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로마서 5:8)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 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그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라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하여 화목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라" (요한일서 4:9-10)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이사야 53:5)
1. 에로스(Eros)의 비극 : 결핍에서 비롯된 인간 사랑의 철학적 한계
십자가의 사랑을 온전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우리 내면에 똬리를 틀고 있는 인간적 사랑의 처절한 한계와 비극을 직시해야 합니다. 고대 그리스 철학, 특히 플라톤(Plato)의 『향연(Symposium)』에서 묘사하는 인간의 사랑, 즉 ‘에로스(Eros)’의 본질은 ‘결핍’입니다. 플라톤은 사랑이 풍요의 신(포로스)과 빈곤의 신(페니아) 사이에서 태어났다고 말합니다. 즉, 인간의 사랑은 자신이 가지지 못한 아름다움, 선함, 혹은 가치를 타인으로부터 획득하여 자신의 텅 빈 내면을 채우려는 이기적인 갈망이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을 정직하게 돌아보십시오. 우리가 누군가를 사랑한다고 말할 때, 그 이면에는 대상이 가진 매력, 능력, 조건, 혹은 나에게 주는 심리적 안정감이라는 '가치'가 전제되어 있습니다. 상대방이 그 가치를 상실하거나, 더 이상 내 결핍을 채워주지 못할 때, 에로스적 사랑은 차갑게 식어버립니다. 이것이 인간 관계의 처절한 비극입니다. 우리는 끊임없이 누군가에게 나의 쓸모와 가치를 증명해야만 버림받지 않는다는 지독한 불안 속에 살아갑니다. 젊음이 시들어가고, 사회적 지위가 흔들리며, 육신의 질병이 찾아올 때, 현대인들은 극심한 고독과 존재론적 허무에 빠집니다. 왜냐하면 세상의 사랑은 철저히 '조건적 교환'의 원리에 종속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스웨덴의 신학자 안데르스 니그렌(Anders Nygren)은 그의 명저 『아가페와 에로스』에서 이 둘의 차이를 명확히 갈라놓습니다. 에로스가 대상의 '가치'를 발견하고 그것을 취하려는 상승(上昇)의 욕망이라면, 기독교가 말하는 하나님의 사랑 **'아가페(Agape)'**는 대상에게 가치가 없으나 오히려 그 대상에게 가치를 부여하며 조건 없이 자신을 내어주는 하강(下降)의 자기 비움입니다. 성경은 인간의 조건적이고 제한적인 나눔의 방식이 아니라, 존재의 근원으로부터 흘러나오는 압도적인 **'공급과 충만'**의 사랑을 선포합니다.
2. 십자가의 역설 : 가장 참혹한 저주에서 피어난 아가페
로마서 5장 8절은 이 아가페의 본질을 인간의 모든 이성과 철학을 붕괴시키는 한 문장으로 요약합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우리가 선하거나, 매력적이거나, 하나님께 유익한 존재가 되었을 때가 아닙니다. 우리가 철저히 부패하여 창조주를 향해 적의를 품고, 영적으로 철저히 죽어 악취를 풍기던 바로 그 '죄인 되었을 때'입니다. 세상의 철학은 자격 없는 자에게 주어지는 호의를 어리석음이라 조롱하지만, 복음은 이 어리석어 보이는 역설 위에 인간을 구원할 유일한 진리를 세웠습니다.
이 아가페의 사랑이 역사 속에서 가장 극적으로, 그리고 가장 폭발적으로 형상화된 장소가 바로 '십자가'입니다. 로마 시대의 정치가 키케로(Cicero)는 십자가형을 가리켜 "가장 잔인하고 혐오스러운 극형"이라고 불렀습니다. 그것은 단순히 생명을 끊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존엄성을 밑바닥까지 발가벗겨 만천하에 수치를 당하게 하는 조롱과 저주의 형틀이었습니다. 유대인의 율법(신명기 21:23) 역시 나무에 달린 자를 '하나님께 저주를 받은 자'라고 규정합니다.
왜 영광의 주님, 만유의 창조주이신 그리스도께서 그토록 수치스럽고 저주받은 십자가를 선택하셨습니까? 그것은 타락한 인간이 도달한 죄의 밑바닥, 그 허무와 저주의 가장 깊은 심연까지 완전히 내려가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인간의 배신과 악독, 타인을 짓밟고 일어서려는 폭력성이 극대화된 그 참혹한 형틀 위에서, 하나님의 아들은 당신을 못 박는 자들을 향해 정죄의 칼날을 휘두르지 않으셨습니다. 도리어 자신의 물과 피를 한 방울도 남김없이 쏟아내시며, 생명의 공급과 충만을 이루어 내셨습니다. 십자가는 인간의 극악한 죄악이 하나님의 무한한 사랑의 가슴을 찌르고 들어온, 역사상 가장 비극적이면서도 가장 영광스러운 충돌의 현장입니다.
3. 공의와 사랑의 입맞춤 : 화목제물(Propitiation)의 심연
요한일서 4장 10절은 이 십자가 사건의 신학적, 영적 본질을 정확히 짚어냅니다.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하여 화목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라." 여기서 '화목제물'로 번역된 헬라어 '힐라스모스(Hilasmos)'는 죄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를 가라앉히고 만족시키는 희생의 제사를 의미합니다.
우리는 흔히 사랑의 하나님을 오해하여, 무조건 덮어주고 눈감아주는 감상적인 신비주의의 신으로 착각합니다. 그러나 빛이 어둠을 용납할 수 없듯, 절대적으로 거룩하신 하나님은 인간의 죄악과 불의를 결코 그냥 지나치실 수 없습니다. 만약 하나님이 죄에 대해 진노하지 않으시고 심판하지 않으신다면, 우주의 도덕적 질서는 무너지고 하나님의 공의는 훼손됩니다. 이것이 딜레마입니다. 죄인을 공의대로 심판하자니 사랑이 울고, 사랑으로 덮어주자니 공의가 파괴됩니다.
위대한 청교도 신학자 조나단 에드워즈(Jonathan Edwards)는 십자가를 가리켜 "하나님의 맹렬한 진노(공의)와 하나님의 무한한 자비(사랑)가 서로 마주 보고 완벽하게 입 맞춘 영광의 장소"라고 선포했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죄에 대한 끔찍한 진노와 형벌을, 죄 없는 당신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의 몸에 고스란히 쏟아부으셨습니다. 이사야 선지자의 예언처럼(사 53:5), 내가 맞아야 할 채찍, 내가 찔려야 할 가시관, 내가 찢겨야 할 형벌을 그리스도께서 대신(Substitution) 받으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 위에서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라고 절규하신 것은 육체의 고통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영원 전부터 단 한 번도 끊어진 적 없던 성부 하나님과의 본질적인 연합이, 인간의 죄악을 짊어짐으로써 끊어지고 단절되는 우주적이고 영적인 고통의 비명이었습니다. 아들을 버리기까지, 아들을 저주의 구렁텅이에 밀어 넣기까지 우리를 택하신 것. 이것이 바로 인간의 얄팍한 이성과 철학을 산산조각 내는 아가페의 미련함이요, 동시에 세상을 구원하는 위대한 하나님의 지혜입니다.
4. 결론 : 자격 없는 자를 덮는 압도적인 은혜의 선언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리고 목회자 여러분. 이 처절하고도 완벽한 십자가의 희생, 아가페의 사랑이 오늘 우리 내면의 가장 깊은 절망과 허무를 향해 강력하게 선포하고 있습니다.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조차 여전히 율법주의와 성취 지향적인 신앙에 갇혀, 하나님 앞에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려 애를 씁니다. '내가 기도를 더 많이 해야, 헌신을 더 많이 해야, 죄를 짓지 않아야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시겠지'라는 불안감에 시달립니다. 그러나 십자가의 복음은 우리의 어떠함에 근거한 구원의 논리를 완전히 분쇄합니다. 우리의 구원은 우리가 십자가를 위해 무엇을 했느냐에 달려 있지 않고, 그리스도께서 십자가 위에서 우리를 위해 무엇을 다 이루셨느냐(Tetelestai, 다 이루었다)에 완벽하게 근거합니다.
십자가 아래에 설 때, 우리는 비로소 타인과 나를 비교하며 나의 쓸모를 입증해야 하는 피 말리는 에로스의 쳇바퀴에서 내려올 수 있습니다. 세상이 우리를 향해 "너는 늙고 무능하며 가치 없는 존재다"라고 정죄할 때, 십자가는 피 묻은 주님의 음성으로 이렇게 선언합니다. "너는 내 아들의 생명과 바꿀 만큼 존귀한 존재다. 내가 너를 대신하여 저주를 받았으니, 너는 이제 내 안에서 영원한 평화를 누려라."
우리의 남은 생애, 특히 삶의 무거운 짐을 지고 치열하게 영적 전투를 벌여나가는 모든 신앙의 여정 속에서, 우리는 이 십자가의 아가페로 끊임없이 돌아가야 합니다. 십자가는 과거의 역사적 사건으로 머무는 것이 아니라, 오늘 이 시간 우리 영혼의 밑바닥을 채우고도 남는 영원한 공급과 충만의 원천입니다. 나의 공로와 의를 철저히 십자가 앞에 못 박으십시오. 그리고 나를 위해 찢기신 그 무한한 희생의 품, 우리를 향한 절대적인 확증이신 그리스도의 아가페 안으로 온전히 침잠하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