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문의 시간
『하늘은 열렸잖아요.』
출애굽기 14:13-14. 320·321장
13모세가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너희가 오늘 본애굽사람을 영원히 다시 보지 아니하리라
14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니 너희는 가만히 있을지니라
애굽의 바로는 뒤늦게 정신이 들었습니다. 장자를 잃은 슬픔에 모세에게 출애굽을 허락했지만, 장정만 60만 명이 넘는 히브리가 애굽을 빠져나가면 경제적 손실뿐만 아니라 태양신의 아들이라고 자처하던 자기 지도력에도 문제가 생기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로는 끝까지 완강하게 버텼던 것입니다.
우리가 바로를 통해 깨달아야 할 중요한 진리가 있습니다. 자신의 자아를 포기하지 못하고 하나님 앞에서 완고하다면 그 끝은 정해져 있는 것입니다. 열 가지 재앙을 겪으면서 애굽의 모든 신들은 아무 쓸모도 없는 나무와 돌에 지나지 않음을 그 누구보다 바로가 잘 알고 있습니다. 하루빨리 여호와 하나님을 인정했다면 그 앞에 엎드렸다면 애굽과 바로의 마지막은 달랐을 것입니다.
예수께서 부활하셨을 때 모든 제자가 예수께 돌아왔습니다. 그러나 가롯 유다는 끝까지 자기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돌이키지 못한 채 스스로 목숨을 끊고 말았습니다.
세상에 흠이 없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자신의 부족함과 잘못을 주님께 아뢰고 엎드린다면 그분은 미쁘사 모든 잘못과 죄악을 용서하여 주시는 줄 믿습니다. 그러나 아직 자신의 자아를 포기하지 못했던 가롯 유다와 애굽의 바로는 마지막까지 주님을 받아들이지 못했습니다. 자신들의 자아가 너무 컸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모세는 어떻습니까?
모세는 실패한 인생이었습니다. 내세울 것도 없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는 몇 번이고 주님이 주시는 사명을 고사했지만, 주님 앞에 솔직했고 부족하므로 주님만을 의지했고 연약하여서 주님의 능력만을 구했습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출애굽기 14장 13~14절을 보면 모세의 이야기이지만 모세가 주인공이 아니며 주어가 아닌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하신다. 가만히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바라보아라.”
만약 바로였다면, 가롯 유다였다면 어떻게 했을까요?
“왜 이 귀한 것을 이렇게 허비하느냐 차라리 가난한 자들에게 나누어 주는 것이 좋지 않겠느냐?” 십자가를 지러 가시는 예수님 앞에서 가롯 유다가 했던 말입니다.
이렇게 봤을 때 참된 믿음은 하나님을 위해 나에게 있는 좋은 생각, 내가 가진 능력을 발휘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내 생각, 내 의지를 내려놓고 하나님이 하시려는 일을 바라보고 하나님의 뜻을 깨닫는 것이 먼저입니다. 그리고 주님을 따르는 것이 참된 믿음인 줄 믿습니다.
뒤에서는 애굽의 전차부대가 쫓아오고 앞에서는 홍해가 가로막혀 있는 상황에서는 가만히 있기가 더 어려운 일입니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도망치거나 포기하는 것이 상책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급하고 중요해도 먼저 하나님의 뜻을 묻고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일이 우리가 해야 할 일인 줄 믿습니다.
사랑하는 남문의 성도 여러분!
사방으로 우겨 쌈을 당해도 하늘은 열려있습니다. 내 생각, 내 자아를 앞세우지 말고 오히려 내려놓고 우리의 마음이 하늘을 향할 때 하늘로부터 우리가 가야 할 길이 열릴 줄 믿습니다. 우리 앞에 홍해가 그렇게 열리길 소망합니다.
삶의 적용 : 내 자아가 죽어야 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마무리기도
어떤 환경 어떤 상황에서도 하늘을 보게 하소서.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하였습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