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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8회 여호 7장-11장
여호 7,1-26 아칸의 죄와 그 결과
“이스라엘 자손들이 완전 봉헌물과 관련하여 죄를 지었다. 유다 지파 제라의 증손이고 잡디의 손자이며 카르미의 아들인 아칸이 완전 봉헌물을 차지하였던 것이다. 그리하여 주님께서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진노를 터뜨리셨다”(1).
아칸은 “완전 봉헌물에 관련하여” 죄를 짓는다. 이는 2절부터 전개되는 아이(Ai) 성 공격이 실패한 원인에 대한 설명으로서, 곧 그 원인이 하느님께 바친 완전 봉헌물(헤렘)으로 인한 범죄임을 밝혀주고 있다. 예리코 성은 하느님께 온전히 바쳐진 가나안의 첫 열매가 된 성으로서(6,17), 그 바친 물건을 취하면 이스라엘 백성 전체가 화를 당하게 된다는 경고도 이미 주어져 있었다(6,18).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하느님의 엄한 경고를 무시한 것은 단순한 범죄가 아니라, 하느님의 명령을 무시한 엄청난 범죄 행위였던 것이다. 한편 여기서 '죄를 지었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마알'은 대체적으로 하느님을 거역하고 배반하는 범죄 행위를 뜻할 때 사용되는 단어이다.
“주님께서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진노를 터뜨리셨다” 여기서 '주님의 진노'는 범죄한 아칸 한 사람만이 아닌 이스라엘 백성 전체에게 미치는 것으로 명시되어 있음을 중시할 필요가 있다. 그 결과 아칸의 범죄는 아이 성 정복에 실패를 가져오게 했고, 이스라엘 온 백성을 큰 비탄에 빠지게 하였다(4,5절). 한 사람 아칸의 범죄가 어떻게 이스라엘 백성들 전체에까지 영향을 줄 수 있는가에 대해 많은 논란이 있지만, 그것은 하느님 앞에서 이스라엘이 유기적(有機的) 통일체임을 알면 쉽게 이해된다. 즉 이스라엘 민족은 순수한 '혈연 공동체'였을 뿐만 아니라, 한 분 하느님을 모시는 '계약 공동체'였고, 아칸은 이 공동체의 일원이었다. 따라서 아칸 한 사람의 범죄는 곧 이스라엘 전체의 범죄가 된 것이다. 이는 마치 한 지체(肢體)의 고통으로 온 몸 전체가 고통 받는 것과 같다.
2절에 나오는 지역인 베텔(하느님의 집)은 예루살렘 북쪽 약 19km 지점에 위치하며 팔레스틴 남북(南北) 대로의 경계를 이룸과 동시에 요르단 건너편 서쪽에서 예리코를 지나 지중해에 이르는 동서(東西) 교통의 요충지였다. 따라서 이 성읍은 구약 성경에 65번이나 언급될 정도로 중요한 곳인데, 족장 시대 때에는 '루즈'란 명칭으로 불리웠다(창세 28,19). 가나안 정복 후 이곳은 베냐민 지파의 지역이 되었는데, 판관 시대에는 오랫동안 법궤가 안치되기도 했던 곳이다(판관 20,26; 1사무 10,3). 사무엘의 활동 중심지이기도 했던 이곳은(1사무 7,16), 그러나 여로보암 당시에는 금송아지 제단이 세워져 우상 숭배를 한 곳으로 유명하기도 했다(1열왕 12,28-13,5). 그 후 바빌론 군대에 의해 철저히 파괴된 이곳은 후일 포로 귀환 후 베냐민 자손에 의해 재건되기도 했다.
카데스에서 모세가 처음 가나안에 정탐꾼을 파견했을 때, 여호수아는 자신이 직접 정탐꾼으로서 활약했었다. 그런데 모세와 마찬가지로 여호수아도 처음 예리코 성을 점령 할 때 먼저 정탐 전략을 사용하였고(2장), 지금의 아이 성 점령을 위해서도 정탐꾼을 보내는 전략을 사용하였다. 아이 성의 주민은 12,000명이었다(8,25: 따라서 싸움에 출전할 수 있는 장정은 대략 3,500-4000명 가량 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정탐꾼들이 아이 성이 예리코 성과는 달리 해발 800m 가량의 산지(山地)에 위치하고 있다는 점과 인근 베텔의 군사들과 합동 작전을 펼 가능성이 있다는 점(8,17) 등을 고려하지 않고, 단순히 이스라엘 군사 2,000-3,000명 만으로도 충분히 이길 수 있다고 한 것은 분명 상대를 얕잡아 보고 이스라엘 군대의 힘만을 믿은 교만심의 발로였다. 즉 요르단 동편 아모리 두 왕의 진멸사건(2,10), 요르단 강 도하 사건(3장), 예리코 성 정복 사건(6장) 등 지금까지의 연전연승만을 믿은 지나친 자만심에서 나온 잘못된 보고였다. 물론 아이 성 전쟁 실패의 근본적 요인이 아칸의 범죄 때문인 것은 사실이지만(1절), 이들의 자만심 또한 실패의 한 요인으로 분명 작용했을 것이다.
“아이 사람들은 그들 가운데에서 서른여섯 명을 쳐 죽이고, 성문 앞에서 스바림까지 뒤쫓아 가 내리막에서 그들을 쳐 죽였다. 그러자 백성의 마음이 녹아내려 물이 되어 버렸다”(5). 이들 36명의 이스라엘 용사는 지금까지의 모든 전쟁에서 기록된 이스라엘의 유일한 사상자로서 이들이 죽게 된 것은 이스라엘의 자만심에 정당한 결과였지만, 그 근본적 원인은 하느님께 '바친 물건'(6,17)을 범한 아칸의 죄 때문이었다(1절).
여호수아는 아이 전투에서 36명의 죽음을 듣고 옷을 찢었다. 유대인의 의복은 흔히 통으로 짠 것이어서 가슴 부분의 옷깃을 잡고 좌우로 당기면 찢어지도록 되어 있었다. 그런데 이처럼 자신의 옷을 찢는 행위는 극도의 고통이나 번뇌에 사로잡혔을 때 취해지곤 했던 극한 슬픔의 표시였다(창세 37,34). 한편 여기서 여호수아는 전쟁의 패인을 숫적 열세라든가 작전 미숙 등 다른 곳에서 쉽게 찾을 수도 있었고, 아니면 이번 전투의 패배를 거울 삼아 더욱 병력을 증강하여 아이 성 군대에 곧장 반격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여호수아가 이토록 고통스러워 하고 큰 슬픔에 빠진 이유는 전쟁의 승패를 떠나 하느님의 손길이 이제 이스라엘을 떠났다는 것을 직감했기 때문이다. 즉, 항상 승리케 함으로써 가나안 땅을 이스라엘에게 주실 것이라고 하셨던 하느님의 거듭된 약속(1,3-6)과는 달리 전쟁의 결과는 참담한 실패였던 것이다. 이와 같이 약속과 결과가 일치하지 않을 때, 여호수아는 하느님이 이제 이스라엘을 싫어하여 당신의 약속을 철회하셨기 때문에 이스라엘이 전쟁에 실패하였다고 결론지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주님, 죄송합니다. 이스라엘이 원수들 앞에서 등을 돌려 달아났으니, 제가 이제 무슨 말을 하겠습니까?”(8). “제가 무슨 말을 해야 하겠습니까”라는 질문은 이어 나오는 9절과 연결시켜 이해하여야 한다. 즉 주님의 군대 이스라엘이 가나안의 대적들에게 패주한 것은 결국 주님의 거룩한 이름을 더럽혀진 결과 밖에는 되지 않는데, 그 사실을 어떻게 이해할 수있겠는가?라는 의미이다. 달리 말하면, 이스라엘이 대적 가나안 부족에게 패배한 것은 하느님께서 그렇게 하신 거나 다름없지 않느냐는 호소이다. 이처럼 여호수아는 지금 자신의 평판에 대해서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거룩하신 이름이 대적 가나안 부족에게 행여 멸시 당하지는 않을까라는 바로 그 사실을 염려하고 있었던 것이다.
“10주님께서 여호수아에게 말씀하셨다. “일어나라. 어찌하여 그렇게 엎드려 있느냐? 11 이스라엘이 죄를 지었다. 내가 그들에게 명령한 계약을 어기고 완전 봉헌물을 차지하였으며, 도둑질과 거짓말을 하면서까지 그 물건을 자기 기물 가운데에 두었다”(10-11).
“이스라엘이 죄를 지었다”라는 말씀은 이스라엘이 하나의 유기적인 계약 공동체라는 차원에서 1절과 마찬가지로 개인의 범죄를 이스라엘 백성 전체의 범죄로 규정하고 있는데, 이 다음 문구에서 1절에서는 설명되지 않은 범죄의 구체적인 내용이 지적되고 있다. 하느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이 당신의 뜻을 거스리는 죄를 범하는 것을 결코 용납하시지 않았다. 이스라엘 백성이 이집트 탈출 후 곧장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하고 40년 동안 광야를 방황한 실패의 생활을 한 것도 바로 하느님의 뜻을 거스린 죄 때문이었다. 그러므로 하느님께서는 칼렙과 더불어 이집트 탈출과 광야 생활을 경험한 유일한 생존자로서 이사실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 여호수아에게 아이 성 전쟁 실패의 원인도 바로 당신의 뜻을 거스린 죄에 있음을 깨우치고 있는 것이다.
“내가 그들에게 명령한 계약을 어기고 완전한 봉헌물을 차지하였으니” 즉 하느님께 바친 물건을 취하면 화를 당할 것(신명 7,26)이라는 금지 규정을 어긴 것을 말한다. 이것은 단순한 죄가 아니라, 하느님의 진노를 불러 일으킬만한 신성 모독죄였다.
“아칸이 완전 봉헌물을 차지하였던 것이다” 여기서는 아칸의 범죄에 대해 일반적으로 언급되어 있으나, 구체적인 범죄 내용은 21절에 나타나 있다. 비록 이스라엘 백성은 그의 범죄를 보지 못했으나 하느님께서는 똑똑히 보셨다. 이를 통해 우리는 사람을 속일 수 있을지 몰라도 하느님은 결코 속일 수 없다는 사실을 철저히 깨달아야 한다. “제가 전리품 가운데에 신아르에서 만든 좋은 겉옷 한 벌과 은 이백 세켈, 그리고 무게가 쉰 세켈 나가는 금덩어리 하나를 보고는 그만 탐을 내어 그것들을 차지하였습니다. 그러고서는 제 천막 안 땅속에다 은을 밑에 깔고 숨겨 두었습니다”(21).
“여호수아가 말하였다. ‘네가 어찌하여 우리를 불행에 빠뜨렸느냐? 오늘 주님께서 너를 불행에 빠뜨리실 것이다.’ 그러자 온 이스라엘이 그에게 돌을 던져 죽이고, 나머지 것은 모두 불에 태우고 나서 그 위로 돌을 던졌다”(25).
‘불행에 빠트리다’에 해당하는 히브리 말(아카르)은 이미 6,18에 나온 바 있다. 이는 처벌의 장소인 아코르와 발음이 비슷하다. 그리고 온 이스라엘이 아칸에게 돌을 던진 것이 아니라 그와 함께 끌려온 가족들 모두를 가리킨다. 옛날 관습에 따르면 죄인만이 아니라, 그의 온 가족도 함께 처벌을 받아야 한다. 그러나 후대의 법은 그러한 관습을 폐지시킨다(신명 24,16; 예레 31,30; 에제 18,4). 그리고 “나머지 것은 모두”란 아칸이 훔친 물건, 그리고 집짐승을 비롯한 그의 모든 재산을 가리킨다.
여호 8,1-29 아이를 점령하다
“주님께서 여호수아에게 말씀하셨다. ‘두려워하지도 말고 겁내지도 마라. 일어나 모든 병사를 거느리고 아이로 올라가거라. 보아라, 내가 아이 임금과 그 백성과 성읍과 그 땅을 네 손에 넘겨주었다”(1).
“두려워하지도 말고 겁내지도 마라” 모세 사후 하느님께서는 여호수아에게 가나안 정복의 대업(大業)을 맡기시면서 같은 말을 하셨는데(1,6,7, 9), 지금 아이 성 공략을 앞두고 있는 여호수아에게 용기를 주기 위해 다시 한번 이 말을 반복해 주시고 있다. 실로 아이 성 공략의 예상밖의 실패로 낙심하고 있을 여호수아에게 그 성을 다시 공격할 수있도록 새로운 용기와 자신감을 불어 넣어 주는 것은 반드시 필요한 일이었던 것이다. 다시 말해 “두려하지도 말고 겁내지도 말라”하는 말은 예언자나 사제가, 또는 주님 자신이 관례적으로 선포하는 구원 신학의 전형적인 정신이다. 이 문구는 거룩한 전쟁 의식에 사용되기도 한다.
“모든 병사”의 직역은 “전쟁의 백성 전체”라고 말할 수 있다. 1차 아이 성 공략 때 정탐꾼들의 자신만만한 보고(7,3)만을 믿고 3천명 정도의 병사들만을 파견함으로써 뼈저린 실패를 경험했던(7,4) 여호수아에게 하느님께서는 이제 충분한 숫자의 병력을 투입하도록 명령한다. 물론 이 말이 이스라엘의 군대 병력 60만명 모두를 가리킨다고 볼 필요는 없다. 다만 이스라엘 모든 지파 가운데서 고루 선발된 군사 삼만명으로, 아이 성 주민을 정복하는데 충분한 수효를 가리키는 말로 이해하면 될 것이다.
“아이로 올라가거라”에서 '올라가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알라'는 성읍의 높고 낮은 위치에 관계없이, 통칭 적군이 성읍에 대해 군사적 공격을 개시할 때 사용되는 관용적인 표현이다. 따라서 이 말을 '아이를 공격하라'로 번역할 수 있다.
아이 성 전투는 흥미진진하다. 야음(夜陰)을 틈 타 여호수아는 일단의 부대를 파견하여 아이성 서편에 매복 시켰다. 다음 날 아침 여호수아는 주력 부대를 이끌고 아이 성 동쪽에서 공격을 개시하였다. 지난 번 전투(7,4,5)로 득의만만해진 아이 성의 왕은 성문을 활짝 열고 나와 맹렬한 기세로 여호수아 군대를 반격했다. 그러자 여호수아 군대는 패하는 체하고 거짓 후퇴 작전을 펼쳤다.
“아이와 베텔에서는 한 사람도 남김없이 모두 성읍에서 나와 이스라엘을 쫓아갔다. 그들은 성읍을 열어 놓은 채 이스라엘의 뒤를 쫓아간 것이다”(17). '아이'(Ai) 전쟁과 관련하여 갑작스럽게 '베텔'(Bethel)이 언급되고 있다. 그런 이유로 70인역(LXX)은 '베텔'을 생략해 버렸다. 그리고 조긴은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으로 보고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모른다고 하였다. 실제 가나안 정복 전쟁에 관한 기록을 살펴볼 때 '베텔'의 정복에 관한 충분한 설명이 없어 해석하기 어려운 점도 있지만, 그러나 12,16을 보면 '베텔'이 여호수아에 의해 정복된 여러 성들 가운데 하나로 분명히 언급된 점으로 보아, 위의 학자들의 견해와는 달리 '베텔' 역시 이스라엘 군의 추적에 '아이'와 더불어 연합 전선을 폈던 것으로 추정된다(L. Wood). 즉 '아이'에서 도보로 불과 3시간 정도의 거리에 위치하였던 '베텔'은 승승장구하는 이스라엘에 간담이 녹을 정도로 두려움을 느끼고 있었던 터라 이 기회에 이스라라엘을 완전히 섬멸하고자 '아이' 전쟁에 적극 동참하였을 것이다. 또는 자력으로는 자기 성읍을 방어할 능력이 없었던 소도시 '베텔'이 '아이'의 속국으로서 군사를 모두 제공했는지도 모른다.
“성문을 열어 놓은 채”라는 말에서 고대 전쟁에서 한 성읍의 성문(城門)은 그 성읍의 존망과 밀접히 연관되어 있다. 즉 성문을 지키느냐 아니면 성문이 뚫리느냐에 따라 성읍의 운명이 좌우됐던 것이다. 따라서 아무리 작은 성읍이라도 성문의 빗장을 굳게 잠그고 철저히 방어 작전을 펼친 다면, 상대방 군대는 그 성문을 뚫기 위해 많은 희생을 감수해야 했다. 그런데 아이 성은 스스로 성문을 열고 뛰쳐나왔으니 그들은 스스로 무덤을 판 것이나 다름 없었다. 그들이 그처럼 무모한 행동을 한 이유는 자만심 때문이었다. 즉 이집트의 손아귀를 벗어났을 뿐만 아니라, 요르단 동편의 아모리 부족을 정복하고, 요르단 강을 건너 예리코 성까지 간단히 무너뜨린 이스라엘 군대를 자기들이 손쉽게 꺾었다는 자만심 때문이었던 것이다. 결국 아이 성 2차 전투는 "교만은 아니라"(잠언 16,18)는 교훈을 남긴 채 아이의 철저한 패망으로 그 막을 내렸던 것이다.
아이 성의 모든 군사가 더욱 의기양양하여 여호수아 군대를 뒤쫓아 추격하자 그 때를 노리고 있던 이스라엘의 매복 군대가 무방비상태의 아이 성에 들어가 그 성을 불 질렀고, 매복 군대와 함께 협공 작전을 펼쳤다. 물론 승리는 여호수아 군대에게로 돌아갔고 그날 아이 성은 이스라엘 군대에게 완전히 전멸 당하였다.
“그리고 그는 아이 임금을 저녁때까지 나무에 매달아 두었다. 해 질 무렵에 여호수아가 명령하자, 사람들이 그의 시체를 나무에서 내려 성문 어귀에 내던지고, 그 위에 큰 돌무더기를 쌓아 올렸다. 그것이 오늘날까지 남아 있다”(29).
29절에는 생포된(23절) 아이(Ai) 왕의 처리 과정이 묘사되어 있다. 그것은 한마디로 처참한 처형인데, 이토록 가혹하게 다룬 데에는 타당한 이유가 있다. 즉 그 이유는 단순히 백성들의 불타는 적개심을 만족시켜 주고자함 때문이 결코 아니라, 우상 숭배의 소굴인 가나안 땅의 수괴(首魁)에 대한 공의로운 주님의 심판 때문이었다.
죽은 자의 시체를 다시금 나무에 매다는 행위는 죽은 자로 하여금 죽은 후에까지라도 모욕과 수치를 당하도록 하게 함이었다(민수 25,4;신명 21,22; 2사무 21,8, 9). 아울러 그것을 보는 자로 하여금 경각심을 갖게 하여 같은 행위를 저지르지 못하도록 경고하기 위함이었다.
“해질 무렵에...그 시체를 나무에서 내려”라는 말에서 신명기 율법(신명 21,23)에 따르면, 시체를 나무에 매단 채 밤새도록 두는 것은 금지되었다. 그 이유는 성결법상 시체는 그 자체가 부정한 것으로서(민수 6,11), 모든 시체는 거룩하고 정결한 땅 가나안에서 하늘과 땅 사이에 매달린 채 계속 방치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악인의 시체는 바로 당일에 땅 속에 묻어 그 부정함을 이스라엘 공동체로부터 깨끗이 제거 하여야 했다.
아이 왕의 시체를 성문 어귀에 던져진 행위는 추측하기를, 아이 왕은 성문 어귀 곧 심판과 통치의 왕좌에 앉아 온갖 이방의 불경스러운 행위를 일삼았으리라 생각한다. 따라서 평소 거만하고도 위풍 당당하게 자신의 권세를 자랑했을 바로 그 자리에서 신의 공의로운 심판을 받아 결국 시체로 던지움 당했다고 보는것이다(욥 24,24). “시체 위에 큰 돌무더기를 쌓아 올린 것은” 아이(Ai) 성 전투의 두명의 악인, 아칸과 아이 왕은 결국 하느님의 공의로운 심판을 받아 같은 신세가 되어 두고두고 오는 세대에게 치욕과 경고거리가 되고 말았다(7,26).
여호 8,30-35 에발 산에 제단을 만들고 율법을 봉독하다
“그때에 여호수아는 주 이스라엘의 하느님을 위하여 에발 산에 제단을 쌓았다. ”(30).
여러 학자들은 그리짐 산과 에발산에서 본 축복과 저주의 의식이 시행된 때를 가나안 정복 전쟁이 끝나고 이스라엘 사회가 안정된 때라고 본다. 따라서 그들은 본문(30-35절)을 시간적 순서를 뛰어 넘은 삽입 구문으로 이해한다. 그리고 이런 견지에서 70인역도 여기서 이 부분을 생략하고 다른 곳으로 돌렸다. 그들이 이처럼 생각하는 이유는 가나안 정복 전쟁이 한창 무르익을 무렵 갑작스럽게 등장한 본문 (30-35절)이 전후 상황에 맞지 않을뿐 아니라, 아이로부터 20마일 이상 떨어진 스켐 땅 에발 산에서 당시 이러한 의식을 순조롭게 진행하기란 매우 어려웠을 것이란 가정에 근거한다. 그러나 그러한 가정(假定)은 '성전'(聖戰)의 성격을 올바로 이해하지 못한데서 비롯된 것이다. 즉 예리코 전투에서 뿐 아니라, 특히 아이 전투에서 여호수아는 무엇보다 백성의 성결 및 하느님의 의식 준수가 중요하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느꼈을 것이다. 그러므로 여호수아가 아이성을 정복한 후 그곳으로부터 이틀거리 정도에 있는 에발 산까지 곧장 진격하여 그곳에서 하느님과의 계약을 준수하는 일에 심혈을 기울였으리란 추측을 하는 것은 별로 무리가 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렇게 함으로써 오히려 남아있는 가나안 정복 전쟁을 하느님의 도우심을 받아 보다 수월하게 치를 수 있을 것이란 사실을 여호수아는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주 이스라엘의 하느님”이란 주님을 특히 '이스라엘의 하느님'으로 지칭한 점이 주목된다. 아마도 이는 이후부터 언약의 땅 가나안에서 이스라엘의 하느님 주님 외에는 다른 어떠한 이방의 우상들도 섬기지 않겠다는 것을 의지적으로 시사하는 말일 것이다.
에발 산에 제단을 쌓은 것은 율법을 새긴 돌을 세우고 제단을 쌓아 제사를 드리라는 신명 27,1-8의 의식에 따른 것이다. 협곡을 사이에 두고 마주 보고 서 있는 에발 산과 그리짐 산 중에 에발 산은 저주를 위해, 그리짐 산은 축복을 위해 이미 선택되었다(신명 11,29). 그런데 희생의 제단이 축복의 산인 그리짐 산이 아니라, 저주의 산인 에발 산에 세워졌다는 사실은 중시할 필요가 있는데, 곧 이는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그들은 완전해질 수 없으며, 따라서 저주를 면케 해 주는 희생의 제단이 반드시 필요하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강력하게 일깨워 주기 위해서였다.
“그러고 나서 온 이스라엘은 원로들과 관리들과 판관들과 함께 이방인이든 본토인이든 구별 없이, 주님의 계약 궤를 멘 레위인 사제들 앞에 궤의 이쪽과 저쪽으로, 절반은 그리짐 산 앞에, 절반은 에발 산 앞에 갈라섰다. 전에 주님의 종 모세가 명령한 대로, 이스라엘 백성에게 축복하려는 것 이었다”(33).
여기서 '온 이스라엘'은 이스라엘의 대표자나 또는 백성의 남자로서의 회중 뿐 아니라 '여자들과 아이 및 그들 가운데 있었던 이방인'을 포함한(35절) 모든 이스라엘 회중을 뜻한다. 한편 여기서 이스라엘 사회에 거주하는 '이방인'(게르)들까지 이스라엘 본토인과 하등 다를 바 없이 축복과 저주의 선언에 참여했다는 사실은 당시 이방인들이 율법의 공의(公義)하에서 이스라엘 본토인들과 동등한 취급을 받았음을 보여 주며, 또한 훗날에 이방인들 역시 그리스도의 복음을 믿음으로 하느님의 백성이 되리란 사실의 징표가 되기도 한다.
원로들과 관리들과 판관들은 이스라엘 사회의 정치(종교), 행정, 사법의 지도자적 위치에 있는 자들을 지칭한다. 이들 역시 율법 하에서는 모든 백성들과 동일했다.
주님의 계약 궤를 멘 레위 사람 제사장들은 주님의 머무심의 상징인 '계약 궤'(3,3)를 멘 채 양편으로 나뉘어진 백성들의 중앙에 서서 큰 소리로 축복과 저주의 말씀을 선언해야 했다(신명 27,9.14). 이러한 의식은 두 가지를 상징한다. 하나는 즉 말씀이 모든 생활의 중심이 되어야 한다. 그리고 하나는 주님의 말씀에 대한 순종과 불순종 여하에 따라 축복과 저주가 임한다.
절반은 그리짐 산 앞에, 절반은 에발 산 앞에 갈라선 것은 신명 27,12-13의 의식에 따른 것으로, 일찍이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가나안에 들어간 후 여섯 지파(시므온, 레위, 유다, 이사카르, 요셉, 베냐민)는 축복의 산인 그리짐 산에 서고, 또 다른 여섯 지파(르우벤, 가드, 아세르, 즈불론, 단, 납탈리)는 저주의 산인 에발 산에 서도록 명령하였다. 또한 이때 레위 사람 제사장들이 가운데 선 후 율법을 선포하면 백성들은 '아멘'하도록 되어 있었다. 그런데 우리가 여기서 주의할 것은 이것이 그리짐 산에 선 지파들은 축복을 받고 에발 산에 선 지파들은 저주를 받는다는 것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다만 축복의 산인 그리짐 산에 오른 사람은 율법에 순종하는 자들을 상징하고, 저주의 산인 에발산에 이른 사람은 율법에 불순종하는 자들을 상징하는, 상징적 의미만 있을 뿐이다. 따라서 축복과 저주는 오직 율법의 순종 여부(8,34; 신명 28,1-68)에 달린 것이다.
“모세가 명령한 모든 말씀 가운데, 여호수아가 이스라엘의 온 회중과 여자들과 아이들, 그리고 그들 가운데에 사는 이방인들 앞에서 읽어 주지 않은 말씀은 하나도 없었다”(35).
이스라엘 성년 남자는 물론이려니와 평소 인구 조사 시 계수함 받지 못하는 여인과 아이를 포함하여, 심지어 그들 중에 이방인들까지도 본 축복과 저주의 의식(儀式)에 참여했음을 보여 준다. 이는 하느님의 말씀을 지켜, 축복 받고 길이 장수하는 데에는 남녀 노소 및 혈통의 차별이 전혀 있을 수 없음을 시사한다. 아울러 이는 반대로 하느님의 말씀에 불순종할 때에도 역시 그 누구도 저주의 심판을 면할 길 없음을 또한 시사한다. 따라서 결국 35절은 후일 사도 바오로이 명쾌히 설파한 바, 복음으로 말미암아 하느님께서 당신의 구원을 베푸시는 데에는 "유다인도 그리스인도 없고, 종도 자유인도 없으며, 남자도 여자도 없습니다. 여러분은 모두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하나입니다"(갈라 3,28). 그리스도 안에서 보편적으로 수용된다는 진리를 시사해 주는 구절이다(콜로 3,11; 로마 3,29;10,12; 1코린 1,24; 12,13).
여호 9,1-15 기브온 사람들과 계약을 맺다
이스라엘은 기브온 주민들의 속임수에 넘어가 그들과 계약을 맺는다. 기브온 사람들은 예루살렘 근처 산악지대의 가나안족이다. 이 이야기에는 고대의 계약 정식에 등장하는 전형적인 어휘들이 포함되어 있는데,이는 벤야민 지파와 기브온 주민들 사이에 계약을 맺지 말라는 금지 사항을 어기고 그 둘이 계약을 맺은 역사적인 사건을 다루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기브온 주민들은 여호수아가 예리코와 아이에 한 일을 듣고서, 그들 나름대로 속임수를 쓰기로 하였다. 그래서 그들은 양식을 싼 다음, 낡아 빠진 자루와 낡고 갈라져서 꿰맨 포도주 부대를 나귀에 싣고서 길을 떠났다”(3-4).
요르단 서편의 왕들은 이스라엘로 인해서 이미 두려움에 떨고 낙담해 있음이 잘 나타나 있다. 그 때문인지 그들은 지금까지 이스라엘에 맞서서 대항할 준비조차 하고 있지 않다가 예리코 성, 아이 성의 진멸 소식을 듣고서야 비로소 이스라엘에 대항할 준비를 서두르고 있다. 즉 그들 가나안 부족들은 동맹을 맺어 남부 연합군을 조직했던 것이다. 이처럼 가나안 주민 모두가 하나의 민족 이스라엘에 대항하기 위해 동맹을 맺은 것은 특기할 만하다. 여하튼 이스라엘에 대항할 남부 연합군이 조직됨으로써, 지금까지의 성읍 단위 싸움에서, 이제 광활한 영토와 많은 주민들을 가진 가나안 부족들과의 본격적인 영토 전쟁이 막 시작되려하고 있는 것이다.
가나안 여러 부족들(1절) 가운데 히위 부족인 기브온 주민들은 연합군을 조직해 이스라엘을 격퇴시키자는 제의를 물리치고 단독으로 이스라엘과 화친을 맺기 위해 치밀한 꾀를 쓰고 있다. 아마 기브온 주민들은 비록 동맹을 맺어서 이스라엘과 대적한다고 하더라도, 예리코 성과 아이 성의 멸망을 통해 볼 때 결코 승산이 없으리라는 냉철한 현실 판단을 내린 것 같다. 더욱이 그들은 이스라엘이 가나안의 모든 부족들을 남김없이 멸절시키라는 하느님의 명령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24절), 그들로써 죽임을 당하지 않고 살아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이스라엘과 화친(和親)을 맺는 것이었고, 또한 화친을 맺기 위해서는 그들이 가나안 땅에 살지 않고 먼 나라에서 온 사절(使節)인 것처럼 속임수를 쓰는 것 뿐 이었다. 기브온 주민들이 신명 20,10-15의 내용을 알고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이 구절들에 따르면 가나안 부족에게 속하지 아니하고 멀리 떨어져 있는 부족에게 속하지 아니하고 멀리 떨어져 있는 부족에게는 화친을 맺어도 좋도록 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 가증한 죄악으로 인해 이미 진멸의 대상이 된 가나안 부족들과는 어떤 방식으로든 결코 타협이 있을 수 없었고, 오직 하느님의 공의를 위해 모조리 멸절시켜야만 했다(신명 20,16-18). 한편 여기서 '나름대로 속임수를 쓰기로'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아람'은 원래 '벌거벗다', '매끄럽다'를 뜻하는데, 여기서는 '교활하다', '간계를 취하다', '술책을 부리다'등의 나쁜 의미로 사용되었다.
기브온 사람들은 낡아 빠진 자루와 낡고 갈라져서 꿰맨 포도주 부대, 낡은 옷...마르고 부서진 빵들은 갖고 있었는데 이는 마치 먼 나라에서부터 오랫동안 여행하여 이스라엘을 찾아 온 사신(使臣)들처럼 보이기 위하여 치밀한 계획을 세우고 철저히 위장하였음을 보여준다. 만일 자신들의 기만 행위가 발각되면 죽임을 면치 못할 것은 자명했기 때문에, 그들이 생사가 달린 이 일에 전력을 다했을 것임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따라서 이 이야기의 논점은 신명 20,10-18의 권고 곧 이스라엘은 멀리 있는 사람이 아니라 지역 주민들을 ‘몰살하라’는 내용에 토대를 둔다. ‘이스라엘 회중 대표들’의 탐욕을 비난하는 내용이 그들이 “주님의 뜻을 여쭈어 보지도"(9,14) 않았다는 말에 나타난다. 그러나 기브온 주민들을 살려준 것은 서로에게 이득이 되는 것으로 판명된다. 이 이야기는 라합 이야기처럼,이방인을 이스라엘 공동체에 결합시키는 방식을 이해하게 한다.
“그리고 바로 그날에 여호수아는 그들을 공동체가 쓸 나무와 주님의 제단에서 쓸 나무를 패는 자로, 또 물을 긷는 자로 정하였다. 그래서 그들은 오늘날까지도 주님께서 선택하시는 곳에서 그 일을 하고 있다”(27).
여호수아가 기브온 주민들을 성막의 종으로 삼은 데에는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즉 가나안 부족을 진멸하라는 하느님의 명령 목적은 가나안 부족의 죄악, 특히 우상 숭배의 죄악이 이스라엘에 침투되는 것을 철저히 차단시키는 것이었다. 따라서 여호수아는 하느님과의 서약 때문에 진멸시킬 수는 없었던 가나안 부족인 기브온 주민들을 성막에서 봉사케 함으로써 하느님의 뜻을 이루려고 노력했던 것 같다
여호 10,1-15 여호수아가 기브온을 구하다
“예루살렘 임금 아도니 체덱은, 여호수아가 아이를 점령하여 그곳을 완전 봉헌물로 바쳤다는 소식을 들었다. 여호수아가 예리코와 그 임금에게 한 것처럼 아이와 그 임금에게도 그렇게 하였고, 또 기브온 주민들이 이스라엘과 평화를 이루어 그들 가운데에 살고 있다는 소식을 들은 것이다”(1). 예루살렘은 지중해(Mediterranean Sea)에서 동쪽으로 약 53km, 사해(Dead Sea)에서 서쪽으로 약 23km 떨어진 서팔레스틴의 주요한 도로 교차점에 위치한 성읍으로, 구약시대에 가장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 곳이다. 오래 전 아브라함이 살던 당시에는 '살렘'이라고 불리웠으며(창세 14,18), 판관 시대에는 '여부스'라고 불리웠다가(판관 19,10.11), 다윗 시대에 이르러 '다윗 성'으로 명명되면서(2사무 5,6-10) 이스라엘의 수도가 되었다. 그 후 이 성읍은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에 의해 점령당했다가(B.C. 586년) 다시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온 유대인들에 의해 재건되었다.
아도니 체덱이란 '의(義)의 주(主)'라는 뜻으로, 이 명칭은 예루살렘 왕들에게 부여된 공식 칭호였다. 아브라함 당시에는 '의(義)의 왕(王)'이란 뜻의 '멜기체덱'으로 명명되기도 했다(창세 14,18). 따라서 혹자는 여호수아 시대의 예루살렘 왕을 아브라함 시대의 선왕(善王)인 멜기체덱의 후손으로 보기도 한다. 한편, 여부스 부족에 속하는 예루살렘 왕 아도니 체덱은 당시 남부 팔레스틴의 여러 왕들 중 가장 큰 세력으로서 주도적인 위치에 있었다.
이스라엘이 예리코 성 뿐만 아니라 아이 성까지 함락시키고 나아가 아이 성 보다도 더 큰 성이고 강한 민족인 기브온과 조약을 체결하였다는 소식은 그 누구보다도 예루살렘 왕 아도니 체덱에게 큰 공포심을 갖게 했다. 왜냐하면 기브온 성이 이스라엘과 화친을 맺음으로써, 예리코 -> 아이 -> 베텔 -> 기브온으로 이어지는 가나안의 중심부가 이스라엘 군대의 수중에 들어갔기 때문이다. 그 사실은 곧 가나안의 남북이 완전 차단되었다는 것을 의미할 뿐 아니라, 이스라엘의 다음 공격 대상으로는 기브온과 가장 가까운 거리(약 10km)에 있는 예루살렘이 될 것이라는 사실을 암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아도 예루살렘 왕 아도니 체덱은 요르단 강 도하 소식을 듣고는 큰 두려움에 사로잡혔었는데(5,1), 이스라엘의 이러한 계속적인 진격은 그의 두려움을 더욱 가중시켰던 것이다. “그래서 예루살렘 임금 아도니 체덱은 헤브론 임금 호함, 야르뭇 임금 피르암, 라키스 임금 야피아, 에글론 임금 드비르에게 전갈을 보냈다. ”(3).그는 네 임금과 연합하여 이스라엘과 동맹한 기브온 부족에 대해서 강하게 응징하는 동시에, 더 나아가 그들에 대한 이스라엘의 공격을 사전에 저지하려고 하였던 것이다.
헤브론은 예루살렘 남서쪽 약 40km지점에 위치한 해발 850m의 성읍 헤브론(Hebron)은 구약 성경 전체에서 약 50번 이상 나타날 정도로 중요한 성읍이다. 그리고 그 이전의 성읍 이름인 기럇아르바(Kirijath - Arba)로는 5번 정도 언급되어 있다(15,13; 판관1,10). 이곳은 이집트의 '소안' 보다도 7년 앞서 세워진 고대 가나안의 문화.정치 중심지로서(민수 13,22), 일찍이 아브라함은 롯과 헤어진 후 헤브론으로 이주했으며(창세 13,18), 사라를 이곳 헤브론의 막펠라 무덤에 장사했고, 이삭과 리브가도 이곳에 장사되었다. 그리고 야곱이 레아를 이곳에 매장한 것처럼(창 49,31), 요셉도 야곱을 이곳 헤브론에 매장하였다(창세 50,13). 모세 시대에는 열 두 정탐꾼이 가나안을 정탐한 곳이기도 하며(민수 13,22-24), 가나안 정복 후에는 칼렙에게 기업으로 주어졌으며(여호 14,13), 나중에는 도피 성으로 지정되었다. 그리고 후일 다윗은 그의 통치 초기에 이 성을 수도로 삼아 7년 동안 유대를 다스리기도 했다(2사무 2,11). 오늘날 이곳 이름은 '친구', '벗'이란 뜻의 '엘 칼릴'(el-Khalil)인데, 매우 질 좋은 우량 포도의 생산지로 유명하다.
야르뭇는 현재의 엘류데로폴리스(Eleutheropolis)에서 예루살렘으로 가는 도중 약15km 지점에 있다. 가나안 정복 후에는 유다 지파에 할당되었으며(15,20-62), 바벨론 포로 후에는 유대인들이 이 성읍으로 돌아왔다(느헤 11,29). 오늘날의 명칭은 '얄무크'(Jarmuk)이다.
라키스는 예루살렘과 예루살렘 서남방 약 48km 지점에 있는 가사(Gaza)와의 중간 지점인 세렐라(Shephelah) 지방의 기슭 저지대에 위치한 성읍으로, 가나안 정복 후 유다 지파에게 분배된 곳이다(15,39). 솔로몬이 죽은 후 라키스(Lachish)는 르호보암에 의해 요새화 되었으며(대하 11,9). 유다 왕 아마샤는 음모자들이 그의 목숨을 노릴 때 이곳에 은신처를 구했으나 결국 추격을 받아 이 성읍에서 살해되었다(2열왕 14,19; 대하 25,27). 그리고 B.C. 701년 히스기야 시대에는 앗수르 왕 산헤립에 의해 포위되기도 했다가(2열왕 18,13, 14), 마침내 B.C. 589년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에 의해 함락되었다(예레 34,7). 그러나 바벨론 포로 시대 이후에는 유대 인들이 귀환하여 계속 거주하였다(느 헤 11,30).
에글론은 라기스 동쪽 약 40분 거리의 위치에 있는 성읍이자, 가사로부터 예루살렘으로 통하는 요로 약 25km 지점에 있는 성읍이다. 오늘날의 명칭은 '아월란'(Ajlan)으로 추정되는데(Keil, Lias). 가나안 정복 후에는 유다 지파에게 분배되었었다(15,39).
“올라와서 나를 도와주십시오. 우리 함께 기브온을 칩시다. 기브온이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자손들과 평화를 이루었습니다”(4). “올라와서 나를 도와주십시오” 여기서 '올라오라'는 표현은 다른 여러 왕들의 성읍이 대부분 저지대에 위치하고 있을 뿐 아니라, 공격지점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었기 때문에 당시의 상황과 잘 부합되는 말이다. 그리고 '도우라'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아자르'는 '원조하다', '구원하다'라는 뜻으로, 흔히 침략을 당했거나 아니면 침략을 함에 있어서 독자적으로 행동하기에는 힘에 부칠 때 상대방의 원조를 요청하는 말이다.
“우리 함께 기브온을 칩시다” 예루살렘 왕 아도니체덱이 이스라엘보다 먼저 기브온을 공격하자고 제안하고 명령한 이유는 다음과 같다. 같은 가나안 부족으로서 동맹 관계를 맺어 공동의 적 이스라엘을 함께 격퇴시켜야 함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이스라엘과 화친 조약을 맺은 데 대한 강한 배신감이 작용했기 때문이다. 기브온을 멸절시킴으로써 직접적으로는 제2의 기브온과 같은 성읍이 나오는 것을 사전에 차단하고, 간접적으로는 이스라엘에게 타격을 주기 위함이다.
“여호수아는 길갈을 떠나 밤새도록 올라가서 그들에게 갑자기 들이닥쳤다”(9). 여호수아가 길갈에서 밤새도록 올라간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비록 속임수에 넘어가 기브온과 조약을 맺긴 했지만, 주님의 이름으로 맹세한 이 조약 때문에 그들의 구원 요청에 즉각 응했다. 한편, 길갈에서 기브온까지는 걸어서 3일 정도 되는 약40k m 거리이며 더군다나 험난한 산악 지형인데(8,17),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룻밤 새로 도착할 수 있었다는 것은 여호수아 군대가 최단 시간 내에 전투 준비를 하고 투철한 정신 무장을 한 채 달려갔음을 보여준다. 사실 이 정도 거리의 야간 산악 행군은 오늘날 군대에서도 상당히 힘든 것으로, 실로 하느님께서 함께 해주시지 않았다면 자력으로는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들에게 갑자기 들이닥쳤다”라는 긴박감은 아이 성 전투에서 매복 작전을 구사한 반면(8,3-9), 기브온 전투에서는 여호수아가 기습 작전을 감행하여 성공하였다. 가나안 동맹국들은 요르단 강 부군의 길갈(9,6)에 진 치고 있는 여호수아의 군대가 그토록 빨리 습격해 올 줄은 전혀 예견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여호수아는 바로 이 점을 역이용하여 그들을 초기에 제압하였던 것이다. 한편 여기서 '갑자기'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페타'는 원래 '눈을 깜박이다'라는 뜻으로, 여호수아의 기습 작전이 매우 신속하고 빈틈없이 진행되었음을 강조해 준다.
“주님께서 이스라엘 앞에서 그들을 혼란에 빠뜨리시니, 이스라엘은 기브온에서 그들에게 큰 타격을 입혔다. 이스라엘은 또 벳 호론 오르막길로 아제카와 마케다까지 쫓아가면서 그들을 쳐 죽였다.”(10). 여호수아가 기습 작전으로 쉽게 가나안 남부 다섯 동맹국을 정복한 사실이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본절에서 명시하듯, 여호수아 군대가 강력한 다섯 동맹국을 이렇게 쉽게 정복한 것은 하느님께서 가나안 군대를 패배시켜 주셨기 때문이지, 여호수아 군대의 군사력만으로는 쉽지 않은 일이었다. 즉 8절에서 하느님께서는 이미 가나안 군대를 여호수아의 손에 붙이겠다고 약속하셨는데, 이제 그 약속을 실행하셨던 것이다.
'벳 호론'은 예루살렘 서북쪽 약 16km와 19.2km에 위치해 각각 '상(上) 벳호론'(Upper Beth-Horon)과 '하(下) 벳호론'(Lower Beth-Horon)이라고 구별하여 부른다. 그리고 상 . 하 벳호론 사이에는 약 3km 걸친 가파른 바위투성이의 비탈길이 있다. 지금도 이들 두 벳호론을 연결하는 로마 시대의 도로가 남아있는데, 이것은 이들 두 성읍이 동쪽 기브온과 서쪽 아얄론 골짜기, 그리고 해안 평지로 이어지는 주요 간선 도로 상에 위치해 있었던 사실을 말해 준다. 한편 가나안 정복 후 이들 상.하 벳호론 성읍들은 베냐민 지파 지경과 에브라임 지파 지경의 경계상에 위치해 있었다. 그후 통일 왕국이 남북으로 분열되었을 때는 모두 북왕국의 관할 하에 들어갔다. 오늘날에는 '상 벧호론'이 '베이트 우르 엘 포카'(Beit ur elForka)로, '하 벧호론'이 '베이트 우르 엘 타하타'(Beit ur el Tachta)로 각각 불리운다.
아제카는 아얄론 골짜기 남부의 견고한 성읍으로서, 지금의 텔 에즈 자카리에(Tellez Zakariyer)를 가리킨다. 베들레헴 서쪽 27km 지점에 위치한 이곳은 다윗이 골리앗을 죽인 곳으로, 블레셋과 이스라엘 간의 접전 지역이었다(1사무 17,1). 그리고 북왕국에 반란이 일어나자 르호보암은 방책 성벽을 쌓아 이 성읍을 견고케 하였다(2역대 11,9). 바벨론 군대의 공격 당시에는 최후까지 버티다가 결국 느부갓네살에 의해 함락당했다(예레 34,7). 이러한 역사적 사실들은 이곳이 매우 중요한 군사 요충지였음을 시사한다. 한편, 바벨론 포로 귀환 후에는 다시 이곳에 사람들이 거주하였다(느헤 11,30).
마케다는 '목자의 숙소'란 뜻을 지닌 '막게다'(Makkedah)는 가나안 남부 평지에 위치한 주요 성읍이다. 욥바 남쪽 23km 지점, 아세가 북동쪽 3.2km 지점에 위치한 이곳은 오늘날의 '길벳엘 케이슘'(Khirbet el-Kheishum) 지역으로 추정된다. 성경 고고학자들은 이곳의 낡은 옛 성터 주변에서 큰 동굴을 발견하였다. 한편 가나안 정복 후 이곳은 유다 지파에게 할당되었다(15,41).
여호수아는 실제로 해를 멈추게 했다는 구절이 유일하게 말한다.
“12주님께서 아모리족을 이스라엘 자손들 앞으로 넘겨주시던 날, 여호수아가 주님께 아뢰었다. 그는 이스라엘이 보는 앞에서 외쳤다. ‘해야, 기브온 위에, 달아, 아얄론 골짜기 위에 그대로 서 있어라.’ 13그러자 백성이 원수들에게 복수할 때까지 해가 그대로 서 있고 달이 멈추어 있었다. 이 사실은 야사르의 책에 쓰여 있지 않은가? 해는 거의 온종일 하늘 한가운데에 멈추어서, 지려고 서두르지 않았다. 14주님께서 사람의 말을 그날처럼 들어주신 때는 전에도 없었고 후에도 없었다. 정녕 주님께서는 이스라엘을 위하여 싸워 주신 것이다. 15여호수아는 온 이스라엘과 함께 길갈 진영으로 돌아갔다”(12-15).
“지구는 둥글다”라고 주장한 갈릴레아가 여호수아기의 이 구절에 대한 지나치게 문자적인 해석에 대해 목청을 높인 순간부터 시작해서 구약 성경의 어떠한 기적도 여호수아시대에 있었던 해에 대한 기적만큼 학자들의 관심을 끌지 못했다. 갈릴레이 이전에는 해와 달이 지구 주위를 도는데 있어서 일정한 시간 동안 멈추었다 - 성경에 그렇게 자의적으로 쓰여 있지 않은가? - 는 생각에 이의가 없었던 반면에, 갈릴레이 이후에는 수많은 새로운 설명들이 안출되었다.
모든 새로운 설명들은 해가 우리 태양계의 중심이며 성경은 하느님의 영원한 진리를 담고 있는 책이라는 원칙으로부터 출발한다. 이 해묵은 문제를 일치시키기 위하여 오늘날은 구성에 대한 문학 유형에 호소한다.
해에 대한 기적은 여호수아기 10장 12-15절에 기록되어 있다. 여기서 기적은 10장 1-27절에 기록된 가나안 남부의 동맹군들을 상대로 한 군대 파견이라는 무미건조하고 뼈대뿐인 보고서의 흐름을 끊어 버린다. 시적으로 삽입된 이 부분은 몹시 관심을 끌고 있다. 10장 16절의 이야기가 10장 11절에 상당히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기 때문만이 아니라, 앞서 말한 삽입구가 “이 사실은 야사르의 책에 기록되어 있지 않는가?”라고 하였듯이 분명히 다른 책에서 취해졌기 때문이다. “야사르의 책”은 히브리 말 야사르를 번역하여 “올바른 이의 책”으로 옮기기도 한다. 여호수아에 관한 것이 기록되어 있다는 이 책은 2사무 1,18에도 언급되는데, 지금은 소실되고 없다. 그것은 국가의 노래를 모은 책이 분명하다. 나아가 여호수아기 10장 12-15절의 시적인 특성은 짜임새 있는 군사 보고서를 몹시 강하게 중단하고 있다. 그러므로 삽입구는 분명히 시적이다.
시인이 역사가보다 자유롭다는 것은 아주 잘 알려져 있다. 그는 쉽게 과장하고, 수사학적인 영상과 표상을 사용한다. 따라서 그를 자의적으로 이해하는 것은 흔히 가능하지 않다. 그러한 점을 고려하면서 학자들은 여호수아기 10장 12-15절과 그 바로 앞에 나오는 짜임새 있는 보고서를 비교하였다. 이제 우리는 10절에서 하느님께서 이스라엘이 보는 앞에서 적을 격파하셨다는 사실을 읽게 되나, 그것은 일어난 일을 사실 그대로 우리에게 말하지 않는다. 하늘로부터의 표지, 어떤 기상학적 현상을 떠올리고 있다. 그것은 10장 11절에서 확인된다. 그들이 이스라엘에게 쫓겨 벳 호론 비탈을 타고 아제카까지 달아나는데 주님께서 하늘로부터 주먹 같은 우박을 쏟아 그들을 죽이셨다고 말한다. “우박으로 죽은 자가 이스라엘 자손들의 칼에 맞아 죽은 자보다 더 많았다”(11). 커다란 우박이 어두운 하늘로부터 쏟아지고 이어 어둠이 덮는다. 그러므로 이 기상학적인 현상은 몹시 맹렬한 폭풍우였을 것이다.
그리고 시인이 12-15절에서 자기 방식대로 묘사한 것은 이 어둠이다. “멈추다”와 “머물다”라는 말을 그는 거기서 “빛나지 않다”, 해와 달이 나타나지 않는다라는 말 대신에 은유적인 의미로 사용했다. 때때로 우리는 지는 해에 대해서 쉬러 간다고 말하고 아이들 말로는 사라지는 해가 “자러” 간다고 한다. 일식의 경우에, 이스라엘과 일반적으로 고대 근동 사람들은 해의 휴식이라고 말했다는 정보들이 있다. 점성학 문헌들은 천체들의 휴식에 대해서 말한다. 성경은 달이 어두워지는 것을 지적하고자 할 때 “멈추다”라는 말을 사용한다(하바 3,11). 마찬가지로 해가 기브온 위에 머물고 달이 아얄론 골짜기 위에서 움직이지 않는 것은 해와 달이 어두워지는 것으로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가나안인들은 여호수아의 군대에게 쫓기는 동안 어둠 때문에 어디로 도망가야 할지 몰랐다. 커다란 우박이 이미 가망이 없는 적을 내리치는 동안 여호수아는 해와 달이 휴식하고 있으라고 기도했다. 그의 기도는 받아들여졌다. 거의 하루 동안의 암흑 뒤에 이스라엘은 승리를 얻어냈다.
역사적인 어려움은 라틴어 역, 즉 불가타에 번역된 14절 때문에 발생한다. “그렇게 긴 날은 전에도 없었고 후에도 없었다.” 그러나 정확한 번역은 이렇게 된다. “그와 같은 날은 전에도 없었고 후에도 없었다.” 그리고 그것은 그만큼 성과가 풍부한 날이라는 뜻으로 이해된다.
따라서 하느님께서 태양이 머물도록 간구한 여호수아의 기도를 듣고 응답해 주신 것을 뜻하는 말로, 여기서는 특히 하느님께서 필요만하다면 어떠한 기적을 베풀어서라도 인간의 기도에 응답해 주시는 분으로 묘사되어 있다. 한편, 태양이 중천에 머문 이 놀라운 기적의 사건은 단순히 적군의 섬멸이라는 목적 외에 다음과 같은 사실을 보여 주는 기적이다. (1)요르단 강 도하의 기적과 더불어 태양이 멈춘 이 기적 사건은 가나안 정복 전쟁의 지도자 여호수아의 권위를 한층 더 강화시켜 주기에 충분했다. (2)이집트와 광야에서 뿐만 아니라, 하느님은 가나안 땅에서도 이스라엘을 위해 친히 싸우신다는 사실을 생생히 보여 준다. (3)해와 달도 모두 하느님의 주관하에 있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 이것은 아울러 그것들을 섬기는 가나안 부족들의 어리석음을 밝히 드러내 준다. (4)구속사적으로 이 기적은 사탄의 모든 세력을 섬멸하기까지 '의로움의 태양'(말라 3,20)되시는 그리스도께서 거룩한 주님의 백성과 함께 하실 것이란 사실을 예시한다.
여호 10,16-27 아모리족의 다섯 임금을 처형하다
“사람들이 그 임금들을 끌어내어 여호수아에게 데려가자, 여호수아는 이스라엘 사람들을 모두 불러 모은 다음, 자기와 함께 갔던 병사들을 지휘하는 군관들에게 지시하였다. ‘가까이 와서 발로 이 임금들의 목을 밟아라.’ 그들이 가까이 가서 발로 임금들의 목을 밟자, 여호수아가 또 그들에게 말하였다. “두려워하지도 말고 겁내지도 마라. 힘과 용기를 내어라. 너희가 맞서 싸우는 모든 원수에게 주님께서 이렇게 하실 것이다”(24-25). 적대국 패장(敗將)의 목을 밟는 행위는 고대 이집트나 앗시라아의 기념 비문에서도 흔히 발견되는 고대 근동의 전쟁 풍속이었다. 그런데 대체적인 경우 패장의 목을 밟는 자는 승전국의 최고 장수로서, 곧 자신의 영광과 명예 및 권위를 강화시키는 것이 그 목적이었다. 그러나 여호수아는 그 일을 이스라엘 백성들의 대표인 군관들에게 시킴으로써,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가나안 부족에 대한 멸절 의지를 심어주고자 했던 것이다. 따라서 여호수아의 이 명령은 결코 야만적인 명령이 아니라, 하느님의 명령(신명 7,2)을 충실히 따른 순종적인 행위였다.
여호수아는 가나안 다섯 동맹군들을 거의 진멸한 후 다시 마케다 진으로 돌아와 그들의 다섯 왕을 처형하도록 명령했다. 그런데 여기서 그들의 목을 발로 밟은 것은 그들에 대해서 '완전한 승리'했음을 상징하는 그들에 대해서, 곧 땅의 모든 왕들을 두렵게 하사(시편 76,12) 진흙을 밟듯이 밟으시는(이사 41,25) 하느님의 의로우신 심판을 대행하는 것이다. 또한 이 사실은 종말론적으로는 사탄의 권세에 대한 그리스도의 승리와, 그분 안에서의 성도들의 승리를 미리 보여 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즉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을 대적하는 땅의 모든 왕들을(2,2) 마침내 그의 발등상이 되게 하실 것이며(시 110,1), 성도들 역시 그리스도를 통하여 사탄의 세력을 발로 밟게 될 것이다(로마 16,20).
가나안 정복 전쟁을 앞둔 상황에서 여호수아는 과거의 하느님께로부터 이와 유사한 말씀을 받았는데(1,6.9), 이제 “두려워하지도 말고 겁내지도 마라. 힘과 용기를 내어라”(25)라는 이 말씀을 기억하면서 여호수아는 이스라엘의 군장들에게 같은 격려와 확신의 말을 하고 있다. 한편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들은 가나안 남부의 다섯 동맹군을 매우 두려운 적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들을 진멸한 지금 이스라엘 백성들은 더 이상 어느 누구도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게 되었을 것이다. 또한 그들 앞에 남아있는 가나안 북부 전쟁(11장)에서도 이길 수 있다는 확신과 용기를 가질 수 있었을 것이다.
여호 10,28-43 이스라엘이 가나안 남부 성읍들을 점령하다
“그날에 여호수아는 마케다를 점령하고 그 성읍의 주민들과 임금을 칼로 쳐 죽였다. 그들과 성읍에 있는 나머지 사람들을 모조리 완전 봉헌물로 바치고, 생존자를 하나도 남기지 않았다. 그는 예리코 임금에게 한 것처럼 마케다 임금에게도 그대로 하였다”(28).
“그 날에”란 가나안 다섯 동맹국의 왕들을 처형한 날을 가리킨다. “그들과 성읍에 있는 나머지 사람들을 모조리 완전 봉헌물로” 바쳤다는 표현은 리브나(30절), 라키스(32절), 게제르(33절), 에글론(35절), 헤브론(37절), 드비르(39절) 등 가나안 남부의 모든 성읍의 점령 사건에 동일하게 나타나는데, 곧 여호수아는 가나안 주민들을 진멸하되, 철저하게 진멸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이처럼 가나안 정복 전쟁 시, 이스라엘 군대가 가나안의 왕들을 칼날로 쳐 죽여 나무에 단다든지, 주민들을 남녀 노소 구별없이 한 사람도 남기지 않고 다 죽이는 사실 자체를 두고 혹자들은 매우 잔인한 행위라고 비난한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가나안 정복 행위는 단순한 침략 전쟁이 아니라, 수백년 동안을 참아왔던(창세 15,16) 떠나버린 땅, 하느님을 거역한 부족에 대한 하느님의 진노의 심판을 대행하는 거룩한 전쟁이요, 이스라엘 군대는 그 심판을 차질 없이 수행해야 하는 집행관들이라는 차원에서 생각해야 한다. 그러므로 가나안 정복 전쟁은 신약 시대의 성도들에게 사탄과 죄악을 이기되 철저히 이기고, 그 세력을 진멸하되 뿌리째 진멸해야 한다는 영적 교훈을 준다.
“42이렇게 여호수아는 이 모든 임금과 그들의 땅을 단 한 번에 점령하였다. 주 이스라엘의 하느님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싸워 주셨기 때문이다. 43그런 다음에 여호수아와 온 이스라엘은 길갈 진영으로 돌아갔다”(42-43).
여호수아가 점령한 곳은 남쪽으로는 카데스 바르네아와 가자, 북쪽으로는 유다 지방에 있는 고센과 기브온에까지 이른다.
여호수아서 저자는 가나안 남부 전쟁을 기록하고 있는 10장의 결론 부분인 이 구절에서 다음과 같은 두가지점을 강조하고 있다. 첫째, 주님 하느님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친히 싸우셨다는 점이다. 이 사실은 앞에서도 계속 강조되었는 바(8,10-11.14.25절), 우리가 이스라엘의 가나안 정복 전쟁을 보면서 가장 중요시 해야 할 점이 바로 이 사실이다. 실로, 이스라엘이 그처럼 쉽게 가나안을 점령할 수 있었던 것은 하느님께서 그들과 함께 하사 친히 싸워주셨기 때문인 것이다. 둘째, '단번에' 점령하였다는 점이다. 이 '단번에'(파암 에하트)는 '단 한번 원정하여'뜻하는 말로, 가나안 남부 정복이 여러 번의 원정에 걸쳐 힘겹게 된 것이 아니라, 단 한 번의 원정으로 성취된 것임을 보여준다. 이처럼 이스라엘이 단 한 번의 원정으로 가나안 정복이 가능했던 것은 위에 언급되어 있듯이 하느님께서 그들을 위해 적들과 친히 싸워주셨기 때문이다. 그런 다음 여호수아와 온 이스라엘 백성은 긴 원정(遠征) 생활을 끝내고 자신들이 상주하는 본영(本營)으로 완전 철수(撤收)하였다.
여호 11,1-23 가나안 점령을 끝내다
“하초르 임금 야빈은 이 소식을 듣고 마돈 임금 요밥, 시므론 임금, 악삽 임금에게”(1). 하초르는 '성'(城) 또는 '요새'(要塞)란 뜻으로, 당시 가나안 북부의 가장 크고 강력한 왕도(王都)였다. 고고학적 발굴 결과 그 위치는 갈릴래아 호수 북쪽 약 15km 지점, 훌레(메롬) 호수 서쪽 약 7km 지점에 있다. 그리고 그 크기는 약 200에이커(1에이커=약 4km)에 이르는데, 이는 라기스의 18에이커, 므깃도의 14에이커, 예리코의 8에이커에 비하면 그 크기와 세력이 얼마나 컸는지 가히 짐작된다. 그러나 하초르는 메롬 전투 패배 후 여호수아에 의해 불태워졌다(11절). 이후 가나안 땅 분배시에는 납달리 지파에게 주어졌고(19,36), 판관 시대에는 다시 복구되어 수도가 되었으나, 곧이어 판관 드보라와 바락에 의해 정복당하였다(판관 4,2, 17; 1사무 12,9). 이후 솔로몬이 중수하여 요새화 하였으나(1열왕 9,15), 결국 앗시라야의 디글랏빌레셀1세에 의해 함락당하고 그 성 주민들은 앗시라아의 포로가 되어 잡혀갔다(2열왕 15,29).
야빈은 '지략가'(智略家)라는 뜻인데, 이는 당시 '하초르' 성을 통치하던 최고 군주에게 붙였던 일반적 명칭이었다(판관 4,2). 당시 하초르가 북부 가나안에서 가장 큰 도시 국가로 그 세력이 컸던 만큼, 하초르 왕 야빈(Jabin) 역시 당시 가나안 북부 지역의 최고 실권자로 그 권세가 막강했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야빈은 여호수아 군대를 대적하기 위해 북부 가나안의 모든 왕들을 불러 모아 북부 동맹군을 만드는 데 중추적 역할을 감당했던 것이다.
“그들이 저희의 모든 군대를 거느리고 나오니, 병사들의 수가 바닷가의 모래처럼 많고 군마와 병거도 아주 많았다. 이 임금들이 모두 모여 이스라엘과 싸우려고 메롬 물가로 가서 함께 진을 쳤다”(4-5). 바닷가의 모래처럼 이라는 표현은 '수효가 셀 수 없을 정도로 매우 많은 것'을 비유한 것으로, 창세 22,17; 32,12; 판관 7,12; 1사무 13,5 등에도 나타나 있다. 한편, 수많은 보병 뿐 아니라 북부 연합군들은 말과 병거도 심히 많았다고 기록하고 있는데, 1세기의 유대 사가(史家) 요세푸스(Josephus)는 당시 그들에게 30만 명의 정예 보병, 1만 명의 기병대, 그리고 2만 명의 병거 부대가 있었을 것으로 추정하였다.
“그때에 주님께서 여호수아에게 말씀하셨다. ‘저들을 두려워하지 마라. 내일 이맘때, 내가 이스라엘 앞에 그들을 모두 시체로 넘겨주겠다. 너는 그들의 군마 뒷다리 힘줄을 끊고 병거들을 불에 태워라”(6).
“저들을 두려워하지 마라”는 이미, 요르단 강을 건널 때(1,6.9), 아칸의 죄로 말미암아 아이 성 정복이 실패한 후 다시 정복하기 위해 출전할 때(8,1), 그리고 가나안 남부의 다섯 동맹국을 정복하러 가기 직전에(10,8), 같은 말씀으로 용기를 북돋워 주셨던 하느님께서는 이제 가나안 북부 대군과의 일전을 앞둔 여호수아에게 다시 한번 같은 말씀으로 격려하고 계신다. 아마 이전의 여러 어려운 전투에서 하느님의 이 격려의 말씀과 그의 능력으로 연전 연승했던 이스라엘은 이제 이전보다 더욱더 이 말씀에 용기와 확신을 얻을 수 있었을 것이다. 만일 이스라엘이 이 말씀에 근거하여 승리의 확신을 갖지 못했다면, 바다의 모래같이 많고 더욱이 발과 병거로 무장한 북부의 연합군을 보고 겁을 집어 먹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이전의 여러 전투의 경험을 통하여 이 말씀에 대해 충분히 확신을 얻을 수 있었다.
“내일 이맘 때 내가 ... 시체로 넘겨주겠다”라는 말은 전투를 수행하고 있는 자들은 이스라엘 백성이지만, 궁극적으로 승리케 하시는 분은 하느님이란 사실을 명확히 보여준다. 이미 가나안 남부의 다섯 동맹군을 패배케 하셨던 하느님께서는(10,8-10), 이제 가나안 북부의 전체 동맹군들을 패배케 하실 것이라고 약속하시는 것이다. 한편, 이스라엘이 진치고 있던 '길갈'에서 '메롬'까지는 거리상으로 볼 때, 하루만에 간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따라서 이스라엘 군대는 이미 길갈에서 북진하여 하루만에 메롬에 당도할 수 있을 만큼의 장소에 진을 치고 있었을 것이다.
“군마 둣다리 힘줄을 끊고 병거들을 불태워라” 하느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메롬 전투 승리 후, 노획한 말의 뒷발 힘줄을 끊음으로써 말을 전투용으로 더 이상 사용하지 못하게 하셨고(창세 49,6), 또한 병거를 불사름으로써 이방 부족들의 전투 방식을 따르지 못하도록 명령하셨다. 왜냐하면 만일 그들이 기병대와 병거로 무장하면 하느님을 의지하는 대신 이 기병대와 병거를 더 의지할 우려가 있었으며, 따라서 승리를 한다고 하더라도 그 승리의 영광을 하느님께 돌리기 보다는 말과 병기 등 세상적인 것에 돌릴 염려가 충분히 있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신명 17,16에서는 이스라엘 왕 될 자는 말과 병거를 많이 갖추지 말라는 계명이 주어지기까지 했으며, 시편 20,8에는 "이들은 병거를, 저들은 기마를 믿지만 우리는 우리 하느님이신 주님의 이름을 부르네"라는 노래가 나오게 되었다. 따라서 주님의 군대인 이스라엘은 군인으로서 적군과의 생사를 건 전투에서 반드시 이겨야 하는 것이 사실이지만, 그러나 그 방법상 그들은 세상의 말과 병거를 의지하지 않고, 오직 전쟁을 홀로 주관하시는 능력의 하느님 주님만을 의지해야 했으며, 또한 그렇게 함으로써만 진정 무적의 군대가 될 수 있었다.
“이렇게 여호수아는 주님께서 모세에게 이르신 그대로 모든 땅을 정복하였다. 그러고 나서 지파별 구분에 따라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그 땅을 상속 재산으로 나누어 주었다. 이로써 전쟁은 끝나고 이 땅은 평온해졌다”(23).
이스라엘의 가나안 정복사를 종결 짓는 구절로, 마침내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을 모두 정복함으로써, 이제 정복을 위한 전쟁이 더 이상 필요 없음을 보여 주고 있다. 그런데 우리가 여기서 의문을 갖게 되는 것은 13,1-6; 17,14이하 등에서는 아직도 정복되지 않은 땅이 가나안에 많이 남아 있다고 하면서도, 본절에서는 이스라엘이 가나안 온 땅을 정복했다고 기록한 점이다. 그러나 이와깊이 '모든 땅을 정복하였다'고 하는 표현은 결코 문자 그대로 가나안 전지역을 빠짐없이 골고루 전부 정복한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다만 가나안 주민들이 더 이상 이스라엘에 위협적인 존재가 되지 못할 만큼 그 세력이 약화된 것을 뜻한다. 다시 말해 이 말은 가나안에 대한 지배권이 더 이상 가나안 부족에게 있지 않고, 이스라엘에게 있음을 뜻한다. 사실 완전한 가나안 정복은 다윗과 솔로몬 시대에 가서야 성취되는데, 그때까지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들이 정복지 못한 지역의 가나안 부족들과 많은 지엽적인 싸움을 치러야 했다. 아무튼 실질적으로는 이스라엘이 가나안을 모두 정복하였다고 볼 수 있고, 따라서 이제 여호수아는 정복한 땅을 12지파에게 나누어 줄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 이에 대한 상세한 내용은 13-19장에 기록되어 있다. 한편, 23절과 13장 사이에 있는 12장에서는 일찍이 요르단 동편 땅에서 정복한 두 왕과 요르단 서편의 가나안 땅에서 정복한 31명의 왕을 열거함으로써, 보다 구체적으로 이스라엘의 가나안 정복이 완료되었음을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