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해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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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1-23 12:29
29집 이경순
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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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은 곳에서
막다른 골목길, 외벽을 타고 옥상 물받이 홈통이 연결된 밑으로 빗물 새어나와 떨어지는 곳 금간 외벽 틈으로 풀잎 하나 서 있다 물받이통을 비껴서 햇살이 쏟아지는 대낮 지나 바람 한줌 골목 안으로 휘둘러 하루가 지나가고 눈 내린 겨울 지나 해를 거듭해도 그 자리에 그대로 마치 일상을 찬미하듯 비를 맞으며 햇살 쬐고 있다
어느 가을
서산의 해는 강물 위로 희미하게 드리워지고
검붉은 눈물자국이 속눈썹 언저리에
짓물러져 멍울져 있다
곱게 아버지 만날 날 단장하듯이
엄마의 여리고 보드라운 살갗을 펴가며 마사지한다
아버지 돌아가신 후,
가족이 함께 식사를 하거나
매달 세금 계산한 금액 수납창구에 바로 내게 할 때도
예전처럼 듣지 못해 화가 나서 큰소리로 말하는 데도
그리고 당신이 자식들한테 뭔가 받았다 싶으면
“고맙데이”라는 말을 잊지 않는다
가릉거리는 숨소리
숨결에라도 못한 말 내뱉는지 호흡이 길다
오늘 밤처럼 엄마 가시는 날 옆에서, 나는 잠을 청한다
전나무로 둘러싸인 숲
수런거리는 소리에 가던 길을 멈추었다
소리의 정체를 읽을 수 없어
가만히 섰다 타닥타닥 튀밥 터지듯
여기저기 튀어나왔다 소리를 쫓아
감았던 눈을 떴다
새들은 전나무 사이를
쉴 새 없이 옮겨 다녔다
주춤거리고 머뭇거리며 망설이다
낯설어 가지 못했던 길,
새들은 시간의 낟알을 쪼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