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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2 편
창 12-26장: 아브라함과 유대인, 이슬람 & 크리스천 Genesis 12-26 Abraham, the Jews, Islam and the Christians
※ 이스라엘의 율법의 순종에 대해서( 이스라엘 역사, 율법에 대해, 율법에 대한 예수님의 말씀, 율법의 국가 공동체성, 율법의 설명)
먼저 이스라엘의 준법에 대해서 봅니다. 아브라함이 이렇게 삶에서 본을 보이고 그의 후손이 이삭과 야곱과 그의 두 아들을 통해서 늘어나고 이들이 약 기원전 1876년 무렵 이스라엘로 들어갑니다. 먼저 선발대로 요셉이 들어가서 하나님의 인도로 총리가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약 400-430년이 흐르고 거대한 민족으로 성장해서 이집트를 나옵니다. 이 아브라함의 후손 이삭의 후손 그리고 야곱과 그의 아들 12지파가 성장하는 과정과 살아온 세월을 구약을 통해서 잘 살피면 이를 기준으로 아직도 세계사를 통해서 혹은 각국의 역사를 통해서 잘 밝혀지지 않은 진리가 밝혀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을 잘 연구를 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스마엘과 그두라의 후손의 역사를 성경을 보면서 혹은 자국의 역사를 통해서 혹은 이슬람의 역사를 통해서 보면 많은 부분들이 새롭게 보이고 정확하게 보일 줄로 믿습니다.
이제 이스라엘 민족은 하늘의 별과 같이 숫자가 늘어납니다. 그리고 역사의 요약입니다. 참고를 위해서 지구 전체의 시간과 인구를 표시했습니다.
이스라엘 1000년의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성경책은 당연히 모세 오경이고 이를 율법이라 하니 율법이 가장 중요합니다. 아브라함과 무엇이 다릅니까? 하나님의 약속대로 하늘의 별과 같은 후손이 생깁니다. 그리고 이스마엘과 그두라의 후손도 역시 하늘의 별과 같이 생기면서 이스라엘 주변에서 국가를 형성합니다. 하나님의 아브라함과 약속대로 그렇게 됩니다. 나라와 민족이 생기고 번성하고 멸망함이 다 하나님께 있고 이는 율법대로 되는 것입니다. 믿는 이 믿지 않는 이 다 자신의 의지와 의도와 관계없이 이렇게 온 역사를 통해서 모든 인류가 율법의 지배를 받고 나중에서는 율법대도 심판도 받습니다. 따라서 예수를 믿는 이 믿지 않는 이 이삭의 후손이냐 이스마엘의 후손이냐를 가리지 않고 무차별적으로 불가항력적으로 적용이 되고 그 사람의 운명을 결정하는 법이 바로 모세 오경의 율법인 것입니다. 그리고 이 법대로 정확하게 이스라엘은 향후 1500년을 지배를 받고 융성하고 쇠퇴하고 침략도 당하고 멸망도 하고 포로로 잡혀도 갑니다. 이는 하나님의 율법을 이스라엘이 잘 지켜서 복을 받고 제사장의 나라가 될 때 주변에서 이를 보고서 왜 그러는 지 볼 때 율법을 잘 지킴을 통해서 그렇게 되는 것을 보고서 하나님을 믿고 그 법대로 살 때 진실로 이 땅에 천국이 이루어지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이스라엘을 택한 목적이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을 선택하시고 믿음의 본도 보이면서 선한 사람의 본도 보이고 더 나아가서 법을 잘 지켜서 복을 받는 것도 보인 것입니다.
그리고 모세가 출생해서 이집트에서 동족의 고난을 봅니다. 그리고 이들이 이집트의 학정을 더 이상 견디지 못할 때 모세를 통해서 출애굽을 하고 광야에서 훈련을 받습니다. 40년 훈련입니다. 그런데 훈련 전에 하나님께서 율법을 주시면서 순종하면 축복, 어기면 저주를 받겠노라 이스라엘 회중이 약속을 하고 이렇게 훈련을 시킵니다. 이 하나님과 약속이 구약입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은 개인이며 가족이며 종들이 있는 집단입니다. 그런데 이 집단이 약 400년의 세월이 흐르자 수백만의 사람으로 늘고 이들이 이스라엘이라는 국가를 형성합니다. 이제는 율법이 개인의 삶에 대한 규정을 넘어서 한 국가를 통치하는 법으로 존재합니다. 그리고 그 법은 개인이 만든 법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모든 인류가 다 정의롭게 공평하게 행복하게 살 법으로 주십니다. 이 법을 이스라엘은 약 모세로부터 받은 후로 3500 년 동안 글자 한 자 틀리지 않게 잘 보존합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오셔서 신약의 시대가 시작이 될 때에도 성경에서 구약으로 똑같이 성경을 구성합니다. 제가 국가법으로서 율법이라는 제목으로 성경에서 검색을 하니 한 분의 목사님께서 너무나 정확하게 이 부분을 전하시는 분을 만났습니다. 실로 보기 힘드신 분이시며 아래 내용은 제가 보기에 너무나 정확합니다. 복음을 이렇게 정확하게 전하는 분은 실로 온 세상에 별로 없습니다. 너무나 귀한 분이시고 가르침입니다. 제 글은 일주일 정도 시간을 두고서 작성이 되고 있습니다. 긴 글입니다. 읽으실 때 조금 조금씩 시간을 두고서 읽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아래 동영상도 꼭 보시가 바랍니다. 그리고 너무나 정확하게 잘 전하십니다. 저는 군산에 가면 전주에 계신 목사님이니 꼭 찾아가서 가르침을 받을 생각입니다. 3년 전의 설교인데 오늘날 한국의 사정에 너무나 정확한 말씀이십니다. 대학에 가고 대학원에 간다는 것은 배움을 더 깊이 하기 위함이고 이는 홀로 배우는 것에 늘 한계가 있으니 이미 학문적으로 훌륭한 분들의 배움을 속히 배우고 또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 새로운 내용도 밝히는 것인데 성경을 배움에도 이렇게 열린 마음이 꼭 필요합니다. 좁은 교리를 넘고 더 깊은 진리로 가는 여정에 학벌, 지연 다 극복해야 합니다. 성경은 우주적인 것이고 하나님도 우주 전체를 운행하시며 온 교회의 머리로 계십니다. 모든 목사, 장로의 교회가 다 하나님의 소유입니다. 부디 크게 보고 깊게 공부하고 넓게 사고 하는 분들이 한국의 교회 지도자가 되고 목사는 적어도 사법고시 합격자나, 의사보다 더 똑똑해야 되고 이들이 젊어서 온 세상에 대해서 잘 배우고 성경도 배우고 그리고 성령을 받아서 반드시 세상에서 바울과 같이 전도하면서 그 사고를 넓히고 성경을 깊이 이해하고 영어도 잘 배우고 그래서 온 세상에 바울과 같이 신약과 구약을 전해서 이들이 주 안에서 모두가 하나가 되게 예수님께서 이 땅의 모든 교회를 통치할 때 온 교회가 주님을 찬양하고 하나가 되어서 섬기는 날이 오도록 해야 합니다. 제 오천만의 로마서는 제가 의도하지도 않았지만 이런 방향으로 가고 있습니다. 할렐루야!!
http://www.youtube.com/watch?v=rfAdeCNOQwY
이 법에는 피조물인 온 인류가 서로 화목하게 행복하게 잘 사는 비결이 다 있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1000년의 역사를 통해서 이 법대로 되는 것을 누구나 확인을 하게 역사서와 예언서 시가서가 차례로 기록이 됩니다. 이 법을 이스라엘에게 주시고 모세에게 주신 예수님께서 직접 오셔서 우리에게 똑같이 잘 지키라고 명령을 하십니다. 왜 그렇습니까? 창세부터 하나님께서 이 땅에 세우고자 하시는 나라 즉 하나님의 나라는 완벽한 법치의 국가로 미리 법을 주시고 법을 보면서 잘 배우고 지키면 복을 주시는데 이 땅에서도 복이요, 천국에 가서도 복인 것입니다. 이는 모든 인류에게 공통이고 모든 인류가 이 땅에 살다가 죽으면 모두가 최후 심판을 받는데 그 기준이 바로 또 율법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진리입니다. 이것을 피하고 싶어서 누구도 피할 수가 없고 모든 인류의 사명입니다. 그 사명이 때론 즉 율법을 보지 못한 시대의 인류는 자신의 양심이 기준이 되고 신약에서는 이미 이스라엘의 율법을 지킴을 어려움을 보신 하나님께서 예수님과 성령을 통해서 신약의 성도는 죄의 용서를 통해서 성령을 받고 거듭나고 새롭게 된 피조물이 성령의 인도로 지키게 되는 것입니다. 율법을 함부로 대하는 자는 모두가 지옥입니다. 신학자 목사 장로도 피할 수가 없습니다. 오직 예수님의 말씀대로 믿고 순종해야 합니다. 바울의 모든 글도 예수님의 말씀 안에서 해석이 되어야 합니다. 세상의 창조주의 말을 일개 인간 사도로 그분의 종의 신분으로 절대로 죽어도 어떻게 못합니다. 오직 예수님의 말씀을 글자 한자 어떻게 하지 않고 다 이루려고 서신서를 쓴 것입니다. 천국은 법치요 질서가 완벽합니다. 그 질서가 이 땅에서 율법을 통해서 이루어집니다. 신학도 해석도 교리도 대형 교회 목사의 사견도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그리고 예수를 믿지 않는 공부한 사람의 글도 아무리 추종자가 많아도 그럴 듯 해도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신학교에서 이들에게 배워야 한다면 참고를 하고 믿지는 마시기 바랍니다. 일게 불을 쫓는 불나방의 소리요 헛것 입니다.
진실로 성경 전체 창세기로부터 한 번도 변함이 없는 진리가 피조물을 누구를 막론하고 예외가 없이 하나님께 순종해야 되는데 법대로 순종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법을 어기면 죄가 되고 저주가 임하는 것입니다. 이 원리가 한 번도 변함이 없이 최후 심판까지 그대로 갑니다. 절대로 누구도 벗어날 수가 없는 의무이고 이를 아브라함이 본을 잘 보여서 어려운 일이 아님을 보였고 이제는 국가로 성장한 이스라엘에게 하나님께서 더욱 세분화된 법 율법을 주시면서 지키게 하셨고 신약에 와서도 직접 예수님께서 오셔서 율법을 지키라고 명하셨고 최후 심판의 기준이 되니 누구도 이 진리에서 벗어난 자 즉 교회에서 높아져서 마음대로 하는 자, 그리고 모든 것이 풍족하니 마음대로 하는 자, 모두가 지옥에 두 말 없이 가는 것입니다. 대통령이 되고 왕이 되어도 누구나 이 법대로 살아야 소망이 있고 이 법에서 벗어난 유물론자 공산주의자는 모두가 하나님도, 율법도 인정하지 않으니 당연히 모두가 지옥이고, 불신자는 율법대로 살 가능성이 거의 없으니 지옥이고, 예수를 믿는다고 하면서 마음대로 하는 큰 교회 목사나 그의 아들이 다 지옥이 가까운 자들인 것입니다.
제가 절대로 하는 말이 아니라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이 원리를 전하지도 지키지도 않고 마음대로 하는 것을 즐거워 하며 자본의 물질에 우상으로 잡혀 있고 여자에 잡히고 권력에 잡히고 하는 모든 자가 법대로 살기를 포기한 자니 지옥이 바로 그의 앞에 있습니다. 진실로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정확하게 천국에 가고 아니 가고, 가서 영원토록 큰 자로 살고, 영원토록 지극히 작은 자로 사는 것을 모두가 알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대로 됩니다. 신학도 목사도 누구도 덤비지 못하고 다 이 예수님의 말씀대로 되고 지배를 받습니다. 피해 갈 도리도 빠져 나갈 도리도 없습니다. 이 법을 지키는 것이 복이요 자유요 행복입니다. 모두의 행복입니다. 홀로 잘 먹고 잘 살고자 하는 모든 인간은 이 법을 어기면서 지옥으로 가는 것입니다. 대형 교회 목사도 이 말씀 앞에 조금도 여유를 가질 수도 없고 특권도 없습니다. 오직 영적으로 지극히 미약해서 이 원리를 모르고 지옥으로 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들을 믿고 이대로 같이 사는 모든 장로, 권사, 성도가 희망이 없습니다. 70-80년 세상에 와서 누리다 지옥에 가서 영원토록 타는 불 속에서 산다면 그가 죽어서 불로 갈 때 불 속에서 몇 초 지나지 않아서 그의 평생의 삶이 다 사라지고 고통만 영원히 지속이 될 것입니다. 반면에 이 법대로 살아서 핍박도 받고 고문도 받고 순교한 사람은 죽으면 영생을 누리며 옛 일을 추억으로 생각하며 이도 곧 잊게 될 것이니 천국이 그렇게 행복해서 시간이 가는 줄로 모르는 곳이니 그런 것입니다. 이 무서운 일을 설교도 않고, 배우려고도 않고, 가르치지도 않고 대부분의 대형교회 목사가 일생을 그냥 사니 그 영성이 제로에 가까우며 이런 자들을 목사로 섬기면서 성도 또한 자신의 생명도 그렇게 가볍게 여기고 사니, 이 역시 세상의 쾌락에 열락에 심취하고 진리를 외면하니 누구도 원망하지 못합니다. 저나 여러분이나 헬라인이나 유대인이나 천주교인이나 개신교인이나 모든 사람에게 공통으로 예외가 없이 적용이 되는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진리입니다. 누구도 흔들 수도 외면할 수도 피해 갈 수도 없습니다. 그대로 믿고 그대로 사는 것이 답입니다. 너무나 무섭고 중요한 말씀이 아래 말씀입니다. 성도여! 당신의 목사가 한 번도 아래 말씀으로 설교를 아직도 하지 않고 있다면 그는 진실로 가짜입니다.
예수와 율법(개역개정)
마 5:17.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하게 하려 함이라
18.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 일획도 결코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
19.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계명 중의 지극히 작은 것 하나라도 버리고 또 그같이 사람을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지극히 작다 일컬음을 받을 것이요 누구든지 이를 행하며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크다 일컬음을 받으리라
20.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낫지 못하면 결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예수님께서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그리고 천지의 창조주이시고 하나님의 본체이십니다. 모세에게 모세 오경을 주신 분이시고 아브라함을 다 아시는 분이십니다. 그분께서 오셨습니다. 그리고 율법에 대해서 말씀하시고 천국에서 큰 자가 되고 작은 자로 영원히 사는 것을 설명합니다. 그리고 천국에 죽어도 들어가지 못하는 경우를 설명하십니다. 신학도 아니고 교리도 아닌 성경 그 자체이고 율법으로 최후에 모든 인류를 심판하실 심판주가 되시는 예수님의 말씀이십니다.
예수를 믿는 이, 믿지 않는 이가 가장 주목해야 되는 말씀입니다. 성경 전체에서 이렇게 하나님의 아들의 오신 목적과 그분이 계신 천국에 가서 상을 받고 하는 문제와, 천국에 아예 들어가지 못하는 것을 이렇게 간략하게 정확하게 설명한 말씀은 없습니다. 그래서 천국을 사모하고 천국에서 상을 받고자 하는 모든 사람은 가장 주목해야 되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달리 해석도 교리도 필요가 없이 그대로 보고 믿어야 하는 말씀입니다. 이 땅에서 복을 받고 마음대로 살고 그냥 죽고자 하는 사람은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됩니다. 천국에 가지 않아도 된다는 사람은 보지 않아도 됩니다. 천국에 가도 상급에 관심이 없는 사람도 보지 않아도 됩니다. 그런데 예수를 믿고 천국에 가고자 하고 천국에 가서도 남보다 더 영원히 잘 살고 싶은 분은 반드시 보고 지켜야 하는 말씀입니다. 이 땅에서 70년 80년의 삶과 천국에서 영원한 삶의 연관성을 알고자 하는 모든 성도는 반드시 이대로 보고 믿고 살아야 합니다. 그리고 이 말씀은 지구상에서 살았던 모든 성도와 지금 사는 30억 모든 성도와 앞으로 예수를 믿는 모든 사람에게 똑같이 적용이 되는 가장 중요한 구절입니다. 목사, 장로, 권사, 신부, 교황, 추기경 모두에게 공평하게 적용이 되는 말씀입니다. 한 명도 예외가 없습니다. 나도 너도 특별한 사람이 없이 모든 지구인에게 공평하게 적용이 되는 말씀입니다. 즉 목사라 해도 장로라 해도 교황이라 해도 추기경이라 해도 다 예수님의 종들에 불과한 사람들인데 이 땅에서 사람들에게 조금 존경도 받고 높임을 받아도 이 구절 앞에 절대로 특별하지 않고 이 구절대로 되는데 율법을 잘 배우고 지키고 그렇게 하도록 가르치면 이들은 직분에 관계없이 천국에서 큰 자로 영원토록 살고, 비록 이 땅에서 유명하고 큰 교회 목사, 장로, 교황이라 해도 율법을 소홀히 하고 그렇게 가르치는 자는 누구나 천국에 가도 지극히 작은 자로 영원토록 살고, 이들이라 해도 그 의로움이 바리새인 즉 지금의 유대인이 율법을 잘 배워서 율법대로 살면서 이루는 의보다 더 의롭지 못하면 이들이 죽어도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천국에 가지 못하는 목사, 장로, 권사, 신부, 추기경 혹은 교황이 있을 것이고 이들이 천국에 갔어도 이렇게 산 성도보다 지극히 작은 자로 영원토록 살아야 한다는 말씀으로 예외가 없습니다. 그래서 율법이 무엇인지 잘 알아야 하는 것은 너무나 중요한 성도의 의무입니다. 예수님께서 오신 목적 중에서 가장 중요한 목적이 인류를 구원해서 하나님의 백성으로 삼고 그 백성이 그분의 주신 법대로 사는 하나님의 나라를 세움인데 그 법이 바로 율법이기에 이렇게 중요하게 달리 해석의 여지가 없게 분명하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무시냐 순종이나 배움이냐 외면이냐 하는 둘 중의 하나의 선택이 있을 뿐입니다. 변명이 절대로 있을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율법에 대해서 잘 배움이 반드시 필요하고 중요합니다. 절대로 함부로 외면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율법을 함부로 하는 설교는 이미 예수님의 대적이니 듣지 마시기 바랍니다. 다 성경을 올바로 이해하지도 못하고 지옥에 가면서 헛소리로 일관된 것입니다. 지옥에 가는 사람의 설교를 듣고 강의를 듣고 가르침을 받으면 나도 모르게 지옥에 같이 갑니다.
※ ※ ※ 국가를 구성하는 율법의 특성과 성질, 그리고 쉬운 요약
한 개인인 아브라함의 삶에 이슬람의 역사도, 이스라엘의 역사도 그리고 아랍과 중동의 역사도 들어 있고 개신교와 천주교의 역사도 같이 들어 있습니다. 놀라운 일이 아닐 수가 없습니다. 성경은 교회에 다니고 예수님을 믿고 복을 받고자 읽을 수도 있지만 이렇게 온 세상의 역사를 이해하는 거의 유일한 책이 아닐 수가 없습니다. 아브라함의 개인적인 모든 면에서 모범적인 삶은 이후에 하나님의 약속대로 하늘의 별과 같고 여러 민족과 나라가 나오면서 이제는 개인을 넘어서 족속, 지파, 국가의 삶에도 역시 본이 됩니다. 먼저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바탕으로 일생을 약 100년의 삶은 하나님의 명령, 규례, 법을 다 지킵니다. 이는 틀림이 없는 하나님의 아브라함에 대한 평가입니다. 그리고 선하게 삽니다. 선하다는 의미는 정의롭게 살고 사랑을 실천하고 겸손히 주와 동행함의 삶을 설명하는 말씀입니다. 이는 모든 향후 성도의 삶에 있어서 본이 되는 삶입니다. 이도 아브라함 사후에 하나님의 평가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가슴이 설레고 너무나 멋진 말씀이 있으니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친구요 벗으로 평가를 받습니다. 글의 중간에 새 힘을 얻으시고 끝까지 가시기 바랍니다.
◆ 하나님의 벗 아브라함
하나님께서 온 지구상에서 약 4200년 전에 한 사람을 택하십니다. 그리고 그 사람과 100년을 동행합니다. 이 사람은 먼저 하나님을 직접 뵈옵습니다. 서로 대화도 합니다. 그리고 친밀합니다. 그런데 인간인 아브라함은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께 예를 다합니다. 인간으로서 도리를 저버리지 않습니다. 인간은 언제나 인간일 뿐입니다. 인간이 마귀에 속아서 인간의 한계를 넘어설 때 이들이 이단이 되고 이들을 따르는 모든 사람이 다 지옥행 입니다. 아무리 교회가 크고 교회에서 칭송을 받고 직분이 높아도 절대로 넘지 말아야 할 선이 하나님은 하나님이시고 사람은 먼지와 같은 인간이라는 것입니다. 착각은 우쭐하게 하고 선을 넘게 하고 법을 어기게 합니다. 사람과 하나님과 지켜야 하는 법이 인간은 자신을 만드시고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을 경배해야 합니다. 경배는 오직 하나님께 해야 됩니다. 더 이상 이 지구에 하나님 외에 경배의 대상이 없어야 합니다. 그리고 이 하나님을 반드시 믿어야 합니다. 굳게 믿어야 합니다. 믿음이 없는 대상은 인정치도 않고 순종도 하지 못합니다. 믿음에서 순종도 나옵니다. 아브라함은 우선 하나님을 신뢰합니다. 그리고 순종합니다. 75세의 지금 한국으로 볼 때 은퇴의 시기가 지나서 노년으로 삶을 정리하고 즐기려는 나이에 집과 고향과 나라를 떠나서 2000킬로의 여정을 가야 합니다. 자동차도 비행기도 없으니 걸어서 가야 합니다. 나 홀로 가는 것이 아니라 조카도 같이 아내도 같이 설득을 해서 가야 합니다. 지금으로 보면 부산에서 한반도를 종단해서 두만강을 건너서 우즈벡이나 카자흐스탄으로 가는 여정입니다. 실제로 우리 민족 중에서 일제 시대에 한국을 떠나서 블라디보스톡이나 사할린에 살다가 스탈린의 강제 이주로 그렇게 중앙 아시아로 가신 한국인도 많습니다. 지금 백만의 한국인이 중앙아시아에 삽니다. 진실로 너무나 귀한 중앙 아시아 선교 자원입니다. 제 처는 러시아 국적으로 그곳에 살다가 저와 결혼해서 한국으로 왔습니다. 비행기로 쉽게 왔습니다. 이들을 한국인으로 그냥 인정하면 인구 문제 고용 문제 다 해결이 가능한데 제 처는 20년이 걸려서 아들을 낳고 살면서 한국인이 되었습니다. 너무나 어렵게 되었습니다. 세상의 나라의 한계입니다. 실로 저와 여러분 60대 중반 70-80 모든 신앙인을 하나님께서 그렇게 부릅니다. 자신의 소유를 다 팔아서 나누고 따르라고 합니다. 70-80 은퇴하신 목사님께도 그렇게 요청하십니다. 이제 하나님을 따라서 일을 할 때가 비로소 된 것입니다. 그 여정이 제 글로 되시길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하나님과 친구가 된다는 것은 인생이 누리는 가장 큰 축복이고 이는 이렇게 순종하는 사람에게 해당이 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나이가 들어도 사랑을 하고 가슴이 뜁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설레고 떠나는 사람에게 그분과 친구로 가는 길입니다. 친구는 가장 먼저 고향 친구입니다. 서로 모르는 것이 없고 스스럼도 없고 친밀하고 반갑고 사랑하고 같이 있으면 행복합니다. 사익을 추구하지 않고 이용도 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서로 어려울 때 자신의 일로 돕습니다. 이제 이것이 시작입니다. 이 시작을 아브라함은 합니다. 그리고 또 세월이 약 10년이 흐르자 하나님께서 다시 오시고 하늘의 별을 보라고 하십니다. 당시 4200년 전의 이스라엘의 하늘은 공기가 너무나 맑았고 하늘은 오염이 없었으니 우리가 60년 전에 시골에서 보던 별들이 쏟아져 내립니다. 그 별과 같은 후손을 약속하십니다. 이미 85세가 된 노인입니다. 아내도 75세가 되었고 아직 자녀가 없고 가질 생각도 못합니다. 그런데 이 노인은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믿습니다. 불가능한 일 아주 미래에 될 일을 그대로 믿습니다. 그리고 후에 정말로 자신에게 처가 3명이나 되고 자녀가 8 명이 되고 이들이 이스라엘 민족으로 수도 없이 자녀를 낳고 또 중동과 아랍과 이슬람으로 지금은 여러 나라와 수억의 인구가 되고 아브라함의 믿음을 따라서 예수님을 믿고 이분을 조상으로 믿는 이들이 지구상에 지금만 30억이 되었으니 믿음대로 너무나 정확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을 아브라함은 한 명의 자녀도 없고 자신의 몸이 이미 늙었지만 그렇게 되리라 믿은 것입니다. 그리고 그의 믿음은 행동으로 강하게 실천이 되고 아들을 갖게 되고 아들까지 바치는 하나님의 명령에 그대로 순종하는 신앙으로 100년의 생애에서 날로 성장하고 단단해 집니다. 이를 신약의 로마서에서 전하고 믿음으로 의롭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도 3번이나 되고 이를 천주교와 개신교가 각각 100년의 생애에서 전체를 보지 않고 서로 초반과 후반의 신앙으로 다투는 것을 말씀드렸습니다. 서로 합치고 서로 인정하고 서로 존중하면 100년의 아브라함 일생의 믿음을 보시면서 의롭다 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이 비로소 이해가 되는 것입니다. 믿고 떠나고(75세) 믿고(85세) 행하고(99-100세) 믿고 바치는(118-125세) 신앙이 의롭다 인정을 받는 신앙의 결론입니다. 로마서 1장 17절의 처음부터 끝까지 믿음의 의미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믿음으로 하루하루 사는 사람이 의롭다 인정을 받는 것입니다. 정확한 성경의 가르침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잘 영접하고 대접하고 제단을 쌓고 경배합니다. 사람의 모습으로 오신 하나님을 잘 경배합니다. 잘 대접합니다. 공경합니다. 이 아브라함의 경배를 받으신 예수님께서 다시 세상에 오셨을 때 이스라엘의 지도자에게 아브라함에 대해서 설명을 하십니다. 그러자 이들이 분개합니다. 잡고 때리고 십자가에 매답니다. 이런 성경의 진리를 어찌 인간이 인간의 힘으로 풀고자 합니까? 겸손히 성령의 도우심을 찾고 구해야 합니다. 아브라함은 우리가 생각하지 못하는 일을 하십니다. 앞에서 그의 삶을 자세하게 창세기 12장부터 26장까지 다 살펴 보았습니다. 그리고 귀한 글을 올립니다.
하나님의 벗에 대한 오해/김한원
김수영1추천 0조회 4425.12.08 06:38댓글 1
오호라 우리가 하나님과 맞먹을 뻔 하였도다
우리는 종종 찬양 중에 눈을 지그시 감고 '하나님의 친구'라고 고백하곤 한다. 세상이 다 나를 버려도 신실하신 그분이 나의 가장 친한 벗이 되어 주신다는 감동은, 고달픈 현대인의 삶에 꽤나 괜찮은 위로제다. 전능자와의 친밀함, 그 끈끈한 우정. 생각만 해도 어깨가 으쓱해지지 않는가. 그런데 잠깐, 찬물을 좀 끼얹어야겠다. 그동안 하나님 어깨에 너무 자연스럽게 손을 올리고 있었던 건 아닌지 점검해 볼 시간이다. 우리가 즐겨 부르는 '하나님의 벗'이라는 호칭이, 원래 성경이 의도했던 그 뜻이 아닐 수도 있다는 불길한 소식이다.
먼저 이사야 41장 8절의 구조를 뜯어보자. 히브리 시 문학의 가장 큰 특징은 앞에 나온 말을 뒤에서 다시 한번 받아주는 '평행법(Parallelism)'이다. 이 구절을 보면 "나의 종 너 이스라엘아"라는 부름이 "나의 벗 아브라함의 자손아"라는 부름과 나란히 달린다. 즉, 이 문맥에서 '나의 벗(오하비)'은 앞서 언급된 '나의 종(에베드)'과 동의어다.
이것이 무슨 뜻인가. 성경이 말하는 친구는 우리가 생각하는 수평적인 우정의 대상이 아니라, 철저히 하나님의 명령에 복종하는 '종(에베드)'의 위치에 있다는 것이다. 물론 폭압적인 종속 관계를 뜻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러니 "하나님은 내 친구"라며 어깨동무를 시도하려 했다면, 번지수를 잘못 찾아도 한참 잘못 찾았다.
원어의 깊은 맛을 보면 이 사실은 더욱 명확해진다. 우리가 '나의 벗'으로 번역한 히브리어는 '오하비(אֹהֲבִי)'다. 이 단어는 명사가 아니다. 문법적으로 '미완료 분사'이며, 시상적으로는 동작의 '지속'을 나타내는 '미완료상'을 띤다. 어쩌다 한 번 기분 좋을 때 사랑한 게 아니라, 평생에 걸쳐 끊임없이 사랑하고 있는 상태를 말한다.
게다가 이 단어에 붙은 접미사 '나의(-i)'는 소유가 아니라 행위의 목적어를 나타낸다. 이에 대해 히브리어 문법의 표준인 게세니우스 문법(GKC §116g)은 이 접미사가 주어적 속격(나의 친구, 내가 사랑하는 자)이 아니라 목적어적 속격(즉 “나를” 사랑하는 자)으로 해석되어야 한다고 명시한다. 타동사의 접미대명사는 목적어적 소유격이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 호칭의 정확한 의미는 '나의 벗'이라기보다 "나를 (배신하지 않고 끊임없이) 헌신하고 사랑하는 자"이다.
그렇다면 왜 우리는 이 치열한 '종이자 사랑꾼'인 아브라함을 수동적인 하나님의 친구로 알게 되었을까. 범인은 기원전 3세기경의 '칠십인역(LXX)' 번역자들이다. 그들은 인간이 감히 신을 능동적으로 사랑한다는 표현이 신학적으로 불경하거나 어색하다고 느꼈는지, 이를 '내가 사랑한 자'라는 수동적 의미로 살짝 비틀었다. 이후 라틴어 불가타 성경이 이를 '아미쿠스(amicus)', 즉 친구라는 명사로 못 박으면서, 오늘날의 '마이 프렌드'가 탄생했다.
여기에 한국어의 비극이 더해진다. 우리말의 조사 '의'는 참으로 편리하면서도 모호해서, '하나님의 벗'이라고 하면 하나님이 주체가 되어 나를 친구 삼아주셨다는 은혜로운 뉘앙스로 들리기 십상이다. 하지만 원문은 아브라함이 주체가 되어 하나님을 향해 헌신적인 사랑과 충성을 쏘아 올리는 장면을 묘사하고 있다. 말하자면 나와 약속을 하고 그것을 어기지 않고 충성된 자라는 뜻이다.
사실 이 칭호에는 단순히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좋아했다는 감정 상태를 넘어, 그의 전 생애가 녹아들어 있다. 갈대아 우르를 떠날 때부터 이삭을 바치는 순간까지, 숱한 시련 속에서도 흔들리기는 했지만, 배신하지 않고 신실하게 언약을 지켰던 그 치열한 삶의 궤적을 '하나님의 벗'이라는 한마디로 압축한 것이다.
학계에서는 오랫동안 이 표현을 매우 강한 '언약적'이고 '정치적'인 용어로 해석해 왔다. 고대 근동 조약에서 왕을 사랑하라는 명령은 감정이 아닌 '배타적 충성'을 의미했고, '친구'는 왕의 최측근 참모나 비서실장을 일컫는 공식 관직명이었다. 즉 아브라함은 하나님과 수다를 떠는 친구가 아니라, 그분의 내각에 참여하여 국정을 논하고 목숨 걸고 그 일을 수행하는 충성하는 대리인이었다는 것이다.
물론 최근에는 '레벤슨' 등의 학자들을 중심으로 '정서적 전환'이 논의되고 있다. 기계적인 복종만으로는 목숨을 건 충성이 지속될 수 없기에, 그 안에는 분명 뜨거운 정서적 애착도 포함된다는 것이다. 사랑은 의지이자 동시에 감정이다.
하지만 현대인, 특히 한국인들에게는 주의가 필요하다. 우리는 이미 너무나 감정 과잉의 시대를 살고 있다. '사랑'이라고 하면 자동반사적으로 달콤한 로맨스나 위로를 떠올린다. 학계가 잃어버린 고대의 감정을 되찾으려 노력하는 중이라면, 반대로 감정에 치우친 우리는 '언약', '헌신', '충성', 그리고 '종됨'의 무게를 더 얹어야 비로소 균형이 맞는다.
결론적으로 '오하비', 즉 '종처럼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라는 호칭은 우리에게 양날의 검과 같다. 한편으로는 수동적인 어린아이 신앙에서 벗어나 주체적인 파트너가 되라는 초청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하나님과 맞먹는 친구가 아니라 그분의 통치에 참여하기 위해 나의 가장 소중한 것까지 바치는 치열한 충성심을 요구하는 도전장일지 모른다.
이제 '하나님의 친구'를 노래하는 찬양을 부를 때, 따뜻한 위로만 기대하지 말자. 대신 비장한 각오를 다져야 할지도 모른다. 나는 과연 그분의 '종'이 될 준비가 되었는가. 나는 그분을 내 목숨처럼 '사랑(충성)'하고 있는가. 오호라, 친구 먹기는 그렇게 간단하고 쉬운게 아니다.
[ 예전에 할아버지 할머니와 우리는 같이 살았다 어린 시절에 가족도 많고 형제도 많았다 어머니와 아버지가 엄격하면 할아버지 할머니는 우리를 감싸고 지켜주셨다 그래서 손자와 손녀는 할아버지 할머니와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더 가까웠고 친밀했다. 그런데 요즘과 같이 어린 손자 손녀가 함부로 어른을 대하는 것도 없었다. 숫자가 많아서 홀로 사랑을 독차지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할아버지 할머니는 부모님이 공경하시니 손자 손녀는 자연스럽게 아버지 어머니보다 더 친밀하지만 할아버지 할머니께서 가정에서 높으신 분이심을 안다. 그래서 부모님께서 할아버지 할머니를 모든 면에서 가장 우선시 하고 공경하는 것을 시기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배운다. 친밀함에 공경이 숨겨져 있다. 우리는 다 그랬다. 사람과 관계에서도 친하다고 막 하면 어색하게 된다.]
나의 종아! 한국의 대형 교회 1000명의 목사야! 한국은 땅이 좁다 사람은 5천만이나 산다. 누가 홀로 집과 땅을 다 가지면 과도하게 갖게 되면 자본주의 자유경쟁에서 죽는 사람이 수도 없이 생긴다. 자살하고 결혼도 포기하고 독거하다가 죽는 것을 아는 사람도 없이 노년에 외롭고 쓸쓸하게 다 죽는다. 그래서 절대로 목사야 종아! 네가 먼저 솔선해서 집과 땅을 한국 평균 이하로 갖고 성도도 장로도 그렇게 살게 하고 이를 믿지 않는 모든 사람이 그렇게 살도록 해라. 그래야 네가 나의 빛이 된단다. 그래야 내가 꿈을 꾸는 하나님의 나라가 한국에 세워 진단다. 네 벗 아브라함은 너무나 쉽게 모든 것을 롯에게 포기하고 새로운 곳으로 떠났단다. 불의가 판을 칠 때 내 명령대로 의롭게 살면서 그들을 살리려고 무려 5번 강청했단다. 나의 종! 한국의 목사야! 나의 벗 아브라함은 그렇게 연연하지 않고 자신의 모든 재산보다 귀하고 자신의 생명보다 귀한 것을 달라고 했을 때 조금도 주저없이 다 주었단다. 그런데 너는 왜 피도 한 방울도 흘리지 않고 내게 순종하면 되는 네 소유를 팔아서 가난한 내 백성과 이웃에게 나누라고 하는 데 왜 홀로 수십억의 집에 땅에 그렇게 붙잡고 놓치 않고 네 아들에게 상속하느냐? 그 돈이 다 내게 바쳐진 헌물이지 않느냐? 오늘도 내게 헬 조선을 호소하면서 스스로 목숨을 끊는 한국인이 40 명이나 된다! 너희 1000 명의 대형교회 목사 소유를 다 팔면 수조도 될 것인데 왜 그렇게 말을 듣지 않냐! 너희가 나의 친구라면서 나를 왜 이렇게 괴롭히며 화나게 하는 것이냐?
저는 하나님의 심정을 이렇게 적어 보았습니다. 하나님과 친구가 되는 길이 너무나 신나고 멋지고 마음 설레는 일이 아닙니까? 그 길로 저와 여러분은 갑시다. 왜 그분의 아들까지 저와 여러분을 위해서 말로 다 할 수가 없는 고통 속에 기꺼이 내어 주신 하나님 아버지를 그렇게 괴롭히며 화내게 하십니까? 아브라함이 왜 하나님의 친구 혹은 벗으로 온 지구상에 살았던 인간 중에 유일하게 그 소리를 듣습니까? 전능하시고 전지하신 하나님 아버지께서 훗날 자신의 아들을 제물로 바쳐서 인류를 구할 것인데 자신이 사랑으로 하는 힘들고 괴로운 일을 인간 아브라함이 자신을 경외하면서 기꺼이 하기에 그렇게 친구야! 하고 다정하게 부르신 것이라 저는 믿습니다. 할렐루야!! 피도 한 방울도 흘리지 않고 재물도 아까워서 바치지 못하는 자는 어찌 예수님도 뵙고 하나님 아버지도 배올 수가 있습니까? 그들이 바로 1000명의 대형교회 목사가 아니면 누구입니까? 하나님의 놀라운 비밀을 알려 주신 성령님 감사와 찬양합니다. 미련한 죄인은 우쭐될 생각만 많습니다. 용서하시기 바랍니다.
다시 국가법으로 율법으로 갑니다. 우리 모두의 헌법입니다. 잘 배우고 지켜야 합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은 이집트로 들어간 72 명의 야곱의 후손이 400-430 년의 세월이 흐르면서 수백만의 민족으로 성장하고 출애굽 해서 시내 산에서 모세를 통해서 모세 오경의 말씀 즉 율법을 받습니다. 이 율법은 이제는 개인이 하나님과 이웃을 섬기는 법을 설명하기도 하지만 근본적으로 이스라엘이라는 민족 공동체가 어떻게 하나님을 섬기는 지를 설명합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은 가나안 땅을 정복하고 지파별로 분배를 합니다. 그리고 사사 시대를 거쳐서 비로소 왕이 통치하는 나라가 됩니다. 이 나라에 대해서도 율법은 왕으로부터 여러 제도와 국가가 지켜야 하는 법과 국민으로서 이스라엘 민족이 지켜야 하는 법을 완성해 갑니다. 이 법이 하나님 나라의 근본법으로 우리는 잘 배워야 하는 것입니다. 아래 설명은 성경전체를 흐르는 율법에 대해서 어느 정도 설명을 합니다. 우선 쉽게 율법이 무엇인지 동영상을 통해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위의 동영상은 참으로 성경 전체를 아우르는 좋은 설명이 아닐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당시는 자신들이 미래에 예수님께서 오시는 것과 달리 이 법으로 실제로 살아야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삶이 약 1500년이나 이어지니 우선 율법에 주목하고 자신의 현실의 삶에 주목을 해야 합니다. 긴 세월을 짧게 이렇게 설명을 하면 1500년이라 긴 역사와 당시를 사는 삶에 대해서 긴장감이 너무나 부족합니다. 우선 우리는 아브라함을 통해서 개인이 너무나 완벽하게 법을 잘 지킨 예를 보았습니다. 하나님께서 법을 주시면서 당시에 살던 사람이 이렇게 아브라함과 같이 잘 지킬 것을 원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정성을 다해서 지킨 사람들의 본이 수도 없이 존재합니다. 모든 선지자는 한 분도 빠짐없이 율법대로 산 사람입니다. 그리고 룻과 그의 남편이 된 보아스도 그렇고 다윗 왕도 하나님의 마음에 합하게 사셨고, 실로 율법대로 하나님을 섬긴 사람 즉 하나님과 그분의 말씀을 그대로 믿고 신실하게 순종한 구름과 같이 무리가 있고, 이들이 다 아브라함과 같이 예수님과 함께 천국에 있습니다. 우리는 법대로 살지 않는 왕들과 그리고 많은 무리를 보기도 하지만 이렇게 법대로 산 사람의 본이 우리가 따라야 할 성경의 진리가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결국 후대에 와서 약 1000년의 세월이 흐르고 당시에 너무나 많은 무리가 법대로 살지 않아서 하박국의 호소대로 하나님의 심판이 있게 되고 이스라엘은 멸망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렇게 실패만 강조하기 보다는 율법대로 나라를 어떻게 다스렸고 하나님께서 어떻게 왕과 백성이 살아서 그분의 나라를 이 땅에 세우려고 했는지를 아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절대로 찬양의 대상인 율법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의 문제였습니다. 아브라함은 법을 잘 지킨 인물로 평가를 받습니다. 그리고 이 의무는 신약을 사는 우리에게도 완벽하게 다 있습니다. 이는 예수님께서 오셔서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성도의 의무라고 명령을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 나라를 이렇게 구약을 통해서 반드시 이해하지 않으면 우리는 절대로 이 땅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는 일보다 돈과 여자와 권력과 명예와 온갖 세상의 지식과 연락에 더 깊이 빠지게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즉 법대로 살지 않고 마음대로 살게 되어 지옥에 간다는 이야기입니다.
성도의 그대의 구원이 하나님께서 세우고자 하시는 나라를 세우기 위함임을 꿈에도 잊지 말라!!
그런데 그 나라와 의에 대해서 너무나 현 시대에 올바로 전해주는 사람이 없습니다. 천주교와 개신교는 교리로 나누어져서 하나가 되지 못하고 있고, 각 교회는 교단 별로 또 나누어져서 하나가 되기 어렵습니다. 교단 안의 교회는 또 각 개교회의 담임이 자신의 교회만 우선시 하기에 수십억의 예수를 믿는 성도가 있는 현세에 하나 됨이 역시 쉽지가 않습니다. 성도나 교회의 가장 중요한 사명이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는 것이고 이는 하나님의 나라의 법을 세우는 것인데 그 법이 바로 율법이며 그 법대로 통치한 나라가 구약의 이스라엘이기에 모세 오경의 율법과 그 법대로 계약을 맺고 약 1000년의 세월을 살면서 흥망성쇠를 경험한 이스라엘의 역사적인 내용을 아는 것이 이 땅에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를 세움에 너무나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나라가 국토와 국민과 주권을 그 중요한 구성 요소로 삼습니다. 그리고 각국은 그 나라의 질서를 위해서 모두가 헌법을 가지고 있는데 헌법에서 이를 크게 규정하고 각종 하위법으로 질서를 유지합니다. 이 땅에서 세워지는 하나님의 나라는 역시 영토와 국민과 주권으로 나누는 데 세상의 나라와 다른 점이 하나님의 나라는 그 왕이 예수님이시고 예수님께서 율법을 통해서(넓게는 성경을 통해서) 통치하신다는 것입니다. 민주주의가 국민의 통치로 보는 것과 달리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의 주권이 있고 통치법인 율법도 세상의 국가와 같이 국민의 합의로 돌출이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만드셔서 우리에게 주신 것입니다. 세상 국가 인종 민족 모두를 행복하게 할 법을 국가나 개인이 사심 없이 만드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우리 천국 백성은 이 법을 잘 배우고 지켜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도 그렇게 하라고 명령을 하신 것입니다. 앞에서 마태복음 5장 17-20절로 확인이 되었습니다. 먼저 영토가 되는 땅과 집에 대한 율법의 규정을 보십니다.
먼저 지구는 오대양과 육대주로 구성이 되어 있고 산이 있고 큰 강이 있고 산맥이 있습니다. 이 넓은 지구는 먼저 셈족이 매소포타미야와 중동으로 노아 홍수 이후에 흩어져서 살아갑니다. 황인족의 삶의 무대입니다. 그리고 야벳족은 지중해 주변으로 퍼져가는 데 백인들이 삶의 무대입니다. 그리고 남은 함족은 아프리카로 퍼져갑니다. 흑인들의 삶의 무대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약 400 년의 세월이 흐릅니다. 오직 8 명이 남은 지구에서 이들이 수백 년을 또 살면서 자녀를 낳습니다. 그리고 주로 바닷가를 따라서 사는데 이는 지구가 홍수로 진흙으로 덮이고 모든 짐승과 약 10억 넘는 사람이 죽어서 시체가 썩는 내륙에서 사는 것 보다 강을 따라서 살거나 혹은 바닷가는 깨끗하고 먹거리도 풍부하기에 그렇게 되었을 것이라 믿습니다. 특히 셈족의 이동을 지구 전체 바닷가를 따라서 인도 남부 그리고 중국의 남부 동남아와 필리핀 그리고 한국과 일본을 거쳐서 홋가이도 알래스카를 지나서 아메리카로 가니 이들이 백인들이 약 500 년 전에 들어올 때까지 넓은 대륙에서 집과 땅의 문제가 없이 그리고 풍부한 먹거리로 거의 수천 년을 천국과 같은 삶을 살았을 것으로 보는데 한국서도 청동기 시대에 해당이 되는데 약 1000 년의 역사가 있습니다. 이들에겐 다툴 영토도 집도 아무런 문제가 없었고 광활한 대지를 필요에 따라서 움직이면 되었습니다. 그리고 모두가 셈족으로 형제와 자매로 전쟁이 필요가 없었고 전쟁 무기도 발견이 되지 않습니다. 홍수 후에 모든 지구상의 삶이고 특히 지중해를 따라서 이동한 백인이나 아라비아 해와 인도양과 태평양을 따라서 이동한 사람들 모두에겐 이런 천국이 보장이 되었으리라 믿습니다.
그리고 중동과 메소포타미아에서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이스라엘 민족으로 발전해 갑니다. 그리고 그의 후손은 성경에 기록이 아브라함의 자손과 같이 없지만 중동 지역에서 혹은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 나라와 민족으로 역시 성장해 갑니다. 그 중에서 이스라엘이 선택이 되어 모세 오경의 율법을 받고 그 율법대로 살도록 의무가 주어졌습니다. 온 세상을 향한 율법 중에서 가장 중요한 율법은 인간이 사는 집과 땅에 대한 규정입니다. 나라는 국경에 대한 규정이고 각 민족과 부족이 사는 장소에 대한 규정입니다. 사람이 밀집해서 사는 중동이나 메소포타미야에선 세부적인 율법의 규정이 필요했겠지만 사람이 별로 없는 곳에서 가족 단위로 고인돌 족이 살던 지구 모든 영역에서는 집과 땅의 문제가 전혀 없었으니 약 수천 년 동안 그렇게 살 수가 있었습니다. 이것이 모든 지구의 인간의 삶에서 너무나 중요한 부분이 있으니 평화에 대한 그리고 자유에 대한 모든 인류의 핏줄에 흐르는 열망이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면 한반도에 첫 상륙한 고인돌족은 셈족의 후예로 이스라엘 지파나 이스라엘과 얼마나 어떻게 관련이 있는지는 밝혀야 하겠지만 아브라함과 같은 심성의 사람이 많았다는 것을 믿습니다. 이들이 다 형제와 자매로 전라남도 섬이나 지역에 살다가 경남이나 혹은 전북으로 이동을 하는데 한반도엔 당시 사람은 아무도 살지 않았고 이들이 시간이 감에 따라서 북쪽으로 이동하고 일본으로 가고 아메리카로 갔다고 믿습니다. 약 1000 년의 모든 것이 구비가 된 환경과 먹거리와 그리고 씨족 단위의 천국과 같은 삶이 북으로부터 중국으로부터 바다를 가로 질러서 전쟁도 알고 철기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와서 정복하기 전까지 지속이 되었고 이들의 삶이 약 50-60년 전의 한국에 대부분의 모습으로 약 3000년을 이어왔으니 벼농사와 온돌과 어로 생활과 그리고 씨족 별로 마을 단위로 살던 모습입니다. 정확하게 성경에서 율법에서 말하느 집과 땅에 대한 그리고 재물의 소유에 대한 내용들이 그대로 지켜지는 진실로 이 땅의 천국입니다. 너무나 평화롭고 너무나 먹을 것이 풍부하고 너무나 집과 땅이 모두가 완벽하게 가질 만큼 다 가지고 살고 그리고 다 씨족과 혈족이고 이런 삶이 고인돌과 청동기의 유물로 증명이 됩니다.
즉 산과 바다와 산맥을 경계로 그리고 이를 중심으로 하나님께서 정하신 국가와 민족의 경계가 있고 국가 안에서도 또 사람들이 사는 구역이 경계가 있습니다. 조선이 팔도로 나누어지고 서로 이동도 별로 없이 살던 때와 같습니다. 이는 창조주께서 이 땅의 온 지구의 모든 나라의 주인이 되시고 이 주인께서 그렇게 사람들이 흩어져서 여유 있게 서로 범하지 않고 평화롭게 살도록 법으로 정하신 것입니다. 대표적인 법이 이스라엘의 국토에 대한 법과 부족에 대한 법인데 먼저 이스라엘의 사면의 경계는 분명하게 동서남북이 정해져 있습니다. 이 한계 속에서 살아야지 이 한계를 벗어나서 강대국이 되었다고 주변의 나라들을 점령하거나 범하면 하나님의 법을 어기게 되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초기에 하나님께서 주신 땅을 정복하기 위한 전쟁은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12 부족 별로 땅을 나누었고 이 부족 별 경계를 잘 지켰으며 그리고 부족들도 땅을 사고 팔고 집도 사고 파는 것을 금했습니다. 이는 집과 땅을 사람이 이 땅에 태어나면 누구나 별로 어려움이 없이 소유하고 기본적으로 집과 땅을 가지고 살아야만 인간으로서 살 수가 있기에 가장 중요하게 이렇게 정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인류에 대한 법은 이렇게 모든 땅이 다 하나님의 소유로 모든 인간은 이 땅에서 잠시 세를 들어서 사는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국가 별로 민족 별로 경계를 산과 강과 산맥 등으로 정해 주셔서 이 경계를 지키는 것이 너무나 중요했습니다. 이를 어긴 모든 강대국이 망했고 특히 온 세상을 호령했던 몽고는 불과 수백만의 사람으로 줄어들었습니다. 일본과 독일과 영국과 그리고 로마서 다 망했습니다. 그래서 자본주의를 비롯해서 독재 혹은 불평등한 법으로 인간이 사는데 가장 필요한 집과 땅으로 투기를 한다든지 홀로 온 세상을 다 가지려는 모든 인간의 행동이 불의하게 되며 하나님의 심판을 받습니다. 좁은 한국 땅에서 이런 하나님의 법과 사랑과 질서를 무시하고 집과 땅을 과도하게 가지고 이를 가지고 부를 늘리는 모든 행위가 율법에 벗어나는 불의한 행위로 심판의 대상이 되는 것입니다. 이런 하나님의 법을 어긴 자본주의 이 경쟁에서 이긴 자, 혹은 불의의 방법으로 집과 땅을 다 소유한 국민의 약 1%에 해당하는 50만의 부자(가용국토 50%를 소유)와 집이 여러 채로 집이 없는 국민 50%를 만든 공무원, 지도자 모든 사람이 다 불의하게 되는데 국민의 70%에 해당하는 약 3500 만명이 땅이 한 평도 없고 국민의 약 50%는 집이 없는 것이 한국의 현실로 하나님의 법으로보면 반드시 망하게 된 상태가 되었고 이런 상태를 고칠 대형 교회 목사가 도리어 집과 땅과 부를 과도하게 가지고 이를 부추기고 본이 되어 국민이 살 수가 없는 나라를 만드는데 앞장을 섰으니 결단코 예수님의 말씀대로 천국에 갈 수가 없습니다.
사 5:8. 아, 너희가 비참하게 되리라. 집을 연달아 차지하고 땅을 차례로 사들이는 자들아! 빈터 하나 남기지 않고 온 세상을 혼자 살듯이 차지하는 자들아!
9. 만군의 야훼께서 내 귀에 대고 맹세하신다. "많은 집들이 흉가가 되어 제아무리 크고 좋아도 인기척이 없게 되리라.
10. 포도밭 열흘갈이에서 술 한 항아리밖에 나지 아니하고 종자 한 섬에서 곡식 한 독이 가까스로 나리라." (공동번역
이 부분에 있어서 가장 잘 지킨 나라가 청동기 시대 한국이며 약 1000 년을 지켰고 후대에 한반도에 살면서 아무리 나라가 부강해도 주변의 일본이나 중국을 범하지 않았습니다. 그 세월이 무려 3000 년이나 됩니다.지금도 역시 세계 5위의 군사 경제력을 가지고도 누구를 범하려 않고 도리어 중국이나 북한이나 주변국이 각종 불법으로 우리를 범하고 있으나 한번 우리가 제대로 일어나면 이들이 다 놀라서 도망을 갈 정도의 국력이 있는데 중국에 붙고 북한에 붙고 외세에 붙은 자들이 설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은 작은 나라에 살면서 이리 저리 휘둘리고 나라가 없게 되고 수천 년을 남의 나라에서 살면서 떠돌다가 겨우 80년 전에 이스라엘을 건국하고 여전히 작은 나라로 삽니다. 그런데 앗수르나 바벨론, 페르시아, 그리스, 로마, 그리고 유럽의 영국과 스페인 등이 식민지를 건설하며 온 세상을 노략했고 일본도 독일과 같이 온 세상을 침략했습니다. 중국도 주변의 작은 나라를 수도 없이 괴롭혔습니다. 몽고도 그랬습니다. 이들의 시도는 다 멸망으로 막을 내렸으니 이는 하나님의 법을 어기고 수많은 생명을 죽이고 노예로 삼고 불행하게 했기에 하나님의 심판을 다 받았습니다. 지금 중국이나 미국이 이렇게 또 온 세상으로 패권을 늘리려고 하면 이들도 역시 이렇게 막을 내리게 됩니다. 절대로 성공하지 못합니다.
이렇게 땅과 집을 흔들리지 않고 주변의 나라들에 절대로 해를 기치지 않게 정하고 그 나라나 민족 안에서도 역시 경계를 잘 정해서 이 땅에 태어나면서 살 집과 땅을 모두가 갖게 하셨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정의요 사랑입니다. 이 사랑과 정의를 이 땅에 세울 사람이 바로 목사요 장로인데 이들이 이 법의 존재와 하나님의 사랑을 무시하고 이 좁은 땅에서 너무나 비싼 집에 살고 땅을 소유하면서 자신이 하나님께 복을 받아서 이렇게 사니 이렇게 살아야 한다고 장로 권사 집사에게 권해서 이들이 다 그렇게 사니 이제 이 좁은 땅에 집도 땅도 없는 국민이 약 3500 만 명이 되고 지옥이 되고, 자살이 하루에 40명이나 되고, 도저히 집을 갖고 결혼을 못하는 젊은이가 홀로 살고자 하고, 독거 하는 노인이 쓸쓸히 죽는 헬 조선이 되었으니, 이 지옥의 가장 큰 원흉이 이렇게 천국을 만들 법이 존재하고 하나님의 사랑과 정의가 그 법에 분명하게 나타나 있는데 이를 무시하고 욕심으로 자신도 교회도 나라도 망치니 대형교회 목사인 것입니다. 이들은 절대로 죽어도 천국은 가지 못합니다. 그리고 이를 분명하게 마태복음 5장 17-20절은 증명하는 것입니다. 이 법대로 지옥인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절대로 작은 나라에서 약 4000년을 살고 이 나라도 없이 이리 저리 떠돌고 이렇게 잘 살아도 여전히 누가 자신을 괴롭히지 않으면 그 부와 권세와 군대로 타국을 범하지 않는 것입니다. 한국이 공산주의가 아니라 하나님의 법으로 보면 비록 5000 만 명이 살아도 삼인 가족이 모두가 집을 다 가지고 약 2500평의 땅을 다 갖고 절대로 행복하게 모두가 시집 장가 가고 모두가 부모님을 모시가 살 수가 있는데, 국민의 1% 50만 명이 가용국도 약 50%를 독점하고 있으니 모든 한국의 문제가 여기에서 생깁니다. 좁은 땅에서 내가 집과 땅을 과도하게 가지면 집도 땅도 없는 동족이 생기고 이들이 이 땅에서 절대로 행복하게 살 수가 없다는 삼척동자도 아는 진리를 외면하고 홀로 잘 살고자 하니 이 태도가 바로 이웃에 대한 사랑이 1%도 없는 행위이며 하나님을 사랑하는 그분의 법을 존중하는 태도가 1%도 없으니 바로 지옥이 확실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자신의 소유인 지구에 이렇게 위대한 법 율법을 주시고 모두가 온 인류가 80억이 되든지 1000억이 되든지 다 행복하게 살게 하셨고 그리고 예수님을 통해서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진 자들이 이리로 오라고 하신 것입니다. 이를 우리가 실천해서 모두가 행복한 세상으로 가게 해야 되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하나님은 절대로 사랑이시고 정의롭습니다. 그분의 법 율법은 이렇게 하나님의 사랑과 정의를 분명하게 표현해서 율법을 잘 보시면 하나님을 알 수가 있습니다.
신명기 4:8 오늘 내가 너희에게 선포하는 이 율법과 같이 그 규례와 법도가 공의로운 큰 나라가 어디 있느냐
그리고 구약의 신실한 천국에서 만날 성도들은 모두가 이 율법을 일생을 찬양했습니다. 그들의 찬양대로 우리도 조금도 변함없이 하나님의 법 율법을 찬양해야 됩니다. 절대로 마음대로 막 살고자 하고 편리하게 살고자 하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고 싶지 않는 자들은 언제나 교리로 속이고 교파와 교단으로 속입니다. 모두가 지옥에 갑니다.
땅에 대한 규정을 위에서 보았습니다. 땅은 모든 지구의 땅이 다 하나님의 소유입니다. 그리고 절대로 함부로 범하면 아니 되는 국가의 국경이 있습니다. 그리고 나라별로 또 지역적인 나눔이 있습니다.
현대에는 왕래가 자유롭지만 예전에는 걸어서 가고 지금과 같이 이동 수단이 없어서 왕래가 없이 한 곳에서 일생을 가족과 같이 살았고 실재로 형제와 핏줄이 같은 사람이 부족을 이루면서 살았으니 인정이 많았고 순했습니다. 사는 것이 자유로운 땅과 집이 이 땅에 사는 사람의 행복이 가장 큰 영향력이 있고 이를 엄격하게 정해 두었습니다. 이 땅과 집에 대한 하나님의 법이 무너진 곳이 아무리 공산주의 자본주의 민주주의를 외쳐도 지옥입니다. 반대로 예전에 우리 한국과 아메리카와 같이 법이 제대로 없어도 집과 땅을 여유롭게 갖고 먹거리가 넉넉하면 인심도 좋고 분쟁도 별로 없고 이들이 다 형제와 자매요 그리고 같은 성씨로 씨족이면 더욱 더 질서와 평화와 행복이 보장이 되니 집과 땅을 가지고 이렇게 하나님의 뜻을 외면하고 투자를 하고 욕심을 부리는 것은 다 죄가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과도한 집과 땅으로 큰 돈을 가지고 나누지 않는 모든 사람이 다 죄인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진실로 그렇게 산 사람으로 모든 인류에게 어떻게 사는 것이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것인지 완벽한 본을 보인 것입니다. 유대인에게 아랍인에게 그리고 이후에 예수님을 믿는 모든 사람에게 그렇게 살아라 하고 가르친 것이고 우리 민족도 이와 닮은 삶을 양심의 법으로 침략도 없고 충분한 땅을 갖고 약 1000 년을 기원전 1000 년경부터 한국에 오신 분들이 산 것입니다. 청동기 시대의 삶입니다. 아브라함에 이슬람과 중동의 아랍인에 대한 전도의 지식이 있고 이를 예수님을 믿음으로 익히고 한국에서 평화의 복음으로 이들을 복음화 해야 할 것입니다. 중국은 이들과 국경이고 가까운 사이인데 중국에서 10만 명의 선교사가 주변으로 가는 바울과 같은 전도자의 예언이 있습니다. 중국이 이슬람을 전도할 것입니다. 무엇으로 합니까? 가까운 형제와 같은 정으로 합니다. 제 장모는 크리스천으로 이슬람 사람들로 둘러 쌓인 우즈벡에 사셨습니다. 고려인 인데 개고기를 만들어서 나누면 이들이 잘 받아 먹고 자신의 개를 잡아서 탕을 끓여 달라고 가져 온답니다. 우즈벡에서 이슬람과 개신교인이 갈등 없이 삽니다. 이웃이기 때문입니다. 중국이 그렇게 할 것입니다. 그런데 중국이 전할 메시지는 이렇게 우리가 주어야 할 것입니다. 중국은 향후 10만 명의 선교사를 보냄으로 경제, 군사 대국이 될 것인데 공산주의로 세상을 점령하느냐 복음으로 세상을 화평하게 하느냐가 저는 우리 나라에 달렸다고 믿고 사는 사람입니다. 이번 트럼프의 이란 공격과 베네수엘라 그리고 부정선거에 제동을 거는 행위는 중국의 불의한 공산주의를 막고 도리어 중국을 건전하게 강대국이 되게 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믿습니다. 이번의 사건은 중국의 복음화를 촉진할 것으로 믿습니다. 많은 학자들이 지금은 약 1억-1억 5천만의 신자가 중국에 있지만 앞으로 4억 명이 넘는 지구상에서 믿는 사람이 가장 많은 나라가 중국이 될 것으로 봅니다. 이런 중국 십 사억의 인구를 복음화 해야 되는 사명이 우리 한국에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대형 교회 목사는 이런 진리를 실천해서 모든 한국민의 귀감이 되고 이 나라를 자살자가 한 명도 없고, 집이 없는 사람이 한 명도 없고, 모든 국민이 땅을 갖고 모두가 결혼을 하고, 모두가 부모님을 모시고 사는 율법대로 되는 나라 즉 하나님의 나라를 이 땅에 세워야 하는 가장 선봉임에도 이런 귀한 사명을 잊고 중국 공산당이 활기치게 어떤 놈은 앞장 서서 중국인의 똥구를 핱고 북한의 편을 들고 악이 미쳐서 날뛰게 물질을 선점하고 나를 따르라 하니 이들이 어찌 지옥에 가지 않으면 어디를 가겠습니까? 천국에 가는 것을 막는 물질에 빠지고 물질을 들고 죽음으로 가면 이런 진리가 절대로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
이제 율법을 통한 국민의 자격에 대해서 논하겠습니다. 국가의 삼대 구성 요소가 국토, 국민, 주권이니 이를 하나님의 나라에 적용해서 율법에서 규정하는 땅과 집에 대한 규정을 이미 보았고 그리고 그 국민이 되는 조건을 보겠습니다. 그리고 주권에 대해서 살펴 보도록 합니다. 율법이 국가의 법으로 이스라엘 전체를 규정했기에 그 국가법으로서 요소를 국가를 구성하는 세가지 요소로 살펴 보는 것입니다.
먼저 이스라엘 백성은 아브라함의 후손이며 또한 노아의 후손이며 셈족의 후손입니다. 그리고 그 계보가 위로는 아담으로 연결이 됩니다. 그리고 이삭을 통해서 에서와 야곱이 탄생하고 야곱과 그 자손이 약 70 명이 기원전 약 1876 년경 이집트로 들어갑니다. 당시 이집트는 지구상에서 가장 강력한 나라입니다. 먼저 야곱의 12아들 중 요셉이 이집트에 들어가서 총리가 되어 이들이 번성하고 생육하게 합니다. 그리고 약 400-430 년이 흐르자 수백만으로 늘어난 이스라엘 민족은 모세를 통해서 출애굽합니다. 하나님께서 이 민족을 택하시고 압제에서 건진 것입니다. 그리고 가나안 땅을 주시고 약 멸망할 때까지 1000 년을 한결같이 사랑하십니다. 다윗 시대 가장 전성기 때 인구가 약 400 만 명이라 추정하고 예수님 오셨을 때 로마 전체 인구가 약 5000 만 명 일 때 600-700 만 명이었다고 봅니다. 남자는 다 할례를 행해야 했고 민족의 순수성을 유지하고자 이민족과 결혼을 금했고 이민족과 결혼한 이스라엘인이 회개하며 아내와 자녀들을 돌려 보낸 기록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민족의 여자와 결혼을 허락하는 경우도 있으니 이를 통해서 이스라엘 민족의 일원이 될 수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포로로 잡혀가서 완전히 이방 민족과 살 때 민족적인 혈통을 유지하기 어려운 부분도 있었을 것입니다. 율법에는 원칙적으로 이방인과 결혼을 금했지만 예외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타 민족보다 민족적인 혈통을 잘 유지를 했을 것이라 믿습니다. 한민족의 혈통도 순수하다고 볼 수가 있음은 한반도의 특성상 약 3000년 전에 중국으로부터 오는 사람도 없고 일본은 사람이 살지 않을 때인데 고인돌을 사용하는 사람들이 한반도에 전라남도를 통해서 처음으로 들어온 후 같은 혈족 씨족의 사람이 인구가 늘면서 경상도 전라북도 혹은 북쪽으로 이동을 했고 이들이 전부가 한 민족으로 전 한국을 채운 후에 이후에 북으로나 혹은 다양한 경로를 통해서 들어온 백인들이나 북쪽의 사람들이 다 한국민과 같은 모습으로 변화가 되어서 지금과 같은 모든 외모가 크게 차이가 없는 단일 민족이 되었을 것으로 봅니다.
세부적으로 이스라엘 민족으로 이방인이 편입이 되고 이스라엘 민족의 사람이 국적을 읽게 되는 부분은 더 세부적인 연구가 필요합니다. 가장 쉽게 이스라엘 사람끼리 결혼을 하고 자녀가 출생하면 100% 이스라엘 국민이 되는 것입니다. 이방인과 결혼으로 자녀도 낳았을 때 이들의 국적에 대한 부분도 역시 연구가 더 필요합니다. 그리고 율법에서 이방인과의 결혼을 금했기에 유대인이나 이스라엘인의 순수성이 약 4000년 동안 보존이 되고 있는 것으로 봅니다.
그리고 주권 혹은 통치권은 현대 민주주의 국가의 헌법과 달리 이스라엘의 율법에 따르면 전적으로 하나님 주권입니다. 율법의 제정이 인간의 합의가 아니라 하나님의 일방적인 제정입니다. 그리고 다양한 법을 어기면 받는 형벌과 죄를 용서받기 위한 제사 제도도 인간의 의도나 인간의 사상이 반영이 되지 않고 전적으로 하나님의 일방적인 제정입니다. 그리고 민족이 율법을 너무나 어기고 지키는 사람이 별로 없게 되어 완전히 하나님의 뜻과 다르게 살 때 받는 징계, 심판도 하나님께서 어떤 나라를 택하셔서 도구로 삼는지 하나님의 주권입니다. 그리고 인간의 생과 사와 화와 복도 하나님의 뜻이고 나라의 흥망도 하나님께서 결정하십니다. 그러나 너무나 중요한 것이 이렇게 하나님의 주권이 있지만 그 구체적이고 현실적이고 실제의 삶에서의 규정이 너무나 정확하게 모두가 알게 명문화되어서 그 법대로 하나님께서 통치를 하신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통치는 완벽하게 정해진 법대로 통치요 이 법의 통치도 이스라엘 민족이 시내 산에서 다 그렇게 하겠노라 기꺼이 법대로 살면 축복이요 어기면 저주를 받겠다 하나님과 약속 후의 통치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예외가 없이 홀로 사는 것이 아니라 사회 집단이나 혹은 가족이나 혹은 국가 내에서 주변의 사람과 관계를 맺고 공동체로 살아야 하는데 이는 인류의 보편적인 역사가 있는 동안 변치 않는 진리입니다. 누구도 다른 사람과 관계를 끊고 홀로 살 사람은 없습니다. 즉 공동체 생활을 해야 되는데 이렇게 국가나 집단이나 혹은 가족과 같은 단체 속에서 살면서도 자유롭고 행복하게 사는 비결이 바로 공정한 법의 존재와 이 법이 잘 지켜지는 상태에서 사는 것입니다. 이것이 인간 사회에서 변치 않는 진리입니다. 최근의 민주주의는 인류가 수천 년의 여러 정치 제도나 통치 조직을 보면서 많은 사람이 인간으로서 권리를 누리면서 평안하고 행복하게 질서를 누리면서 살게 여러 정치학자, 정치인 그리고 시민이 만든 제도입니다. 이 민주주의의 가장 중요한 요소가 법치입니다. 그리고 그 법이 공정하고 공평하고 정의로워야 하는 것입니다. 이는 다양한 독재 권력의 횡포와 인간이 스스로를 통제하지 못하는 것을 역사를 통해서 진리임을 보고서 절대로 한 사람에게 입법과 사법과 행정을 동시에 주어서 결국은 독재로 모든 국민을 불행하게 만드는 것을 피하고자 한 것입니다(삼권 분립). 그래서 현대인들이 예전과 같이 종이나 노예로 살지 않고 독재자에게 숨도 못 쉬면서 모든 것을 탈취 당하지 않고 비교적 자유와 평안과 행복을 누리면서 살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민주주의와 법치는 모든 인간이 공동체로 살면서 아주 필요하고 유용한 제도가 아니라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약 3500 년 전에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주신 율법과 수천 년을 발전시키고 시킨 인간의 헌법은 너무나 모든 면에서 비교가 되지 않게 차이가 있습니다. 헌법은 인간의 권리와 자유를 보장하고 국가를 수호하기 위한 국민의 합으로 만든 법이지만 진정한 인간의 평안과 행복은 가져오지 못합니다. 그리고 이 법은 국가의 테두리를 벗어나면 주변국에 심각하게 위협을 가할 수도 있으니 1.2차 세계 대전을 일으킨 나라들이 자국의 번영을 위해서 타국의 국민을 마음대로 죽이고 포로로 삼고 영토를 빼앗고 했으니 이 인간의 법이 얼마나 믿을 수가 없고 이기적인 법인지 반드시 하나님을 알고 믿어야만 알 수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지역도 국적도 초월해야 비로소 모든 인류가 평안하게 행복하게 살 수가 있는 하나님의 법 율법을 이해하게 되는 것입니다. 인간이 살면서 예수님을 믿고 율법을 알고 실천하는 것 보다 더 큰 행복과 영광과 축복이 절대로 있을 수가 없으니 진실로 율법은 찬양의 대상이요 열심히 배우고 실천해야 되는 진정한 천국 백성의 헌법이 되는 것입니다. 온 세상의 목사는 적어도 율법에 대해서 이 정도는 기본으로 알고 목회도 하고 성도도 가르쳐야 하는 것입니다. 이런 원리를 모르는 목사는 절대로 하나님의 종의 자격이 1%도 없는 가짜입니다. 이런 목사에게 일생을 걸고 사는 모든 성도는 진실로 지옥이 아주 가까이 있습니다. 한국민이 헌법도 모르고 마음대로 살면 바로 감옥입니다. 사형도 당합니다. 천국 백성 즉 예수를 믿는다는 사람이 천국 헌법인 율법도 모르고 자기 마음대로 살면 일생을 교회에 다녀도 지옥이 아주 가깝습니다. 잘못 배우고 잘못 살기에 그대로 지옥으로 가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마5:17-20)
적어도 예수를 믿는 사람이 이런 원리도 모르고 목사도 되고 장로로 되어 있다면 한심 그 자체요 1%의 교회 지도자 자격도 없고 예수님의 율법에 대한 말씀대로 잘 나서 신앙 생활을 하고 대형 교회 목사요 장로라 해도 지옥으로 갈 가능성이 아주 큰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입니다.(마 5장 17-20) 일생을 이렇게 중요한 내용을 설교도 교육도 하지 않는 목사가 얼마나 악하고 못나며 예수님과 원수가 되는 삶을 사는 지 잘 아셔야 합니다. 한국의 대형교회 목사 중에서 한 명이라도 이 구절로 설교를 하고 성도를 각성시키는 자가 있는지 보시기 바랍니다. 모두가 진실로 자기 마음대로 사는 자들로 다 지옥이 아주 가까운 자들입니다. 절대로 하나님의 종이라 하면서 그분의 말씀대로 살지 않고 자기 마음대로 사니 앞에서 언급한 집과 땅 문제와 이후에 설명한 율법의 정신과 가장 큰 계명을 1%도 실천하지 않는 한국 전체에서 가장 악하고 부패한 사후에 가장 비참한 결과를 맞이 할 악하고 악한 놈들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예수님께 불을 받고 전합니다. 진실로 한 명이라도 보편적인 인간의 판단력이 있는 놈이 한 놈이라도 있다면 하나님의 도구인 저를 청해서 대접하고 배우고 환영을 할 것이지만 한 놈도 그런 놈이 없고 저를 대적하고 미워하고 심히 미워하니 이들이 다 악하고 악한 놈들이며 한국을 이렇게 무질서의 지옥으로 만든 가장 큰 주범입니다. 제 글은 수천 년을 두고 읽히며 지금 한국에 사는 예수님을 믿는다고 예수님의 이름을 빙자해서 악을 행하는 자들이 역시 수천 년을 수치와 조롱을 받게 될 것입니다. 악한 무리 수천이 1천만 성도를 현혹하니 그 죄가 너무나 큽니다. 돈과 권력 여자에 미친 놈들이 왜 예수님의 거룩한 이름을 그분의 성스러운 성전에서 더러운 입에 올립니까?
저도 배우는 과정에 있지만 유대인이 아니기 때문에 그렇지만 제가 아는 데로 율법의 성질에 대해서 내용에 대해서 누구나 쉽게 오늘 글을 읽고 바로 이해가 되게 설명해 드리니 부디 율법을 사모하고 가까이 하시고 주야로 묵상하시고 예수님의 말씀대로 잘 지키셔서 천국에서 모두가 큰 사람으로 영원토록 사기길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할렐루야!! 제가 모두에게 빚을 진 사람으로 죽음으로 가는 사람을 바로 잡는 것이 빚을 갚는 것이지 아부하고 거짓으로 묵인하면 빚을 진 자의 도리를 저버리는 것이기에 강하게 말씀드리며 저는 예수님의 도구로 이렇게 말을 할 자격이 제게 충분하게 있습니다. 오늘도 살아계신 영원하신 예수님께서 직접 제게 불을 부어 주셨기 때문입니다.
쉬운 율법을 설명도 않고 지키게도 하지 않으니 예수님의 말씀대로 천국에 혹 가도 지극히 작은 자로 영원히 살고, 율법으로도 의가 바리새인 지금의 유대인과 같지 못하면 절대로 천국에 못 갑니다. 천국과 지옥과 상급을 결정하는 심판주가 되시는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이런 자들을 삼가 하시기 바랍니다.
※ 쉽고 쉬운 율법
무법 천지로 주먹이 강하고 목소리가 큰 자가 마음대로 하는 세상에서 살고 싶은 사람은 지구상에 거의 없고 이렇게 막 살고자 하는 자 힘이 있으면 약자를 막 대하고 싶고 권력을 가지고 온 세상을 마음대로 하고 싶은 하나님의 뜻과 가장 대적되는 마귀의 종들이 이런 세상을 원합니다. 이 세상이 독재요 공산주의요 자본주의의 횡포입니다. 절대로 의와 평강과 즐거움이 가득 찬 이 땅에 세워질 천국이 아닙니다. 그리고 각국의 법과 사상과 제도는 모두가 정의의 면에서 너무나 부족하고 약하고 못 배우고 힘이 없는 사람에게 허울 좋은 문구에 불과합니다. 다 사람을 종으로 부리려고 악한 인간이 만든 제도일 뿐입니다. 하나님을 믿고 그분이 원하는 세상을 만드려는 신실하고 정의로운 사람들의 피와 땀과 눈물이 각국의 헌법에 인권과 자유로 보장이 되게 되었습니다. 그래도 그 제도하에서 그 법과 통치를 존중하면서 우리는 예수님과 동행하면서 천국을 건설하려고 전도하고 이렇게 전하는 것입니다. 그분의 법이 지배하는 세상을 꿈을 꾸면서 예수님의 통치를 간절히 바라며 그분께서 홀로 왕이 되는 세상을 만들고 우리 모두가 형제와 자매로 있으면서 서로 친밀하게 모든 것을 나누면서 네 것과 내 것이 없는 초대 교회와 같은 세상을 만들고자 하는 것입니다. 이 위대한 꿈은 우리 주 예수님으로 인해서 꾸게 되고 율법이 있음으로 현실화가 되는 것입니다. 이 법을 정성을 다해서 배우고 지켜야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이 법 앞에 목사도 장로도 권사도 모두가 평등하되 목사 장로 권사가 더 의무와 짐이 많고 더 봉사하고 더 섬겨야 하는 것입니다. 절대로 더 누리면 안됩니다. 진실로 율법이 없다면 이 땅의 천국도 절대로 없는 것입니다. 법이 없이 마음대로 하는 곳에는 세상의 나라도 설 수가 없고 하나님의 나라도 절대로 설 수가 없습니다.
율법을 가장 잘 지키는 사람은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도 이웃도 사랑하는 사람이 율법이 가장 좋고 쉽고 잘 지키게 되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모세 오경에 주로 있는 율법 613조문은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게 하기 위해서 사랑이신 하나님께서 자신의 사랑의 속성을 그 조문에 다 담아서 인간에게 주신 것이기 때문입니다. 자녀를 부모는 자신의 생명보다 더 사랑합니다. 모든 것을 희생하면서 사랑합니다. 이 사랑에 조문이 없습니다. 이렇게 우리는 누군가를 분명하게 사랑하고 사랑할 수가 있는 존재입니다. 사랑이신 하나님의 형상을 그대로 닮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사랑에 지식이 없으면 큰 일이 납니다. 자녀를 젖을 먹이면서 사랑을 실천할 때 엄마가 졸면 그리고 불행하게도 힘도 없는 아기가 무거운 엄마에게 눌리면 그대로 아기는 질식으로 죽습니다. 그리고 사랑을 할 때와 모양이 여러 모로 다양합니다. 그래서 알아야 하고 구체적인 조항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리고 사랑하면서 하나님과 동행도 해야 하고 사회에서 국가에서 수도 없는 사람과 부딛기면서 사랑을 해야 됩니다. 여기에 조항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사랑을 위해서 국가의 국민으로 살게 하기 위해서 구체적으로 613조문으로 정했습니다. 누구를 위협하고 억제하고 통제하기 위한 규정이 아니라 하나님과 이웃을 그리고 국가의 국민으로 살게 하기 위해서 사랑이신 하나님께서 주신 법이 율법임을 우리는 먼저 굳게 믿어야 율법이 쉬워집니다. 절대로 올바로 이해하고 믿고 찬양을 해야 합니다. 모든 구약의 백성이 말씀에 대한 찬양이 곧 율법에 대한 찬양이고 이는 하나님을 찬양하는 방법인 것입니다. 우리도 이를 위해서 구원을 받은 것입니다.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사랑도 올바로 해야 합니다. 내가 좋다고 상대방이 싫어하는데 스토커가 되고 내 사랑을 받아달라고 강제하면 얼마나 상대방은 불행하게 됩니까 그래서 사랑도 방법대로 올바로 해야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정의입니다. 이 정의로운 세상과 나라를 만들고자 정의로우신 하나님께서 정의로운 율법을 주셨습니다. 살다 보면 불의한 사람도 있고 나도 죄를 짓게 되는데 이 죄에 대한 처벌과 제제가 필요하고 그리고 그 죄에 대한 용서를 받는 법을 정한 법이 율법입니다. 하나님과의 인간과 관계는 먼저 거룩하신 하나님께 인간이 나아가기 위해서 정결을 유지해야 합니다. 죄인인 인간이 거룩하신 하나님께 나아가는 법에 대해서 단체가, 나라가, 하나님께 나아가는 방법에 대해서 율법이 정했으니 제사 제도와 성막입니다. 나중에 제사장이 성전에서 하나님께 백성과 함께 경배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만민의 경배를 받으실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질서는 사랑이 있는 곳에도 서지만 반드시 정의가 있는 곳에 질서가 있습니다. 이 하나님의 나라의 질서를 굳게 세우는 법이 율법입니다. 후대에 율법의 기능이 죄를 깨닫게 하는 것이라 하셨습니다. 율법은 죄가 무엇인지 규명합니다. 즉 불의한 삶이 무엇인지 규명하고 그 불의에서 떠나게 하는 기능이 율법에 있습니다.
그리고 모든 사회에서 사람은 서로가 신뢰할 수가 있게 행동을 해야 됩니다. 서로 믿고 사는 세상이 살 만한 세상입니다. 한국의 민법은 그 원칙이 신의 성실입니다. 이 원칙과 구약의 율법은 완전히 같습니다. 서로 행동을 세상에서 하되 서로가 신뢰하게 성실하게 행동해야 된다는 원칙으로 같습니다. 이렇게 율법에는 큰 정신이 사랑으로 정의로 신실함으로 존재합니다. 세상의 법은 사랑에 대해서 침묵하고 정의와 신실함에 무게를 두고 만들어집니다. 이를 모세에게 율법을 주시고 1500년을 보신 예수님께서 분명하게 밝히셨습니다.
마태 23:23.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는 드리되 율법의 더 중한 바 정의와 긍휼과 믿음은 버렸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
23.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파 사람들아, 너희 같은 위선자들은 화를 입을 것이다. 너희는 박하와 회향과 근채에 대해서는 십분의 일을 바치라는 율법을 지키면서 정의와 자비와 신의 같은 아주 중요한 율법은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 십분의 일세를 바치는 일도 소홀히 해서는 안 되겠지만 정의와 자비와 신의도 실천해야 하지 않겠느냐?
율법이 어렵고 복잡한 것이 아니라 우리가 마음대로 살고자 율법을 외면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권세가 있고 돈과 명망이 있게 되면 더욱 더 자기 마음대로 하고 싶은 것이 인간입니다. 그래서 배우기도 싫어하고 지키기도 싫어합니다. 아예 무시도 하기도 합니다. 이렇게 되면 지옥이며 이런 사람은 절대로 천국을 이 땅에 세우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무질서를 조장하게 됩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분명하게 정리를 해 주셨습니다. 가장 큰 계명이 바로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 두 계명입니다.
가장 큰 계명
마태복음 22:35 그중의 한 율법사가 예수를 시험하여 묻되
36 선생님 율법 중에서 어느 계명이 크니이까
37.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38.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39. 둘째도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40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
그리고 이를 다시 하나님을 사랑하는 네 가지 계명과 이웃을 사랑하는 6 가지 계명으로 나누었으니 십계명으로 우리가 다 압니다. 그리고 십계명을 다시 365 하지 말라는 계명과 248 하라는 계명으로 나누었습니다. 그래서 율법은 613 조문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실제로 구체적인 조문으로 가면 틀림없이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구체적인 조항들로 되어 있고 정의를 세우고 서로 믿는 세상을 만드는 조항으로 되어있으니 3500년 전에 이렇게 위대한 법이 존재했습니다. 그리고 인간은 스스로 법을 발전시켜 헌법으로 각국이 가지고 있지만 강대국은 자기 마음대로 약한 나라를 노략하고 침범하고 죽이고 노예로 삼았으니 모든 인류의 역사가 그렇고 악합니다. 이런 세상을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선택해서 바로 잡고자 하고 이제는 예수님을 보내셔서 온 인류를 죄에서 구원하시고 성령을 주심으로 성령의 인도로 율법대로 되는 세상을 만들고자 하시니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이 나라를 세우기 위해서 저와 여러분이 구원을 받은 것입니다. 이 목적은 던져두고 더 벌고 더 가지고 더 큰 집과 땅을 갖고자 하면 속물이 되고 지옥에 갈 가능성이 아주 크지는 것입니다. 예수도 모르고 율법도 모르는 사람에게 정의롭게 살자 외치면 누가 듣습니까? 그래서 먼저 성도의 영성이 회복되고 교회가 서고 교회를 통해서 성도를 통해서 빛이 어두운 세상을 비추어서 밝게 해야 되는 것입니다. 저는 진실로 그 빛을 전하는 예수님의 도구입니다.
신명기 4:8 오늘 내가 너희에게 선포하는 이 율법과 같이 그 규례와 법도가 공의로운 큰 나라가 어디 있느냐
우리는 율법의 신실성을 반드시 믿어야 하고 사랑에 대한 규정임을 믿어야 하고 그리고 정의로운 규정으로 정의를 굳게 세우는 법임을 모든 예수를 믿는 사람 한 분도 빠짐없이 믿고 이 법을 잘 배우고 유대인과 같이 배우고 지키려고 애를 써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그 의가 겨우 바리새인보다 나을 수가 있고 천국에 가는데 적당히 하면 큰 일이 납니다. 이를 성경의 구절로 통 치려 하는 시도가 너무나 많습니다. 조금이라도 기회가 있으면 율법에서 빠져나가려고 하고 이는 자기 마음대로 하고자 하는 욕구가 너무나 강하기에 그렇게 이는 마귀의 유혹으로 그렇게 되니 큰 교회 목사도 절대로 피해가지 못하고 더욱 더 강한 유혹이 오면 굴복하는 것입니다.
대표적인 구절을 제가 예를 들어서 보고 그 의미를 분명하게 밝혀서 이런 시도가 너무나 악하고 지옥에 가는 태도임을 보여드립니다. 진리의 말씀에 순종하시고 절대로 어긋난 곳으로 가지 마시기 바랍니다. 바울의 서신이 대표적인 예입니다. 이를 반드시 이렇게 전체적으로 성경을 보면서 창세기도 보고 복음서도 보고 예수님의 말씀도 보면서 이 틀 안에서 이해를 해야 되는 것입니다. 아래 구절들만 떼어서 보시면 그 이해가 올바르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전체적인 맥락에서 보아야 합니다. 가장 큰 전제는 예수님의 마태복음 5장 17-20절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인간 바울이 절대로 함부로 대하지도 어떻게 하지도 못하는 지엄한 말씀으로 천지가 없어져도 율법의 한 획도 떨어지지 않는다는 예수님의 말씀을 더욱 중요하게 생각하시고 아래 구절을 보아야 비로소 올바른 이해가 있습니다. 흔들리지 마시고 올바른 길로 가셔야 합니다. 성경으로 수도 없는 주장이 있음을 아시기 바랍니다. 아마도 1000 명의 목사가 있다면 어떤 부분이 다 다를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천주교는 함부로 성경을 해석을 못하게 막았습니다. 그래서 교리 면에서 통일이 되어 있고 교회도 하나로 존재합니다. 겸손과 순명과 일치가 그 모토로 좋은 면도 아주 많습니다.
※ 논쟁이 되는 율법과 행위와 믿음에 대한 성경 구절들과 올바른 이해
갈 2:15. 우리는 본래 유대인이요 이방 죄인이 아니로되
16.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로 말미암음이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줄 알므로 우리도 그리스도 예수를 믿나니 이는 우리가 율법의 행위로써가 아니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함이라 율법의 행위로써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느니라(개역 개정)
하나님께서는 어제나 오늘이나 동일하십니다. 그분의 말씀은 신 구약으로 나누어져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삼위일체 하나님이십니다. 이 부분을 인정하지 않는 지구상의 교회는 없습니다. 그런데 인간의 역사 6200 년에서 먼저 1700 년의 역사는 노아 홍수와 함께 사람도 모든 것이 다 사라졌습니다. 오직 계보만 남아 있고 홍수에도 견딘 유물이 남아 있습니다. 그 다음이 기원전 2166 년에 탄생한 아브라함의 시대입니다. 약 700 년의 시대입니다. 이 시대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믿음과 법을 잘 지킴을 보십니다. 그리고 이 때는 양심의 시대이기도 합니다. 율법이 오기 전에 믿음과 양심으로 판단을 받는 시대가 있었습니다. 아브라함은 분명하게 약속의 사람으로 그의 후손이 혈통으로도 믿음으로도 하늘의 별과 같고 수많은 나라가 나오는 것으로 믿고 그대로 이루어졌습니다. 그 다음이 율법의 시대입니다. 그리고 율법이 없는 사람은 여전히 양심의 법으로 판단을 받습니다. 약 예수님 오시기까지 1500 년이 지속이 됩니다. 이 시대에 이스라엘은 모세가 중보자가 되어서 시내 산에서 율법대로 살면 축복이요 어기면 저주를 받는다는 것을 하나님과 굳게 약속을 하고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율법을 잘 배우고 지켜야 하는 의무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구약의 약속대로 이스라엘이 아닌 온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하나님의 아들이 직접 오십니다. 그 목적이 무엇인지 살펴야 합니다. 그 목적은 인간을 구원하셔서 이스라엘이 잘 지키지 못한 율법을 지키기 위함입니다. 그리고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이 일을 다 함께 하십니다. 하나님의 총동원 구원입니다.
겔 36: 24 내가 너희를 여러 나라 가운데에서 인도하여 내고 여러 민족 가운데에서 모아 데리고 고국 땅에 들어가서
25 맑은 물을 너희에게 뿌려서 너희로 정결하게 하되 곧 너희 모든 더러운 것에서와 모든 우상 숭배에서 너희를 정결하게 할 것이며
26 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거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
27 또 내 영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로 내 율례를 행하게 하리니 너희가 내 규례를 지켜 행할지라
28 내가 너희 조상들에게 준 땅에서 너희가 거주하면서 내 백성이 되고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리라
이스라엘은 1500 년을 율법을 지켜서 의롭게 되고 율법을 지킴으로 축복을 받도록 약속이 된 민족입니다. 비록 나라가 망했지만 여전히 이 율법을 국법으로 보고 율법을 잘 배우고 율법대로 살고자 하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이는 예수님께서 오신 후 2000 년이 흘러도 조금도 변치 않고 그대로 지켜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유대인들에게서 메시아가 나시고 오십니다. 이스라엘 사람으로 오십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에 먼저 복음을 전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오직 이스라엘 영토 안에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거의 대부분을 그렇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초기에 예수님 제자와 예수를 믿는 사람이 대부분 이스라엘 사람이었습니다. 율법이 인생의 전부인 사람들을 구원하셔야 하는 데 즉 죄에서 해방을 시켜서 영생을 누리게 해야 되는데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구세주라 하시며 자신을 믿으라고 하셨습니다. 절대로 율법을 없애려 오신 것이 아니라 완성하려 오셨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율법학자와 당시 지도자들이 예수님과 특별히 사사건건 대적이었습니다. 왜 율법을 무려 1500년을 두고서 연구하고 지키려고 했던 민족이 율법을 완성하려 왔다고 하는 예수님과 대적하고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을 박고 죽이기까지 합니까? 실로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이시요, 이들의 조상 아브라함을 직접 만나시고 그 믿음을 보신 분이십니다. 이들이 자신이 2000 년 전에 만난 아브라함과 절대로 같지 않습니다. 이들이 절대로 율법을 조문 조문 배워서 지키려고 하지만 율법의 본래 목적인 사랑도 없고 정의도 없고 신실함도 없이 법을 이용해서 악을 추구합니다. 그래서 이를 당시 율법학자를 비롯해서 지도자들을 책망하시니 자신이 법을 악용해서 행하는 악행을 지적하니 이들이 예수님이 미웠습니다. 제가 대형 교회 목사 1000 명을 지적해서 지옥에 간다고 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다수가 소수 오직 한 분인 인간 예수님을 배척하고 십자가에 못을 박고 죽인 것입니다. 이들은 예수님께서 사람의 몸으로 오신 자신들의 하나님이신 줄 몰랐습니다. 이를 안 당시의 제자와 따르던 무리는 예수님께서 창조주가 되시며 하나님이심을 잘 알고 믿은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믿고 즉 십자가에서 피를 흘리시고 우리 죄를 감당하기 위해서 돌아가신 자신을 믿고 죄를 용서 받기를 바랐습니다. 그리고 이는 이스라엘과 이방인에게 공통으로 적용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성령을 받으라고 부활 하신 후에 부탁을 하시고 제자들과 무리가 순종해서 성령을 받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이들이 마음이 부드럽게 되어 사랑하고 성령의 인도로 살아서 율법을 완성하기를 바라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1500 년의 이스라엘을 다 보신 분이시며 우리의 약함을 아십니다. 우리가 우리 힘으로 율법을 잘 지키지 못함을 너무나 잘 아십니다. 그래서 성령을 받고 성령으로 거듭나서 성령의 능력으로 인도로 율법을 완성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이것이 에스겔서에 그대로 너무나 잘 나타나 있고 로마서의 핵심입니다. 제가 나중에 다 설명을 드릴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작은 민족, 지금 인구로 약 2500 만 명의 이스라엘만의 하나님이 아니시고 90억에 달하는 모든 인류의 하나님이시고 창조주이시며 아버지가 되시는 것입니다. 온 인류가 이스라엘뿐만 아니라 율법도 없는 너무나 다수인 이방인도 이제는 예수님을 믿고 구원을 받는 길이 너무나 시급하고 너무나 중요하고 너무나 우주적인 것입니다. 이제 예수님을 믿는 일이 온 우주적인 보편적인 일이요, 대사가 된 것입니다. 이 내용이 위의 에스겔서 이고 이 내용이 모든 신약의 사도들의 편지의 핵심입니다. 이제 내용을 보시면서 위의 구절을 보시면 뭐가 어렵습니까? 그대로 입니다. 이제 아브라함에게 열렸던 믿음으로 의롭게 되는 길이 예수님께서 오심으로 유대인 그리고 모든 이방인에게 활짝 열렸습니다. 예수님을 믿고 구원을 얻는 길이 유대인과 이방인에게 완전히 자유롭게 온 우주적으로 열린 것입니다. 이 놀라운 복된 소식이 예수님을 믿음으로 시작합니다. 율법을 가진 유대인도 잠시 율법의 의를 추구하지 말고 이제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을 믿어야 합니다. 그리고 율법이 없는 즉 양심의 법으로 심판을 받을 이방인은 예수님을 믿는 것이 구원을 얻고 의롭게 되는 유일한 길입니다. 이를 설명합니다. 그리고 율법은 조문이 무려 613 조문이기에 완벽하게 지키려고 하나 한 규정이라도 어기게 되면 불의하게 되니 율법으로 의롭게 되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율법에 문제가 있으니 율법을 어떻게 하나는 말은 0.0000%도 없습니다.
갈 3:17. 내가 이것을 말하노니 하나님께서 미리 정하신 언약을 사백삼십 년 후에 생긴 율법이 폐기하지 못하고 그 약속을 헛되게 하지 못하리라
18. 만일 그 유업이 율법에서 난 것이면 약속에서 난 것이 아니리라 그러나 하나님이 약속으로 말미암아 아브라함에게 주신 것이라
19. 그런즉 율법은 무엇이냐 범법하므로 더하여진 것이라 천사들을 통하여 한 중보자의 손으로 베푸신 것인데 약속하신 자손이 오시기까지 있을 것이라
철저하게 1500년을 산 이스라엘 사람들을 이제는 예수님을 믿게 해야 합니다. 정말로 예수님 이후 2000 년의 세월이 흘러도 유대인은 예수님을 잘 믿지 않고 역시 지금도 율법을 잘 배워서 지키려고 하고 예수님을 믿는 것을 꺼려합니다. 그래도 여전히 예수님을 믿는 유대인은 있습니다. 초기는 바울 사도를 비롯해서 모든 사도들이 믿는 이들이 대부분 유대인이었습니다. 이들에게 예수님을 믿으므로 구원도 받고 의롭게 됨을 설명하고자 하니 창세기 12장부터 26장의 아브라함의 예는 너무나 정확하게 있으니 이는 전능하시고 전지하신 하나님의 창세전의 계획이십니다. 그런데 오직 율법으로 의롭게 되고 구원도 얻으리라 믿고 산 유대인에게 이런 성경적인 진리를 알리는 내용입니다. 이방인은 이 구절과 어떻게 됩니까? 율법 없이 양심의 법으로 무려 아브라함의 시대 후 이방인은 약 4000 년을 살았습니다. 그냥 예수님을 믿으면 구원받고 의롭게 됩니다. 그런데 그 근거가 구약 성경에 있으니 우리가 앞에서 너무나 자세하게 살펴 보았습니다. 세 번의 시험과 의롭게 됨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믿음으로 우리가 후손이 된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유대인은 무려 1500년을 율법에 절어서 율법 외에 구원은 생각도 못하고 율법 외에 의롭게 됨에 대해서 생각도 못했습니다. 가장 율법에 뛰어난 학자였던 바울도 이런 원리를 예수님을 만나서 회개하고 성령을 받기 전에 몰랐습니다. 오직 율법이 가장 위대하고 유일한 구원의 길이요 의롭게 되는 길임을 굳게 믿었고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고 의롭게 된다는 것을 믿는 사람을 잡아서 가두기 까지 하고 예수님을 올바른 진리를 전하는 분으로 믿지 않았습니다. 이제 이렇게 율법에 모든 것을 건 사람이 위와 같이 말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고 구약의 모든 내용을 올바로 이해를 합니다. 모든 구약의 말씀이 예수님에 대한 글임을 알게 됩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오셔서 죄인을 위해서 십자가를 지시고 피를 흘림도 알고 믿게 됩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믿고 그분의 세례를 받고 죄를 용서 받고 성령을 받아서 전도를 20년 동안 하면서 비로소 믿음의 의미와, 의롭게 됨의, 의미와 그리고 율법을 믿음으로 성령의 능력으로 지키게 되는 에스겔서 36장 24-28절을 다 이해하고 위와 같이 표현을 하는 것입니다. 절대로 찬양의 대상인 율법을 멀리 하거나 믿지 말거나 지키지 말라는 내용은 0.0000%도 없습니다. 아브라함의 유업이 율법을 지킴에 있지 않고 믿음으로 된다는 원리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하나님의 아브라함에 대한 평가를 절대로 잊지 말아야 합니다.
창 26: 4 네 자손을 하늘의 별과 같이 번성하게 하며 이 모든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니 네 자손으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받으리라
5 이는 아브라함이 내 말을 순종하고 내 명령과 내 계명과 내 율례와 내 법도를 지켰음이라 하시니라
다시 너무나 유명한 모른 사람이 없는 로마서 1장 17절을 봅니다. 이도 분명하게 위의 아브라함의 신앙을 다 보아야 정확하게 이해가 됩니다. 보시겠습니다. 이 구절은 바울이 마음대로 사용한 것이 아니라 아브라함의 신앙을 보면서 하박국의 신앙을 보면서 인용한 것입니다.
롬 1:17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개역개정)
롬 1:17 복음에는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나 있습니다. 이 의는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입니다. 그런데 그 믿음은 처음부터 끝까지 잘 믿는 믿음입니다. 기록된 바와 같이 오직 의인은 믿음을 갖고 매일 매일 삶을 사는 사람이다 함과 같습니다( 제가 영어로 번역을 함)
이 구절은 예수님 오신 후 약 50 년이 지난 후 바울 사도가 기록했습니다. 2200 년 전의 자신들의 조상 아브라함의 삶을 다 창세기를 통해서 보고서 기록합니다. 당시 구약이 70 인 역으로 헬라어로 번역이 되어서 유대인은 다 보고 있었습니다. 이 구절 한 구절만 딱 보면서 이해를 우리는 개역개정으로 이해를 하고자 하니 어렵습니다. 제가 영어로 번역한 내용이 더 정확하고 세밀합니다. 복음 즉 예수님을 믿으라는 복된 소식 즉 사복음서 등에 하나님을 믿음으로 오는 의가 나타났습니다. 그 의는 믿음으로 오는 의인데 아브라함의 신앙에서 우리는 잘 보았습니다. 그런데 그 믿음이 75세 부름부터 175세 즉 처음부터 끝까지 잘 믿는 믿음입니다. 기록이 된 바와 같이 즉 창세기에 기록이 된 바와 같이 의인은 믿음을 가지고 그 믿음에 합당하게 매일 매일 삶을 사는 사람입니다. 아브라함이 일생을 그렇게 살았던 사람입니다. 그리고 그 사람은 믿음뿐만 아니라 선량한 사람이었고 법을 잘 지킨 사람이었고 심지어 하나님의 벗으로 인정을 받은 사람입니다. 위의 구절을 이와 같이 잘 이해를 해야 합니다. 창세기 12장 26장의 이해가 있어야 위의 구절이 올바로 이해가 되니 성령께서 바울에게 감동하신 성령께서는 하나님으로서 위의 창세기 12-26장의 내용을 완벽하게 아실 뿐만 아니라 아브라함의 삶도 역시 너무나 잘 아십니다. 그리고 이를 바울에게 감동으로 전하게 하신 것이고 저도 틀림없이 예수님께 성령을 받고 성령의 인도로 이렇게 정확하게 전합니다. 성령이 없이 공부로 풀면 작은 인간의 머리로 우주보다 넓은 하나님이 뜻을 헤아려야 하니 서울대도 하버드도 성령이 없으면 미약하고 조잡하고 지엽적이고 좁고 정확성도 너무나 부족합니다. 인간의 머리는 실로 천재라 해도 하나님의 능력에 먼지와 같습니다. 믿으시고 성령을 회개하고 받으시고 목회도 신학도 해야 합니다. 할렐루야!!
롬 3:20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
롬 3:21. 이제는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으니 율법과 선지자들에게 증거를 받은 것이라
22.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
23.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24.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 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25.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써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제물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니
26. 곧 이 때에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사 자기도 의로우시며 또한 예수 믿는 자를 의롭다 하려 하심이라(개역 개정)
21. 그러나 이제는 하느님께서 인간을 당신과 올바른 관계에 놓아주시는 길이 드러났습니다. 그것은 율법과는 아무 관계가 없습니다. 율법서와 예언서가 바로 이 사실을 증명해 줍니다.
22. 하느님께서는 믿는 사람이면 누구나 아무런 차별도 없이 당신과 올바른 관계에 놓아주십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23.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기 때문에 하느님이 주셨던 본래의 영광스러운 모습을 잃어버렸습니다.
24. 하느님께서는 그리스도 예수를 통해서 모든 사람을 죄에서 풀어주시고 당신과 올바른 관계를 가질 수 있는 은총을 거저 베풀어주셨습니다.
25.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에게는 죄를 용서해 주시려고 하느님께서 그리스도를 제물로 내어주셔서 피를 흘리게 하셨습니다. 이리하여 하느님께서 당신의 정의를 나타내셨습니다. 과거에는 하느님께서 인간의 죄를 참고 눈감아주심으로 당신의 정의를 나타내셨고
26. 오늘날에 와서는 죄를 물으심으로써 당신의 정의를 나타내셨습니다. 이렇게 해서 하느님께서는 당신이 올바르시다는 것과 예수를 믿는 사람이면 누구든지 당신과 올바른 관계에 놓아주신다는 것을 보여주십니다.(공동 번역)
이제 제가 이를 풀어서 모두가 더 쉽게 이해가 되게 하겠습니다. 로마서의 가장 중요한 구절이라 저는 생각합니다. 로마서 1장 17절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하는 구절보다 더 중요하고 로마서 1장 17절의 근거가 되는 구절입니다.
율법과 별도의 의가 나타났습니다. 율법은 모세 오경이며 성경의 가장 근본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신 하나님의 통치의 근본으로 각국에 가장 최상위에 헌법이 있듯이 이 율법은 온 인류의 공통적인 헌법이며 모든 성도의 헌법이 되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께서 이 법대로 온 우주를 통치하시기 때문입니다. 이 법을 알든 모르든 이 법의 통치를 그대로 온 인류는 받습니다. 사는 동안에도 그렇고 죽고 난 후 영생과 영벌의 기준이 바로 율법이기 때문입니다. 이 율법에는 하나님의 사랑과 정의와 그리고 신실함이 그대로 나타나 있습니다. 율법의 정신이 바로 하나님의 속성입니다. 그리고 우주 만물 인간을 포함에서 가장 높은 곳에 가장 오랜 시간 존속하는 거룩한 법이 바로 율법입니다. 우주 만물이 사라져도 일점 일획 변치 않고 존재한다고 예수님께서 선포하셨습니다. 이를 이스라엘 역사 1000년을 통해서 정확하게 보여주셨고 우리 인간의 역사를 보아도 역시 모든 인간의 역사가 하나님의 통치하에 있고 그 통치는 법치로 율법에 의한 통치입니다. 그런데 법은 정의를 세우기 위해서 존재합니다. 그래서 율법에는 하나님의 의가 그대로 가장 잘 나타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율법 하면 의인데 이 율법과 별도의 의가 이번에 나타났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의는 처음으로 나타난 것이 아니라 이미 예언서를 통해서 율법서(모세 오경)를 통해서 이미 증거가 되어 있다고 하십니다. 율법과 다른 의가 율법서와 예언서에 있다고 하시니 우리는 이를 찾아서 보아야 합니다. 어디에 있습니까? 모세 오경 중에서 창세기에 15장에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니 의롭다 하시는 구절이 있습니다. 그리고 예언서의 하박국서 2장 4절에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한 구절이 있습니다. 이를 말씀하십니다.
이렇게 구약의 율법서와 예언서에 기록이 된 바와 같이 믿음으로 오는 의가 있는데 이제는 예수님을 믿는 모든 사람에게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의가 있습니다. 즉 율법서에 기록이 된 조항을 잘 지킴으로 의롭게 되는 것이 아닌 이미 예언서와 율법서에 기록이 된 믿음을 통한 의와 같이 예수님을 믿는 믿음을 통해서 하나님으로부터 의롭다 함이 오는데 모든 믿는 사람에게 온다고 하십니다. 21-22절이 설명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의는 차별이 없습니다. 즉 믿는 모든 사람이 다 의롭다 인정을 받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나와 너 모두가 하나님께 죄를 범해서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합니다. 이는 인간이 죄를 짓기 이전의 상태를 잃어버린 것을 설명합니다. 우리는 죄가 없다면 에덴에서 늙지도 병들지도 그리고 수고도 하지 않고 영생을 누릴 존재였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은 이를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영화롭게 창조하셨는데 그분의 영광을 함께 누리도록 창조하셨는데 우리의 죄로 인해서 이를 잃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실낙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으로부터 오는 대속인 하나님의 은총으로 값없이 의롭게 됩니다. 누구나 이 하나님의 은총과 예수님의 대속을 믿기만 하면 아무 값도 없이 의롭게 되기에 차별이 없다는 것입니다. 복낙원이 되는 것입니다. 23-24절입니다.
25절을 봅니다. 이 구절의 복음이 핵심입니다. 로마서에 이 구절에 대한 이해가 다 있습니다. 먼저 로마서 5장 8절을 봅니다.
롬 5:8.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화목 제물로 세우셨다고 하는 것은 구약의 율법에 따라서 죄를 지은 사람은 죄를 용서받기 위해서 속죄의 제사를 드려야 했습니다. 이는 흠이 없는 양이나 소를 잡아서 피를 흘리는 제사를 성막에 가서 혹은 성전에 가서 제사장과 함께 드려야 했습니다. 이렇게 해서 그 사람의 죄를 씻어야만 하나님 앞에 나가갈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모든 사람이 다 하나님께 죄를 범했고 이 모든 사람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서 예수님 즉 독생자를 희생의 제물로 내어 주셨다는 것입니다. 아버지가 아들을 내어 주는 사랑 그 사랑으로 우리 모든 인류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을 확실하게 증거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피 흘림이 없으면 죄 사함이 없는데 이 예수님의 보혈로 우리 모두의 죄를 씻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사실을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이렇게 예수님을 화목 제물로 세우시고 믿는 우리를 의롭게 하신 일이 자신이 의로운 분이심을 나타내시려고 하셨다는 것입니다. 26절에 있는데 이 부분부터 잘 보아야 합니다. 누가 설명을 잘 하지 않는 부분입니다. He did this /to demonstrate his justice에서 밑줄 친 this는 앞의 문장 전체를 받습니다.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통해서 그분의 피 흘리심을 통해서 이를 믿는 우리를 의롭게 하신 일이 그분의 의로우심을 나타내시려고 하신 일이라고 하십니다. 우리는 이를 묵상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아무런 희생이나 피 흘리심이 없이 누구를 용서하실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분의 법에 의하면 죄에는 대가가 반드시 따르고 죄는 대가가 죽음과 피 흘림이 반드시 있어야 되는데 이것이 하나님의 정의입니다. 즉 죄에 대한 처벌이 하나님의 정의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미 죄를 범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잃고 이 땅에서 살다가 죽는 신세가 되어서 살고 있는데 하나님의 은총이 값이 없이 우리의 희생이 없이 하늘에서 내려옵니다. 그런데 그 은총은 너무나 큰 하나님의 사랑으로 큰 희생으로 옵니다. 즉 하나님의 죄에 대한 처벌로서 오는데 그 처벌이 우리에게 오는 것이 아니라 그분의 아들에게 대신 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피 흘리심과 예수님의 죽으심이 바로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처벌로 나타난 것입니다. 우리의 죄에 대한 정의가 이렇게 나타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법대로 우리를 죽게 그대로 두어야 하나 우리 대신 예수님을 피를 흘리시고 죽게 하신 것입니다.
이 대속을 믿는 이를 하나님께서 그 믿음으로 의롭다 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에 대한 설명으로 이렇게 하신 하나님의 의도가 그분의 정의로우심을 나타내시려 하셨다는 것입니다. 즉 죄에 대해선 절대로 피 흘림이나 죽음이 없이는 용서가 불가하다는 것으로 이는 예수님을 믿지 않고 사는 사람에 대해서는 반드시 죄에 대한 심판이 있고 그 심판이 최후의 심판이 된다는 의미입니다. 절대로 절대로 죄는 그대로 넘어가는 경우가 없고 반드시 죗값을 치러야 되는데 이것이 하나님의 정의라는 것입니다. 이 죄에 대한 처벌을 우리 대신 예수님께서 받게 하심으로 죄를 벌하시는 하나님의 정의가 나타났다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심으로 독생자를 주셔서 우리의 죄를 용서받는 길을 은총으로 주셨지만 이를 믿지 않는 자에겐 틀림없는 죄에 대한 심판을 하실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절대로 죄는 두 가지 방법 외에 피할 길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정의로우신 분이시기에 그렇습니다. 예수님을 믿음으로 죄를 용서를 받든지 아니면 그냥 그 사람이 피를 흘리고 죽는 것 외에는 달리 어떤 방법의 해결책도 없음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정의로서 모든 세상에서 악하게 살고 마음대로 살고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사는 사람에겐 틀림없는 하나님의 무서운 심판이 존재함을 온 세상에 하나님께서 전하시는 것입니다. 죄는 이렇게 무서운 것입니다. 인생의 순간이고 하루살이나 불나방과 같이 순간의 권력욕이나 재물의 욕심에 죄를 범하는 인간의 말로는 정의로우신 하나님의 심판을 결단코 피해 갈 길이 없음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냥 말씀하시는 것이 아니라 아들을 죽음으로 내어 모는 사건을 통해서 온 인류에게 엄중하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지만 이렇게 죄에 대해서 무서운 분이심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즉 정의로우신 분이심을 절대로 잊지 말라는 것입니다. 십자가에는 이렇게 하나님의 사랑과 정의가 같이 나타나 있음을 굳게 믿으시고 절대로 죄에서 멀어지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죄인을 구원하셔서 그 아들의 피와 죽으심과 수치와 조롱을 통해서 구원하셔서 그 백성이 된 죄인이 이제는 새 생명을 가지고 정말로 예전과 달리 죄를 멀리하며 정의롭게 살기를 너무나 간절히 바라십니다. 로마서는 이렇게 정의에 대한 법적인 글인 것입니다. 율법학자 바울과 같이 성령을 받아서 그리고 그의 전도 경험과 교회를 세우고 치리 한 경험이 없는 사람은 절대로 로마서를 쓸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의 검사, 판사, 법률 교수와 같은 분을 강제로 선택하시고 성령을 주셔서 전도하게 하시고 이렇게 로마서를 기술하게 하셨으니 로마서는 지금의 검사, 판사, 그리고 변호사와 법대 교수가 예수를 믿고 성령의 도움으로 설명하되 반드시 바울 사도와 같이 복음을 전하면서 이해하고 설명을 해야 되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가운데 우리의 과거에 지은 죄를 미리 간과하셨다는 구절이 또 이해가 어렵습니다. 죄에 대한 즉각적인 처벌이 하나님의 정의입니다. 우리가 원죄도 있고 자범죄도 있는데 이렇게 예수님을 믿기 전에 지은 죄에 대한 하나님의 간과 즉 처벌을 즉각 하지 않고 이를 참으시는 것이 어려운데 참으신 것이 바로 예수님을 우리에게 내어주시고 또 희생하게 하신 이유가 된다는 것입니다. 간과와 용서와 처벌은 다릅니다. 간과는 죄를 보시고 그냥 처벌도 용서도 아니하시고 참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아버지가 아들의 자신의 지갑에서 큰돈을 훔치는 것을 보았습니다. 즉시 불러서 야단을 치고 돈은 내놓아라 해야 하는데 우선 지켜보는 것을 말합니다. 참기에 절대로 어려운 일입니다. 그 돈이 액수가 크고 긴급한 자금이었다면 더욱 참기 어렵습니다. 돈에 대한 회수와 아들의 악행에 대한 처벌을 바로 하고자 하는 것이 보통인데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기에 기회를 주시면서 참고 기다리신다는 것입니다. 이미 우리의 과거에 지은 죄에 대한 간과를 하나님께서 하셨다는 것입니다. 미리 하나님께서 하셨으니 이제 마무리를 해야 하는데 이에 대한 예수님의 오심이 바로 이 간과에 대한 해결이라는 것입니다.
영어로 보면 대과거로 되어 있습니다. 과거 이전의 행위에 대한 설명입니다. 이미 예수님께서 오시기 전에 간과가 있습니다. 만약에 하나님께서 길이 참지 않고 모든 우리의 과거에 죄에 대한 처벌이 있었다면 즉 우리의 죄로 인해서 우리가 재산이 다 날아가고 우리가 병이 들고 우리가 이미 죽어서 없어졌다면 예수님의 대속의 의미는 많이 작아질 것입니다. 이미 벌을 받고 낭패에 빠진 사람에게 너 죄를 용서할 길이 열렸다고 하면 누가 이를 믿겠습니까? 즉 여러분이나 저나 흉악하게 예수님을 믿기 전에 지은 죄에 대해서 하나님께서 간과하시고 계셨습니다. 즉각적인 처벌이 없이 산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믿게 되면 바로 용서를 하시는데 없는 것과 같이 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용서는 이와 같지만 세상의 처벌은 세상의 처벌대로 가는 것입니다. 금당살인 사건의 살인범 박 철웅은 사형을 언도 받고 감옥에서 예수님을 만나서 회개하고 수백 명에게 복음을 전하며 편지도 자신의 동생 천웅에게 남겼습니다. 저는 그 편지를 읽고 바로 성령의 감동이며 모든 죄를 회개한 사람임이 보였습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살인의 죄를 용서하시고 처벌하시지 않으십니다. 그런데 세상의 법은 사형이니 사형이 집행이 되었으나 저는 그분이 천국에 있는 것을 확실히 믿고 저도 역시 그분 못지않은 흉악한 죄인임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이미 하나님의 간과가 있고 예수님께서 오십니다. 그런데 이는 정의로우신 하나님 편에서 길이 참으시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모든 악인이 죄를 범하면서 하나님이 계시냐 하면서 아무런 두려움이 없이 사는데 이는 죄를 알고도 용서하기를 바라시며 그분의 아들을 피를 흘리고 죽게 내어주신 정의로우시며 사랑이신 하나님을 너무나 무시하는 행위로 절대로 최후의 심판을 피할 길이 없이 영벌에 처해질 것입니다. 악인의 형통을 절대로 부러워 말고 절대로 따라갈 생각도 하지 말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이 모든 하나님의 행위는 하나님께서 정의로우신 분이심을 나타내는 것은 물론 이런 하나님의 사랑과 은총을 받아서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고 받아들이는 모든 사람을 의롭게 하시는 분이심을 나타내시려고 예수님을 우리에게 내어 주셨다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께서는 정의로우신 분이심을 온 천하에 밝히려고 하십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믿는 사람도 역시 정의롭게 하시는 분이심을 나타내려 하십니다. 하나님의 정의에 대해서 이렇게 강조하십니다. 사람이 정의롭게 되고자 하면 이런 하나님의 은총을 배우고 기억해서 예수님을 믿고 정의롭게 되어라 하는 온 인류의 초대의 말씀입니다.
온 세상이 정의를 외칩니다. 정치학은 한 마디로 정의에 대한 한문입니다. 법학도 한 마디로 정의에 대한 학문입니다. 법으로 정의를 세우고 정치로 정의를 세우고자 인간은 애를 쓰나 진정한 정의롭게 되는 길은 겸손히 자신의 죄를 하나님께 고백하고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고 믿을 때 비로소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법이 무너지고 정치가 무너지면 불의한 세상이 되고 이는 정의로우신 하나님의 심판의 대상이 되는 것입니다. 성경은 이를 증명합니다. 이 불의한 세상을 소금과 빛의 역할을 하면서 정의롭게 해야 되는 사람이 구원을 받은 하나님의 백성 즉 예수님을 믿는 신자입니다.
롬 4:2 만일 아브라함이 행위로써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면 자랑할 것이 있으려니와 하나님 앞에서는 없느니라
롬 4:13 아브라함이나 그 후손에게 세상의 상속자가 되리라고 하신 언약은 율법으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요 오직 믿음의 의로 말미암은 것이니라
롬 5:1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자
롬 5:2 또한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믿음으로 서 있는 이 은혜에 들어감을 얻었으며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느니라
창 15:4 여호와의 말씀이 그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그 사람이 네 상속자가 아니라 네 몸에서 날 자가 네 상속자가 되리라 하시고
5 그를 이끌고 밖으로 나가 이르시되 하늘을 우러러 뭇별을 셀 수 있나 보라 또 그에게 이르시되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
6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
진실로 예수님을 믿는 일이 모든 인간에게서 가장 중요한 시급한 일입니다. 이 믿음을 강조한 개신교는 교회 역사상 너무나 위대한 일을 하고 그리고 온 세상에 전도하고 복음을 전해서 수억 명이 온 지구상에서 다 믿도록 하고 성경을 강조하고 성령의 사역을 강하게 전했으니 너무나 성경적이지 아니 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천주교는 그냥 잘 했다 하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먼저 신자는 믿고 성경을 잘 배워야 합니다. 행함과 바침은 말은 쉬워도 결코 금방 할 수가 있는 행위가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도 믿는 무리를 3년 동안 잘 교육을 시키고 성령을 받고 행하게 하셨습니다. 천주교는 이런 원리를 잘 이해를 하고 5년 이하인 성도에게 믿고 행하라 바치라 막 강요할 수도 없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래서 개신교의 주장대로 예수를 믿는 것이 너무나 중요하다 믿고 의롭게 되고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다는 성경의 진리를 그대로 인정해야 됩니다. 그리고 개신교는 아브라함의 예에서 보듯이 믿고 바치고 믿고 행하는 아브라함의 신앙을 반드시 본 받아서 10 년이 넘은 성도는 오직 믿음에 머물지 말고 믿고 행하고 믿고 바치는 단계로 나아가야 합니다. 천주교의 주장이 역시 성경에 그대로 있으니 이를 믿고 따라가야 하는 것입니다. 다툴 필요가 없습니다. 반드시 아브라함이 날이 갈수록 신앙이 성장하고 굳어지는 것을 본 받아야 합니다. 그리고 행하고 바치는 것을 반드시 실행해야 합니다. 즉 천주교를 비판할 필요가 없이 오래 된 목사 장로 권사가 이제는 고집을 버리고 바뀌어서 나누어야 합니다. 일생을 초기 아브라함의 신앙에 머물며 오직 믿음이면 다 된다 하고 말기 아브라함의 신앙은 외면하며 천주교를 비판하는 모든 자는 실로 자신의 신앙을 돌보지 않고 또 하나님께서 주신 물질을 두 손에 가득 쥐고 죽어가는 이웃을 외면하는 모든 신앙인은 이미 믿음으로 의롭게 되는 기회를 놓치고 사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예를 보면 반드시 그렇게 바쳐야 하고 행해야 하는데 일생을 오직 믿음하고 진작 행해야 하는 일은 하지 않으니 이미 여러 번 하나님의 오심과 체크에서 탈락한 상태로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세 번을 테스트 하신 분이시며 이렇게 갖고 행하지 않는 자는 오히려 매일 우리와 함께 하시면서 어떻게 하는가 다 보는 하나님을 속이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
※ 우리가 "오직 믿고" 주목하지 않는 성경 구절
로마서
2:12 무릇 율법 없이 범죄한 자는 또한 율법 없이 망하고 무릇 율법이 있고 범죄한 자는 율법으로 말미암아 심판을 받으리라
13 하나님 앞에서는 율법을 듣는 자가 의인이 아니요 오직 율법을 행하는 자라야 의롭다 하심을 얻으리니
14 (율법 없는 이방인이 본성으로 율법의 일을 행할 때에는 이 사람은 율법이 없어도 자기가 자기에게 율법이 되나니
디모데전서
1:7 율법의 선생이 되려 하나 자기가 말하는 것이나 자기가 확증하는 것도 깨닫지 못하는도다
8 그러나 율법은 사람이 그것을 적법하게만 쓰면 선한 것임을 우리는 아노라
야고보서 1:25
자유롭게 하는 온전한 율법을 들여다보고 있는 자는 듣고 잊어버리는 자가 아니요 실천하는 자니 이 사람은 그 행하는 일에 복을 받으리라
너무나 한쪽에 치우치면 성경을 전체적으로 보지 않고 자기 마음에 드는 구절만 찾아서 뽑아서 보고 듣고 믿고 합니다. 그래서 자신의 생각과 다른 내용이 성경에 있는 것도 모르고 살고 읽으면서도 그냥 지나갑니다. 100 독을 해도 그냥 지나갑니다. 절대로 그렇게 믿으면 큰 일이 납니다. 이는 목사의 책임 입니다.모든 목사는 성도의 이런 자세에 대해서 책임을 져야 합니다. 저는 대형교회 목사가 날카로운 칼 위에서 사는 자이며 작은 뾰족한 바늘 위에서 균형도 잡고 찔리지도 베이지도 않고 살아야 되는 사람으로 보입니다. 절대도 사모하거나 탐을 낼 자리가 아니며 아들에게 더 물려줄 자리도 아닙니다. 어떡하다가 하나님의 부르심으로 대형교회 목사의 자리에 가면 두렵고 떨리게 잘 하고 퇴임의 시기가 오면 휴! 하고 안도하고 기쁜 마음으로 속히 떠나야 하는 자리가 그 자리로 믿어집니다. 그 자리가 편하고 좋고 탐이 나는 자는 둔해져서 자신과 교인이 죽는 것도 인식하지 못하고 사는 자입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사람입니다.
율법을 행하는 자가 의롭다 하는 구절과 마태복음 5장 20절의 예수님의 말씀은 완벽하게 같습니다. 그리고 율법은 죄를 밝히고 적법하게 쓰면 좋은 것이라 합니다. 그리고 행위가 없는 믿음이 얼마나 힘이 없는지 잘 말씀하십니다.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99세 89세 된 노인에게 하나님께서 내년에 아들이 있을 것이다 하시니 처음에는 믿기가 어렵습니다. 그렇지만 신실하시고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습니다. 이제 이들이 뭐해 합니까? 아내는 평소에 남편이 발기 부전인 것을 압니다. 도무지 반응이 없고 자식을 낳을 행위도 없습니다. 불가능합니다. 아내를 보는 남편도 뭐야 내 아내는 이미 생리도 없고 늙어서 나를 받아줄 수도 없지 하면서 세월만 보냅니까? 불가능한 일을 약속하신 하나님을 원망합니까? 오직 믿음은 믿음으로 그냥 세월을 보내는 태도입니다. 믿고 행함은 무엇입니까? 나도 아내도 성적으로 불가능하지만 하나님을 믿습니다. 그래서 밤에 서로 옷을 벗고 잠자리를 하고자 합니다. 이것이 행동입니다. 그런데 전능하신 분이 말씀만 하시고 네가 알아서 다 해라 하시는 분이 절대로 아닙니다. 믿고 행하니 바로 아브라함의 발기 부전을 고치시고 불뚝 불뚝 힘이 넘치고 정자 활동이 왕성하게 하십니다. 전능하신 분이시니 무엇을 못하십니까? 아내는 역시 하나님을 믿고 남편의 요구에 응하려고 합니다. 이럴 때 하나님께서 태를 여십니다. 무엇을 못하시는 분이십니까? 이런 원리를 알게 하신 성령께서 "믿으니 불끈! 행하니 임신!" 이란 세계적인 히트작을 주셨습니다. 할렐루야!! 불가능을 믿고 행하는 분들이 얼마나 멋있고 얼마나 많은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꿉니까? 도전하는 자는 이렇게 믿고 행하는 성경의 진리를 얼마나 반기고 얼마나 귀하게 보고 얼마나 잘 사용하시겠습니까? 할렐루야!!!
이제 아들을 바치는 아브라함의 행위에 대해서 같이 봅니다. 아브라함은 아들을 불에 태워서 하나님께 재가 되어도 다시 살릴 것을 믿었다고 저는 믿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우리도 정확하게 우리에 대해서 이런 믿음이 있어야 됨을 봅니다. 우리의 부할에 대한 소망이며 믿음입니다. 우리는 다 죽을 사람이고 혹자는 화장으로 재로 남을 사람이며 혹자는 무덤에서 뼈와 살이 다 사라지고 흙으로 가야 할 사람입니다. 예수님께서 오시지 않으시면 모두가 이렇게 될 운명에서 한 명도 예외가 없습니다. 살아 생전에 예수님께서 오실 때에는 이와 다릅니다. 혹 에녹과 같이 산채로 하늘로 가실 분도 있으니 이런 분은 예외입니다. 엘리야와 같이 불병거를 타고 하늘로 가실 분도 계실 것입니다. 정말로 멋지고 복된 분들이 계십니다. 그런데 이런 우리가 부활한다는 믿음 즉 재로 변하고 모든 것이 육체적으로 다 사라진 우리가 육체로 약 20세 때 무렵으로 완벽하게 불사의 몸으로 부할한다는 믿음을 우리가 사는 날 동안에 가져야 하는데 이는 아브라함의 믿음의 수준에 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영생을 누리게 됩니다. 이 믿음이 있으면 모든 것을 다 바칠 결단이 아주 쉬워집니다. 여러분은 어떠십니까? 오직 믿음은 초보요 믿고 떠나고 행하고 바치는 신앙으로 모두가 가야 하는 이유입니다. 오직 믿음에 머물지 마시고 저도 여러분도 정진하고 발전하고 성장하기 바랍니다.
◆ ※※※ ◆ 로마서의 완벽한 아브라함의 삶에 대한 증거!
완벽하게 로마서와 아브라함의 삶은 일치한다. - 이는 신약과 크리스천이 모두가 올바른 진리에 있고 이를 유대인과 아랍인과 이슬람 제국의 모든 사람은 자신의 조상 아브라함을 보면서 인정하고 좁고 공격적인 자세를 버리고 평화를 사랑하면서 예수님을 통해서 형제로 서로 하나가 되어야 한다. 천주교와 개신교도 서로를 이해하고 하나가 되어야 한다. -- 동방의 평화의 나라 한국에서 전한다.
길게 길게 율법에 대해서 설명을 하고 있습니다. 이제 로마서를 통해서 믿고 행하고 바치고 하는 부분과 율법의 완성과 굳게 세움과 이를 통해서 아브라함의 삶과 신앙이 완벽하게 신약에도 있고 특히 로마서는 이를 100% 그래도 증거함을 밝히므로 글을 맺고자 합니다. 여기까지 이해하신 분은 로마서의 내용을 통해서 이 내용이 완벽하게 정확함을 보시고 이대로 믿고 사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제가 예수님의 도구이요, 그분께 불을 받은 사람이라는 것을 이런 내용을 통해서도 조금이라도 이해를 해 주시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시고 감사를 드리시길 바랍니다. 로마서 전체를 다 훑어 볼 것입니다. 1-8장은 그렇게 하고 9-11장은 이스라엘 문제이며 12-16장은 교인이 국가의 일원으로 살면서 지켜야 할 일과 교인으로서 성도 간에 해야 되는 일들입니다. 12-16장은 1-11장의 내용을 잘 이해하고 그냥 읽고 그대로 살면 될 것입니다. 그래서 주로 1장 11장을 설명합니다 로마서를 이번에 새롭게 보시는 축복이 하나님으로부터 저와 여러분께 임하길 기도합니다.
먼저 로마서 1장 17절은 믿음으로 의롭게 됨을 선포합니다. 그리고 2-3장은 모두가 죄인으로 예수님을 믿음을 통해서 구원을 받는 것을 설명합니다. 이 믿음으로 구원은 유대인과 이방인에 차별이 없습니다.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니 모두가 죄인인 것은 아담의 범죄로 인함입니다. 첫 사람 아담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을 받은 첫 사람으로 낙원에서 영원토록 살게 창조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죄를 짓습니다. 죄는 법을 어기는 것인데 하나님 법 선악과를 따 먹지 말라는 법을 어기고 죄를 짓게 됩니다. 죄의 결과로 하나님의 영광에서 멀어집니다. 낙원에서 쫒겨 나는 것입니다. 그리고 영원히 사는 삶을 잃고 죽는 신세가 됩니다. 이 죄에 대해서 해결은 죄에 대해서 벌을 받는 것 외에 없으니 피흘림과 죽음입니다. 그런데 이 형벌을 하나님의 아들께서 대신 받으시고 피를 흘리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십니다. 이는 하나님의 인류에 대한 사랑에서 비롯이 됩니다.
여기에서 우리의 이해가 끝이 난다면 로마서를 반도 이해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너무나 중요한 구절이 로마서 3장 21-26절인데 이도 이해가 어렵게 번역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앞에서 따로 떼어서 자세하게 설명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사랑으로 예수님을 보내시고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심이 하나님의 정의로우심을 나타내시고 우리를 정의롭게 하시는 분이심을 나타내시려 하셨다고 밝히십니다. 이 정의로우신 하나님의 뜻과 성품을 가장 장 표현한 글이 바로 모세 오경의 율법이고 성경 전체의 핵심이기도 합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통치하시려고 율법을 주셨다는 명언이 있습니다. 성경은 한 마디로 요약하면 법이다 하시는 분도 있습니다. 너무나 정확한 표현입니다. 그래서 이런 율법의 의미를 잘 이해하고 로마서를 이해해야 하는 것입니다. 로마서는 율법을 잘 지키게 하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즉 마태 복음 5장 17-20절 예수님의 율법에 대한 말씀을 그대로 지키게 하는 서신서입니다. 이렇게 이해를 해야 비로소 로마서의 이해로 오는 것이고 이는 아브라함의 준법과 완벽하게 일치하며 이는 또한 율법을 주시고 이스라엘에게 지키게 하신 하나님의 뜻과도 같습니다.
그리고 이 피를 믿고 예수님의 대속의 죽음을 믿는 사람은 죄를 용서받고 구원을 받습니다. 그리고 예수를 믿는 믿음으로 의롭다 인정도 받게 되는데 그 믿음의 성질이 처음부터 끝까지 믿음입니다. 그리고 그 믿음으로 믿음에 합당한 삶을 매일 매일 살아야 의롭게 됩니다. 그리고 이 믿음과 율법과의 관계를 설명합니다. 과거에 이스라엘이 율법으로 의롭게도 되고 율법으로 살았는데 이제는 율법의 행위가 아닌 예수님을 믿는 것이 의롭다 인정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이 내용이 1-3장까지 있습니다. 율법과 믿음은 둘 다 중합니다. 그런데 율법을 지키기 위해서 우리는 예수님을 믿는 것입니다. 결국은 예수님의 오심이 율법의 완성을 위해서 오심이요 예수님을 우리가 믿는 것도 율법을 완성하기 위함입니다. 즉 아브라함과 같이 법을 잘 지켰다 인정을 받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100 년의 믿음 생활은 그 믿음이 날로 강해집니다. 그리고 이 변치 않는 믿음 처음과 끝이 같은 믿음으로 의롭게도 되지만 이것이 목적이 아니라 이 굳센 믿음으로 행동하고 바치는 것이 아브라함의 삶이며 우리도 이와 같이 예수님을 믿음으로 살되 그 믿음이 일관되어야 하며 날로 강해져야 하며 그 믿음의 바탕에 행동하고 바치는 단계로 아브라함과 같이 가야 하는 것입니다. 오직 믿는 것 중요합니다. 그런데 세월이 가도 오직 믿음하고 머물면 언제 행동으로 자식을 보는 기적도 보며 언제 바침으로 천국에 가서 누리고 율법도 다 지킵니까? 절대로 천국에 가도 작은 자로 영원토록 살 가능성이 아주 농후합니다. 7080 년 일생의 기회로 겨우 10억 때문에 다 놓치고 삽니까? 정신 차리고 분발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4 장과 5 장은 믿음으로 의롭게 되는 예를 듭니다. 아브라함의 75-85세때 처음 부르실 때 믿음과 후에 약 15 년이 지난 뒤 99 세가 되었을 때 믿음을 설명합니다. 5장에서는 하나님 아버지의 인류에 대한 사랑으로 독생자를 죄인을 위해서 주셨음을 설명하고 아담의 한 사람으로 죄인이 된 인류와 예수님의 순종으로 온 인류가 구원을 받게 됨을 설명합니다. 그런데 그 믿음이 처음부터 끝까지 믿는 믿음이어야 하고 그 믿음으로 하루 하루 성실하게 잘 살아야 의롭게 됨을 설명합니다. 6장에서는 죄로부터 자유를 논합니다. 그리스도와 세례를 받을 때 합하여 죽었음을 상기시킵니다. 그래서 죄에 대해서 죽은 자로 반응하면서 죄를 극복하는 법을 설명합니다. 율법은 죄를 밝힙니다. 율법을 배우지 않으면 죄가 드러나지 않고 죄와 같이 죽습니다. 바울은 율법의 1인자였습니다. 절대로 율법을 무시하지도 어기지도 않습니다. 예전에 불가한 일이 어떻게 가능합니까? 예수님을 통해서 가능하게 된 것입니다. 먼저 예수님께서는 우리 죄를 대속하기 위해서 피를 흘리시고 십자가에서 돌아가셨습니다. 우리가 이를 믿고 그분의 이름의 세례를 받고 죄를 용서받습니다. 우리도 성경을 보면서 쉬지 않고 죄를 자각하고 회개합니다. 그리고 성령께서 오십니다. 사복음서 그 다음에 사도행전인데 성경대로 됩니다. 그리고 성령을 받고서 전도하고 교회를 세운 내용이 서신서입니다. 성령께서 전도하게 하시고 사랑하게 하시고 믿게 하시고 정의롭게 살게 하십니다. 율법대로 정확하게 인도하십니다. 제가 성령을 받았기에 이렇게 전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의롭게 하심으로 하나님으로부터 의롭다 인정도 있습니다. 믿음과 준법이 동시에 필요합니다. 아브라함은 믿음의 사람이요, 준법의 사람이었습니다. 죄를 이기는 비결이 죄에 대해서 죽고 성령의 인도를 받는 것입니다. 그 성령의 인도를 율법을 보면서 따라서 가야 하는 것입니다. 부동산 투기가 한국에서 보편이지만 과연 성령은 어떻게 하실까 기도하면 절대로 하지 못하게 하십니다. 율법에 부동산은 그 소유가 하나님의 것이고 사고 팔고 함부로 못하게 막으신 것을 아셔야 투기로 가지 않습니다. 그래야 한국이 살고 소망이 있는 것입니다. 이를 불신자에게 하라고 해야 합니까? 절대로 하지 않습니다. 대형교회 목사가 실천하고 장로 권사가 하고 성도가 할 때 이들이 보고서 배워서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1000 명의 대형 교회 목사에게 보통 사람 이하의 집에 살고 차도 그렇게 사례도 그렇게 받으라는 것입니다. 서울에 약 3억 정도 전세, 소나타, 그리고 300-400의 사례로 절대로 다른 어떤 사례도 대형교회 목사는 없어야 합니다. 40 년을 하던 50 년을 하던 퇴직금도 1억 이하로 해야 합니다. 국민이 받는 연금을 받지 못합니까? 약 평균 연금 70 만원 정도 매달 주시면 됩니다. 1000 명 대형교회 목사가 다 소유를 팔아서 이렇게 살면 한국은 다 새롭게 됩니다. 이들이 할 일을 못해서 불의가 판을 치고 하나님께서 관망하십니다. 주범이 이들입니다. 참고로 저는 전세 자금 대출로 1억 8천의 전세에 차는 봉고 1톤 트럭, 그리고 직장이 없이 연금(국민연금+ 기초연금) 90만원으로 삽니다. 직장이 없으니 수입도 없습니다. 권사님 한 분과 목사님 한 분이 저를 돕습니다. 아내는 대형교회 주장에서 일을 하고 100 만원 정도 받습니다. 예수님의 도구인 저와 예수님의 종인 1000 명의 대형교회 목사 중에서 누가 더 권세가 있고 누가 더 훗날 그 말씀의 능력이 오래 갑니까? 누가 누구 말을 듣고 누가 누구에게 배워야 합니까? 저보다 더 큰 사례를 받을 이유가 없습니다. 낮아지시고 정년하시고 속히 교회에서 떠나시고 경비도 하시고 청소도 하시기 바랍니다. 한국의 교회에서 한 명도 70이 넘으신 분이 교회에서 뭣을 해서 아니 됩니다. 다 나누시고 낮은 곳으로 가셔서 그 동안 성도가 일을 해서 자신을 먹인 것을 보시고 회개하시고 보통의 사람으로 속히 사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저와 같이 성경을 읽고 정리하시고 올바로 이해하시기 바랍니다. 이는 모든 성도가 해야 되는 일입니다. 일생을 그렇게 해 보아야 합니다. 읽는 것 100 독 귀합니다. 그런데 한 번 정리 더 귀합니다. 제가 25 년 이상을 해도 다 못했는데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이제 로마서 7 장으로 갑니다. 너무나 중요한 내용이 있고 이 내용을 천주교 개신교 다 번역이 올바르지 못합니다. 율법으로부터의 자유로 아브라함이 613 조문이 없었지만 사후에 하나님으로부터 율법 규례 율례를 다 지킨 것으로 인정을 받는 비결이 있습니다. 본문을 보십니다. 이렇게 로마서의 이해로 가는 길이 결코 쉽지 않습니다. 우리가 보는 버전이 이해가 어렵게 되어 있기에 그렇습니다.
롬 7:6. 이제는 우리가 얽매였던 것에 대하여 죽었으므로 율법에서 벗어났으니 이러므로 우리가 영의 새로운 것으로 섬길 것이요 율법 조문의 묵은 것으로 아니할지니라
6. 우리는 율법에 사로잡혀 있었지만 이제 우리는 죽어서 그 제약을 벗어났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낡은 법조문을 따라서 섬기지 않고 성령께서 주시는 새 생명을 가지고 섬기게 되었습니다.
6. But now, by dying to what once bound us, we have been released from the law so that we serve in the new way of the Spirit, and not in the old way of the written code.(개역개정, 공동 번역, NIV)
[그러나 이제는 우리를 한때 얽매였던 것에 대해서 죽었으므로 율법으로부터 벗어났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성령의 새로운 방법으로 섬기는 것이지 즉 믿음 생활을 하는 것이지 옛날에 하던 낡은 방법 즉 율법을 가지고 섬기던 방법으로 믿음 생활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제가 영문을 보면서 번역을 했습니다.]
바울의 일생의 삶이 이 한 구절에 다 녹아 있습니다. 로마서 1장 17절의 믿음으로 사는 삶의 모습이 이래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로마서 1장 17절은 반드시 이렇게 로마서 7장 6절로 연결이 되어서 이해가 되어야 합니다. 단절이 되면 절대로 아니 됩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살아야 하는 하루 하루의 믿음 생활을 이렇게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굳게 믿고 하나님께서 수시로 오셔서 명령을 하신 것을 그대로 순종한 것과 같이 이제는 우리가 예수님을 굳게 믿고 하루 하루를 우리 안에 거하시는 성령의 인도를 받고 산다는 것입니다. 이제는 하나님이신 성령께서 우리에게 직접 거하시면서 우리와 함께 하시고 우리를 인도하시는 것인데 이 인도를 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정욕과 세상의 유혹이 또한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욕망을 이기면서 성령을 따라서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예전에 이런 과정이 없이 즉 예수님을 믿지도 않고 성령도 없이 율법의 조문 조문을 지키면서 살던 바울이 이제는 율법으로 그렇게 살지 말고 성령을 따라서 사라는 것입니다. 절대로 율법을 함부로 하라는 말이 아니고 율법을 낡았거나 하는 말도 아닌데 위의 우리의 번역은 이상합니다. 큰 일이 나고 불경이 되는 번역을 공동 번역은 했으니 속히 바로 잡아야 하고, 개신교의 개역 개정도 율법 조문의 묵은 것으로 하면 하나님에 대한 불경입니다. 율법조문으로 섬기던 옛날 방법을 버린다는 말입니다. 율법은 그대로 두고 방법의 문제를 논하고 있습니다. 옛날 방법, 옛 사람이 문제이지 하나님의 말씀 중에서 너무나 중요한 율법이 0.0000% 문제 없습니다. 그런데 율법이 예수님이 오기 전까지 즉 믿음이 오기 전까지란 말은 무엇입니까? 그리고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율법을 폐하셨다는 말은 무엇입니까? (엡 2:15)
갈 3:23 ○믿음이 오기 전에 우리는 율법 아래에 매인 바 되고 계시될 믿음의 때까지 갇혔느니라
23 Before the coming of this faith, we were held in custody under the law, locked up until the faith that was to come would be revealed.
24 이같이 율법이 우리를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초등교사가 되어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게 하려 함이라
24 So the law was our guardian until Christ came that we might be justified by faith.
25 믿음이 온 후로는 우리가 초등교사 아래에 있지 아니하도다
이 구절은 이스라엘이 율법을 따라서 여전히 삽니다. 예수님께서 오셨음에도 그들이 믿는 구약에서 300번 이상 예언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믿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제 율법을 주시고 온 세상을 구원하실 율법보다 크시고 이스라엘보다 크신 예수님께서 오셨으니 이제는 예수님을 믿는 일이 더욱 중요하게 되었다는 선포입니다. 예수를 믿어라 입니다. 이제는 율법이 죄를 깨닫게 하고 그래서 죄인인 우리를 자각할 때 오직 우리 죄는 피를 흘림과 죽음을 통해서 해결이 되는데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이를 다 이루셨기에 이제는 이를 믿는 일이 유대인과 이방인 공히 가장 중요한 일이 되었다는 설명으로 이제는 예수님을 믿고 의롭게도 되고 예수님을 믿고 성령을 받아서 성령의 인도로 사는 길이 열렸음을 설명하는 것입니다. 율법이 없으면 죄도 없는 죄형 법정주의가 있는데 율법으로 우리가 죄인이 되는데(초등교사) 이제 죄인이 죄를 해결하는 방법은 율법의 준수가 아니라 예수님을 믿음으로 가능하다는 이야기입니다. 여전히 율법이 문제이다 율법을 무시하라는 이야기는 0.000%도 없습니다.
엡 13 이제는 전에 멀리 있던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워졌느니라
13 But now in Christ Jesus you who once were far away have been brought near by the blood of Christ.
13 But now in Christ Jesus ye who sometimes were far off are made nigh by the blood of Christ.
14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원수 된 것 곧 중간에 막힌 담을 자기 육체로 허시고
14 For he himself is our peace, who has made the two groups one and has destroyed the barrier, the dividing wall of hostility,
14 For he is our peace, who hath made both one, and hath broken down the middle wall of partition [between us
2:15 법조문으로 된 계명의 율법을 폐하셨으니 이는 이 둘로 자기 안에서 한 새 사람을 지어 화평하게 하시고
15 by setting aside in his flesh the law with its commands and regulations. His purpose was to create in himself one new humanity out of the two, thus making peace,
15 Having abolished in his flesh the enmity, [even] the law of commandments [contained] in ordinances; for to make in himself of twain one new man, [so] making peace;
또 잘 극복해야 되는 구절로 앞 뒤의 맥락을 보면서 이해를 해야 합니다. 율법에 이스라엘이 선민으로 이방인과 구별이 되며 이방인과 함께 하나님께 나아가지 못함에 대해서 여러 규정으로 막습니다. 그런데 이런 법 조문을 예수님께서 오심으로 폐하셔서 이제는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예수님 앞에 다 죄인이 되고 이 죄인의 구원은 오직 피 흘리심과 십자가의 대속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데 이렇게 예수님께서 둘이 분리가 되는 담을 폐하셨다는 말씀입니다. 즉 서로 악하게 대하는 율법의 규정을 폐하셨다는 이야기가 영어로 있습니다. 율법을 따라서 서로 미워하고 서로 대적하고 서로 분리할 필요가 없어진 것입니다. 그 규정은 이전에 이스라엘의 순수성과 세상의 나라와 구분되게 하기 위해서 필요한 규정이었는데 이를 폐하셨다는 것이고 따로 떼어 놓았다는 것입니다. 영어는 분명하게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율법 중에는 제사 규정과 제사장, 제물에 대한 규정과 이와같이 이방인과 이스라엘을 엄격하게 구분하는 규정도 있습니다. 이런 규정은 예수님의 사역을 통해서 다 완성이 되었으니 이제는 이를 지킬 필요가 없고 피를 흘리는 제사도 필요가 없게 된 것입니다. 이런 규정을 목사는 정확하게 성도에게 일러 주어야 하고 반드시 지금도 지켜야 하는 규정은 지키라고 해야 천국에도 가고 천국에 가서도 큰 자가 되고 이렇게 하지 못하는 자는 천국에 갈 가능성도 아주 낮고 가더라도 영원토록 지극히 작은 자로 살게 되니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예수님의 마태복음 5장 17-20절의 율법에 대한 말씀이 없었다면 이 땅에 천국은 영원토록 서지 못합니다. 모든 예수님의 사역이 다 헛것이 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오신 목적이 개인를 구원해서 잘 먹고 잘 사는 것으로 절대로 0.000%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그분의 의와 나라를 세움이 거의 100%입니다. 그런데 그분의 나라를 100% 모세 오경의 율법이 이 땅에서 그대로 행해질 때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율법을 잘 배우고 지켜야 하고 그리고 그렇게 가르치는 자가 천국에 큰 자가 되고 잘 배우지도 지키지도 않고 그렇게 가르치지 않는 자는 이 땅에서 장로 권사 목사 대형교회 목사라 해도 천국에 가기는 하나 영원토록 지극히 작은 자로 살아야 합니다. 그리고 바리새인 즉 지금의 유대인이 율법을 잘 배워서 율법대로 살아서 이루는 정의보다 못하게 막 사는 자는 절대로 죽어도 천국에 들어가지 못합니다. 예수님의 말씀이니 이 세상이 다 없어져도 절대로 이렇게 됩니다. 이 말씀을 모르고 막 살고 잘못 믿고 사는 모든 사람이 다 불행한 사람입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예수님께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시는 것이 성도가 성령을 받고 성령의 인도로 율법을 지켜 완성하는 것입니다. 더 중요한 성도에 대한 바램이 없고 이는 아브라함의 준법과 완벽하게 동일합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에게는 친절하시게 수도 없이 오셔서 벗으로 삼고 다정하게 다양하게 말씀하셨지만 이제 우리는 예수님의 보혈로 구원을 받고 성령을 선물로 마음에 모시고 쉬지 않고 일생을 하나님과 동행하니 어찌 아브라함의 준법보다 못할 이유가 하나가 없고 예수님께서 이런 우리를 친구라 하셨으니 주님의 친구가 된 우리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고 살아야 하는 것이 율법을 이 세상에 완성해서 우리 친구이시며 우리의 주가 되시며 우리의 구원자가 되시는 예수님의 통치가 이루어지도록 해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법치이며 율법에 의한 통치입니다. 그래서 대형교회가 되어서 권한과 재력과 명예를 동시에 가진 자들이 자기 마음대로 하면 이들이 하나님의 나라를 세움에 가장 큰 위협이며 대적이며 예수님의 뜻을 가장 강하게 부정하며 그 나라를 세움에 가장 장애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자리에 연연하고 오래 있고 하는 자는 이 모든 것을 잊고 구원받은 죄인의 위치를 잊고 온 세상이 보는 가운데 악을 자행하며 세상에서도 욕을 먹고 사는 것입니다.
요 15:14 너희는 내가 명하는 대로 행하면 곧 나의 친구라
15 이제부터는 너희를 종이라 하지 아니하리니 종은 주인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라 너희를 친구라 하였노니 내가 내 아버지께 들은 것을 다 너희에게 알게 하였음이라
바울 사도의 두 가지 모습을 이해를 하면 로마서 7장 6절의 율법으로부터의 자유를 그대로 이해합니다. 성령을 받고 전도하는 한국에 있는 50 만 명이 넘는 전도자는 한 명도 빠짐이 없이 이 구절대로 사는 사는 사람에 가깝습니다. 성령을 받게 되면 권능을 받습니다. 병을 고치고 방언을 통변하고 예언도 하고 믿음으로 행하고 지식과 지혜의 은사를 갖습니다. 그리고 복음을 전하는 일을 일생을 즐거운 마음으로 핍박이 있고 어려움이 와도 합니다. 성령께서 그렇게 하도록 격려하십니다. 쉬지 않고 힘을 내라 하시고 쉬지 않고 사랑한다 하십니다. 그리고 가장 좋은 것 말씀을 깨닫게 하시고 모든 것을 어려운 이와 아낌없이 나누게 하십니다. 절대로 갖고 부를 축적하고 이를 나누지 않게 하시는 이가 아니고 어렵고 힘든 형제를 보면 사랑하고 불쌍히 여기고 돕기를 주저하지 않습니다. 육신의 형제와 같이 믿음의 형제를 대합니다. 그리고 갖고 나누지 않고 무엇이 된 듯한 모든 자들을 다 분별합니다. 초대 교회에 이런 신자가 한 명도 없었고 재산의 절반을 교회에 가져다 주었지만 속인 아나니아 삽비라 부부는 둘 다 죽었습니다. 40년을 한국에서 가장 가난하게 산 목사가 죽지 않고 외치는 말입니다. 절대로 죽지 않고 살아서 이렇게 온 세상에 전하는 사람으로 세움을 받습니다. 우리 모두 율법에 바울과 같이 정통해야 합니다. 적어도 성경 말씀을 예수님과 같이 신약과 구약을 동시에 적절한 때에 예수님의 양들에게 먹이고자 하는 모든 이는 율법에 달인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이는 부족하니 율법의 진정한 의미와 정신을 잘 알지 못하고 조문에 몰두해서 사랑을 하지 못할 가능성도 농후합니다. 대부분의 율법학자 율법을 잘 아는 제사장 무리가 예수님께서 오셨을 때 법대로 살고자 하면서도 중요한 사랑과 정의와 신실함은 외면했기에 강한 책망을 받았고 이들이 예수님을 사람으로 보았기에 도전했고 피를 흘리게 했고 십자가에 매달고 죽였습니다. 저도 대형교회 목사가 이렇게 전하는 것을 알게 되면 연합해서 저를 죽이려고 할 것입니다. 절대로 저를 살려두면서 예수님의 도구로 존중하고 배려하고 돕고 초청해서 설교하게 강의하게 하지 않을 것입니다. 아직까지 8년간 온 신학교에 다 전했고 120개국 50만 명에게 전했지만 한 명도 저를 인정하고 초청하고 선대하는 사람이 온 지구상에 거의 한 명도 없습니다. 오직 조용히 글을 읽어 주시는 50만 명이 저를 격려하고 지극히 소수의 사람이 저를 돕는데 이들도 어려운 가운데 돕습니다. 이런 일을 어찌 인간의 노력으로 합니까? 절대로 불가한 것이 우선 성경의 이런 진리를 알고 전하는 것도 쉽지 않습니다. 성경이 어려워서가 절대로 아니라 모두가 이상하게 전해서 그런 것입니다.
바울도 역시 이런 무리에 속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만나니 눈이 멀고 말도 못하고 먹지도 못하게 되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예전과 같이 살 사람은 지구상에 한 명도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두려움은 인간의 광포에 의한 두려움이 아닙니다. 거룩한 경외감입니다. 아브라함도 하나님의 처음 뵈올 때 이런 감정을 느꼈을 것이고 모든 선지자가 다 이렇게 느끼고 일생을 바르게 삽니다. 바울도 이제는 두 번 다시 옛 일로 갈 수가 없게 회개합니다. 그리고 아나니야를 만나서 성령을 받습니다. 그리고 성령께서 권능을 주시고 거듭나게 하십니다. 거듭난 바울이 성령의 조망으로 구약을 보면서 모든 구약이 예수님에 대한 말씀임을 잘 알게 됩니다. 그리고 성령의 인도로 예수님을 이방인에 전하고 교회를 세웁니다. 그리고 편지를 보냅니다. 이렇게 산 세월이 20년이 지나고 기원후 약 57년에 고린도에서 로마에 편지를 쓴 서신서가 우리가 보고 있는 로마서입니다. 예수님께서 때에 따라서 구약과 신약을 그분의 보물 창고에서 꺼내서 나누는 것과 같은 사역을 하게 됩니다. 그 사역의 결과물이 그의 모든 서신서입니다. 이렇게 할 수가 있는 사람이 오직 율법학자라야 하고 이 율법학자가 예수님께 겸손하게 나와와서 천국에 대해서 잘 배울 때 가능하게 되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13장 52절은 분명하게 이렇게 되어 있고 예수님의 달리 해설이 없으니 우리가 다양한 번역을 보면서 성령의 도우심으로 풀어야 합니다.
긴 글이지만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에게 주시는 말로 다할 수 없는 은총을 나누는 것입니다. 잠실교회 2 성전 2 층에서 여러 날을 이렇게 글로 씨름하고 있으니 잠실교회에 하나님께서 주시는 축복이 가득하고 넘치길 바랍니다. 제가 32 년을 다니고 있는 교회입니다. 그래서 창세기는 영어로 배우는데 30 장에서 멈췄습니다. 양해를 바랍니다.
이제 과거의 바울 사도가 하던 율법의 조문 조문을 지키던 방법을 포기하고 성령의 인도를 받습니다. 이것이 율법으로부터 자유입니다. 정말로 자유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바울 사도의 마음엔 율법이 지식으로 가득합니다. 이 율법은 성령의 인도를 받을 때 죄를 분별하게 해서 막는 역할을 합니다. 율법이 없으면 어떡합니까? 베드로 사도는 어부로 성령으로 충만해서 한 번에 수천 명이 회개하는 역사를 주님과 함께 행하셨지만 어부라서 율법에 바울과 같이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분의 글은 두 편입니다. 짧은 두 편입니다. 참고 하시기 바랍니다. 천국은 침노하는 자의 것이고 새도 모든 새기 중에서 입을 열고 적극적으로 받아 먹는 새끼를 쉬지 않고 먹이고 크기가 차이가 있고 약한 새끼는 대를 잊기 어렵습니다. 인간은 자유 의지로 이렇게 살고자 하기도 하고 세상의 연락을 더 사랑해서 적당히 세상과 타협하면서 재물을 모르고 지식을 자랑하고 권세를 누리려고 합니다. 겨우 70 년80 년입니다. 영원을 사모하는 자는 죽어도 이렇게 살지 않습니다. 절대로 이런 아침과 이슬과 같이 사라지는 세상의 유혹에 관심도 가치도 두지 않습니다. 모두가 2000 년 전 바울이 무명할 때 고관과 대작과 왕과 수많은 로마의 권세자 한 명도 그 이름이 남겨지지 않고 다 사라졌지만 바울은 태양과 같이 영원토록 빛이 납니다. 하루에 조회수가 수십 억 명에 달합니다. 어떤 배우, 가수도 절대로 그 발끝에도 미치지 못합니다. 여러분은 이렇게 될 가능성이 모두가 있습니다. 겨우 2 억의 인구가 살던 시대와 2000 년 전 바울의 시대와 90 억이 사는 현 시대는 다릅니다. 더욱 능력 있고 멋있는 전도자가 50 명이나 숫자적으로 보아야 필요하고 주님의 기다리십니다. 모든 한국의 수능을 준비하고 능력 있는 학생이 다니엘과 같이 이런 일에 도전을 해야 합니다. 가장 멋진 선택이 되리라 믿습니다.
바울 사도가 성령을 따라서 20년을 살다 보니 즉 율법으로부터 자유하게 그렇게 살다보니 그 결과가 너무나 놀랍습니다. 이 결과를 우리는 반드시 로마서에서 찾아서 이해를 해야 합니다. 그래야 예수님의 어제나 오늘이나 한결같은 그분의 뜻대로 살 수가 있고 그분의 뜻을 이룰 수가 있습니다. 지구상에 이 진리를 외면하고 문제가 있다 할 사람은 없는 줄로 믿습니다. 오직 욕심에 절고 수치도 잊고 적극적으로 세상의 사람과 같이 권력과 물질과 여자에 미친 사람들이 이런 진리를 외면하고 알고자 하지도 않을 것입니다. 수치를 잊은 사람의 모습입니다.
롬 3:31. 그런즉 우리가 믿음으로 말미암아 율법을 파기하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 도리어 율법을 굳게 세우느니라
롬 8:3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시나니 곧 죄로 말미암아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에 죄를 정하사
4 육신을 따르지 않고 그 영을 따라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정의로운 요구가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니라
롬 13:10. 사랑은 이웃에게 악을 행하지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니라
겔 36: 24 내가 너희를 여러 나라 가운데에서 인도하여 내고 여러 민족 가운데에서 모아 데리고 고국 땅에 들어가서
25 맑은 물을 너희에게 뿌려서 너희로 정결하게 하되 곧 너희 모든 더러운 것에서와 모든 우상 숭배에서 너희를 정결하게 할 것이며
26 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거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
27 또 내 영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로 내 율례를 행하게 하리니 너희가 내 규례를 지켜 행할지라
28 내가 너희 조상들에게 준 땅에서 너희가 거주하면서 내 백성이 되고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리
예수님의 명령을 완벽하게 수행하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에스겔서 36장 24-28절의 내용대로 완벽하게 된 말씀입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의 하나님의 사후 평가 모든 법을 다 지킨 사람과 완벽하게 일치합니다.
8장의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을 다 이기는 비결이 성령의 인도에 있습니다. 세상에는 고넬료와 같이 이방인으로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게 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율법도 모르고 양심의 법으로 일생을 잘 살아서 천국에 가는 분도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아브라함과 같이 하나님과 동행하며 친구로 사는 분도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이를 다 알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성령을 받지 못하고 아볼로와 같이 말씀으로 전도하고 사시는 분도 있습니다. 말씀으로 거룩하게 되시는 분도 있을 것입니다. 이는 베드로의 말씀입니다. 우리는 다 알 수가 없고 판단 할 수도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아십니다. 그리고 신앙은 첫 신앙과 오래 된 신앙이 같을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신자가 교회에 와서 5년 10년을 그냥 왔다 갔다 해도 뭐라 하기 어렵습니다. 아직 잘 모르고 잘 믿지 못하는 형제도 있습니다. 이들에겐 시간이 필요합니다. 교육도 필요합니다. 그런데 지도자라 하고 수십 년을 믿었다 하는 사람이 억망으로 살면 이는 정말로 문제입니다. 이들을 그냥 두어선 아무도 이들에게 말을 할 사람이 없습니다. 제가 잘 나서 그렇게 하는 것도 아닙니다. 저는 모든 사람보다 더 못한 부분이 있으니 모든 한국인 보다 더 불효를 했고 가족에게 늘 가난한 삶만 선사했으니 아들에게 아내에게 좋은 가장이 되지 못합니다. 그리고 이전에 죄를 크게 지은 흉악하고 저질인 인간이었습니다. 누구보다도 악한 사람을 하나님께 부르시고 오래 참으시며 가르쳐 주시고 전하게 하시니 누구나 저보다 못한 사람도 없고 누구나 바로 알고 바로 가면 다 하나님께서 용서하시겠다는 뜻인 줄로 믿습니다. 못나고 못난 사람을 예수님의 도구로 삼으신 것은 모든 여건이 저보다 낫고 모든 삶이 저보다 나은 사람들이 올바로 알고 올바로 가기만 하면 모든 과거는 더 용서하신다는 하나님의 뜻으로 봅니다. 그리고 못나고 못난 사람이 알고 전하는 진리가 공부로 된 것도 아니며 누구에게서 배운 것도 아니며 오직 성령의 도우심으로 된 것을 증명하는 것이라 믿습니다.
저는 모든 일에 실패했습니다. 행정고시 2차에서 실패했고 은행원도 그만 두었습니다. 그리고 첫 결혼도 실패했습니다. 그리고 모든 하는 일이 실패했기에 어렵게 살게 된 것입니다. 직장도 한 직장에 계속 다니지 못했습니다 불의한 일을 만나면 싸우고 그만 두었습니다. 그리고 여러 번 쫒겨 났습니다. 삼성 관련 직장에 세 번이나 갔다가 다 잘렸습니다. 그런데 고시 공부는 이렇게 글을 쓰게 기초가 되는 공부를 한 것입니다. 신학교도 원하는 곳에 성경을 읽고 정리하느라 가지 못했고 장신대 대학원에도 합격했지만 학비가 없어서 못 갔습니다. 이 모든 과정에 하나님께서 함께 하심으로 좋은 결론이 났습니다. 로마서 8장에 모든 것이 합력해서 선을 이룬다는 말씀이 그대로 이루어졌고 하나님의 사랑은 언제나 한결같이 강하게 저를 붙들었습니다. 제가 모든 면에서 못나기에 더욱 강하게 붙잡아 주셨습니다. 그 사랑으로 이렇게 글을 씁니다. 할렐루야!
이렇게 로마서 1장에서 8장까지 왔습니다. 9-12-11장은 이스라엘의 문제와 전도입니다. 이제 저와 같이 이렇게 로마서를 이해하시면 그리고 아브라함의 신앙에 대해서 이해하시면 아랍인 이슬람 제국 그리고 유대인에 대해서 전도가 쉬워집니다. 유대인의 율법과 구약에 대한 4000년의 매달림은 이에서 때어 놓음이 절대로 쉽지 않습니다. 그런데 바울 사도를 보고 로마서를 보면 그리고 에스겔서를 보면서 더욱 좋은 예수님과 성령님을 통해서 같은 목표 즉 율법의 완성을 향해서 가니 서로 다툴 필요가 없고 이제는 이스라엘도 오랜 고집을 포기하고 예수님을 통해서 죄를 용서받고 성령을 받아서 성령의 도우심으로 율법의 완성으로 가야 할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길로 가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이방인은 이스라엘의 성경을 수천 년 글자 한자 틀리지 않게 보존해서 우리에게 연결시켜준 공로를 인정하고 존중해야 합니다. 그리고 율법의 삶을 예수님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잘 사셔서 모든 역경을 다 이기고 온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민족이 된 것을 축하해야 합니다. 그리고 모든 나라가 유대인을 핍박하고 함부로 대한 것에 대해서 용서를 빌어야 하며 특히 독일은 루터 신학으로 그렇게 했으니 크게 용서를 빌어야 합니다. 그리고 강대하고 수도 많은 아랍 제국은 이제 작은 나라 이스라엘을 핍박하고 겁박하고 힘들게 하는 모든 행위를 접어야 합니다. 같은 조상 아브라함과 그의 후손을 통해서 진리를 지키고 전한 민족에 대한 경외를 표해야 합니다. 그리고 악하고 폭력적인 모습이 그들의 조상 아브라함에게 절대로 1%도 없는데 그렇게 변한 자신들을 회개하고 선한 삶을 살아야 하고 이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회개와 죄의 용서를 통해서 성령의 선물로 가능함을 믿고 회개하고 다 예수님께로 나와와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평화의 왕이시며 이 평화는 마음대로 하는 곳에 절대로 없고 오직 성령을 따라서 행하며 율법을 완성할 때 이루어집니다. 이를 추구해야 할 모든 과거의 강대국 크리스천 나라는 이를 알고 실천하지 못하고 약한 나라를 수탈하고 노예로 삼고 그래서 지금의 부를 누리고 있으니 이를 회개해야 합니다. 우리 민족은 비록 약 400년 전에 천주교와 150년 전에 개신교가 들어왔지만 약 3000년의 한반도에서 단일 민족으로 약 1000번의 외침을 받았지만 보복하지 않았고 작은 나라를 영토로 삼고 아무리 강해도 주변을 노략할 마음을 품지 않고 산 지구상의 거의 유일한 민족으로 이런 평화의 복음을 이해하고 온 세상에 전하기에 가장 적합한 나라인 줄 믿습니다. 모든 한국의 기독교인이 이런 성품의 소유자로 저는 믿습니다. 예수를 믿으면 더욱 착해지고 순해지고 더욱 인정이 넘치고 더욱 나라와 민족을 생각하고 더욱 가난하고 못사는 동포를 생각하고 세우려는 열의에 불이 타는 자들이 지도자로 특히 교회의 지도자로 청렴하고 소박하고 그리고 청빈한 삶을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도 모르는 조상이 그렇게 살고 칭송을 받았는데 어찌 물질이 좀 있다고 이렇게 버러장 머리가 없게 살 수가 있습니까? 성도는 약하고 모르니 그렇게 산다 해도 지도자는 그렇게 사는 사람이 한 명도 없어야 되는 민족입니다. 회개하시고 모든 소유를 다 팔아서 집도 땅도 없는 교회 형제와 이 민족의 동포를 다 살리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온 세상으로 크게 선교를 떠나시기 바랍니다. 진실로 이 시대는 한국의 미래가 정치인에 달린 것이 아니고 1000 명의 대형 교회 목사의 회개에 달렸습니다. 영적인 부흥이 먼저이고 그리고 정치도 따라서 오는 것입니다.
12-16장은 인사와 성도의 국가와 교회에서 삶에 대한 글입니다. 로마 시대 기독교인이 별로 없고 박해가 곧 있습니다. 네로 황제의 박해가 있으니 이 편지가 전달이 되고 몇 년이 남지 않았습니다. 13장에 대통령과 지도자의 권세는 하나님으로부터 온다고 하고 이 권세에 도전하는 자는 반드시 하나님의 심판이 있다고 하십니다. 누가 누구에게 덤비고 있는지 올바른 선택으로 올바른 편에 서시기 바랍니다.
지금 시대는 중국과 미국의 양강 시대입니다. 중국은 중동과 아프리카와 후주와 그리고 캐나다와 심지어 미국과 한국과 중남미에 크게 진출했습니다. 그리고 중국의 국력은 경제적으로 군사적으로 강해집니다. 이에 미국과 작은 이스라엘은 베네수엘라 대통령을 체포해서 미국으로 압송해서 감옥에 넣고 부정 선거를 조사합니다. 그리고 이란을 공격해서 거의 괴멸시켰습니다. 그냥 공습을 가만히 앉아서 당해야 하는 처지입니다. 이는 중국의 세계 패권에 큰 지장과 제동을 걸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중국에는 1억 5천 만에 달하는 크리스천이 있고 이들이 비록 삼자 교회에 다니나 인간 시진핑과 전능하신 하나님을 봅니다. 이들에게 이단도 사정없이 갑니다. 우리는 진리를 전해서 국경을 지키면서 주변의 작은 나라를 존중하는 중국으로 성장하게 해야 되고 이들에게 복음을 전해서 하나님의 나라를 세워야 합니다. 절대로 과거에 크리스천 국가가 강대해졌다고 마음대로 약소국을 침략하고 종으로 삼던 전철을 밝게 해서는 아니 되니 우리는 이 평화의 복음으로 승리를 해야 됩니다. 그리고 중국이 10 만 명의 선교사를 중동과 아랍 제국, 이슬람 제국으로 보내서 이들을 복음화하게 도와야 합니다. 그리고 중국이 이렇게 될 때 하나님께서 복을 주심으로 군사 경제 강대국으로 향후 수백 년을 온 세상을 다스릴 때 절대로 실수하지 않게 가르쳐야 합니다. 이 민족의 사명입니다. 중국에서 너무나 멋진 성전이 세워지고 너무나 멋진 기독교 국가가 세워질 것을 봅니다. 작은 우리가 이런 강대국에 절대로 지지 않고 한민족의 위대성과 우리 나라의 기독교의 위상을 높이는 길이 오늘 제가 전하는 평화의 복음입니다. 모든 것이 온 세상에서 일등을 하는 시대에 성경의 이해도 일등을 해야 합니다. 저는 일등을 하기 위해서 선택이 된 예수님의 도구입니다. 제가 행정고시 1차에 붙어서 신림동 선민교회에 다니며 신앙 생활을 하던 1992년 초봄 예수님께서 오셔서 제게 불을 품어 주셨고 불을 받은 저는 예배가 끝이 나고 평소에 저를 아들과 같이 안아 주시던 박외분 권사님을 뒤에서 가만히 절대로 눈치를 채지 못하게 옷만 가볍게 만졌습니다. 제게 오신 성령의 능력이 그대로 흘러갈 것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너무나 귀한 성령을 받고 그렇게 하고 싶었습니다. 그러자 놀랍고 놀라운 일이 바로 생겼습니다. 박외분 권사님께서 뒤로 도시며 저를 보시고 엄지를 세우시면 두 번 외쳤습니다. 수석해라! 수석해라! 저는 행정고시에서 수석을 할 줄로 믿었습니다. 그런데 진작 그 해 2차 시험에서 과목 낙제가 없이 1점차로 낙방했습니다. 그리고 목사가 되었습니다. 34년이 흘렀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전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도구의 삶과 일등의 삶에 대해서 이를 위해서 어떻게 해야지 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믿고 더욱 열심히 살아야 하는데 그렇지 못해서 너무나 부족합니다. 영어도 잘 해서 이런 내용을 영어로 바로 온 세상에 전하면 너무나 큰 영광을 돌리고 온 세상에 진리가 전파가 될 것인데 그렇지 못합니다. 제가 게으르기에 그렇습니다. 그래도 이런 자를 하나님께서 한 시도 놓지 않고 돌보아 주셔서 이렇게 전하니 모든 영광이 우리 주님께 있습니다. 할렐루야!!
이제 우리는 창세기를 통해서 많은 민족의 아버지가 되시는 아브라함에 대해서 질 배웠습니다. 그리고 율법이 통치한 구약의 이스라엘도 보았습니다. 그리고 신약을 통해서 특히 로마서를 통해서 율법의 완성과 굳게 섬도 보았습니다. 약 4200 년의 인간의 역사를 관통하는 진리를 이제 볼 시간입니다. 인간의 역사는 하나님께서 주관하심을 봅니다. 그리고 그 역사는 하나님의 법이 주관합니다. 그 법이 율법입니다. 그 법의 준수가 하나님께서 모든 인류에게 가장 원하시는 일입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자주 뵙고 경외하면서 그 법대로 순종했습니다. 이스라엘은 신실한 사람들이 율법을 잘 순종했습니다. 그러나 마지막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율법이 없이 마음대로 살았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새로운 모든 인류를 구원하실 계획을 세우며 에스겔서 36장 24-28절로 예언하십니다. 그 예언대로 하나님께서 아들을 보내시고 아들을 믿는 모든 사람을 죄를 용서하시고 성령을 선물로 주십니다. 회개가 반드시 필요합니다. 그리고 성령께서 전도하게 하시고 선하게 살게 인도하심으로 율법을 굳게 세우고 완성하고 율법의 정의로운 요구를 완성하게 하십니다. 이를 통해서 아래와 같은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십니다.
과연 여러분은 이런 성경 전체를 관통하는 진리에서 어디에 계십니까? 이제 믿음의 초기 단계로 행함도 바침도 없이 마음대로 사십니까? 오직 믿고 수십 년 그대로 바치지도 못하면서 부를 그대로 소유하고 자녀에게 물려주는 일이 가장 복된 일로 살고 사십니까? 하나님과 친구가 되는 놀랍고 위대한 축복을 생각하며 설레고 기쁜 마음으로 모든 것을 다 바치면서 사십니까? 성령의 인도로 오늘도 믿음 생활을 잘 하시면서 얼마나 많은 율법을 완성하며 이 땅에 예수님의 나라를 세우십니까?
부디 제 부족한 글이 작은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이해를 증진시키고 모든 지금까지의 삶을 다 생각하시면서 조금이라도 이 땅에 그분의 나라를 세우는 일로 바뀌길 기도합니다. 한 분 한 분이 다 귀하고 한국인으로 그리고 성도로 위대한 일을 하실 분들로 이 시대를 사시는 줄로 믿습니다. 부디 역사적인 부르심에 지역도 민족도 조금 제껴 두고 진리에 목을 축이시고 큰 힘을 얻고 영광된 길로 힘차게 가시길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모든 영광이 하나님께 있습니다. 할렐루야!!
사랑의 하나님 감사와 찬양을 드립니다. 흉한 죄인을 부르시고 우리 주 예수님의 보혈로 씻으시고 성령을 주셔서 감동케 하심으로 모든 면에서 평균보다 못한 자가 온 세상이 평화의 복음을 전합니다. 온 세상에 이 진리가 속히 전파가 되어 모든 교인이 서로 하나가 되고 불신자를 전도하고 유대인과 이슬람도 전하게 하소서! 함께 하고 돕는 무리를 벌 떼와 같이 보내 주셔서 책도 정리하고 다양한 방법으로 속히 전하게 하소서! 우리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구합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