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의 집] 원고—44자×45행=1980자
내 마음에 머문 사람
찢어진 국서 조각을 주워 맞춘 사람
백우선
최근에 한명기의 『최명길 평전』을 읽었는데 최명길(1586-1647)이 내 마음에 머물게 되었다. 병자호란 당시 살아서 지켜야 한다며 직접 쓴 항복 국서를 싸우다 죽어야 한다며 김상헌이 찢고 통곡하자 그 조각을 주워 맞추며 “찢는 사람이 없어서도 안 되지만, 주워 맞추는 사람도 반드시 있어야 한다.”고 말한, 바로 그 사람이다.
청군 선봉 기마대는 얼어붙은 압록강을 건너 기습(1636.12.9), 5일 만에 무악재 근처에 이른다. 강화도 피신 길에 오른 인조 일행은 숭례문 부근에 왔을 때 길이 막혔다는 급보를 받는다. 국왕이 공격받을 상황에서 척화신들은 발만 굴렀으나 이조판서 최명길은 자신이 무악재로 가서 화친을 제의하며 피신할 시간을 벌겠다고 하자 인조는 감격했고, 목숨을 건 그의 지연전 덕에 남한산성으로나마 피하게 된다.
청군에게 포위된 지 한 달쯤 뒤인 1637년 1월 중순, 추위 ‧ 군량 부족 ‧ 고립의 악조건에 처한 인조에게 홍타이지는 무조건 항복을 요구한다. 이런데도 김상헌 등 척화신들은, 임진왜란 때 원군을 보내 구원해준 명의 ‘재조지은(再造之恩)’에 보답하기 위해 나라가 망하고 인조가 죽더라도 끝까지 싸워야 한다고 주장한다. 최명길은 조선 임금이 명을 위해 종사를 포기할 수는 없으며 무고한 생령들의 보전을 위해 청의 요구를 수용하자고 인조를 설득한다. 그는 ‘현실’을 고려한 ‘선택적 원칙론’에 입각해 종사와 백성을 먼저 생각해야 한다고 계속 간청했고 인조가 받아들인다.
그리하여 항복(1637.1.30)의 굴욕은 당했지만, 조선 종사는 보전되었고 인조도 왕권을 유지했으며 영토를 떼어주지도 않았고 경제를 마비시킬 정도의 세폐 부담도 지지 않았다. 끝까지 저항하다 함락된 명나라 양주성 관민들처럼 수십만 명이 도륙되지도 않았다. 냉정하게 평가하면 사실상 ‘무조건 항복’이었음에도 ‘선방’했다고 할 수 있다. 이것은, 때로는 양측의 비난을 감수하면서도 노심초사 발이 닳도록 남한산성과 청군 진영을 왕래해 화친을 성사시킨 최명길의 일관성과 뚝심의 결실이었다.
그는 인조 등극 후 광해군 때 평안도 관찰사로 탐학을 자행했으나 외교 ‧ 전략 능력이 뛰어난 박엽을 구명하려 했고, 병자호란 후에는 척화신들이 준열한 ‘평가자’, ‘심판자’들이 되어 ‘오랑캐’에게 항복한 인조와 조정에 등을 돌려 사직하거나 청 사신 전송에 불참하고 공무 맡기를 기피해 난국 수습에 고군분투한다. 하지만 이처럼 포용력과 책임감이 남다른 최명길은 ‘사상 최악의 간신’으로 매도되고, 항복 직후 인조를 버리고 낙향한 김상헌은 ‘조선의 정사(正士)이자 영원한 사표’가 된다.
최명길은 병자호란 뒤 청이 명을 치기 위해 조선인을 징병하려 하자 병이 심해 장례 도구까지 챙겨 가서 막아낸다. 명에 대한 의리를 지키기 위해 승려 독보를 보내는 등 명과 밀통하다가 발각되자 격분한 청을 진정시키기 위해 주저 없이 또 청으로 가서 인조 보호에는 성공하나 자신은 심양 감옥에 갇힌다. 이때 김상헌도 심양에 수감되어 둘이 만나게 되고 서로의 본심을 이해해 화해에 이르게 되며 둘의 우정은 그들의 다음 세대에까지 이어진다.
수만 명으로 추산되는 피로인(전투 중 붙잡은 민간인)을 청은 심양으로 끌고 가 종이나 첩을 삼았고, 도망쳐 오면 다시 심양으로 보내게 했으며, 은으로 몸값(10냥쯤이 점점 올라 100냥쯤이 됨)을 내면 풀어주었다. 최명길은 귀환인들의 기아 모면과 안전 도모, 여인들의 순절과 이혼 금지 등 백성들의 현실적인 고통을 덜어주려고 애쓴 유일한 정치인이었다. 훗날 박세당은 “조선인들이 편히 잠자리에 들고 자손을 보전한 것은 모두 최명길 덕분”이라고 단언한다.
병자호란은 17세기 초 ‘끼여 있는 나라’ 조선이 패권국 명과 신흥 강국 청의 대결 구도 속에서 겪은 비극이다. 오늘날 대한민국은 또 다른 문제와 맞닥뜨리곤 한다. 남북 분단과 미중 대결 구도에서 결정적인 선택의 순간을 맞을 수도 있다. 그 엄혹한 때 최적의 선택을 하는 데엔 ‘최명길 정신’이 주효하지 않을까? 어쩌면 개인의 삶, 집필 방향 설정에도 그 정신이 필요할 듯해 최명길을 내 마음에 머물게 한 것이다.
(시인)
백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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