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으로 보는 창수의 시
전창수 지음
1. 그대로
2. 마음
3. 비둘기
4. 마음이 가는 곳에
5. 공중 전화기 앞에 서면
6. 왜
7. 그리움에 걸리다
8. 한밤중에 들여다본 소멸
9. 수증기 사랑찌개
10. 열대어네 집
11. Ending
12. 거짓증언·1
13. 슬쩍 똑똑 빼꼼·1
그 대 로
밤 피어오르듯 별은
어제
그 자리에 빛을 내고
뜨거운 열기로 타오르는 사막에
오늘
목마름을 덜어내는
오아시스
사라지듯 기어이,
달아오르는 날빛
내일
또
그대로
마 음
맑은 하늘,
눈이 내리고
그 안에
떨어지는 나라면
흐린 하늘,
눈이 내렸고
그 속에 묻혀 사는
그것도 나.
바람 부는 허공.
우뚝 선 눈사람.
거기에
떨고 있는 나라면
밝은 햇살,
시간의 눈빛에
침묵으로 사라지는
그것조차 나.
비 둘 기
자유를 바라며
날으는
새우리 안의
비둘기.
누군가,
열은 문을
차고 나오려는
날개짓.
푸른 허공
문 사이
흩어지는 그들의
한 맺힌
지저귐.
먹구름
몰려들어
그들을 버린
하늘.
비 뚫고
날아 오르는
새우리 안의
봉우리.
그저 한번
몸부림치던
날개 안의
설레임.
마음이 가는 곳에
마음 먹은 대로 가다 보면
언젠가는 알게 되겠지
흘러가는대로
따라서 가다보면 가다보면
무엇이 무엇인지
머지 않아 알게 되겠지
구름은 아니더라
세월도 아니더라
나를 일깨우는 건
무엇이 무엇인지
중요하지 않더라
진심으로 진심으로
진실한 마음 하나 안고
그저 가다가 보면은
무엇이 무엇인지
저절로 알게 되더라
혼자서는 절대로 못해도
서로 도와 가다보면
저절로 알 수 있겠지
모두가 사랑인 날이
언젠가는 오게 되겠지
무엇이 무엇인지
하나도 몰라도
마음 가는 대로 흘러흘러
가다보면 가다보면 가다보면
공중 전화기 앞에 서면
공중전화기 앞
망설이는 사람들
어디에 어디에
전화를 거는 건지
나도 따라
한번쯤 걸어보는 건
그래도 누군가
있을지 모를
기대가 있기 때문이다
연인들
팔짱 끼고 걷는
거리에 서면
하늘이 뿌옇게 흐리다
사람들 줄지어
드디어 차례가 오면
목적없는 전화 긴 시간의 통화
기다림의 시간 아까워
나도 따라
다이얼을 돌린다
공중전화기 앞에 서면
괜시리 망설여지는 건
그래도
누군가 있을지 모를
그리움이 있기 때문이다
왜
밤은 왜
그리움
반짝이는 별
사람들의 허무
가슴 스미는
차가운 바람
잠드는 도시
밤은 왜
서러움
홀로 선 달빛
비추인 골목
마음 스미는
꺼진 가로등
고독한 밤
밤은
왜
외로움
그리움에 걸리다
- 이 시에 뭔가 있을 거라 기대를 하고 있다면 생각을 거두어 주시길…
목소리 낮춰 소망함. -
마지막 남은 알록달록한 껍질이
친구에 의해 벗겨지던 그때
희미하게 보이던 모든 것이
비로소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창 밖, 한바탕 벼락이 내리고
소나기에 묻히는 신음소리
조금 거부반응이 있기는 했지만 이내
세상을 감싸는 침묵이 깊숙이 찾아오고
오름가즘을 오르내리는 숨소리만이
깊어가는 여름밤을 채워내고 있었다.
끼익끼익 삐걱이며 살과 살을 파고드는
섹스의 한 중간쯤
나는 비로소 그들에게서 고개를 떨구었고
그날 새벽
천정이라고는 있지도 않은 다락방에서
혼자서 수음을 했다
삶이란 게 이런 것일까,
하는 상투적인 질문을 하고 있을 때
간밤의 천둥처럼 벨소리가 울리고
먼저 가서 미안하다며
친구는 마지막 인사를 한다
투우욱 -
끊어지는 저편 너머
나의 이상형이 끼루룩거리고
다시 만날 수 있을 것이라는
어떤 희망도 남기지 않은 채
멍한 다락방에서 뚜욱뚝 떨어지는
천둥소리가 울리는 여름이 되면
해마다 찾아오는 그녀의 신음소리에
나는 가끔씩 슬픔을 내뱉곤 한다.
한밤중에 들여다본 소멸
거울 들여다본다 낯선 남자
무표정한 얼굴 누구인지 모를 조명발
정말 잘생겼군
독백 속에 시들어 버린 한줄기 光線
누구인지 알 것도 같은 안생긴 남자 하나
저게 누구지?
등 뒤로 낯선 남자 씨익 웃는다
바보같은 표정들 미로 속에 갇힌 거울
열중 쉬어, 차려, 뒤로 돌아
얼굴 찌푸린 낯선 남자 가만히
그를 들여다본다
헉, 나잖아? 놀란 눈에
성에가 낀다 안경 너머
뿌옇게 흐린 꿈 너머
그라고 하는 내가 있다
나라고 하는 너가 있다
2
거울 속에 갇힌
낯선 남자 하나
저게 누구지?
수증기 사랑찌개
1.
증오가 불꽃 튀며 세상을 향해 폭발했다 내려앉은
산 강 육지 바다 저마다 제 길을 갔다 아무도 뒤
돌아보지 않았다 떼 지어 날아간 까치 한 마리
푸·드·득·
날개짓하며 열정의 시간 속으로 날아올랐다 그때.
내게 폭발한 화산(火山)
세상에서 가장 형편없는 요리사는
감정이란 양념들 꽉 찬 냉장고 문을 연다
끼이익 어둠에 갇힌 훈훈한 소리들
살고 싶어 발버둥친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요리사, 시간이란 비장의 요리로 곧 죽을 목숨
안타까운 눈빛으로 바라보며 그들에 의한
마지막 요리를 해 낸다
2.
증오의 기포 투명한 사랑 속으로 흡수된다
부글부글 끓어오르던 가슴의 열 서서히 내려앉는다
시끌벅적한 양념 가득 훈훈한 정 넘쳐흐른다
투명한 사랑 요리사
하늘 땅 불 물로 범벅된 옷 입고
거리 가득 열정이란 요리로 사람들 데운다
이미 흡수된 증오의 기포, 하늘 멀리 증발한다
기억의 어두운 창고로 날아간 까치 한 마리
살가운 빛놀이를 한다, 그때
내게 다가온 사람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요리사는
감정이란 주검으로 꽉찬 냉장고 문을 연다
발버둥치던 떼들의 놀란 마음
시간의 비장함으로 완성된 처음
수증기 사랑찌개 익어가는 노을
속(續)에서 끓어오르던 증오의 열 가라앉힌다
열대어네 집
내가 그들 곁으로 가면
밥 달라고 아우성
손 닿을세라 부리나케 튕기는
치어(稚魚)들의 몸부림,
먹이인지 적인지
내 살 쪼아대는 그네들의 놀이,
엉겁결에 새 살이 돋았다 사라진다.
시간따라 출렁이는 물결의 삶, 삶들.
약한 고기는 죽어서 힘센 이들의 밥이 되고
힘센 이들의 세월은 길기만 하다,
몸부림 사라진 그들의 오만한 몸짓.
그러나 오늘도
내가 그들 곁으로 가면 밥 달라고 아우성
닿을세라 부리나케 튕기는 성어(成魚)들의 안간힘.
Ending
너무나 무섭지는 않아서
그래서 나는 폭발했다
너무나 무서웠던 세상에서
살아왔던 시간이
지나갔다는 사실이 너무도 기뻐서
그래서
나는 잘 하고 있다는 이 사실이
너무도 기뻐서
이 기쁨을 함께할 수 있어서
그래서 나는 폭발했다
그래서 마음이 터질 것만 같았고
터진 마음이 세상에 번졌으면 좋겠다
너무나 무섭지 않아서
그래서 나는 마음이 폭발했다
거짓증언․1
- 반항 (反抗)
1
나 이제 꿈
꾸지 않으려 한다
- 수도 없이 상처받은 사람들이 대인기피증 혹은 대인공포증에 걸릴 때가 있다 그런 사람들은 폭넓은 이해심을 지녔을 것이라고 나는 한번 생각해 본다 때로 상처 없이 병에 걸린 사람들 자기 안에 갇혀 자기만의 슬픔이 최고라는 생각을 한다 그런 사람들을 보면 문득
역겨워진다
(내가 이런 생각을 할 수 있는 것은
내가 이런 생각을 확신할 수 없기 때문이다)
거울 속에 내가 있다
문득, 그가 역겹다
흉터 하나 없는 고운 얼굴이다
2
햇살이 언제나
따스한 기억으로 남는 것은 아니다
- 따가운 손 위에 내 손을 얹었을 때 때로는 차가운 손이 따가운 손을 시원하게 해주는 역할을 할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았다 어쩌면 더욱더 큰 상처
차가운 마음으로 치료할 수 있으리라
(상상(想像) : 원형(圓形)의 탁자에 1,2,3,4 가 놓여있다
눈물 흘리는 1번 앞에 2번
차가운 눈길로 3번 쏘아보고 웃음 머금은 3번
4번의 차가운 손잡고 4번의 다른 손
1번의 눈물을 훔친다)
이제 더 이상
손이 차가운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3
도망가자
이 바쁜 한숨 속에서
울렁이다 토해내는
오염된 땅
이제 그만 벗어나자
- 고개 푹 숙이고 땅만 보며 걷는다 기운 없어 보이고 싶지 않지만 고개 들고 싶지 않다 세상을 바라보는 게 그저 부끄러워 고개 푹 숙이고 땅만 보며 걷는다
나는 왜 오염된 땅이라고 하면서
오염된 땅만 바라보는 것일까
그게 다시 부끄러워
하늘을 쳐다보았더니
구름 한점 없는 맑은 날씨다
4
답답한 가슴 눌러앉고 하늘 바라보면
고요한 세상은 숨 막힐 지경이다
- 포용력을 지닌다는 것은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것이라고 나는 한번 생각해 본다 그러므로 노인은 공경하고 봐야한다 이것이 신세대의 약점이라면 약점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때로 포용력은 사람을 지치게도 하지만 그런 포용력이 없다면 세상은 변하지 않을 것이다
(아직까지도 나는
내 생각을 확실히 알 수 없다
확신할 수 있다면)
이제 더 이상
이따위 시는 쓰지 않으리라
똑바로 서려 해도
결코 설 수 없는
오뚝이는 되지 않으련다
증언대에 서서
거짓말하는
그런 옹졸한 인간은
되지 않으련다
나 이제 꿈
꾸지 않으련다
슬쩍 똑똑 빼꼼·1
내 마음이 슬쩍 비껴가면
똑똑한 누군가는 빼꼼 고개 내밀어
내게 살아가라 하지요
나는 그에게
살아가려면 무엇이 필요한가요, 라고 묻고
그는 내게
알아서 하지, 라고 하네요
내 마음이 슬쩍 비껴가면
똑똑한 누군가는 뺴꼼 고개 내밀어
그냥 살아가라 하지요
오늘도 그냥 산 인생이 고개 내밀어
슬픔 한줌 삼켜보며 말합니다
나도 똑똑한 인생 한번 빼꼼 내밀고 싶다고요
나도 슬쩍 한번 고개 한번 올리고 싶다, 라고요
내 마음이 슬쩍 비껴가면
빼꼼 내민 인생이 슬쩍 고개 내밀어 쳐다보네요
오늘도 그냥 살아가라 하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