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성폭력상담소협의회(이하 전성협)는 9개 권역 133개소로 구성(2023년 12월 31일 기준)되어 있으며, 성폭력이 사회문화와 통념으로 인해 여성에게 가해지는 사회적 문제임을 알려내고, 성폭력피해자의 인권보호와 지원을 위한 정책과 제도 및 사회의 변화를 도모하기 위해 설립된 협의체이다.
전성협은 우리나라 성폭력 현실을 돌아보기 위해 2022년 ‘전성협 성폭력 피해자 지원현황’을 발표한 바 있으며, 매년 지원현황 분석 결과를 공유하여 여성폭력의 심각성을 알림과 동시에 정책 개정의 필요성을 제안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직장, 학교, 집, 동네공원 등 일상 곳곳에서 여성의 안전이 위협받고 끝내 죽음을 면치 못하는 경우가 다수 발생하고 있음을 지원현황을 통해 확인하며, 성인지 적 관점의 법과 정책 마련, 성평등 추진체계를 공고히 할 것을 제언하였다. 여전히 여 성가족부 폐지를 추진하는 정부 기조와 차별과 혐오로 여성 삶 곳곳이 위협받는 현실 속에서 성폭력의 현실은 어떻게 변화하였을까? 2023년 전성협 성폭력 피해자 지원현 황을 통해 살펴보고자 한다.1)
1. 2023년 전성협에서 지원한 피해자는 총36,217명(256,557건)이며 그 중 성폭력피해자는 15,542명(169,591건)이다.
[표 1-①. 성폭력 상담소 지원현황_그래프]
(단위:명,건)
1) 본 지원현황은 전성협 133개소 중 132개소의 2023년 연간 지원현황이며, 성폭력, 성희롱, 기타(데이 트폭력, 스토킹, 성상담)을 포함하고 있다. 각 표 및 그래프는 2022년 지원현황과 비교분석하여 표기 하였다.
2023년 전성협에서 지원받은 성폭력 피해자는 15,542명으로 지난해 보다 126명 (0.8%) 증가한 반면 지원 건수는 지난해 대비 11,293건(7.1%) 증가했다.
지원 건수의 증가는 한 명의 피해자에 대해 좀 더 촘촘하고 세밀한 지원이 포괄적으 로 이루어지고 있음을 의미한다. 피해자의 일상회복 및 치유의 과정을 지원하는 심리 정서지원(85,070건), 피해자의 수사⦁사법과정을 조력하는 수사법적지원(30,833건)등 증가된 지원 내용은 성폭력상담소에서 피해자들이 성폭력 피해 이후 대응부터 치유와 회복의 전과정에 긴밀하고 지속적인 지원을 하고 있다는 지표이다.
전성협 통계에서 기타상담(20,675명/86,966건)으로 분류되고 있는 교제폭력, 스토킹, 성희롱 등을 포함하면 성폭력상담소가 여성에게 가해지는 폭력과 불평등한 사회구조를 변화시키고, 피해자의 인권이 회복될 수 있도록 여성폭력 전반에서 활발하게 지원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2. 일상적인 생활공간부터 실체를 알기 어려운 디지털 공간까지, 복합적이고 다양해지는 성폭력 피해가 증가하고 있다.
2023년 성폭력상담소 지원건수는 2022년에 비해 11,293건 증가하였다. 비슷한 피해 자수에도 불구하고 지원건수가 증가한 이유는 젠더를 기반으로 한 폭력의 형태와 방 법이 더 다양해지고, 더 복잡해진 것이 영향을 미쳤음을 보고하고 있다.
일상적인 생활공간에서부터 가해자의 실체와 피해의 정도를 알기 어려운 디지털공간까지, 대면/비대면을 넘나들며, 성폭력, 교제폭력, 스토킹, 경제적 착취와 인권침해까 지 한 가지로 적용되지 않는 복합적인 피해로 지원을 요청하는 사례가 점진적으로 증 가하고 있고, 이에 대해 다층적인 지원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 한 사례의 경우, 연인사이에서 강간 및 신체적 폭력이 지속적으로 발생되던 중 피해자가 이별을 통보하자 가해자가 집과 회사로 찾아오고 수백 통의 연락을 시도하였으며 성관계 영상을 유포하겠다 협박하기도 하였다. 성폭력상담소는 강간 및 스토 킹 등 법적 절차에 따른 지원은 물론 피해자의 심리정서적 치유와 회복을 위해 의료 적, 심리적 지원을 하였다. 또한 가해자로부터 안전을 확보할 수 있도록 피해자와 피 해자 가족에 대한 안전조치, 집, 직장 등 일상적 공간에서의 안전망 확보, 보호시설 및 디지털성범죄지원센터 연계 등 다각적인 지원을 하였다. 뿐만 아니라 가해자 측에 서 명예훼손으로 역고소하고, 오히려 피해자에게 민사소송을 청구한 건에 대해 지원 이 필요했다.
위 사례처럼 성폭력 사건뿐만 아니라 젠더를 기반으로 한 각종 폭력피해나 경제적, 물리적 폭력 등 복합피해를 호소하는 상담유형이 늘어나고 있는 추세이며 이러한 복 합피해 유형을 다층적으로 지원하기 위해서는 그동안 축적된 피해자 지원경험의 전문 성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특히, 각 법과 정책의 사각지대에 있는 사건에 대해서도 인권감수성을 바탕으로 지원하며, 피해자의 치유와 회복을 위해 조력하는 성폭력상담소의 역할은 앞으로도 더 확대될 수밖에 없다.
3. 디지털성폭력 근절을 위해 법의 사각지대까지 연대⦁지원하고 있다.
최근 텔레그램을 기반으로 한 피해영상물 대화방이 지역, 학교, 나이, 직업 등을 가리 지 않고 운영되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보도에 의하면 최대 22만명이 참여하고 있는 채널까지 확인되었다. 여성을 대상화하여 불법촬영물이나 허위영상물을 제작하 고, 함께 보고 즐기며 소비하고, 묵인과 방관으로 범죄에 연대하며, 경제적 보상과 인 정을 통해 왜곡된 성문화를 확대-재생산하며 한국 사회를 잠식하고 있다.
디지털성폭력은 폭력 피해에 대한 대응, 피해촬영물 삭제 지원, 피해자 보호, 수사⦁법 률⦁의료 지원 등 다양한 피해자지원체계가 유기적으로 네트워크하며 발빠르게 지원 하는 것이 요구된다. 특히 피해자나 가해자가 전국적으로 광범위하게 분포되어 있는 경우나 한 가해자에 의한 피해자가 방대하여 제대로 특정되기 어려운 경우, 현행법상 범죄로 포괄 여부가 불투명한 형태가 포함된 경우 등 디지털성폭력에는 다양한 사각 지대가 존재한다.
전성협에서 공동대응한 디지털성폭력의 경우 한 사건에 관련된 피해자와 가해자가 매 우 방대하였다. 그러나 피해의 정도에 따라 어떤 피해자는 피해상황을 제대로 알지 못 한 채 종결된 경우가 있었고, 가해자들의 관할이 다양한 곳으로 분포되며 각각 진 행되는 재판의 내용 및 상황에 대해 피해자는 파악조차 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었다. 이 과정에 성폭력상담소에서는 전국의 회원단체와 협력하여 사건을 모니터링하고, 엄 중한 처벌을 요구하였으나 수사 및 사법기관과의 협력에는 한계가 있었다.
4. 성폭력 범죄, 가해자의 연령이 낮아지고 있다.
성폭력 가해자의 유형을 살펴보면 직장관계자, 단순대면인, 동급생⦁선후배, 친족 및 친인척, 전⦁현애인 및 데이트상대자, 모르는 사람, 채팅상대자, 이웃 등의 순으로 나타 났고, 동급생⦁선후배 가해자는 5.6% 증가하였다. 또한 가해자 연령은 19세~65세미만 의 경우 22년에 비해 23년이 감소한 반면 19세 미만 아동⦁청소년은 2,042명(12.4%) 으로 소폭 증가하였고, 이 중 13세 미만이 21%이다.
정보통신 기술의 발달과 나이, 성별을 불문한 디지털성폭력의 증가, 차별과 혐오가 가 치중립적인 것처럼 확산되는 작금의 상황은 전인적이고 인권관점의 성교육이 절실히 필요하다는 방증이다. 그러나 정부 및 각 지자체에서는 악성민원에 발맞춰 성인권, 성 평등 도서를 유해도서로 폐기하고, 아동청소년을 대상으로 하는 성인권 사업을 폐지하는 등 관련 예산을 삭감하고 있다.
성폭력 예방은 올바른 성 가치관의 형성과 다양한 정체성을 가진 사람들과의 건강한 관계 맺기 교육을 통해 실현 가능하며, 특히 잘못된 성문화와 인식으로 성폭력 가해자가 된 아동⦁청소년의 재발방지를 위해 지속적인 성인권 교육이 필요하다.
불평등한 성별 권력관계와 성차별이 만연한 사회구조 속에서 아동⦁청소년이 폭력에서 자유롭고, 교육 사각지대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충분한 성인지 관련 예산을 바탕으로 포괄적 성교육이 전면적으로 시행되어야 할 것이다.
5. 결론 및 제언
가. 지역이나 피해유형을 넘어 통합적으로 지원하는 성폭력상담소의 전문성이 강화될 수 있도록 지원예산을 확보하고 기능을 증대하라.
최근 젠더를 기반으로 한 다양한 복합피해자들이 증가하고 있으며, 이러한 피해자를 지원하기 위해서는 불평등한 성별권력 구조를 이해하고, 피해자 관점으로 피해를 재해석하여 지원하며, 법과 정책으로 제안하여 사회구조를 변화시킬 수 있는 전문성이 요구된다.
성폭력피해자에 대한 지원예산을 삭감하고, 젠더폭력 각 분야의 전문성과는 상관없이 지원체계를 통폐합하는 것으로는 성폭력의 발생구조나 인권중심적 법과 제도로의 사회를 만들 수 없다. 정부는 성폭력상담소의 전문성을 바탕으로 다양하고 복합적인 피해지원을 강화하기 위한 방안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나. 법과 정책의 사각지대에 있는 디지털성폭력 피해자 지원을 위해 협력체계를 견고히 할 것을 요구한다.
디지털성폭력은 디지털기술과 비례하여 다양한 피해유형이나 방법, 광범위한 지역이나 직업, 특정한 관계나 나이 등을 초월하여 발생하고 있고, 법이나 정책에서 소외된 피해자 또한 증가하고 있다. 정부는 전문성과 성인지감수성을 기반으로 민관 협력체계를 구축하고, 디지털성폭력 근절을 위한 법개정 및 정책을 마련하여 현행법상 사각 지대의 폭력에 대응하여야 한다.
국가 위기적 수준의 디지털성폭력 대응 및 예방을 위해 협소한 지침과 기준을 보완하 고, 디지털성폭력 특성을 반영한 수사⦁사법체계를 정비하라. 피해자를 직접 지원하는 현장의 목소리를 반영한 협력체계를 통해 사각지대 피해자의 사법적 권리가 보장될 수 있는 정책을 마련하라.
다. 건강하고 안전한 아동⦁청소년의 성인식 형성을 위해 포괄적 성교육을 실시할 것을 요구한다.
디지털기술의 발달과 다양한 플랫폼의 무분별한 콘텐츠로 19세 미만 미성년 가해자가 증가하고 있다. 아동⦁청소년 성폭력의 대응 및 처벌만큼 중요한 것은 적극적이고 선제적으로 성폭력을 예방하는 것이다.
성폭력 예방교육은 우리가 경험할 수 있는 성에 대한 모든 것을 포괄하는 전인적이며, 인권관점의 ‘포괄적 성교육’으로 실시되어야 한다. 그러나 현 정부는 성인권 및 성 평등 관련 교육을 폐지⦁축소하고, 성별 고정관념을 강화하는 등 성평등 교육 정책이 퇴행하고 있다. 정부는 건강하고 안전한 아동⦁청소년의 성가치관 형성을 위해 포괄적 성교육을 전면적으로 실시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