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8. 성령이 누구뇨 / 요한복음 20:22
성령의 역사를 보면 그의 존재가 분명함에도 불구하고, 근래 신자들 중에는 성령을 부인하는 사람들이 있어 교회 공동체의 믿음을 혼란스럽게 하고 있어 안타깝습니다.
성령이 누구인지에 대해 말하자면, 성령은 바람도 아니고, 기운도 아니며, 정신도 아닙니다. 만질 수도, 들을 수도 없으니 어떻게 믿을 수 있을까요? 우리의 지침과 위로, 힘이 되는 성령의 실재를 어떻게 인정하고 믿을 수 있을까요?
첫째, 평안을 주시는 성령입니다. 요한복음 14장 27절을 보면, 성령을 받은 신자들이 모든 박해와 고난을 당해도 담대하게 죽음을 맞이하며 주님을 증거한 이유가 무엇일까요? 이는 분명 성령의 위로로 가능했습니다. 성령은 주님의 영입니다. 주님께서 육신으로 오래 머물지 못하고 "내가 떠나는 것이 너희에게 더 유익하다"고 말씀하셨듯이, 주님께서 육신으로 하지 못하신 일을 성령으로 하신다는 것을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둘째, 성령은 통달한 영입니다. 고린도전서 2장 10절에서 주님께서 "내가 임하면 오늘 너희에게 한 말을 기억하게 하리라"고 말씀하셨듯이, 성령은 모든 것을 꿰뚫어 아십니다. 하나님의 것과 사람의 속마음까지 다 아십니다. 사도행전 5장 3절에서 보듯이 성령은 사람의 속에 있는 죄를 깨끗이 씻으십니다.
그뿐만 아니라 우리가 성경 말씀을 모를 때 성령을 통해 깨달을 수 있습니다. 따라서 믿는 사람에게 성령은 가장 중요합니다. 전에 기도할 줄 몰랐던 사람이 기도를 잘하게 되고, 설교하지 못하던 사람이 능숙한 설교를 하며, 성경을 몰랐던 사람이 성경을 잘 알게 되는 것은 모두 통달하신 성령의 도움입니다. 또한 오순절에 성령이 강림하신 후 제자들이 여러 나라의 언어를 말할 수 있었던 것도 성령의 능력입니다.
셋째로, 성령은 항상 권면하지만 때로는 금하기도 합니다. 바울이 아시아에 전도하기를 원했지만 성령이 금하셔서 마케도니아로 가게 된 것도 성령의 하시는 일입니다. 우리가 믿고 행하는 일에 기도할 때, 성령께서 우리 마음에 묵시하시고 의의 길을 가르쳐 주시기도 합니다. 이런 때에는 마땅히 성령의 지시에 순종하고 자신의 원함을 포기해야 합니다.
죄와 의를 판단하는 것은 내 마음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오직 보혜사(성령)가 오셔서 판단하신다고 요한복음 16장 8절은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는 육신은 무익하다고 하셨습니다. 육신은 죄로 인한 것이므로 아무것도 제대로 분별하지 못합니다.
넷째로, 성령은 내재를 허락하시는 영입니다. 요한복음 14장 17절에서는 "모든 것을 다 아는 것은 성령이 너희 마음속에 계시기 때문"이라고 말씀합니다. 이때 우리는 큰 복을 받게 됩니다. 영으로 인해 하늘의 소식을 듣고 주님의 생명과 같이 호흡합니다. 마치 아기가 어머니의 뱃속에서 어머니의 호흡과 같이 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이때 우리는 부활과 영생을 가지고 있어 죽음이 없습니다. 항상 천국의 성도들과 천사들과 교통하며 분명히 하늘에 속한 사람이 됩니다. 이때 세상이 나를 미워하는 것은 곧 하나님을 미워하는 것이요, 사람이 나를 박해하면 그것은 하나님을 박해하는 것입니다. 내 말은 주의 말씀이 되고, 내 생각은 주의 생각이 되며, 내 사업은 주의 사업이 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