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 리 글
2005-10
하 늘 을 우 러 르 며
박병민목사(새터공동체)
10월 초순에 배움의 동료들과 같이 지리산의 성삼재를 지나 하늘아래 첫 동네라는 심원마을에 다녀왔다. 시멘트로 덮인 찻길이 열린 곳을 여러 사람이 따라내려 갔다. 한 참을 걸어 그 마을에 이르러 산으로 둘러싸인 주변을 보니 몇 집 아니 되는 마을 사람들이, 외지인들의 출입에 의지하여 삶을 꾸려 나가는듯 하였으나 우리들에게는 처녀지(處女地)처럼 비쳐졌다. 그런데 나는 그 심산(深山)에서,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수 없다는 말이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바로 작은 손으로 하늘을 가릴 수 있었다. 그것은 그 동네가 하늘아래 첫 동네라는 말과 같이 하늘과도 가까워서 그럴 것이다. 이 분들의 일상적인 삶과 같이 우리들도 늘상 하늘을 보며 살고 있을 것이다. 아니 어쩌면 바쁘다는 미명(美名)아래 하늘을 잊고 전후좌우만을 보며 두리번거리며 살아가는 우리들인지도 모른다. 오늘은 하늘을 우러르니, 맑은 하늘 사이사이로, 마치 구름이 풀어헤친 머리카락이 나부끼듯 하늘하늘 하다. 또 다른 곳에서는 구름이 내천 자를 그리며 푸른 바다 위를 흐른다. 수 십 여 년 전에 쓰여 진 이 희승(李熙昇)의 현대시조 벽공(碧空)에서 그는 더욱 푸르게 비쳐진 가을하늘을 다음과 같이 읊고 있다. 손톱으로 툭 튀기면 쨍 하고 금이 갈 듯, 새파랗게 고인 물이 만지면 출렁일 듯, 저렇게 청정무구를 드리우고 있건만. 으로 마친다. 하늘의 모습을 한량없이 깨끗하여 아무런 티도 때도 없는 순수함으로 파악하면서 ‘있건만’이라는 말로 여운을 남기면서 마친다. 그 뒤에 감추어진 의미는 아마도 사람이 살아가는 땅 위의 세계는 왜 이렇게도 혼탁한 것일까?하는 물음일 것이다. 우리는 푸르고 순수한 가을하늘 속에 나를 비쳐보지 않고, 그 곳을 회피하면서 마치 지나간 여름날 내린, 비로인하여 탁류(濁流)가 된 그 속에 나의 얼굴을 겨우 들여대면서 회안(悔顔)을 남긴다. 그리고 너도나도 사람들은 살아가면서 이곳저곳에서 온통 득세(得勢)를 하려들면서 하늘은 높다하고 도토리키대기를 하려하곤 한다. 우리가 아는 것처럼 명심보감(明心寶鑑)에서 하늘에 순종하는 길을 이야기하였다는 천명편(天命篇)이라는 곳에서는 그렇게 얘기한다. 孟子曰 順天者(맹자왈 순천자)는 存(존)하고 逆天者(역천자)는 亡(망)이니라. 곧 맹자가 말씀하시기를 고개 숙여 하늘을 따르는 자는 살고, 하늘 무서운 줄 모르고 거역하는 자는 망한다는 말이다. 그런데 공자는 五十而 知天命(오십이 지천명)이라 하여 오십 세 쯤 되어서야 비로소 행동에 있어서도 하늘의 뜻에 따라 행하여지는 시기로 보았다.
짤게 스물여덟 해를 살다간 시인 윤동주(尹東柱)도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바랬다. 그리고 자기에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고 말하였다. 예수님도 하늘을 우러러 기도하였다. 하나님 아버지여 내가 세상에서 종지부(終止符)를 찍어야 될 때가 이르렀사오니 아들의 영광을 드러내 주셔서 아들이 아버지의 영광을 드러내게 하여 주시옵소서(요한복음 17:1). 그러면서 오늘도 내일도 그 다음날도 계속해서 내 길을 가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나서 계속 이어지는 말씀은 예언자가 예루살렘 아닌 다른 곳에서야 죽을 수 있겠느냐?(누가복음 13:33).
푸른 가을하늘을 우러러 보다가 도리어 짧고 허황된 인생을 느끼며 고개가 숙연해진다.
공동체 이야기
전 화 이 야 기 로 전 하 여 들 은 치 매 할 머 니 와 결 핵 노 숙 인
저희 공동체 모임을 인터넷을 통하여 알게 되셨는지? 아니면 다른 어느 방법을 통하여 알게 되셨는지? 시내 감리교회 권사님께서 지난달에 연락을 해오셨다. 저희 모임이 노인 분 혹은 장애인분들의 삶과 같이 하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말씀하시면서 갑작스런 수입이 생기게 되어 얼마를 헌금하시겠다는 말씀을 해주셨다. 하나님 하에서 다른 분들의 전적인 도움을 받아가며 5년, 6년을 살아왔는데도 이제껏 받는 데에 능숙해하지를 못해하며, 늘상 송구스러워하며 미안한 손을 지니고 산다. 예전에 그런 말을 전하여 듣기도하였다. 잘 받을 줄 모르는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 베풀 줄도 모르는 사람이란다. 그래서 이제껏 길거리에서 손을 내미는 노파에게 작은 지폐 한 장도 선뜻 전하여주지 못하는 철부지로 살아가고 있는 듯하다.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라는 그 속내를 터득 해 가지 못한 것 같다. 그 이름도 좋은 목동(牧洞)이라는 곳에서 내가 목사(牧師)가 되기 전인 그 예전에, 도심 가운데에 시골과 같은 소외된 마을 아이들을 돌볼 때가 있었는데, 그 가정은 웃어른 대에서부터 바로 그 마을에서 사신 때가 있어서, 그 권사님을 뵈옵지는 아니하였으나 마음적인 반가움을 함께 나누었다. 그 권사님께서 이번에도 헌금을 하셨다. 나는 오늘 송구스러워 몸들 바를 몰라 하면서 고마움의 전화를 드렸다. 그런데 그분하시는 말씀이 아버님은 작년에 돌아가셨고, 어머니는 치매를 알고 계시는데 안부인께서 그 어른을 돌보시느라고 많은 고생을 하고 있다고 말씀을 하시면서 혹시 라고 내가 그 예전에 목동(牧洞)이라는 마을에서 우리 어머니를 뵈었을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도하셨다. 나는 마음의 부풀어 오름을 느끼면서 어머님을 위하여 하나님께 함께 기도를 드리겠다고 말씀을 드렸다. 글을 쓰는 이 시간 2008년부터 국가에서 실시예정이라는 노인수발보험이라는 것도 생각을 하여 본다.
며칠 전에 전화를 해온 여동생에게서 오늘도 전화연락을 받았다. 동생 집에서 결핵을 앓고 있는 어느 노숙인이 함께하고 있는데, 그 분에게 어떻게 도움이 될 것인가? 하는 일이었다. 두 주간 가량만 약을 복용하게 되면 결핵균이 잠복하게 되어 다른 이들과 함께 생활도 할 수 있을 것인데, 약을 먹으려하지 않고, 그러면서 어느 결핵관련 단체나, 요양시설 등에 입소 할 것을 권하여도 수궁하려 들지 않는단다. 그러다가 오늘은 집을 나서 다른 곳으로 가고 없다는 말이었다. 할머니께서 치매를 앓으신다는 이야기, 그리고 결핵을 몸에 지닌 노숙인 등의 이야기를 전하여 들으면서, 우리 공동체가 더욱 세상으로 눈길을 돌려야겠다는 생각을 가져본다.
공 동 체 소 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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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터 공동체 가족
박정임
라홍채
최성재
최영애
정무래
박종만
박병민.진선미.한솔.진솔
☻ 기도하며 함께 하신 분들
대전제일교회.주식회사EG(이광형).국민건강보험공단금산지사(전흥준외6인).이원교회.정무래.최영애.라홍채.김기홍.동춘교회4남선교회.튼튼영어대전동구(연월순외11인).향림원(2인).성삼순외2인.변경섭외1인.박종만.금성교회.채윤기(박현실).세광교회.진명구.중부대학교노인복지학과(9인).기물리교회.손중기.대전성남교회.대한적십자금산군추부봉사회(성삼순.임영호외11인).동부명성교회.그리스도의집.대전노회.대덕교회.김종택.옥천동부교회.신건태.찬미교회(오복희).진주문교회여전도회(김상용외7인).금산읍교회(김철우외1인).유영수.대전일보(김세원.정진일외2인).남상현.최선희.추부제일교회.분평청북교회.남상륜(김성숙)
(호칭은 생략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