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부: 율법과 복음, 그리고 끈질긴 성화의 긴 호흡
제10강. 과정 (Process): 양육은 단기 결전이 아니라, 피 말리는 긴 '성화의 여정'이다
"너희 안에서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는 확신하노라" (빌립보서 1:6)
9강에서 우리는 아이의 죄악 된 심장에 복음의 피를 쏟아붓는 위대한 사명을 확인했습니다. 그런데 수많은 기독교 부모들이 바로 다음 날 절망의 늪에 빠집니다. "어제 눈물로 회개하고 십자가를 붙들었는데, 오늘 또 똑같은 죄를 짓고 대들다니! 복음도 소용없는 것 아닌가?"
폴 데이비드 트립은 오늘 10강을 통해 부모들의 뼛속까지 스며든 '즉각적인 변화'라는 현대 사회의 우상을 맹렬하게 타격합니다. 기독교 양육은 스위치를 켜면 불이 들어오는 기계적인 '사건(Event)'이 아닙니다. 그것은 평생을 걸고 피 말리는 전투를 치러내야 하는 길고 긴 '과정(Process)'입니다!
첫째, '단기 결전'과 '즉각적인 효율성'의 우상을 박살 내십시오.
전자레인지에 음식을 데우듯, 버튼 하나만 누르면 아이의 성품이 3분 만에 거룩해지기를 바라는 것은 도둑보 심보이자 우상숭배입니다! 부모들이 "내가 천 번은 말했지! 왜 아직도 못 고쳐?"라며 미친 듯이 분노하는 진짜 이유가 무엇입니까? 양육을 귀찮고 빨리 끝내버려야 할 '숙제'로 여기기 때문입니다. 나의 편안함을 위해 아이가 단숨에 완벽한 성인군자로 변해주기를 바라는 이기적인 탐욕입니다.
인간의 영혼은 결코 단숨에 변화되지 않습니다. 수십 년 묵은 죄의 뿌리가 어찌 한 번의 훈계나 매로 뽑히겠습니까? 단숨에 결과를 보려는 조급함을 십자가에 못 박고, 기나긴 인내의 마라톤 출발선에 다시 서십시오!
둘째, 당신을 향한 하나님의 '길고 긴 성화의 호흡(Long-view)'을 배우십시오.
부모여, 당신 자신이 하나님 앞에서 어떻게 거룩해져 가고 있는지를 정직하게 돌아보십시오. 당신은 십자가 복음을 듣고 단 하루 만에 완벽한 성자가 되었습니까? 아닙니다! 당신 역시 어제 지은 죄를 오늘 또 짓고, 다짐하고 넘어지기를 수만 번 반복하는 끔찍한 죄인 아닙니까?
그런 당신을 향해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께서 어떻게 하셨습니까? "내가 성경책을 통해 천 번은 말했지!"라고 소리치며 당장 지옥 불에 던지셨습니까? 아닙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그 징그러운 반복적 반역 앞에서도 수만 번의 긍휼을 베푸시며, 마침내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당신을 빚어가시는 피 끓는 인내를 보여주셨습니다. 나를 향한 이 하나님의 그 끈질긴 성화의 호흡을 아는 자만이, 내 아이의 반복되는 실패 앞에서도 분노 대신 인내의 십자가를 짊어질 수 있습니다!
셋째, 반복되는 훈계는 실패가 아니라 '복음의 기회'입니다.
아이가 똑같은 잘못을 백 번 반복한다면, 부모는 똑같은 복음을 백한 번 들려주어야 합니다!
"오늘 또 아이에게 복음을 가르쳐야 하다니, 내 육아는 실패했어!"라고 좌절하지 마십시오. 그것은 육아의 실패가 아니라, 육아의 '본질' 그 자체입니다. 매일 아침 아이의 굳은 마음의 밭을 갈아엎고, 매일 저녁 그 위에 십자가의 씨앗을 뿌리는 그 고단하고 반복적인 일상(Process)이야말로, 하나님께서 당신을 거룩한 대사로 쓰시고 있다는 가장 영광스러운 증거입니다. 당신이 수천 번 반복해서 던지는 그 십자가의 진리가 아이의 가슴에 겹겹이 쌓이고 층을 이루어, 마침내 성령의 불이 임할 때 폭발적인 생명의 기적을 낳게 될 것입니다!
기독교 부모여, 손에 쥔 스톱워치를 당장 내다 버리십시오!
자녀 양육은 100미터 단거리 경주가 아니라, 아이의 영혼을 등에 업고 골고다 언덕을 오르는 수십 년의 피 말리는 성화의 여정입니다. 조급함이라는 마귀의 속삭임에 속아 양육의 수건을 던지지 마십시오.
"너희 안에서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 확신하노라!" 이 빌립보서의 장엄한 약속을 붙들고, 오늘 아이가 똑같은 죄로 넘어졌을지라도 포기 없이 다시 한번 은혜의 지팡이를 들고 아이를 향해 진격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