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은 알프스 … 고요 속에 마주한 수도승들 자취
천년의 흔적 담은 예술·신앙 … 그 안에 깃든
영혼의 울림
꽁꽁 언 빵 먹으며 고행의 길 간 그들, 순례 의미 깨닫게 해
오스트리아 수도원 지도에 점점이 박힌 수도원 중 가톨릭신문사 수도원 순례단이 방문한 곳은 일부이다. 겨울순례는 폭설에 길이 막힐 수도
있다. 깊은 알프스 계곡에 위치한 라인과 포라우 길은 눈도 추위도 없었다. 고요와 고독 속에서 하느님을 만나는 산중 수도원에서 순례단은 영혼의
맑음과 깊이를 더하고 고요한 밤 거룩한 밤 기념 경당에서 합창하며 다시 성탄의 기쁨으로 순례의 절정을 치달렸다.
■ 부르심의 활기, 하일리겐크로이츠
유명한 빈 숲 속 시토회
하일리겐크로이츠 수도원에 도착하자 TV 다큐멘터리팀이 취재 중이다. 하얀 수도복에 검은 스카풀라를 착용하는 시토회는 은수적 수도회로 매우
소박하며 성 베네딕토 회칙을 기초로 단식, 침묵, 단순노동 등을 엄격하게 준수한다.
1133년 설립된 이곳은 기도가 끊어진 적이
없다. 히틀러도 나폴레옹도 사라센도 들어오지 못한 비엔나신앙의 뿌리이며 영혼의 안식처인 성십자가 수도원, 1182년 성십자가 조각 전시 후
회개와 우도의 고백은 계속된다. 한국순례단은 경배하며 성 금요일의 마음으로 영성체하며 무수히 나누어진 부활의 빵을 모신다.
낮은
데로 임하시는 임의 모습으로 사는 마흔 명이 넘는 수사가 바치는 낮기도. 절반은 젊은 수사라 영적 풍요 속에 웅장하고 힘차고 거룩한 정오의
그레고리오 영광경에 잠겨 무수히 허리 굽혀 절하는 수사들. 깊고 고요한 세상에서 아름답고 선하고 가치 있고 참된 것을 향하여 자유를 찾은
수도승들, 지도신부님은 그것이 진정한 자유요 해방이라신다.
33년을 여기서 살며 바로크 화려한 삼위일체탑과 여러 작품을 남긴
지오반니 줄리아니는 하느님께 사로잡혔다. 기품어린 회랑은 냉엄하고 고고하며 예술가가 만든 생명의 샘에서 졸졸 흐르는 물소리는 수도원의 쉼 없는
정신을 깨운다.
1802년 설립한 수도원 신학 철학 대학에는 238명의 신학생이 있고, 거룩하고 화려한 성화와 조각들의 바로크
성당과 제의실에는 수백 년 영혼의 울림을 주는 예술과 신앙의 장관을 보여준다. 1825년 슈베르트가 두 작품을 초연한 오르간은 1804년 제작된
오스트리아 최대의 것이다. 기도와 침묵으로 81세의 줄리아니가 만든 가대는 혼신을 다한 그의 마지막 작품이다.
유명한 성가대와
귀중한 문헌을 소장한 도서관, 800년간 오스트리아 음악의 중심이 되고 수도원 최초로 인터넷 선교를 집중적으로 전개한 하일리겐크로이츠는 유럽에서
가장 활동적인 부르심의 수도원이다.
■ 아름다운 포라우 골짜기 수도원
공동생활규칙을 바탕으로 세 가지 서원을 하며
초기교회 사도들을 모범으로 삼는 아우구스티노회 수사들은 모두 사제들이다. 가정학 전문학교와 피정의 집을 운영하는 15개 첨탑과 빨간 지붕의
포라우 수도원은 지난 밤 내린 비에 말갛게 씻긴 대기 속에 푸른 하늘과 흰 구름 아래 아름답게 서 있다.
1163년 설립한 수도원은
소실, 1660년 복원, 90년 동안 꾸민 내부는 정교한 나무상감과 날아오를 듯 생생한 천사 조각상만 900점, 당시 부와 신심을 보여주는
2.5㎏ 순금장식과 제의실 등 총체적 바로크예술의 빈틈없는 집합체이다.
아우구스티노회 포라우 수도원에는 16분이 생활하는데 작업복
차림의 젊은 수사와 노 수사 둘이 드리는 정오기도는 맑고 밝아 하늘빛을 닮았다. 경건하게 손 모으는 기도시간, 잠시 지나더라도 여운은 길어
찬미가락은 저미도록 일상에서 떠오른다. 정원에서 만난 눈부신 햇빛은 기도의 화답송인 듯. 분홍빛이 들어간 수도원은 밝고 화사하고 봄처럼 곱다.
온 세상이 찬미를 드리는 푸른 하늘빛에 잠기는 포라우, 방어용 첨탑과 해자와 강철로 된 큰 문의 수도원은 대자연의 향연과 수사들의 기도로 알프스
산속 믿음의 기둥으로 우뚝하다.
■ 유서 깊은 라인 수도원
해발 1010m 고지 알프스 고개를 넘어 찾아간 유서
깊은 라인에 1129년 레오폴드는 바바리아 베네딕도회 수사들을 데려왔다. 수백 년 역사가 예사로운 라인 수도원은 시토회가 설립한 서른여덟 번째
수도원이며 현재는 가장 오래된 시토공동체로 한국팀은 처음 방문한다.
1400여 년 전 여자와 노예는 일만하고 남자들은 철학과 전쟁을
하던 시대에 베네딕토 성인은 ‘남자여, 일하라, 손을 더럽히라’며 수사들에게 일하고 기도하고 성독하게 하여 노동에는 품격을, 유럽문화에는 큰
영향을 준다. 도서관으로 오르는 계단 벽에는 시토회 활동지역 지도가 있고 가장 많은 곳은 10개의 공동체가 있는 베트남이며 한국에는 아직
창설되지 않았다. 수사님은 짐승을 먹여 양피지를 만들었다며 깃털과 갈대, 빨대와 철필을 사용한 옛 필기구를 들고 볼펜을 내민다. 1400년 전
보리수껍질 잉크를 수도원 김나지움 화학 교사가 옛 방식으로 만들어냈다.
“책의 가치는 이렇게 펴서 읽는 것”이라며 중세의 책을 펼쳐
보인 10만 권 장서의 도서관은 인류의 보고로 지역 발전에 끼친 공적은 대단하다.
유네스코 문화유산인 라인 수도원은 오래된 벽과
그림, 고서들과 조각품과 회랑과 계단까지 그윽한 운치를 품고 순례자의 영혼과 정서와 머리를 휘황하게 한다
1100년대 정원을 지나
아름다운 성모경당에서 순례단은 ‘자모신 마리아’를 정성껏 바친다. 성모님의 눈은 따스하고 엄마 머리칼을 잡은 아기는 기쁜 샘물이 된다. 고딕풍의
성모상은 움직임이 있다. 저녁기도인 듯 바람이 지난다. 알프스 깊은 산중, 혹독한 겨울을 하느님과 함께 사는 수사들, 꽁꽁 언 빵을 먹으며
고행의 길을 간 그들은 순례의 길을 알려준다.
■ 하느님의 사랑 마리아 젤 수도원
수도사 막뉴스는 1157년 은총의 성모상을
모시고 첼리탈 산속으로 들어온다. 큰 바위가 가로막자 기도로 바위를 부수고 그 위쪽에 성모님을 모신 작은 방 마리아 젤을 짓는다. 순례자들이
찾고 많은 기적이 일어나며 종교분열 후 합스부르크 왕가가 국립성모성지로 선포한 후 오스트리아 최고의 성모성지가 된 마리아 젤에 복자 요한 바오로
2세와 교황 베네딕토 16세도 순례하였다.
성지가 보이는 고개 위에 있는 마리아 젤 가르멜 수도원은 2층 작은 집으로 소박하다.
아늑한 성당에서 원장수녀님은 자신이 만든 토실하고 예쁜 아기와 구유를 보라며 맑고 밝게 웃는다. 별다른 예술품도 장식도 없이 12명의 수녀가
하늘나라의 확신으로 사는 이곳은 하느님의 온전한 사랑을 순례단에게 전한다. 가느다랗게 합해지는 저녁기도는 봉쇄의 벽을 넘어 스펀지의 물처럼
스며든다. 풍요로운 사회에서 행복을 모르는 사람들과 가난한 산 위에서 기쁘게 사는 수녀들. 성소자가 없어 한국순례단의 젊은이에게 입회를 권한다.
마리아 젤 은총의 성모님께 오늘 저녁은 성소를 위해 기도하자고 순례자들은 말한다. 가난한 수녀의 기도가 세상의 기쁨이 되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