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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19-21
하나님이 부르시는 사람들 / 김영주 목사
1)하나님의 일을 하면 내 인생의 즐거움은 끝났다.
이런 식으로 오해합니다. 하나님을 무지막지한 분으로 오해하기 때문입니다. 아니, 생각해보세요. 사람이 자기가 좋아하는 일만 해도 즐겁고, 시간 가는 줄 모르는데, 하나님이 하란 일을 하면 이보다 즐겁지 않겠어요? 그 정도 행복도 주지 않겠어요? 성경에 하나님의 일을 했던 많은 사람들이 나옵니다. 이들이 다 불행했습니까? 어려운 때도 있었고, 좋을 때도 있었는데 하여간 어떤 상황에서든 평안하고, 행복했거든요. 돈 주고도 못 사는 것 주신 것입니다.
2)하나님의 일은 고문이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무슨 일 시키실 때 못할 것 시키시겠어요? 자기 맘이 없으니까 하기 싫을 뿐이지. 하나님은 무슨 일을 맡기실 때, 그 사람의 재능과 은사, 능력, 이런 것들을 다 고려해보십니다. 이것이 최상이다 확신하기에 맡기시고, 해보라하시는 겁니다. 일하는 방법이 다를 뿐입니다. 기도로 하고, 믿음으로 하고, 순종으로 하는 것이지 내 힘으로 하는 게 아닙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의 일’ 하면, 마치 하기 싫은 것을 억지로 하는 것 같은 인상을 가집니다. 마치 억지로 하나님께 끌려가 고문 받는 것같이 생각하는 사람들 있습니다.
3)하나님이 끼어들었다.
사람들, 특히 불신자들이 갖는 가장 큰 오해가 이것입니다. 나는 그냥 놔두면 예수 안 믿어도, 행복하고 잘 살 건데 어느 날 예수라는 분이 내 삶에 갑자기 나타나 끼어들었다 생각하는 겁니다. 마치 숨어있던 깡패들이 나타나 돈 내 놓으라고 하듯이. 나타나서, 너 나 안 믿어? 그럼 지옥이다! 이렇게 협박한다고 생각하는 겁니다. 지옥은 가고 싶지 않으니까 받아들이긴 하지만 기분이 안 좋단 말입니다. 왜 내 인생에 갑자기 끼어들어 간섭하느냐?는 겁니다.
사람이 지옥 가는 것은 자기 죄 때문입니다. 자기가 살면서 지은 죄 때문에 지금 지옥을 향해 가고 있는 겁니다. 가만 놔두면 그대로 지옥에 떨어집니다. 이게 죄인의 운명입니다. 문제는 사람들이 이렇게 되는 것도 모르고 인생을 살고 있다는 겁니다. 그래서 안타까우니까 예수님이 나타나서 나를 믿으면 지옥으로 안 가고 천국 간다 얘기해준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얘기 해줬다고 성질내는 사람들이 있어요. 지옥가든지 말든지 그냥 놔두지 왜 간섭이냐 이럽니다. 예수님이 배푸신 호의를 귀찮은 간섭으로 받아들이는 겁니다. 이러니 신앙생활이 즐겁겠어요?
하나님은 혼자서도 충분합니다. 그분 혼자서 모든 것을 다 하실 수 있습니다. 말씀 한마디만 하시면 움직일 천사들이 셀 수도 없이 많습니다. 그런 분이 우리를 알아주시고, 불러주시고, 일을 맡겨주신다? 이것은 위대한 일입니다. 하나님의 일 하는 것 때문에 따라오는 혜택과 특권도 참 많습니다. 그래서 부르심은 축복입니다. 특권입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엘리사를 부르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1. 하나님이 부르시는 사람들의 특징
1)19절)“...그가 열두 겨릿소를 앞세우고 밭을 가는데 자기는 열두째 겨릿소와 함께 있더라...“
엘리사는 지금 뭐하고 있습니까? 농부로서 삶의 현장에서 열심히 일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신학교에서 만들어 지는 것이 아니라 ‘신학교 이전에’ 삶의 현장에서 만들어집니다. 신학교 가기 전에 기본적인 인격, 삶의 태도, 방식 등이 갖춰지는 것입니다. 지금 여러분이 가정에서 하는 것, 직장에서 하는 것, 학교에서 하는 것이 사실은 내 실제모습입니다.
ex) 엉망으로 살다가 불 받고 변화되어 헌신한 사람은 하나님이 쓰시기는 하지만, 후에 문제가 드러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과거에 했던 것들이 발목을 잡습니다.
ex)베드로(막1:16~18)
16“갈릴리 해변으로 지나가시다가 시몬과 그 형제 안드레가 바다에 그물 던지는 것을 보시니 그들은 어부라 17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를 따라오라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하시니 18곧 그물을 버려 두고 따르니라“
여기서 주목할 단어는 ‘갈릴리 해변으로 지나가시다가’입니다. 예수님은 이 길을 한번 지나가고 만 것이 아닙니다. 계속 해서 이 길을 여러 번 지나 다니셨습니다. 왜일까요? 사람들이 어떻게 사는지 보려고, 어떤 사람이 하나님의 일을 할 사람인지 찾아보려고 입니다. 하나님의 일을 잘 하는 사람들은 자기 일, 세상일도 잘 하는 성실한 사람입니다. 우리의 일상생활이 하나님의 사람으로 준비되는 시간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모습을 보십니다.
ex) 야고보, 요한(막1:19~20)
19“조금 더 가시다가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그 형제 요한을 보시니 그들도 배에 있어 그물을 깁는데 20곧 부르시니 그 아버지 세베대를 품꾼들과 함께 배에 버려 두고 예수를 따라가니라“
역시 이들도 성실한 사람들입니다. 다음 출항을 위해 배 위에서 그물을 깁고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사람이 되기 전, 내가 일하는 어떤 분야에서 성공한 경험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도 이룬 것 없고, 성취도, 성공한 것도 없으면 하나님의 일도 여전히 못 합니다.
예)휴스턴 서울 침례 교회, 최영기 목사님은, ‘사역자를 뽑을 때, 어느 분야에서든 성공한 경험이 있어야 한다. 그래야 하나님의 일도 잘 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제일 나쁜 것은 이것저것 안 되고 다 실패하니까 신학교 가는 것입니다. 아닙니다. 이런 사람은 가면 안 됩니다. 세상적인 면에서도 어느 정도 성공한 사람이 하나님의 일도 잘 합니다. 왜요? 하나님의 사람은 신학교가 아닌 일상생활 속에서 만들어지기 때문입니다. 지금 여기서 안 되면 신학교 졸업해도 안 되고 목사 안수 받아도 안 됩니다. 지금 안 되는데 그때는 될거라 생각하지 마십시오.
찰스 스펄전 목사님은, 부르심을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부르심이 확실하기 전에는 열심히 생업에 종사하라! 그것이 최선의 삶이다. 그러다 부르면 가고, 안 부르면 그 방면에서 성공하면 된다고 말했습니다.
ex) 아모스7:14~15)
14“아모스가 아마샤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나는 선지자가 아니며 선지자의 아들도 아니라 나는 목자요 뽕나무를 재배하는 자로서 15양 떼를 따를 때에 여호와께서 나를 데려다가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기를 가서 내 백성 이스라엘에게 예언하라 하셨나니”
아모스는 부름 받기 전 목자의 역할, 뽕나무 배양 역할 하면서 양 치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 지금 전공 열심히 하고, 생업 열심히 하고, 자기 분야에서 성공해야 합니다. 성공해 본 경험이 없다면 사단이 영적인 열등감으로 사역 내내 괴롭힙니다.
2. 겉옷을 그의 위에 던졌다.
(19下)“...엘리야가 그리로 건너가서 겉옷을 그의 위에 던졌더니”
보통 겉옷은 그 사람의 직무를 나타내는 역할을 합니다. 엘리사에게 겉옷을 던진 것은, ‘너는 나의 직무를 대신하라!’는 부르심입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은 개인적입니다. 엘리야가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개인적으로 엘리사를 찾아와서 불렀습니다. 하나님은 각 사람을 그 분의 필요에 따라 부르십니다. 적어도 하나님 앞에 쓸모없는 사람은 없습니다. 사람의 가치가 드러나는 때는 부르심을 발견할 때입니다. 변화도 이때가 가장 많습니다. 그래서 신앙생활 시작한 다음에는 부르심을 발견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나님이 나를 무엇에 쓰기 원하시는지?
내가 무엇 하며 살아야 하는지?
하나님이 나를 통해 어떻게 영광 받기 원하시는지? 알아야합니다.
3. 엘리사의 반응
(20절)“그가 소를 버리고 엘리야에게로 달려가서 이르되 청하건대 나를 내 부모와 입맞추게 하소서 그리한 후에 내가 당신을 따르리이다 엘리야가 그에게 이르되 돌아가라 내가 네게 어떻게 행하였느냐 하니라“
1) 그가 소를 버리고 엘리야에게 달려가서...
엘리야가 와서 옷을 던지자 엘리사는 하던 일을 마치지도 않고 바로 반응을 보였습니다. 소를 버리고 달려갔습니다. 이 달려갔다는 표현이 참 맘에 와 닿습니다. 보통 사람들은 해야지 해야지 하면서도 미루고, 핑계대고, 할 수 있으면 천천히 가려고 할 텐데....엘리사는 달려갔습니다. 이게 하나님의 사람의 태도입니다. 하나님이 부르시면 지금까지 붙잡았던 모든 것을 버릴 줄 알아야 합니다.
예수 믿으면서 고민 많은 이유는, 믿기 전 하던 것 그대로 갖고 믿으려니까 그렇습니다. 버려야 채움 받는데 버리지 못하니 채움 받지 못하는 것입니다. 다 붙들고 있는데 거기에 신앙이라는 것을 하나 더 붙들었으니 얼마나 바쁘겠어요? 버려야 하는 데 버리지 못하니까 신앙생활이 스트레스인 것입니다. 엘리사의 태도는 그가 얼마나 열정적인 사람임을 보여 줍니다. ‘버리고, 달려갔다.’
2) “나를 내 부모와 입맞추게 하소서 그리한 후에 내가 당신을 따르리이다”
모든 부르심의 길을 가는 자들의 공통적인 문제는, 우선순위입니다. ‘내가 가긴 가는데 이것 처리한 후에 가겠습니다.’ 바로 이런 태도입니다.
*우리의 우선순위를 막는 것
1) 인간의 정 때문입니다. 부모와 작별 인사는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2) 내일을 하나님의 일 보다 앞세우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일을 시작하면, 그 분이 우리 일을 돌봐주신다는 것입니다.
ex) 시험만 되면, 결혼만 하면, 직장만 얻으면, 자녀만 생기면... No! 지금 여기서 하나님의 일을 시작해야 합니다. 그러면 나머지가 열립니다.
3) 믿음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신뢰의 부족입니다.
마6:31~33)31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32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33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34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이 염려할 것이요 한 날의 괴로움은 그 날로 족하니라”
하나님이 다 아십니다. 준비하셨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하나님이 책임지실 것 믿고, 먼저 그분의 일을 하는 것입니다. 그럼 나머지는 하나님이 책임져 주십니다. 이걸 못 믿으니까 걱정되는 겁니다. 엘리사의 이런 반응에 엘리야는 어떻게 했습니까?
20下) “엘리야가 그에게 이르되 돌아가라 내가 네게 어떻게 행하였느냐 하니라”
엘리사의 결단, 21절)
“엘리사가 그를 떠나 돌아가서 한 겨릿소를 가져다가 잡고 소의 기구를 불살라 그 고기를 삶아 백성에게 주어 먹게 하고 일어나 엘리야를 따르며 수종 들었더라”
① 한 겨릿 소를 가져다 잡았습니다.
② 소의 기구를 불살라 그 고기 삶아 백성에게 주어 먹게 하였습니다.
③ 일어나(미련 없이) 엘리야를 따르면 수종을 들었습니다.
5. 영적 능력은 어디서 나오는가?
결단력입니다. 뒤돌아보지 않는 결단력, 한 번 정하면 끝까지 가는 인내와 끈기. 여기에 능력이 있습니다.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머뭇거리다가 인생 낭비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감동이 올 때 결단해야 합니다. 일어나 달려가야 합니다. 이것이 능력입니다. 주저 앉아있는 것, 할까 말까 고민만 하는 것, 생각만 많은 것은 능력 아닙니다.
지금 이 시대 하나님이 부르시는 사람들은? 엘리야의 영감을 갑절이나 받기 원하는 사람들입니다. 이런 목마름이 있는 사람들입니다. 이 시대는 영성의 시대입니다. 사람들은 잘 가르친다고 믿지 않습니다. 이론, 설명으로 안 믿습니다. 하나님을 체험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체험하려면 엘리야 같은 영성의 사람, 기도의 사람이 필요합니다. 엘리야를 넘어서는 엘리사 같은 사람이 필요합니다.
갈멜산에서 홀로 기도하여 비구름을 몰아오고. 비를 불렀던 기도의 사람이 필요합니다. 상황과 주변 현상에 전혀 기죽지 않고 담대하게 기도할 수 있는 기도의 사람들이 필요합니다. 외로움, 고독과 싸우면서도 전혀 위축되지 않는 사람들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은 이제 엘리야에서 엘리사로 세대를 교체하기 원하십니다. 시대가 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새 시대에는 새로운 사람들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이 시대는 하나님께서 하늘의 권능을 부어주시기 원하십니다. 엘리야 세대를 이어갈 다음 세대를 불러일으키십니다. 왜냐하면 이 세대가 그토록 악하고 강퍅하기 때문입니다. 현 시대는 중독의 시대입니다.
1)게으름의 영에 잡혀 있습니다.
그래서 새벽에 일어나지 못 합니다. 아침마다 출근전쟁, 등교전쟁을 벌어야 겨우 일어납니다.
2)기계 중독의 시대입니다.
스마트폰, TV, 컴퓨터, 태블릿PC, 아이팟, mp3 등. 시내를 보면 젊은이들은 귀에 이어폰 꽂고 다니는 것이 하나의 트렌드입니다.
3)성 중독의 시대입니다.
정욕과 성고, 욕망, 쾌락에 중독되어 있습니다.
이런 시대를 깨우려면 하늘의 능력으로 무장해야 합니다. 그래서 사람을 부르십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이런 생각을 해봤습니다. 아니 뭐 꼭 열심히 일하는 엘리사를 부를 필요가 있었을까? 일하는 사람은 일하라고 놔두고, 대신 엘리야에게 그런 능력을 부어주면 되지 않나? 왜 이게 필요합니까?
엘리사 세대는 엘리야 세대와 다르기 때문입니다. 마치 출애굽 후 가나안 1세대가 믿음부족으로 가나안땅에 못 들어가고, 대신 광야에서 태어난 2세대가 들어갔던 것처럼, 보는 것, 듣는 것, 생각하는 것, 품는 것이 다른 세대를 일으키시는 것입니다.
사람이 신앙을 가져도 한번 틀이 정해지면 좀처럼 깨지지 않습니다. 그릇은 한번 용량이 정해지면 그 용량 이상의 것을 담을 수 없습니다. 예수 믿어도 이 그릇은 안 변하더라구요. 90 % 이상은 그 용량, 그 틀을 벗어나지 못합니다. 하여간 그릇이 작은 사람은 안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다른 그릇을 쓰시는 것입니다.
지금은 엘리사세대를 일으키십니다. 나이를 따라서가 아니라 영성의 그릇이 다른 세대를 부르시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에게 능력의 기름부음을 주십니다. 엘리야는 기도의 세대라면, 엘리사는 기적의 세대입니다. 기적 보기를 밥 먹듯 하는 세대입니다. 엘리야는 불을 한번 경험했지만 엘리사는 불을 달고 사는 세대입니다. 보십시오. 앞으로 이런 세대들을 통해 엄청난 일들이 일어날 것입니다. 이 시대가 그걸 필요로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늘의 능력이 아무에게나 쉽게 부어지지 않습니다. 이것은 너무 귀한 것이기에 검증된 자에게만 주십니다.
1) 결단하는 자. 말씀 하시면 지체 없이 순종하며 나가는 자입니다.
2) 끈질기게 기도하는 자. 1~2시간이 아니라 3시간, 4시간 그 이상 끈질기고 지속적으로 기도하는 자. 지금은 학위보다 영적 능력이 필요한 시기가 되었습니다.
3) 하늘의 능력을 사모하는 자. 날마다 채움 받고, 충전 받기 원하는 자입니다.
하나님은 지금 능력의 세대를 부르십니다. 하늘의 권능과 기름 부음을 부어주셔서, 그 권능으로 세상을 바꾸고, 사람들을 자유케 하고 중독에서 벗어나게 하시길 원하십니다. 지금 너무 많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포로로 잡혀 있습니다. 누가 이들을 자유케 할 것인가? 하나님이 찾고 계십니다. 부르시고 계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