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생각하자.
성경본문 : 유다서 1:5-7
5. 너희가 본래 모든 사실을 알고 있으나 내가 너희로 다시 생각나게 하고자 하노라 주께서 백성을 애굽에서 구원하여 내시고 후에 믿지 아니하는 자들을 멸하셨으며
6. 또 자기 지위를 지키지 아니하고 자기 처소를 떠난 천사들을 큰 날의 심판까지 영원한 결박으로 흑암에 가두셨으며
7. 소돔과 고모라와 그 이웃 도시들도 그들과 같은 행동으로 음란하며 다른 육체를 따라 가다가 영원한 불의 형벌을 받음으로 거울이 되었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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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 처| 엄기호목사
근세 합리적 이론 철학의 시조인 데카르트는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라는 명제를 남겼습니다. 인간은 생각하는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생각하는 것, 그것은 인간의 특권입니다.
인간은 자기 존재에 대해서 스스로 물음을 던질 수 있으며 또 그 물음에 스스로 대답을 찾기도 합니다. 생각하는 힘이야말로 인간의 가장 위대한 면이라 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삶은 외부의 환경에 의해서 결정이 되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의 생각과 사고에 의해서 결정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우리의 삶이 마음의 생각에 따라서 달라지고, 우리의 인격이 마음의 생각에 따라서 달라지고, 우리의 신앙의 모습이 마음의 생각에 따라서 달라지고, 우리의 영적인 상태도, 마음의 생각에 따라서 달라집니다. 그러므로 “어떤 생각을 하는가?” 하는 것은 참으로 중요합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예수를 믿고 우리의 영이 새로워졌다면,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갈 수 있나’ 생각하고, ‘어떻게 하면 주님을 닮아 갈 수 있을까’ 생각하고, ‘어떻게 하면 하나님 앞에 내 삶을 드릴 수 있나’ 생각해야 합니다.
유다서를 기록한 유다는, 야고보의 동생인 동시에 예수님의 육신적 동생입니다. 그러나 그는 겸손하게 그리스도의 종이라고 하면서 부르심을 입은 자 즉, 하나님 아버지 안에서 사랑을 얻고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지키심을 입은 자들에게 문안과 축원을 하면서, 긍휼과 평강과 사랑이 더욱 많기를 빌었습니다.
그러면서 본문 5절에 “너희가 본래 범사를 알았으나 내가 너희로 다시 생각나게 하고자 하노라 주께서 백성을 애굽에서 구원하여 내시고 후에 믿지 아니하는 자들을 멸하셨으며”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는 우리가 이 세상에서 주님의 축복을 받아 멋있고 보람있게 살아가려면 내 생각, 내 방법을 따라 살아서는 안 된다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습니다.
벌써 2002년도 7월입니다. 오늘 우리는 지난날들을 되돌아보면서 깊이 생각하는 사람이 되어야겠습니다. ‘내 신앙에는 잘못이 없었는가?’, ‘내 삶은 무엇을 위한 삶인가?’, ‘하나님의 뜻과 섭리를 언제나 생각하고 있나?’, ‘남아 있는 새로 맞이할 날들을 어떻게 할 것인가?’ 하고 생각해 보는 이 시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불행의 길을 다시 생각해 보자
유다는, 불행의 길을 간 사람들의 첫 번째 예로 이스라엘 백성을 들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애굽에서 400년 동안 노예로 지냈습니다. 이 백성의 고통 소리를 들으신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통해서 모두 구원해 냈습니다.
그러나 광야생활에서 하나님을 떠난 불순종과 불신앙의 모습을 보이고, 또 하나님을 원망하고 불평하므로 멸망을 받아 그들의 숙원이었던 가나안 복지에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의지하고 믿은 여호수아와 갈렙만을 제외하고, 20세가 넘은 모든 사람들, 200만 대중이 광야에서 죽고 말았던 것입니다.
또 유다는 두 번째 예를, 타락한 천사들을 들고 있습니다. 천국에는 천사장 셋이 있었는데, 문관으로 좋은 소식을 전하는 가브리엘 천사장이 있고, 무관으로 하나님의 심판을 주관하는 미가엘 천사장이 있으며, 하나님의 보좌를 돕고 찬양하는 루시퍼 천사장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루시퍼의 마음속에 ‘하나님과 같이 높아지고 싶다’, ‘하나님을 대항해 보고 싶다’는 교만이 들어오게 되었고, 이에 하나님의 명령에 불순종하며 자기의 지위와 처소를 떠나 망령된 일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을 배반하고 타락한 루시퍼는 저주를 받고 결박되어 영원한 흑암에 갇힌 마귀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유다는 세 번째 예로 소돔과 고모라를 들고 있습니다(7절). 이 도시의 죄악은 세계 역사상 가장 끔찍한 이야기 중 하나이며, 라일(Ryle)이라는 사람은 그것을 가리켜 ‘구역질 나는 짓’이라고 하였습니다. 소돔과 고모라인들이 색욕으로 영원한 불의 형벌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색욕거리로 바꾸고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하고 우상을 숭배하는 것은 애찬의 암초요, 자신만 기르는 목자요, 바람에 불려가는 물 없는 구름이요, 뿌리까지 뽑힌 열매 없는 가을 나무요, 수치의 거품을 뿜는 거친 바다 물결이요, 흑암에 돌아갈 유리하는 별들이라고 유다는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성경에서 잘못된 생각을 한 대표적인 사람들을 찾아보도록 하겠습니다.
1. 가인의 잘못된 사상을 생각해보겠습니다(창 4장).
그는 피 없는 제사를 드리고 아우 아벨을 시기하여 죽였습니다. 자기 의를 주장하는 자만심, 피없는 제물을 드려도 되는 줄 아는 교만심, 이는 마치 십자가를 무시하고 십자가 없이도 구원받을 수 있다는 아주 건방지고 위험한 생각입니다. 또 아벨이 축복받은 것을 시기하여 미워한 나머지 그 귀중한 생명을 죽이는데 이르렀던 것입니다. 이는 독선적이요, 자연적인 배교이며, 길이 되시는 그리스도를 대적한 행위입니다.
2. 발람의 잘못된 정신을 생각해보겠습니다(벧후 2:16).
발람은 선지자였지만 모압 왕 발락에게 매수되어 이스라엘을 저주하러 가다가 나귀의 경책을 받았습니다. 탐심이 그의 눈을 멀게 하였던 것입니다. 돈만 주면 무슨 짓이든지 감행하려고 하는 처사는 무섭고 위험한 인물임을 말해 줍니다. 그는 이스라엘 백성으로 하여금 우상의 제물을 먹게 했고, 또 우상에게 절하게 하였으며, 우상에게 주었던 부녀들과 더불어 그 앞에서 음행을 행하게 했던 자입니다. 발람은 극단적 이기주의자요, 희생적 배교자이며, 진리이신 그리스도를 대적한 자입니다.
3. 고라의 패역된 행동을 생각해보겠습니다(민 1:32).
고라는 당을 지어 지도자 모세를 반역하다가 멸망당한 자입니다. 과분하게도 성막에서 봉사하는 직분자였음에도 명예심으로 제사장직까지 요구하다가 멸망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자기 욕심에 끌려 만족하지 못할 때 지도자 모세를 원망하다가 넘어지고 말았습니다. 그는 원망 끝에, 무리들을 모아 당을 짓고, 모세를 반역하다가 남에게 손해를 끼치고 자신도 250명과 더불어 죽임을 당했습니다. 자기 멋대로 행한 교회적인 배교요, 생명 되시는 그리스도를 대적한 행위입니다.
다시 생각하여 변화된 자들을 생각 해 보자
탕자의 다시 생각을 살펴보겠습니다. 작은아들은 아버지로부터의 간곡한 만류도 듣지 않고 끝내 분깃을 받아 아버지를 멀리 떠났습니다. 아버지의 간섭 없이 성공해보겠다는 그럴듯한 계획도 세우고 꿈도 꾸었습니다. 하지만 도시의 향락에 취해 허랑 방탕하여 거지가 되고 말았습니다.
큰 흉년도 만났습니다. 돼지 치는 자가 되어 돼지가 먹는 쥐엄 열매로 허기진 배를 채워 보려 발버둥쳤지만 그것마저도 배부르게 먹을 수가 없었습니다. 이처럼 심한 궁핍을 당할 때 그는 아버지의 풍요를 다시 생각했습니다.
죄를 지었음에도 불구하고 굶주림의 비참함보다 아버지의 노여움을 택하였습니다. 굶어 죽는 것보다는 아버지의 채찍을 택하였습니다. 그리고 돌아와 아버지에게 품꾼의 하나로 써달라고 간청을 하였습니다.
하지만 아버지는 내 아들을 잃었다가 다시 찾았다면서 기뻐하였습니다. 입을 맞추었습니다. 이는 사랑의 극치를 의미합니다. 더러운 옷을 벗기고 새 옷을 갈아 입혔습니다. 이는 새사람이 되었다는 뜻입니다. 반지를 끼워 주었습니다. 이는 잃어버린 주권을 다시 되찾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신을 신겼습니다. 이것은 노예는 신이 없기 때문에 자유의 몸이 된 것을 상징합니다. 다시 생각하여 아버지께로 돌아온 탕자는 상상 못할 축복을 받았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탕자가 바로 우리의 모습입니다. 죄로 인하여 죽었다가 회개하고, 하나님의 품으로 돌아온 우리의 모습입니다. 우리가 죄의 길에서 돌이켜 예수님께로 가면 우리의 모든 허물은 용서하여 주시고, 어떤 질병도 치료하여 주시며, 우리의 마음이 상처를 위로하여 주시고, 또 모든 아픔을 따뜻하게 감싸안아 주십니다.
나아만의 다시 생각을 살펴보겠습니다. 아무 것도 부러울 것이 없는 이 사람이 문둥병에 걸렸습니다. 이때 노예로 끌고 온 이스라엘 계집종이 사마리아에 가면 선지자가 있는데, 그 선지자 앞에 가면 병이 나을 것이라는 좋은 소식을 전했습니다. 계집종의 말인데도 이것을 그대로 믿고 그는 이스라엘로 가게 되었습니다.
나아만은 당대 최강국에서 최고의 권력을 가진 자입니다. 그러므로 자기만 가면 엘리사가 반갑게 맞으며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고 상처 위에 손을 흔들어 고칠 것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러나 엘리사는 문도 열어보지 않고, 게하시를 통해 “너는 가서 요단강에서 몸을 일곱 번 씻으라 네 살이 여전하여 깨끗하리라”는 말만 전해 올뿐이었습니다.
나아만은 자기를 그렇게 천히 대우해 준 것에 화가 났습니다. 그래서 돌아가려 했습니다. 그러나 곁에 있던 부하가 문둥병이 나으려면 이것보다 더 어려운 행동이라도 해야 하지 않겠느냐 충고하였고, 결국 그대로 행하였을 때에 그의 문둥병은 깨끗히 치료를 받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나아만은 마지막까지 자신의 주장을 내세울 수도 있었지만 자신의 생각을 고쳐 교만을 버리고 잘못된 생각을 던져 버렸습니다.
이처럼 내 생각대로 문제 해결하려고 하지 말고, 내 생각을 포기하고, 하나님의 생각에 초점을 맞추어야 합니다. 우리의 생각을 돌이키면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더럽고 추한 과거를 묻지 않으시고 깨끗하게 변화시켜 주십니다.
예수님은 죄악 가운데 있는 사람들을 구원하기 위해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에 따라 십자가를 지셨고 그 위에서 죽으셨습니다. 십자가의 희생과 아가페의 사랑을 통해 모든 인류를 구원하셨습니다.
이 주님의 사랑은 우리의 죄를 용서해주시고 죽을 자리에서 건져 주시고 또 질병에서 고침을 주시며 죄에서 해방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축복해주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잘되기를 바라십니다. 우리 모두가 참 행복을 누리며 사는 것을 바라십니다. 그러므로 원망, 불평하지 말고, 다시 생각하여 남은 이 한 해 동안 성령의 열매를 풍성히 맺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출처: 성경 벌레들 글쓴이: 성경 벌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