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영] 미스 코리아 살인사건 11-12.
범인은 없다 2.
인천행 전철을 타고 주안역에 내린 남형사는 한참동안 주위를 두리번거리다가 우체국 뒤에 있는 동오기획을 발견하고는 출입구 쪽으로 걸어갔다. 비디오 대여 업체인 동오기획 사무실에는 경리 혼자 사무실을 지키고 있었다. 그가 사무실로 들어가자 경리는 속이 몹시 안 좋은 듯 인상을 쓰면서 마지못해 자리에서 일어났다.
"사장님 안 계십니까?"
"사우나 가셨는데요."
남형사는 사장실쪽을 바라보며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아까 전화했던 사람인데요......"
"아, 네......"
"사장님 사우나 가신지 오래됐습니까?"
"얼마 안 됐어요."
"이 회사에 다니신지 오래되었습니까?"
"일년 반 조금 넘었어요."
경리는 여전히 속이 메스꺼은 얼굴로 대답하고 있었다.
"어디 편찮으십니까? 제가 약 사다드릴까요?"
"아, 아니예요."
경리는 갑자기 얼굴색이 변하면서 죄지은 사람처럼 남형사의 눈길을 피했다.
"여기 다니신지 일년 반이 조금 넘었다고 해서 드리는 질문인데요, 실례지만 미스......"
"미스 주예요."
"네, 미스 주는 이곳에서 일했던 윤보혜라고 아는지요?"
그 질문에 경리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보애요? 그럼요. 저하고 한 석달 동안 같이 일했는걸요."
"그런데, 보혜씨가 이 사무실을 왜 그만두었는지 혹시 알고 계신가요?"
"그건 저도 잘 몰라요."
경리가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대답하고 있었다. 뭔가를 감추고 있는 음성이었다.
"혹시 말입니다, 보혜씨에게 남자 친구가 있다는 소리는 못들었습니까?"
"그런데 누구시길래......"
경리는 속이 진정된듯 그제서야 남형사의 신분을 물었다.
"보혜 사촌 오빱니다."
남형사는 친척으로 신분을 속였다.
"이상하네...... 보애 언니한테는 사촌 오빠가 없다는 걸로 들었는데......"
경리는 남형사의 얼굴을 쳐다보면서 핏줄인가를 확인해보고 있었다. 잘 생긴 그의 얼굴을 보고는 별로 의심하지 않는 표정이었다.
"헌데, 저번에는 변호사라 하면서 어떤 여자가 찾아왔었는데......"
경리가 남형사의 얼굴을 다시 훑어보면서 알 수 없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잠깐, 누가 찾아왔었다구요?"
"보애 언니한테 약간의 법적인 문제가 생겼는데 참고로 할 사항이 있다면서 사장님께 이것 저것 물어보던데요. 지금처럼 보애 오빠하고 똑같은 질문을 했어요. 보애 언니한테 남자 친구가 없었냐고요."
남형사는 안경을 쓴 금지선 변호사를 떠올렸다.
"그 변호사가 뭐라고 또 묻던가요?"
"숙식은 어디서 했는지 물어봤어요. 그래서 보애 언니가 자취하던 방을 가르쳐드렸지요."
"언제쯤 그 변호사가 찾아왔습니까?"
"한 2주 전쯤 되었을거예요."
"그리고 또 뭐라고 질문을 하던가요?"
"마침 그때 사장님이 들어오셔서 저하고는 얘기가 중단됐어요."
경리는 꼬치 꼬치 캐묻는 남형사의 얼굴을 이상한 눈빛으로 보았다.
"사장님하고 무슨 대화를 나누었는지 기억나십니까?"
"저기 사장실에서 대화를 나눴기 때문에 전 알 수가 없어요.
여자 변호사님이 돌아가신 뒤에 사장님이 제게 오셔서 뭘 물어봤냐고 물으시길래 지금처럼 사실대로 말씀드렸어요. 그랬더니 사장님이 혼잣말처럼 말씀하시더군요. 말도 안 되는 얘기야, 이렇게 한마디 하셨어요."
"말도 안 되는 얘기라니요? 그게 무슨 뜻일까요?"
"그걸 제가 어떻게 알겠어요."
그러고보니 경리는 윤보혜의 근황에 대해 아는 것이 없어보였다.
"그런데 보혜씨가 여기를 그만두고 나서 한번도 온 적이 없나요?"
"보혜씨라니요......"
경리는 남형사의 사촌 여동생에 대한 호칭에 의심의 눈빛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면서 다시 입술을 움직였다.
"그만둔 회사를 뭣하러 오겠어요. 저 같아도 얼씬도 하지 않을 거예요."
경리는 회사에 불만이 많은 모양이었다.
"그런데 보애 언니는 지금 뭐해요?"
경리가 여전히 의심섞인 음성으로 물었다. 그러나 이내 궁금한 눈빛으로 남형사의 대답을 기다리고 있는 경리였다.
"윤보혜양은 3주 전에 미스코리아 대회에 출전해서 진에 당선되었어요. 석달 동안 같이 일했다면서 TV나 잡지에 나온 얼굴을 못봤어요?"
경리는 어리둥절해하고 있었다.
"그럼, 그 미스코리아 진이 진짜 보애 언니였단 말이에요?"
경리는 믿을 수 없다는 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런데 슬프게도 어젯밤에 살해당했습니다."
남형사는 신분증을 꺼내 경리에게 보여주었다.
"사촌 오빠라고 거짓말을 해서 죄송합니다."
경리는 불쾌한 얼굴로 남형사를 바라보았다.
"미스 주, 이제부터 제가 드리는 질문에 한 마디의 위증없이 진실대로 답해주시기 바랍니다."
남형사는 순진하게 생긴 경리에게 위압적인 얼굴로 말했다.
"이곳에 출입하는 사람들 중에 캠코더 기사가 있지요?"
"카메라 기사요?"
경리는 잠깐동안 생각하는 듯하더니 그를 바라보았다.
"네, 한 사람 있어요. 박기사님이라고요."
"그래요? 그 사람 지금 어디에 삽니까?"
"그건 잘 모르겠어요. 사장님이 아실지 몰라요."
"사장님과는 어떤 관계입니까?"
"거래처 사람이라는 걸로 알고 있어요."
그때 사무실 문이 열리면서 앞이마가 조금 벗겨진 40대 초반의 남자가 들어오고 있었다. 머리를 드라이하고 면도를 한 것으로 보아 경리의 말대로 사우나를 하고 오는 모양이었다.
"저희 사장님이세요."
경리는 사장을 보자 다시 속이 메스꺼운지 트림을 하고는 사장에게 남형사를 소개시켜주었다. 악수를 나눈 뒤 두 사람은 사장실로 들어가 경리가 타온 커피를 마시며 윤보혜에 대한 얘기를 주고받았다.
범인은 없다 3.
임종도 국장은 국장실에 놓여 있는 텔레비전을 켰다.
회전의자에 등을 기대고 앉아 리모콘으로 채널을 바꾼 그의 눈에 낮익은 정원이 비춰졌다. 저녁뉴스 시간이었다. 임국장은 기댔던 허리를 똑바로 펴면서 화면에 비치는 별장 내부를 근심스런 눈빛으로 주시하고 있었다.
미스코리아 진이 숨진 테이블과 바닥이 화면에 나타나고 있었다. 마이크를 든 보도국 기자는 테이블 의자에 앉아서 테이블 위에 놓인 동형의 칵테일 잔을 마시는 시늉을 해보였다. 기자의 사건보도는 독수리 눈처럼 정확하고 송곳처럼 날카로웠다.
그때였다. 책상 위의 전화기에서 부드러운 벨이 울렸다.
"국장님, 곤란한 전환데요. 어떤 남자가 미스코리아 진 독살사건에 대한 제보를 할 게 있다고 하면서 국장님 좀 바꿔달라고 하는데요."
짜증섞인 방송국 여직원의 음성이 임국장의 귓가에 들려왔다.
"보도국으로 걸라고 그러지."
"꼭 국장님한테 전해야 한다고 하는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