그 마음을
차마 차마 못쓰고 숨겨두는 안타까움
연분홍 애모의 정만
하늘 가득 피어라.
-김성수의 <복사꽃>전문
김성수 시인은 복사꽃을 수줍은 소녀의 얼굴로 의인화 하고 있다. 복사꽃은 3~4월에 활짝 피는 연분홍 꽃이다. 그러기에 부끄러움을 잘 타는 사춘기 소녀로 비유된다.
첫수는 연서를 받고 발그레 상기된 부끄러움이 고인 소녀의 얼굴모습을, 둘째 수는 답서(答書)에 담고 싶은 절절한 그 마음을 차마 못쓰고 숨겨두는 안타까움을 노래한다. 소녀의 애모의 정을 연분홍 복사꽃에 환치한 모습이다.
여기서 ‘연서(連書)’는 ‘연서(戀書)’의 한자 표기 오류요, ‘차마 차마’는 ‘차마’ 한번으로 문장이 되는데 두 번 반복 처리되었다. 강조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반복하였을까? 아니면 교정에서의 착오일까? 때문에 퇴고(推敲)와 교정(校訂)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새삼 느끼게 한다.
가소서, 가려움도 아픔도 없는 곳으로
가시는 길 외로울까 사랑했던 기억만 모아
흐벅진 꽃수레 만들어 태워 보내드립니다.
바람은 수레 끌고 흰 구름은 호위하고
노랑턱멧새 한 쌍 함께 태워 보냅니다
그 나라 도착하시면 새들 돌려보내세요
내 농원 매실 숲에 멧새울음 퍼지면
어머님 보내주신 안부인줄 느끼며
첩첩이 쌓인 설움덩이 훌훌 털어낼게요
-나순옥의 <가소서>전문
나순옥의 세 수로 된 연시조로 어머님을 꽃수레에 지극정성으로 모시는 영결(永訣)의 서러움을 멧새 울음으로 비유한 작품이다.
첫수에선 마지막 저승으로 가시는 어머니를 흐벅진(=푸지고 만족스럽게) 꽃수레에 모신다 하였고, 둘째 수에선 바람은 수레를 끌고 흰 구름은 호위하고, 외로울까봐 멧새 한 쌍까지 함께 태워 보내고, 마지막 수에선 멧새 울음 울면 보내주신 안부인 줄 느끼며 설움을 그만 털어낸다고 마친다.
호상(好喪)인지 아니면 애상(哀喪)인지는 모르나 어머니를 마지막 저 세상으로 보내드리는 절절한 서러움을 곡진(曲盡)하게 묘사하고 있다.
세 수로 된 연시조(連時調)가 각각 독립된 소주제로 연결하면서 전체 주제를 하나로 통합하고 있는 가작을 본다.
고향 언덕 양지쪽에 한가로이 맞아주던
향기 짙은 금빛 얼굴 날아오는 벌은 없고
차가운 무서리 밟고 그 누구를 기다리나
빈집 많은 산골동네 산 밑에 외딴 집은
문짝도 넘어진 채 허물어진 흙돌담 옆에
산국(山菊)이 계절을 안고 시향객(時享客)을 반겨준다
-박용하의 <山菊>첫수와 마지막 수
박용하 시인의 <산국(山菊)> 첫수와 마지막 수이다. 지금 박 시인은 차가운 늦가을 무서리를 밟고 고향 언덕에서 금빛 얼굴, 산국과 대화를 나누고 섰다.
가끔은 빈집이 서 있는 산골동네 외딴집, 문짝도 넘어진 채 허물어진 흙돌담 옆, 국화 한 그루가 시향객(時享客)을 반겨주는 산촌(山村)의 쓸쓸한 정경을 그려내고 있다.
산촌마을은 쓸쓸하다. 젊은이들은 도시로 훌쩍 떠나고, 무너져가는 흙돌담 옆에 산국이 빈집을 지키고 있다. 조락의 계절 산촌마을의 허전한 풍경화 한 폭이다.
늦겨울 꼬리 잡혀 끌려온 이른 봄날
향기로 담은 마음 봉긋하니 꽃술 채운
끝 추위 달래가면서 자궁 문을 여는 소리.
-송귀영의 <춘매>전문
춘매(春梅)는 봄을 가장 먼저 알리는 꽃이다.
송귀영 시인은 춘매 한 그루에서 향기를 뿜는 봉긋한 꽃술을 바라보며 그것을 자궁 문을 여는 소리로 의인화 한다. 여기서 ‘자궁 문’은 태아가 착상하여 자라는 몸속의 기관으로서 새 세상이 열리는 문을 비유한다.
따라서 ‘자궁 문을 여는 소리’는 매화가 봉긋하게 꽃술을 채우는 모습에서 소리 까지를 듣는 한 굽 높은 감각적 표현이다. 관음(觀音)과 청음(聽音)이 융합된 공감각(共感覺)의 경지에 이르고 있음이다.
석우의 시혼이 불꽃으로 타오른다
정직한 시심이 파랗게 돋아 있다
바위를 뚫어댄 열정 장미꽃을 피운다.
평생을 가꾸어 온 <시조문학> 깊은 뿌리
커다란 가지 키워 삼천리 덮고 있다
빛으로 그림자 내려 천 년 더 이어가리.
-신강우의 <김준 시조비>전문
신강우의 <김준 시조비>전문이다.
김준 시조비(時調碑)는 2017년 4월, 김준 박사의 고향 정읍, 불우헌 시비, 가사비 옆에 그의 후학들이 뜻을 모아 세운 것으로 알고 있다.
첫수에서는 석우(石牛)의 시혼이 바위를 뚫는 열정으로 장미꽃을 피운다 하였고, 둘째 수에선 평생을 가꾸어 온 <시조문학>이 빛과 그림자로 천 년을 더 이어가라고 찬양한다.
신강우 시인은 석우의 불꽃같은 시혼과 뜨거운 열정을 기리고 <시조문학>이, 이 땅에서 영원토록 이어지기를 기원하고 있다.
이리 와 우리 서로 손 한 번 잡고 싶어
아니야 그건 안 돼 쭉 뻗은 평행선에
마음만 얹어 놓고서 바라보며 살아가자
-양계향의 <철길>전문
양계향 시인의 단시조 <철길>이다. 철길은 영원히 만날 수 없는 운명, 평행선이다. 우리 서로 손 한 번 잡고 싶다고 해도 안 된 다고 한다. 그러니 마음만 얹어 놓고 바라보며 살잔다. 철길의 속성을 이해하고 그 의미를 살려 대화체로 잘 표현한 시조의 진수를 본다.
남과 북의 운명이 바로 철길이었다. 한겨레 한 핏줄이면서 70년을 서로 반목하며 갈등하면서 살아왔다. 아니 피를 흘리며 싸웠다.
2017년 동계올림픽을 계기로 남과 북은 물꼬가 트기 시작하여 이제 막힌 DMZ가 열리고 철길이 이어졌다. 바야흐로 한반도엔 봄이 오고, 꽃이 피기 시작한다. 우리 모두 마음을 활짝 열고 뜨거운 손과 손, 한 번 잡아보자.
남들은 저속하다 코웃음을 칠지라도
쟁이도 천직으로 고맙게만 살아간다.
하늘이 저기 뵈는데 예서 말 수 없다고,
자동차 4차선은 놀이터 기본이고
시멘트 콘크리트 신도시는 삶의 터전
껴안고 기어오른다. 얼키설키 얽혀서
요새는 아파트도 고층이 인기라고
산마을 달동네에 허리 굽은 엄니 투정
판잣집 피난민촌이 무색하게 됐다나.
-유승식의 <담쟁이덩굴>전문
유승식 시인의 <담쟁이덩굴>전문이다.
담쟁이는 무작정 높은 곳을 향하여 기어오르는 선천성을 가진 식물이다. 우리 인간도 어찌 보면 담쟁이와 무엇이 다를까? 우리네 삶을 담쟁이덩굴에 비유하고 있는 작품이다.
첫수에서는 남들은 저속하다고 코웃음을 칠지라도 하늘이 저기 뵈는데 여기서 멈출 수 없다고 더 높이 오르려고만 하고, 둘째 수에서는 신도시가 삶의 터전이라고 서로 얽혀서 시멘트 콘크리트 벽을 껴안고 기어오르며, 셋째 수에서는 아파트도 고층이 인기라고 산마을 달동네 엄니가 투정을 부리고 있다.
요즘 현대인들이 신도시로 몰려가고 고층 아파트를 선호한다. 이러한 인간의 심리를 야유하고 비판한다. 어찌 인간이 담쟁이덩굴처럼 옆은 보지 않고 무작정 고공행진만 하려는가? 화자는 이를 우려하고 있다.
정(釘)소리 파문 지는 달빛에 녹은 그림자
보고프면 그리워하고 잊히면 잊고 사는
먼 훗날 잔잔한 영지(影池) 수련으로 뜨리라
-윤진옥의 <무영탑>전문
쪽빛 무명 폭에 달디 단 핏물이 밴
새들의 금빛 음표 툭, 힘찬 날개 짓에
농익은 아찔한 낙하 만삭의 몸을 푼다
-윤진옥의 <홍시>전문
윤진옥 시인의 <무영탑>을 보자. 무영탑은 경주 불국사 경내에 있는 국보 제21호 석가탑(釋迦塔)의 다른 이름이다.
한국불교설화에 전해오는 이야기로 석가탑을 창건할 때 신라의 김대성(金大城)은 백제의 뛰어난 석공 아사달을 불러 탑을 쌓도록 한다. 이때 아사달의 아내 아사녀는 낭군이 돌아오지 안차 불국사 경내에 까지 와서 만나려 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영지(影池)에 비치는 탑을 쌓는 낭군의 그림자라도 보려고 연못에 몸을 던진다. 그러나 영지에는 끝내 완성된 석가탑과 낭군의 그림자는 나타나지 않는다. 그 후 석가탑을 무영탑(無影塔)이라 하였다.
윤 시인은 이러한 아사달과 아사녀의 애처로운 사랑이야기를 소재로 작품을 구성하고 있다. 영지에 끝내 나타나지 않는 석가탑을 화자는 작품 종장에서 ‘먼 훗날 잔잔한 영지(影池) 수련(睡蓮)으로 뜨리라’고 기원하고 주제를 멋지게 살려 마무리한다.
다음은 작품 <홍시>를 보자.
시인은 지금 가지에 매달린 홍시가 새의 날개 짓에 아찔하게 땅에 떨어지는 모습을 카메라에 포착하고 그것을 만삭의 몸을 푼다고 활유(活喩)하고 있다. 그 관찰력이 날카롭고 표현이 대담하다. 주목할 만한 대목이다.
그러나 여기서 중장 ‘새들의 금빛 음표 툭, 힘찬 날개 짓에’의 대목은 쉽게 이해되지 않는다. 주술관계가 애매하여 어법상 매끄럽지 않다. 이러한 대담한 표현 기교는 장점이자 그것이 단점이 될 수도 있음을 알아야 한다.
이상 시조문학 겨울호에 실린 작품 몇 편을 살펴보았다. 대체로 계절 변화에 따른 자연을 예찬한 작품이 많았다. 정치, 경제, 세상사를 짚어보면서 현실을 걱정하기도 하고, 지나온 삶을 돌이켜 인종(忍從)했던 시간을 안타까워한다. 북을 신나게 두드려 스트레스를 풀기도 하고, 막걸리 한잔 술에 인륜(人倫)의 도를 띄우기도 한다. 허수아비를 묵언의 수행자(修行者)로 환치하고, 한가위 명절에 떡값 쪼끔 챙기고 구시렁거린다.
소녀의 수줍은 얼굴을 복사꽃으로 비유하고, 흐벅진 꽃수레에 태워 어머니를 하늘나라에 지극정성으로 모시는 장송곡(葬送曲)이 독자를 울린다. 이른봄 춘매향이 자궁 문 여는 소리를 화자가 듣기도 하며. 대책 없이 하늘로만 치솟는 현대문명을 담쟁이덩굴로 비유하면서 야유하고 걱정한다.
지금 한국시조단에는 현대시조의 DNA를 고시조에서 찾아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철저하게 그 정형(定型)을 준수하자는 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그 일환으로 기관에서 발행하는 시조전문지에 정형을 지킨 작품만을 수록한다.
그런가 하면 현대라는 시대적 감각을 폭넓게 수용코자 하는 시인들의 개성과 자율성을 존중하고 이에 따라 시조의 정형에서 다소의 융통성 있는 변화를 허용할 수 있다는 의견도 만만치 않다.
이렇듯 나름대로 근거가 있는 두 논의를 지켜보면서 앞으로 더욱 활발한 연구와 토의를 거쳐 바람직한 미래의 시조상(時調像)이 정립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그러면서 시조의 국민화, 시조의 세계화를 위한 구체적인 작업이 이루어지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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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