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제 아무리 영화를 누린다 해도
죽음을 피할 수 없으니, 미련한 짐승과 같다.
[시편 49:12]
'메멘토 모리', 죽음을 기억하라.
인간은 불확실한 미래로 인해 불안해하고 동시에 확실한 미래로 인해 불안해 한다.
불확실성 속에 있는 모든 미래 중에서 가장 확실한 것은 '죽음'이다.
그러나 죽음의 시기에 대한 불확실성은 죽음을 망각하도록 작용하는 경향을 가지게 한다.
그러므로 죽음을 망각하고 있다 죽음의 그림자를 인식하게되면 그 확실성으로 인해 또한 불안해하는 것이다.
그래서 인간에게 불확실성과 확실성은 모두 '불안'과 관련성을 가진다.
그러나 '불안'이라는 감정이 부정적인 측면만 있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또한 기억해야 한다.
불안이나 두려움 같은 것들을 극복하기 위한 것들이 인류 문화의 기초가 되었고, 인간을 인간되게 한 것이다.
결국, 인간은 불확실성과 확실성 사이의 존재이며, 사이에 존재함으로 '불안'은 인간 실존의 한 측면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불안'이 인간을 넘어트리는 걸림돌이 아닌 디딤돌이 되게하는 기제가 있다.
그것은 바로 '기억하는 것'이다.
죽음은 이 세상이 아닌 저 세상과 관련이 있다.
시편의 시인은 이 세상이 전부라고 생각하는 사람을 '짐승과 같다(12,20)'고 한다.
이 땅의 삶, 세월은 잠깐이요 끝이 있다.
그래서 의미없고, 허무한 것이 아니다.
끝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가?
끝이 있다는 것은 축복이다.
죽음이 공평하다는 것은 선인이나 악인이나 그냥 끝이라는 것이다.
이 땅의 삶이 끝나면 모든 것이 끝나는 것일까?
분명한 것은, 이 땅의 삶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이다.
우리는 이 배에서 저 배로 갈아타며 여행하는 사람들이다.
그러므로 죽음은 끝이 아니라 또다른 시작이며, 그 시작은 공평하다.
모두가 빈 손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죽음은 저주가 아니라 축복이다.
막연한 두려움 속에 빠져들어 인생을 낭비하고 싶지 않다면 '죽음을 기억하고, 묵상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