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9. 이방인에게로 / 사도행전 22:21
유대인들은 자신들을 하나님의 백성이라 여기고,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을 이방인이라 불렀습니다. 그들은 인종과 지역에 따라 사람들을 차별하고 멸시했으며, 이방인들과 같은 자리에 앉거나 음식을 함께 먹지도 않았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하나님은 유대인이든 이방인이든 차별하지 않고 복음을 전하고자 하셨습니다. 하지만 누가 이 일에 가장 적합할까요? 유대인들에게는 유대인의 문화를 아는 사람이, 이방인들에게는 이방인의 문화를 아는 사람이 복음을 전해야 했습니다.
바울은 어떤 점에서 적합했을까요? 바울은 이방인들의 관습과 생활방식을 잘 알고 있었기에, 그의 전도와 설교는 이방인들의 마음을 깊이 이해하고 이끌 수 있었습니다. 안디옥 교회에서도 바울의 공헌이 매우 컸습니다.
우리는 이로부터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경상도와 충청도에 복음 전도가 잘 되지 않는 이유는, 목회자들이 그 지역의 풍습과 역사를 모르고, 그곳 사람들과 교류할 만한 지식과 경험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한국 역사의 한 페이지조차 모르는 사람과는 관계 맺기가 어렵습니다. 기독교의 진리가 아무리 훌륭해도, 그것만으로는 처음 만나는 사람들과 관계를 맺는 도구가 될 수 없습니다. 오랜 시간 교류하면서 자연스럽게 이끌어져야 합니다.
둘째, 바울의 언어 능력 측면에서 보면 타당합니다. 당시 로마 제국이 세계를 통일했을 때 그리스어가 공용어가 되었습니다. 바울은 그리스어에 능통했고 히브리어도 잘 구사했습니다. 그는 유대인들에게는 히브리어로, 이방인들에게는 그리스어로 가르쳤습니다. 우리도 영어와 라틴어, 히브리어를 공부하여 성경 연구에 도움이 되게 하려 하지만, 신학교에서는 짧은 시간에 영어 수업이 너무 많고 정작 생명의 양식인 성경 공부는 부족한 것 같습니다.
한국의 적합한 전도자를 양성하려면 동양철학의 핵심을 함께 배우는 것이 더 좋을 것입니다. 최근 교역자들이 미국 선교사에게 배우고 그들에게서 목사 안수를 받으면 전도자 자격이 충분하다고 생각해서 세상에 나가 전도하지만, 효과가 없습니다. 예수를 믿지 않으면 죄인이라고 책망하며 호통치며 전도하니 누가 그런 말을 듣겠습니까?
한국에는 양반과 상인의 구분이 있는데, 양반이란 학식이 있고 품위와 예절이 있어 모범이 될 수 있는 사람을 일컫는 말입니다. 전도자가 이러한 것을 모르고 세상에 나가 전도하여 세상 사람들 눈에 양반답지 못하고 무례하거나 거칠게 보이면, 첫인상부터 좋지 않아 전도할 수 없습니다. 예전에는 "상인이라도 예수를 믿으면 양반이 되고, 백정도 장로나 목사가 되어 좋은 대접을 받을 수 있다. 예수만 잘 믿으면 진정한 양반이 된다"고 했습니다.
진정한 신자가 되어 이방인을 위한 전도자가 되시기 바랍니다. 아브라함이 가나안에 살 때, 그 지역 사람들에게 말없이 전도하고 하나님을 가르쳤습니다. 우리의 삶이 모범이 되면 자연스럽게 사람들이 따라올 것입니다. 이는 물질이 아닌 도덕적 행위로 이루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