롬1:13~17
13. 형제들아 내가 여러 번 너희에게 가고자 한 것을 너희가 모르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 이는 너희 중에서도 다른 이방인 중에서와 같이 열매를 맺게 하려 함이로되 지금까지 길이 막혔도다
14. 헬라인이나 야만인이나 지혜 있는 자나 어리석은 자에게 다 내가 빚진 자라
15. 그러므로 나는 할 수 있는 대로 로마에 있는 너희에게도 복음 전하기를 원하노라
16.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로다
17.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연말이 되면 교회는 바빠집니다. 성탄절 행사도 있고 송구영신 예배와 신년 예배도 있습니다. 한 해가 다시 시작하기 때문에 교회도 새로워지려고 노력합니다. 신년 예배가 지나면 다시 4월 달에 있는 고난 주간과 부활주일 기간으로 긴장하고 7월 달이 되면 다시 여름 성경학교 관계로 분주하고 11월 달의 추수 감사주일이 지나면 다시 연말 행사가 오는 것입니다. 긴장과 이완의 연속이죠. 연애하는 것도 그와 같이 밀고 당기기를 잘 해야 한다고 하잖습니까?
부활절이 지나고 어린이 주일이 지나고 다음 주에는 어버이 주일 행사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여름성경학교가 다가옵니다. 이런 일을 해 나갈 때는 자기 관리가 중요합니다. 목사도 자기 관리를 해야 하고 성도들도 자기 관리를 잘 해야 행사들을 잘 완성해 낼 수 있습니다.
우리 인생은 밀고 당기기, 긴장과 이완의 연속입니다. 낮에는 열심히 일하지만 밤에는 단 잠을 잘 수 있는 때가 오는 것입니다.
지금은 자동차가 오토가 많지만 예전에는 스틱 자동차가 많았습니다. 지금도 운전면허를 딸 때는 스틱으로 따 두는 것이 좋습니다. 왜냐하면 여차하면 스틱 자동차도 운전할 수 있어야 하니까요. 그런데 스틱 운전을 처음 배울 때 가장 어려운 것은 기어를 바꾸는 것입니다. 1단, 2단,..... 5단. 이렇게 달리는 속도에 따라서 기어를 바꾸어 주어야 하는 데, 이것을 바꿀 때 왼 발을 밟았다가 띠어 주는 정확성이 필요하기 때문에 처음에 운전을 하시는 분들은 운전이 어렵습니다. 조금만 잘 못하면 시동이 꺼지고, 기어 바꾼다고 길도 잘 보기 때문에 사고 위험도 높습니다. 오토 자동차는 아예 기어가 없으니까 얼마나 편한지 모릅니다. 그런데 1단에서 2단으로 갈 때, 2단에서 3단으로 갈 때,...... 이렇게 기어를 바꿀 때 반드시 0단을 거쳐서 가게 되어 있습니다. 그것을 중립 기어라고 하고 기어는 자동차가 가는 데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하게 됩니다. 음악으로 말하면 숨을 쉬라는 숨표(쉼표)가 될 수 있습니다. 0단, 중립에 놓으면 일하던 기어들은 잠시 쉬게 되어 있습니다. 쉼이라는 것은 자동차에서도 필수 조건인 것이지요.
쉰다는 것은 원칙을 다시 생각하는 시간을 가진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따로 한적한 곳에 와서 잠시 쉬어라’
하나님은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일주일에 하루를 쉬라고 명령하셨습니다. 동물들도 쉬게 하라고 하셨습니다.
우리에게 닥친 밤이 긴 추운 겨울도 쉼을 명령하시는 하나님의 뜻입니다. 마치 세상이 소독되는 것 같은 효과를 낸다고 합니다.
우리의 삶은 항상 바쁘기만 해서는 안됩니다. 그렇게 하다가는 원칙을 잃어버립니다. 그러다가 잠시 쉬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습니다.
“우리가 왜 이 일을 해야 하는가? 아. 맞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기 때문이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이기 때문에 이 일을 하는 거지."
솔직히 말해서 성탄 행사를 하다보면 너무나도 분주해서 하나님이 받으셔야 할 영광을 우리가 차지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아이들의 재롱을 보고 박수치다보면 아기 예수님은 밀려나 버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심지어 성탄절의 의미를 잃어버린 행사를 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지금 자기를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너무 빨리 간다고 생각될 때에는 기어를 중립에 놓고 행사의 의미를 찾은 후에 다시 진행하는 것이 좋습니다. 우리가 자기 자신을 통제할 수 없어 계속 달리게 되면 엔진이 과열 되어 차가 망가지든가, 오르막길에서 시동이 꺼져버리는 것입니다. 익숙한 운전자는 항상 기어를 자주 바꾸어 줍니다. 가는 것과 쉬는 것이 너무나 자연스럽게 바뀌는 것입니다. 잘 쉬는 사람이 일을 잘 하는 사람입니다.
우리가 무슨 일을 바쁘게 하고 있기는 한데, 왜 이 일을 해야 하는 지 모를 정도로 바쁘다면 잠시 멈추어야 합니다. 교회가 가지고 있는 맛은 복음입니다. 복음은 ‘사랑의 하나님이 임마누엘 되셨다’는 것입니다. 복음의 기쁨을 잃었다면 우리는 멈추어야 합니다. 복음의 기쁨을 잃어버린 교회는 맛을 잃은 소금입니다.
하나님이 자기와 함께 계신다는 믿음 없이 성가대를 하고 주일학교교사를 한다면 정말 하기 싫고 힘듭니다. 결국 자기가 왜 이 일을 하는지 모르겠다면서 그만 두게 될 것입니다.
“내년에는 좀 쉴래요.” 이 말이 나오는 거죠.
그러니까 그런 분들이 교회 봉사를 하게 되면 주일날이 기쁨이 없는 날이 되는 겁니다.
우리는 이 복음이 나를 움직이는 건전지가 되게 해야 합니다. 건전지가 약이 다 되면 다시 갈아 끼우거나 충전하면 됩니다. 우리를 움직이게 하는 원동력이 복음이 되었을 때 우리는 기쁨으로 교회 사역을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 속에서 교회 생활을 하는 것은 이 세상과 싸우는 것과 같습니다. 진실교회 성도라는 것 자체가 세상과 싸우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싸움을 이기기 위해서는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복음에 대한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교회는 복음을 무기로 세상과 싸우고 있습니다. 다른 것을 가지고 싸우면 안 됩니다. 정치권력에 기대어서 세상에서 우뚝 서려고 하면 안 됩니다. 그것은 우리의 장점이 아닙니다.
미국 사람하고 이야기할 때도 내가 영어를 잘 못하면 영어로 대화하려고 하지 말고 한국어로 밀어 붙여야 합니다. 괜히 상대방 생각해 준다고 영어로 했다가는 망신만 당하고 끝이 납니다. 대통령들 보세요. 미국 대통령과 대화할 때 자기가 영어를 좀 할 줄 알아도 한국어로 밀어 붙이잖아요. 그것을 이해시키는 것은 통역사의 할 일입니다.
이명박 대통령이 서울 시장일 때 서울시는 서울 곳곳에 '하이 서울(Hi Seoul)이라는 구호를 갔다 붙였습니다. 뭐 환영한다는 뜻으로 붙였거나 인사정도의 의미였겠지만, 사실 하이라는 말은 높은 곳이라는 뜻도 되고 뭔가에 취했다는 뜻도 되는 아주 애매한 말입니다. 그러니까 외국인이 서울에 오면 하이 서울이라는 현수막이나 광고판을 보게 되었었는데 그것이 환영하는 말 같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서울이 예루살렘 같이 고산 지대에 있는 도시라는 뜻으로 해석하든가, 뭔가 취해 있는 서울이라는 느낌을 받았다는 거죠. 차라리 “어서 옵쇼! 서울입니다.”라고 그냥 우리 식대로 했더라면 알아서 이것이 무슨 말인가 사전을 찾아볼 것 아닙니까?
우리는 우리의 강점을 가지고 일해야지 약점을 가지고 일을 하면 안됩니다. 우리의 강점은 임마누엘이라는 복음입니다. 사람들이 교회를 두려워하는 이유는 교회가 사회봉사를 열심히 하기 때문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함께 계시기 때문에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교회 뿐 아니라 개인도 마찬가지로 자기의 장점을 가지고 현실과 싸워야 합니다. 사사였던 입다는 왼손 잡이였지만 왼손으로 큰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게다가 그는 서자였고 깡패 두목이었지만, 그것을 숨기지 않고 그것을 내세워 이스라엘을 잘 이끌었습니다.
바울은 자신이 로마 시민이고 순수한 유대인이며 유명한 랍비 가말리엘 문하에서 많이 배운 것을 자신의 복음 전파 사역에 쓰지 않았다고 말하는 사람은 뭔가 모르는 사람입니다. 그가 쓴 화려한 글 자체가 그는 자기의 지식의 무기를 사용하고 있다는 증거이고, 그는 시시 때때로 자기는 로마 시민권자이고 순수한 유대인이고 랍비 가말리엘에게서 배웠다고 말하고 다녔습니다.
학력이 무슨 상관이냐고요? 능력이 중요하지? 그것은 학력이 없고 능력이 있는 사람들이 하는 말이지요. 능력은 잘 모르겠는데 학력이 있는 사람은 시시 때때로 자기가 어디를 졸업하고 무슨 학위가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넌지시 알립니다. 그가 자기의 그런 화려한 과거를 배설물과 같이 여긴다는 말은 그런 것을 아예 무시하고 사용하지 않는다는 말이 아닙니다.
바울은 자신의 장점을 100% 활용했습니다. 예루살렘에서 잡혀 죽을 위기 속에서 그는 자기는 로마 시민권자이기 때문에 로마로 가서 재판을 받겠다고 말하여 사람들을 놀라게 했지 않습니까? 당시 로마 시민권자이면 함부로 죽이지 못하고 반드시 로마에서 재판을 받아 죽이게끔 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이 세상은 전쟁터와 같고 여러분과 저는 선한 싸움을 싸워야 하는 데 무기를 들 때 자기 것이 아닌 것으로 싸울 수는 없습니다. 다윗이 사울의 옷과 칼을 거절하고 물매와 돌 맹이를 가지고 나가 골리앗을 죽인 일이 있잖습니까?
우리 교회도 장점을 가지고 싸워야 합니다. 우리 교회의 장점은 겸손하다는 것과 욕심이 없다는 것입니다. 돈이 없기 때문에 돈 때문에 서로 싸울 일도 없고, 교회가 욕심을 가지고 추진하는 일도 없기 때문에 서로 모이면 편안한 마음으로 기쁘게 예배를 드린다는 것입니다. 장점이 있으면 단점도 있습니다.
사람들이 우리 교회를 보면서 이렇게 말할 수도 있습니다.
“이 교회는 비젼이 없어요? 다른 교회는 내년도에 교인 배가 운동이다, 건축 시작의 해다 뭐다 하는 현수막을 다 걸어 놓았는데.”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 봐도 우리는 그런 쪽으로 장점이 없습니다. 우리는 소박하고 진실한 것이 장점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장점을 가지고 교회를 이루어 나갑니다.
없는 것을 가지고 뭘 하려고 하면 안 됩니다. 하나님은 오른손 잡이도 지으시고 왼 손 잡이도 지으셨습니다. 오른 손 잡이는 오른 손을 써야 일을 더 잘 할 수 있고, 왼손 잡이는 왼손을 써야 일을 더 잘 할 수 있습니다. 그래야 더 빨리 맛있는 것을 먹을 수도 있습니다.
알렉산더 대왕은 전투 능력으로 세상을 정복했지만 바울은 복음 하나로 세상을 정복했습니다. 바울의 복음을 듣는 사람마다 더 듣기를 원하고 듣고 믿은 사람들은 헌신적으로 바울을 돕는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바울이 복음 전하는 능력을 자신의 사명의 무기로 썼다면, 우리는 우리에게 주신 능력으로 일해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더 빨리, 더 잘 이루어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