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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시간에 이어집니다.
주일날이 완전히 끝날때 까지, 주일이 24시간이 아니라 한 30시간 정도되는 것입니다. 주일의 어떤 교회적인 개념이 조금 다르다는 것, 그리고 그 출발점을 우리는 지금 성경 탈출기 12장에서 만나고 있다는 것에 대해서 생각하시면 된다고 하셨습니다.
탈출 12,7
그리고 그 피는 받아서, 짐승을 먹을 집의
두 문설주와 상인방에 발라라.
신부님께서도 몰라서 찾아보셨는데,
문이 있는데 옆에 있는 문기둥은 문설주입니다. 위에 있는 것은 상인방입니다. 근데 이것은 이스라엘식이라고 합니다. 우리나라식은 가옥의 문이 상인방이 있고 그리고 밑에도 있습니다.
그런데 거기는...
서양 사람들이 우리처럼 요를 쓰지 않고 왜 침대를 썼을까요? 우리는 한옥을 지으면 집을 땅에서부터 띄워서 짓습니다. 그런데 그 띄워서 짓는 그 높이가 빗물이 땅에 떨어 졌을 때, 튀는 높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집 안으로 빗물이 튀어 들어오지 않게 하는 높이입니다.
그런데 서양 사람들은 그런식으로 집을 짓지 않고 기둥 세우고 지붕을 그냥 올립니다. 그래서 집에 들어가면은 밖에 있는 거나 집에 있는 거나 그 흙이 그 흙이라, 그냥 흙바닥이라 거기에서 잘수 없으니까 침대가 필요하고, 걸상이 필요한 것입니다. 소위 말하는 바닥재를 안하는 것입니다.
아니면 카페트같은 것을 깔고 사는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온돌놓고 구들장하고 다 그런것을 했으니까, 우리는 가옥의 구조상 그런 걸상이나 침대가 필요없는 것입니다.
따라서 여기 문에 들어갈 때는 바닥의 얘기는 하지 않고 문설주 그 다음에 상인방 거기다가 그 피를 바릅니다.
그런데 모든 집에 바르는 것이 아니라 짐승을 먹을 집에, 그래서 지난시간에 말씀드린 대로 1204호와 1205호가 같이 그 짐승을 잡아서 먹는데 1205호가 1204호에서 가서 그곳에서 같이 먹는다면 1205호 집에는 바를 필요가 없습니다. 짐승 먹는 그 집에만 바르면 됩니다.
그리고 그 집에서 먹고 도망갈 것이니까, 1205호에서 이미 짐싸들고 1204호에서 가지고간 양잡아 먹고 그 다음에 도망가는 그런틀로 이해하시면 된다고 설명하셨습니다.
상인방(上引紡)
- 창이나 문의 위쪽에 기둥 사이를 가로지르는 나무( 세로 기둥: 문설주, 가로기둥 : 상인방)
그런데 왜? 피를 발라야 하는가? 에 관해서 많은 사람들이 이야기를 했는데 신부님을 설득한 설명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잘모르시겠다고 하시며,
그렇지만 우리가 분명한 것은 구약 성경에서 피는 신성한 것, 거룩한 것!이다. 따라서 피를 함부로 손대지 못하게 하는 그와 같은 성경의 구절이 많이 나오게 되어있고,
그리고 특별히 눈에 띄는 것은 레위기 16장에 보면, 굉장히 학문적 토론이 많은 부분이라고 하셨습니다.
레위기 16장 10절~
숫염소를 광야에 있는 아자젤에게 보내는 속죄예식에 관한 내용
그런데 아자젤이 도대체 뭔지 잘 모르겠어서..ㅜㅜ
많은 토론이 있습니다. 숫염소가 인간의 모든 죄를 짊어지고, 자신이 일년 동안 잘못한 것을 적어서 숫염소에다가 꽂아 놓습니다. 그래서 붙입니다. 그리고 그 숫염소를 광야로 내쫓습니다.
그러면 그 숫염소가 내 죄를 짊어지고 광야로 간다는 그와 같은 뜻이라고 합니다. 이와 같은 신학이 나중에 예수님 십자가에서 우리 죄를 대신해서 돌아가셨다는 대속 신앙과 연결되는 것입니다.
레위기 16장의 ㅡ
숫염소의 속죄 제물 예식은 이후 예수님께서 우리 죄를 대신해 돌아가신 대속신앙과 연결, 십자가에서 우리 죄를 대신해서 돌아가셨다는 대속신앙...
하지만 아주 고대에 전통에는 지금 오늘날 설명하기 힘들정도의 옛날부터 이런 종교적인 전통을 볼수 있는 것이 레위기 16장입니다.
아무튼 그와 맞붙여서 양이 우리를 대신해서 죽었고, 그 피를 우리집 문에다가 바르고 그리고 우리는 그 고기를 먹고 떠납니다. 라는 그런 어떤 파스카에 기본적인 전례적인 틀을 우리가 만날 수가 있습니다.
탈출 12,8
"그날 밤에 그 고기를 먹어야 하는데, 불에 구워,
누룩 없는 빵(מצות)과
쓴나물(מררים)을 곁들여 먹어야 한다."
라는 겁니다. 그들이 먹는 것은 불에 구운 고기입니다. 고기를 먹는 방법이 여러가지가 있습니다. 불에 구워먹는 방법, 물에 삶아 먹는 방법, 쪄먹는 방법,육회, 햇빛에 말려서 먹는 방법도 있습니다. 육포, 돼지머리 눌려서, 압축해서 먹는 방법...참 인간의 지혜는 끝이 없습니다..^^;;
그런데 여기서는 불에 구워 먹어야 한다.하셨지만 고기만 먹으면 그러니까 누룩없는 빵을 먹어야 한다, 그리고 쓴 나물을 먹어야 한다. 여기에 대한 설명이 앞으로 계속해서 지루하게 등장하게 됩니다.
불에 구운 고기 ㅡ 누룩 없는 빵 ㅡ 쓴 나물
한 가지 이 부분, 탈출기 12장을 읽으면서 꼭 기억해야 할 히브리어 두 단어가 있다면은,
페사흐 פסח=파스카,
마쫕מצות=누룩없는 빵 입니다.
앞에서 얘기한 로쉬, 샤나는 잊어버리셔도 페사흐, 마쫕은 꼬옥 기억하라고 하셨습니다.
누룩 없는 빵은 보리 또는 밀을 재료로 하는 빵으로 급하게 구워먹을 경우 누룩 없이 구움,
누룩없는 빵에 대해서 - 창세 19,3 판관 6,19. 1사무 28,24-25 나옵니다.
누룩이 없는(안든) 빵을 구워준 이유에는 시간이 없어서...라는 뜻도 있고
참으로 재밌는게 이스라엘의 제사 규정을 자세히 살펴보면 하느님께 바치는 제물에는 누룩이 안들어 갑니다.
따라서 창세 19,3에서는 하느님은 아니지만 하느님의 천사들이니까 시간이 없어서 라는 세속적인 이유가 있고, 종교적인 이유가 또 있습니다.
그들에게 누룩이 들어있는 것을 주면은 안 되는 것입니다. 판관기에서도 기드온이 천사를 만나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것도 세속적인 관점에서 보면 빨리 빵을 만들어 먹어야 하니까....첫번째 이유고, 두번째로는 종교적인 이유가 있다는 거..
1사무 28,24-25이하는 사울 이야기의 마지막 부분입니다. 여기서는 사울과 그의 신하들이니까 종교적인 동기는 아닙니다. 하지만 급하게 빵을 먹으려니까..
누룩없는 빵이라는 게 우리식으로 얘기하면 서양말에 비스켓, 누룩없이 구운 밀가루 과자같은 것을 말한다고 합니다.
누룩없는 빵을 얘기하는 근본적인 이유를 차차 이야기 전개에 따라서 다시한번 확인되겠지만, 이스라엘이 이집트를 급하게 나왔다는 것입니다.
급하게 나올 수 밖에 없었다. 물론 다른 이유가 결합되어 있다고 하셨습니다만, 무교절 부분에서 자세한 이유에 대해서도 설명하신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쓴나물,
본당에서 이런 파스카 예절을 해 보신적 있으시죠? 하시며,
그때 정말 쓴나물을 고르시는 경우가 있는데 히브리적 관점에서 쓴나물은 상추라고 합니다. 그정도 되면 쓰다고 생각한다고 하셨습니다.
상추쌈에 양고기 싸먹고, 누룩없는 빵에 해서 먹은 걸로 생각하시면 될것 같습니다.
탈출 12,9
그것을 날로 먹거나 물에 삶아 먹어서는 안 된다.
머리와 다리와 내장이 있는 채로 불에 구워 먹어야 한다
굉장히 특별합니다.왜냐? 본래 날로 먹는 것을 금지하는 까닭은? 피와 굳기름때문입니다.
피와 굳기름은 원래 인간이 먹어서는 안되고
ㅡ 하느님께 제물로 바쳐지는 것
이것도 아마 많은 학자들이 피와 굳기름이 먹고나서 탈나는 일이 많았던 것이 아니냐? 구약에 있는 법들을 보면 돼지고기 못먹게 합니다. 돼지고기가 부정한 고기라서 못먹게 하는 종교적인 이유를 대지만 그 안에 위생학적인 배경이 있는 것이 아니냐~ 돼지고기 상한 것을 먹고 사람들이 탈나니까 돼지고기 먹지마라~~를 어떤 종교적인 개념으로 만든것이 아니냐? 라고 생각하는데
피와 굳기름도 역시 마찬가지로 그런것을 먹고 나서 사람들이 자꾸 아프게 되니까 그런 것은 하느님께 바쳐라.라는 뜻으로 해석하는 사람들도 있다고 하셨습니다.
중요한 것은?
구약 성경을 보자면은 피와 굳기름은 하느님께 바치는 것입니다.
ㅡ 창세 9,3-4 레위 3,17; 7,23-26
만약 오늘날 우리가 이 규정을 지켜야만 했다면, 상당히 중대한 문제가 발생했을 겁니다. 우리는 대개 고기를 국으로 많이 먹습니다. 소기름, 돼지 기름, 이런 것을 굉장히 현대에 어떤 식품에서 많이 사용하는데 그런것들을 못먹는 것입니다.
고기만 먹을 수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오늘날까지도 유다인들이나 아랍 사람들에게는 그들이 가는 정육점이 따로 있다고 합니다. 이 사람들은 이것을 지키면서 사니까, 정육점에 가면 소를 도살하는 과정에서부터 이런 피와 굳기름을 따로 다 떼내서 사람들에게 팔때는 그런것들의 핏기가 남아있지 않는 고기부분만 파는 정육점들이 따로 있다고 하셨습니다.
그와 같은 것들은 야훼에게 바쳐질 제물이기 때문이다. 라고 설명하셨고
예제 44,7
º 너희는 마음에 할례를 받지 않고 몸에도 할례를 받지 않은 이방인들을 들여보내어, 내 성전에 머무르면서 나의 집을 더럽히게 하였다. 너희는 나에게 음식, 곧 굳기름과 피를 바치면서, 이렇게 온갖 역겨운 짓을 하여, 나의 계약을 깨뜨렸다.
굳기름과 피를 바치면서(제사를 지냈다는 것을 의미)도 이렇게 온갖 역겨운 짓을 하여 계약을 깨뜨렸다...한 가지 재밌는 것은 그 다음에 등장하는
머리와 다리가 있는 채로 불에 구워먹어야 한다. 라는 참 이상합니다.
머리와 다리와 내장도 역시 재물로 바쳐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는 어떻게 제사를 드릴 시간이 없고 중요한 것은, 아직 성전이 없습니다.
하느님한테 바칠 방법이 없습니다. 따라서
머리와 다리와 내장이 있는 채로, 약간 예외적인 규정임
머리, 다리, 내장
탈출 29,17 : 그 숫양의 각을 뜬 다음, 내장과 다리를 씻어 각을 뜬 고기와 머리에 얹어 놓아라.
레위 1,8-9 : 아론의 아들인 사제들은 각을 뜬 고기와 머리와 지방을 제단의 불에 얹은 장작 위에 차려 놓는다. 제물을 바치는 이가 내장과 다리를 물에 씻어 놓으면, 사제는 그것을 모두 제단 위에서 번제물, 곧 주님을 위한 향기로운 화제물을 살라 바친다.
머리, 다리, 내장은 하느님께 드리는 것인데 , 여기서는 그냥 있는 채로 구워라. 따로 떼어낼 필요도 없다. 그리고 먹어라. 이렇게 이야기를 합니다.
굳기름에 대한 얘기는 여기서 안 나옵니다. 피는? 모두 받아내서 문설주와 상인방에 발라라, 그다음에 머리, 다리 있는 채로 그냥 불에 구워 먹어라. 라고 하셨고 날로 먹거나 물에 삶아 먹어서는 안 된다. 라는 내용입니다.
그리고 먹기는 먹는데 언제까지 먹어야 하죠?
탈출 12,10
아침까지(עד בקר)아무것도 남겨서는 안 된다.
아침까지 남은 것은 불에 태워 버려야 한다.
이 말은 엄마들이 애들한테 "남기지 말고 먹어." 하는 뜻이 아닙니다. 아침까지 남겨서는 안 된다. 라는 말은, 전에도 신부님께서 말씀해 주셨는데...
제사를 드릴 때 거룩한 공간과 거룩한 시간에 거룩한 백성이 거룩하신 하느님과 만나는 그와 같은 것이라고 합니다.
그 제사의 의식이 거룩한 시간을 벗어나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동이 트기전에 아침이 되기 전에 까지가 거룩함에 제한적인 시간이라고 합니다. 그때까지 다 먹어야 한다. 라는 그런 의미입니다.
나중에 레위기, 신명기로 가게되면은 똑같은 규정이 조금 바뀔때가 있습니다.
하루 안에 다 먹어야 한다. 라는 규정이 레위기에서 신명기로 넘어가면서 이틀까지는 괜찮다. 로 넘어가는 경우가 있다고 하셨습니다.
성전에서만 먹어야 한다. 는 규정이 성전 마당까지는 괜찮다. 예루살렘 성전에서만 먹어야 한다. 라는 규정이 지방 성소에서도 먹을 수 있다.라는 규정으로 조금씩 규정안에서 완화되거나 변화되는 틀을 만날 수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제물은 거룩한 시간, 거룩한 공간 안에서 하느님께 바치고, 인간이 하느님과 함께 식탁을 나누는 것. 으로 양을 한 마리 잡아서 일정 부분은 하느님께 드리고 일정 부분은 내가 먹는데, 하느님과 내가 함께 식사를 하는 그 거룩한 시간과 거룩한 공간을 떠나서는 안 된다. 라는 개념으로 이 대목을 이해하면 된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아침까지 남김없이 먹어야 한다.
"아침까지"(עד בקר)
탈출 29,34 : 임직식의 고기와 빵이 이튿날 아침까지 남으면, 남은 것을 불에 태워버려야 한다. 그것은 거룩한 것이기 때문에 먹어서는 안 된다.
레위 7,15 : 감사의 친교 제물로 바친 고기는 예물로 바친 그날로 먹는다. 다음 날 아침까지 아무것도 남겨서는 안 된다.
레위 8,32 : 남은 고기와 빵은 불에 태워 버리십시오.
(우리는 아까워 하는데,...)
레위 22,29-30 : 주님에게 감사 제물을 바칠 경우, 너희를 위하여 호의로 받아들여지도록 그것을 바쳐야 한다. 그것은 그날로 다 먹고 다음날 아침까지 남겨서는 안 된다.
위생학적으로 보면 남은 음식들이 상해서, 상한 것을 먹어서 인간에게 좋지 않은 일이 생기는 관점으로 이해 할 수도 있습니다만,
종교적으로 그것을 어떻게 해석하는 것입니까?
그와 같은 음식들은 거룩한 시간에, 거룩한 시간 안에서 먹어야 한다. 라는 의미입니다.
탈출 12,11
그것을 먹을 때는, 허리에 띠를 매고 발에는 신을 신고 손에는 지팡이를 쥐고, 서둘러 먹어야 한다. 이것이 주님을 위한 파스카 축제다.
직역해보면,
12,11
그렇게 너희들은 먹을 것이다
"너희들의 양 허리가 묶여진 채로"
"너희들의 신발들이 너희들의 양 발에 있는 채로"
"그리고 너희들의 지팡이가 너희들의 손에 있는 채로"
그리고 너희들은 그것을 서둘러 먹을 것이다
따라서 허리가 묶여졌다는 것은 어떤 뜻이냐 하면? 옛날 사람들의 옷이 우리와 다르게 길게 통자로 팔만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활동하기에 불편했습니다. 옛날의 어머니들이 한복입고 부엌에서 일하실 때 허리를 한번 동여 매었습니다. 그와 같은 것을 생각하시면 됩니다.
그런데 아마 긴 옷을 조금 짧게 만든 다음에 허리쪽에 띠로 묶어서 다리활동을 편하게 했던 것 같습니다. 허리를 묶는다는 것은 활동하기 편하게 또는 전쟁하는 동작입니다.
"양 허리가 묶여진 채로"
º 1열왕 18,46 : 한편 엘리야는 주님의 손이 자기에게 내리자, 허리를 동여매고 아합을 앞질러 이즈르엘 어귀까지 뛰어갔다.
º 2열왕 4,29 : 그러자 엘리사가 게하지에게 말하였다. "허리에 띠를 매고 내 지팡이를 들고 가거라. 누구를 만나더라도 인사하지 날고 누가 인사하더라도 응답하지 마라. 그 집에 들어가거든 내 지팡이를 아이의 얼굴 위에 놓아라."
그리고 나서 신을 신은 채 그리고 지팡이가 너희들 손에 있는 채로 길을 떠날 준비를 하고 서서 그것을 먹는 것입니다.
반대로 오늘날 파스카 저녁식사에 예절서를 보면(오늘날 유다인들이 사용하는 예절서), 거의 의자에 누워가지고 먹으라는 그런 어떤 몇가지 규정들이 나옵니다.
그리고 나서 서둘러 먹으라는 이야기가 나오는데, 여기서 "서둘러"라는 것은 무언가에 공포에 휩싸이는 것이라고 합니다.(무언가 두려워서, 무서워서) 서두르는 모습입니다.
"서둘러(בחפזון 버히파존)
º 신명 16,3: 너희는 누룩 넣은 빵을 그 제물과 함께 먹어서는 안 된다. 이레 동안은 누룩 없는 빵, 곧 고난의 빵을 그 제물과 함께 먹어야 한다. 그것은 너희가 이집트 땅에서 급하게 나왔기 때문이다. 또한 너희가 이집트 땅에서 나온 날을 평생토록 기억하게 하려는 것이다.
º 이사 52,12 : 너희는 황급히 나오지 않아도, 도망쳐 달아나지 않아도 되리니 주님께서 너희 앞에 서서 가시고 이스라엘의 하느님께서 너희 뒤를 지켜 주시기 때문이다
ㅡ 이 대목은 이스라엘이 바빌론으로 유배갔다가 집으로 갈때 입니다. 따라서 두번째 엑소더스(두번째 탈출)입니다. 두번째 탈출은 첫번째 탈출과는 다르다. 첫번째 탈출에서 너희는 황급히 서둘러 나왔지만 두번째, 바빌론을 떠나서 집으로 돌아올 때는 황급히 나오지 않아도 된다. 첫번째 탈출보다 더 편안한 탈출이 될 것이다. 라고 얘기하는 부분입니다
그리고 나서 그 마지막 부분,
12,11
이것이 야훼를 위한 파스카이다
또는
이것은 야훼의 파스카이다
해석하기 어렵다고 하셨습니다. 이것이 주님을 위한 파스카 축제다. 라고 성경은 해석했습니다.
직역한다면 이것이 야훼를 위한 파스카(פסח ליהוה) 표현과
관사와 함께 쓰여 הפסח(하페사흐)로 사용되었습니다.
= 이것은 야훼의 파스카이다. 이 부분이 왜 주석가들에게 어려운 대목이냐면,?
아까 파스카를 히브리 말로 페사흐(פסח)라고 합니다.
페사흐(파스카)의 의미
1. 파스카 축제
2. 파스카 제물
이것이 축제를 의미하는 것인지 그 제물을 이야기 하는 것인지에 대해서 학자들의 의견이 조금은 갈리게 됩니다. 따라서 이것이 야훼를 위한 파스카인데 제물일까? 아니면 축제일까? 여기에 대해서 우리들이 생각해야 할 문제입니다.
탈출 12,12
이날 밤 나는 이집트 땅을 지나면서, 사람에서 짐승에 이르기까지 이집트 땅의 맏아들과 맏배를 모조리 치겠다. 그리고 이집트 신들을 모조리 벌하겠다. 나는 주님이다.
탈출기 11장의 4절~5절의 내용이 다시 쓰이고 있습니다. 그리고 직역하자면,
12,12
그리고 이집트의 모든 엘로힘들에게 나는 심판을 할 것이다
나는 야훼다
이집트의 모든 신들에게, 따라서 요 구절만 보면은 이것은 다신적인 신관입니다. 이집트의 파라오만 심판하는 게 아니라, 나는 이집트의 신들까지도 심판할 수 있는 신이다. 라는 뜻입니다. 야훼 하느님의 강력함에 관해서 이야기하는 대목이라고 볼수 있고 마지막에
"나는 야훼다" 가 아주 충격적입니다. 다시 한번 이것을 한다는 하느님의 의지, 혹은 선언적인 강한 어감을 우리가 만날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탈출 12,13
너희가 있는 집에 발린 피는 너희를 위한 표지가 될 것이다. 내가 이집트를 칠 때, 그 피를 보고 너희만은 거르고 지나가겠다. 그러면 어떤 재앙도 너희를 멸망시키지 않을 것이다.
우리 성경이 부드럽게 의역을 했습니다. 먼저 탈출12,13절에서 우리가 보아야 할 것은 왜 문설주와 상인방에 피를 바르는 이유가 설명이 되어있습니다. 그것이 표지가 된다는 것입니다.
누군가가 문 앞에 왔다가 그것을 보고 "음, 이집이 아니네?!!" 건너 간다는 것입니다.
그것에 안발라져 있으면 들어가서 맏이들을 죽인다는 그와 같은 내용입니다. 여기서 어떤 재앙도 너희를 멸망시키지 않을 것이다. 했는데,
직역하면,
12,13
그리고 너희들에게 멸망의 재앙은 없을 것이다
내가 이집트 땅에서 ∨칠 때에
∨: (모든 맏이들을)
여기에서 멸망의 재앙(נגף למשחית)이라고 했는데, 멸망이라고 쓰인 그 마슈힡(משחית)이라는 히브리 단어가 멸망 또는 파멸이라고 번역 될 수도 있고, 멸망시키는 자, 파멸 시키는 자, 파괴자, 라는 의미도 있습니다.
따라서 이 부분은 그리고 너희들에게 파괴자의 재앙은 없을 것이다. 라고 번역될 수도 있는 부분이라고 하셨습니다.
따라서 탈출 12장, 2사무 24장 등에서 이 단어는 의인화되서 파괴자의 의미를 갖기도 하고, 예레 5장에서는 누군가를 파괴하는 도구의 의미로 사용되기도 합니다.
탈출 12,14
이날이야말로 너희의 기념일이니, 이날 주님을 위하여 축제를 지내라. 이를 영원한 규칙으로 삼아 대대로 축제일로 지내야 한다.
라고 이야기합니다. 우리 성경은 이를 현대적인 느낌으로 기념일 이라고 번역했지만은 사실은 그 단어 자체는 추상적인 개념입니다. 기억하고 기념해야 할 어떤 것이다.
이날이야말로 너희가 잊지 말아야 할 기억하고 기념해야 될 어떤 것이다. 따라서 이날 주님을 위하여 축제를 지내라. 기억하고 기념하기 위해서..
구약에서 축제(חג)란?
모든 축제의 의미에는 시간적인 순환의 의미가 있습니다. 매년 그 시간이 되면 다시 오는 것!
따라서 니산 달, 한 해가 시작하는 그달, 15일이니까ㅡ
한 해를 시작하면서 바로 드리는 축제인데, 이스라엘은 한 해를 시작하면서, 한 해의 시작과 함께 ( 우리나라는 구정을 시작하면서 조상들을 기억합니다) 파스카 사건을 기억하는 것입니다.
아! 우리 옛날에 종살이 했었는데 하느님이 우리를 구해주셨지?!! 라는 그 날을 기억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시간적으로 순환합니다.
그다음에 이스라엘의 축제의 개념은, 모두 축제가 마찬가지 입니다만,
공간적으로 순환합니다.(우리나라도 구정 제사가 되면은 우리는 본래의 고향집으로 갑니다) 내가 돌아갈 곳, 내가 본래 태어난 곳, 내가 뿌리를 두는 곳, 그곳으로 가는 것입니다. 모든 축제의 개념에는 시간적 공간적 순환의 개념이 있습니다.
파스카도 역시 마찬가지 입니다.
파스카 축제는 시간적으로도 순환할 뿐만 아니라, 공간적으로도 파스카 축제를 하기 위해서 나중에 이스라엘 사람들은 예루살렘에 모입니다.
예수님도 파스카 축제를 지내기 위해서 예루살렘으로 가십니다. 그 다음에 나귀타고 들어갔다가 또 나와서 제자들과 함께 최후의 만찬을 하는 그런 장면들....기억하실 수 있습니다.
12,14절이 조금은 번역하기 까다롭게 때문에 다시한번 설명한다면,
12,14
너희들의 세대들에게 영원한 규칙으로서
너희들은 그것을 경축할 것이다
여기서 "너희들의 세대들(לדרתיכם)”이란 말은 너희들과 너희들에 뒤를 잇는 세대들입니다.
따라서 너희때만 하지 않고 세세대대로 이런 규정을 준수해야 되는데, 언제까지냐???
언제까지 그런 것 없다! 영원히다ㅡ!!
우리가 자주 기도문에서 기도하는 그대로입니다.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 해야 된다.
지금까지의 이야기들을 되짚어 보면서 몇가지 생각해 볼것들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탈출기 3장에서 모세의 부르심의 이야기에서 등장했던 야훼의 약속이 아홉 가지 재앙의 이야기를 거치면서 점점 구체화 되고 상승 강화됩니다.
그리고 마침내 탈출기 12장, 13장에서는 독자들이 약속의 성취와 대면하게 되고 이스라엘은 정말 놀랍게도, 도저히 그런 일이 일어나지 못할 줄 알았는데, 이집트에서 나오게 됩니다.
그 약속의 성취에 대한 이스라엘의 신뢰가 탈출 12,1-14(파스카)에서 확인돼는 겁니다. 아직 일어나지 않은 사건이지만 하느님으로부터 그 사건이 어떻게 기념되어야 할지에 대한 그러한 세세한 규정을 그들은 듣게 됩니다.
물론 텍스트만 가지고 본다면은,
파스카 축제에 그런 형성 시기에 관해서, 아직 파스카 사건이 일어나지 않았는데 그것에 대한 축제 규정부터 나온다는 것은 굉장히 시대착오적입니다. 시간적으로 뭐가 좀 안맞는 것 같다고...하시며,
해방도 안됐는데, 우리 광복절 행사 어떻게 할래?? 라고 하는 거와 비슷합니다.
그렇기때문에 굉장히 시대착오적인데, 하지만 파스카 축제가 실제적으로 어떤 형성과정을 통해서 자리잡게 되었는지 밝혀내는 것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이 있다면?
지금 이 탈출기를 편집한 편집자의 입장에서는 그 이야기가 단지 과거를 회상하고 기억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현재화하는 그런 하나의....
축제를 통해 현재로 살아 돌아옴을 얘기합니다. 우리 미사도 마찬가지입니다.
아! 예수님이 과거에 우리를 위해서 돌아가셨지? 이게 아니라
미사도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하심이 현재의 우리의 삶으로 살아 돌아오는 자리라는 생명력ㅡ 그것이 바로 축제가 있는 중요한 존재 이유라는 것을 우리가 잊지 않아야 합니다.
탈출기 12장은 지금까지 이야기 진행을 한편으로는 희미하게 유지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파스카와 무교절에 그런 규정을 설명하는 이중적 기능을 수행합니다.
탈출기 20장부터 십계명과 계약의 책을 통해 오경이 갖는 율법서로서에 본질적인 모습이 드러나지만, 탈출기 11장에 이르기까지 탈출기는 아직까지는 이야기적 구성에 충실했습니다.
이제 탈출기 12장은 후에 시나이 사건 이후에 드러나게 될 탈출기에 율법서적인 모습을 살짝 우리들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탈출기 12장에서는 지금까지 우리가 만나지 못했던 여러가지 용어들을 만나게 됩니다. 앞서 말씀하신 이스라엘의 온 공동체, 거룩한 모임, 파괴자, 이와 같은 내용들, 기타의 내용들....입니다.
앞서 말씀해 주신대로 탈출기에서는 달력에 관한 얘기가 나옵니다. 이날은 한해에 시작하는 달로 하여라. 하면서 시간이 질서 잡으면서 새로운 시간이 출발하는 그런 창조 신학적인 관점으로 탈출기 12장, 지금까지도 있어왔고 앞으로도 있을 시간이지만, 무질서 하게 있었던 그 시간들이 자리 잡혀 나가는 그와 같은 모습들,
우리가 창조 신학적으로 해석할 수 있다는 점을 우리들이 기억하면 됩니다.
여기서 작은 가축들을 고를 때, 10일에 고르라고 하죠?
10일에 고르라고 하는 그와 같은 10일이 ?
여호수아기 4,19절 또는 예제 40장에서도, 레위기 23장을 보면
여호수아 4장을 보면, 이스라엘이 첫째달 10일에 요르단에서 올라와서 예리코 동쪽 변두리에 있는 길갈에 진을 친다.
예제 40장에서는 예언자가 연초 10일에 새 성전에 대한 환시를 보게된다.
레위기 23장에서는 속죄일은 일곱째 달 10일이다. 라는 내용들을 우리가 볼수 있습니다.
재밌는 점은?
이집트 연구하는 사람들에 의하면 고대 이집트의 달력은 7일 순환의 구조가 아니라 10일 순환의 구조로 구성되 있다고 합니다.
따라서 한 달에 30일이니까, 한달이 10일, 세번이 돌아가는 그렇게 순환하는 구조로 우리들이 그 구조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신명기 16장에 관해서 짧게 말씀해 주시면,
신명기 16장도 역시 파스카에 대한 규정을 전하고 있는데,
신명 16,7
너희는 주 너희 하느님께서 선택하시는 곳에서
고기를 끓여 먹고,
아침에 너희 천막으로 돌아가야 한다.
똑같습니까? 다릅니까? 다릅니다. 지금 탈출기 12장에서는 고기를 구워 먹고 신명기 16장에서는 고기를 끓여 먹고, 특히나 탈출기 12장에서는 절대로 고기를 날로 먹거나 끓여 먹어서는 안 된다. 라고 얘기했는데,
여기서는 이렇게 얘기합니다. 뭐가 맞을까요?
모릅니다...^^
하지만 우리가 생각해 봐야 할 게 있습니다. 같은 의미인, 두 가지 중에 끓여 먹는다는 게 더 오래된 것일까요? 구워 먹는다는 게 더 오래된 걸까요?
그것도 잘 모르겠습니다!^^
근데 우리들이 흔히 탈출기가 앞에 있으니까, 탈출기가 먼저 만들어진 규정이고 신명기는 나중에 만들어진 규정이겠거니 생각할 수가 있겠습니다.
신명기에서는 구워먹는 것에 대한 언급이 없고, 탈출기 에서는 구워먹지 말아라~~~라는 언급이 있습니다.
따라서 어떤게 더 뒤에거 일까요?
탈출기가 더 후대의 거라고 주석가들은 생각합니다. 탈출기에 12장에 적어도 끓여먹지 말고 구워 먹어야 된다. 라는 규정은 신명기를 교정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서는 끓여먹어도 된다고 하는데, 아니다!
따라서 신명기는 신명기학파가 쓴것일 거고 탈출기 12장은 제관계가 쓴걸 거다. 그런데 제관계가 쓰면서 신명기계가 쓴 "끓여 먹으라"는 것은 잘못된 거다!라고 고치는 것입니다.
구워 먹어라! 끓여 먹어서는 안 된다! 라고 학자들은 생각합니다. 그런데 더 재밌는 것이 있습니다.
성경을 공부하는 게 얼마나 흥미진진한지 몰라요~~~^^
2역대 35,13
그들은 법규대로 파스카 양을 불에 굽고,
나머지 거룩한 제물은 냄비와 솥과 단지에 넣고 삶아서,
뛰어다니며 온 백성에게 나누어 주었다.
이것은 굉장히 뭐라고 할까요??
"싸우지들 말아라!" 신명기적 전통은 삶아 먹는 거고, 제관계 전통은 구워먹는 건데, " 야, 이렇게는 일단은 구워 먹고, 나머지 것은 삶아서 먹자!" 라는 좀 타협적인 내용으로 우리말로는 표현이 어려운데,
영어에서는 negotiation, 협의 교섭 이라는 의미가 사회적으로, 우리가 긍정적으로 봐야할 개념입니다.
" 이런것은 내가 좀 양보할 테니까 상대방도 조금은 양보해라." 우리 사회 안에서 그런 점이 너무 경직되어 있는 것 같다고 하셨습니다.
각자의 입장에서 조금더 물러나지는 않은 것 같다고 하시고, 성경에서는 경직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많은 사람들이 이 페샤흐 라는 유래가 정말로 이스라엘이 이집트를 탈출하면서부터 일것이냐? 라고 생각하기 어렵다는 몇가지 점들을 지적합니다. 그와 같은 역사적 환경에서 출발했다면은 몇몇가지 어색한 것들이 있다.
따라서 많은 주석가들이 생각하기에 페사흐(파스카)라는 그와 같은 축제는 본래 유목민들의 축제 였을 것이다. 그들에게 생기는 재앙을 멀리하기 위해서 그들이 했던 하나의 유목 민족의 축제였을 것이다.
유목민족들이 새 해가 되면, 양을 잡아서 제사를 지내고 "우리 집에는 나쁜 귀신이 들어오지 않게 해 주십시오."라는 뜻으로 그 제사를 지낸 다음에 그 피는 자신들의 문설주와 상인방에 바르는 그와 같은 제사에 형식이었을 것이고 그 비슷한 제사의 흔적을 우리는 레위기 16장 염소에게 온갖 잘못한 것들을 주렁주렁 달아가지고 광야로 아자젤에게 쫃아 버리는 그 예식에도 볼수 있습니다.
그 유목민 축제가 이제 파스카 사건으로 신학화 된, 새로이 해석되는 것으로 파스카 축제를 바라보는 것이 일반적인 학자들의 입장입니다.
다음 시간에 하겠지만,
미리 앞서서 생각해 본다고 하면은, 마쫕(누룩없는 빵에 축제)는 농경민들에 축제였을 것이다.' 본래 농경 사회에서 한 해를 시작하면서 신들에게 감사하고, 그리고 새로은 농사에 우리들도 잘 축복해 주십시오. 라고 기원하는 축제가 이제 시간적으로, 파스카 축제랑 맞물리면서 이스라엘이 이집트를 탈출한 사건에 유래를 둔 것으로 재해석 되는 거.
따라서 파스카 축제도 그렇고 마쫕(누룩없는 빵에 축제부터 있었고) 본래부터 있었던 하나는 유목민들이 한해를 시작하는 , 또 하나는 농경민들이 하나를 시작하면서 감사와 축복을 기원하는 그와 같은 두 축제가 하나로 만나서 이스라엘이라는 민족에 기원을 이루는 파스카 사건, 그러면서 이 탈출기를 적는 저자의 입장에서는 그 두 축제를 어떤 기원으로 설명하는 겁니까?
자신들이 겪은그 역사적인 사건에 기원으로 설명하면서 그 두 축제를 이스라엘의 축제로 신학화 시키고 있는 겁니다. 소화해 내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읽고 있는 이 부분은 그 텍스트만 읽자면은 "아 우리랑 상관도 없고 불에 구워 먹든지, 물에 삶아 먹든지 그게 나랑 무슨 상관이야?" 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이 텍스트를 편집하는 사람에게는 사실은 어떤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 지금까지 지루한 재앙의 이야기를 해온 겁니까?
이 규정이 얼마나 우리에게 의미있는지, 이 축제가 우리에게 얼마나 중요한 축제인지를 설명하기 위해서 지금까지 이야기를 끌고 온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들이 하느님의 뜻을 알아 듣기 위해서는, 앞에 있는 이야기 전개의 내용에 , 오늘날의 신학하는 입장에서는 그 부분에 더 집중하지만, 탈출기를 적은 그 저자의 마음은 "아! 이 부분을 나중에 읽는 사람들이 열심히 그리고 또 내 진심을 잘 알아들으면서 읽어줬으면..." 하고 정성껏 적었을 부분이 탈출기 12장의 그런 부분이 될 것 같다고 하셨습니다.
오늘은 이런, 처음으로 법조문을 우리가 다루기 때문에 여기에 관해서 자세한 설명을 조금은 길게 해 주셨고,
다음 시간부터는 나머지 마쫕(누룩없는 빵)에 축제, 또 맏이들을 바치는 그런 전통들 설명하시면서 이스라엘이 이집트를 빠져나가서 앞으로 어떤 식으로 광야로 나가게 되는지, 또 거기에서 어떤 위험을 겪는지에 관해서 함께 살펴보았으면 한다고 하셨습니다.
수고 하셨습니다. 감사합니다!!
히브리어는 늘 최승정신부님 탈출기 I 에서 참조합니다..^^
첫댓글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