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녹색당 정책위 브리핑
동료 시민의 고통을 담보로 한 공간은 ‘사랑받는 장소’가 될 수 있을까
-서울로7017 개장에 부쳐
2017.5.20.
5월 20일, 서울로7017(서울역 고가도로 공원)이 드디어 개장했습니다. 서울역 고가도로의 재활용 논의가 본격화된 2014년 이후 3년만입니다. 1970년에 지어진 이 도로는 중림동, 만리동, 서계동 등 서울역 서쪽 지역과 남대문(퇴계로)을 잇는, 자동차 중심도시 서울을 대표하는 시설 중 하나였습니다. 서울시는 서울로7017을 두고 자동차 중심도시에서 보행 도시로 전환하는 상징인 동시에 교통중심지이자 도심 인근임에도 낙후되어 있는 서울역 주변지역 재생의 마중물이 될 것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빌딩 숲 사이에 펼쳐지는 230여 종의 식물과 걷기 좋은 거리. ‘철거’라는, 기억을 지우는 획일적 방식에서 용도를 바꿔 보존, 재사용하는 대안적 방식. 서울시의 기대대로 시민에게 사랑받는 새로운 명소가 생기는 것일까요?
이미 언론과 소셜미디어에서는 개장을 앞둔 서울로7017에 대한 걱정들이 보입니다. 화분과 보행로가 중첩되어 사람이 조금만 몰려도 걷기가 불편할 것이라는 지적, 콘크리트 덩어리에 박제처럼 갇힌 식물을 보는 것이 불편하다는 의견, ‘슈즈트리’ 논란으로 대표되는 디자인에 대한 아쉬움, 의미를 알기 힘든 ‘서울로7017’이라는 브랜드에 대한 지적까지 그 폭도 다양합니다. 서울녹색당 정책위원회는, 논란 가운데 이미 개장에 이른 이 공간은 물론, 앞으로 있을 서울의 공간 만들기가 보다 나아지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몇 가지 고민을 합니다. 과연 보행도시 만들기의 가장 좋은 방법이 이러한 랜드마크 건설일까. 공공의 대규모 토건 사업의 과정에서 시민참여는 적절하게 이루어졌을까. 그 운영과정에서의 시민참여는 단순히 공원 자체에 관리와 운영에 국한된 것일까. 오늘은 많은 고민 중 하나의 이야기를 공유하고 합니다.
서울로7017에 대한 이야기에 빠지지 않는 것은 뉴욕의 하이라인입니다. 하이라인은 방치된 노후 고가를 벤치와 나무가 있는 공간으로 꾸민 공원입니다. 하이라인 이전에도 노후 고가시설을 공원화한 사례는 있었지만, 뉴욕이라는 파급력 큰 도시의 하이라인이 성공한 이후 수많은 유사 계획이 세계 곳곳에서 벌어졌습니다. 서울로7017도 그 중 하나입니다.
뉴욕 하이라인 ⓒ pixabay
서울시는 서울로7017을 설명하면서 하이라인의 성공을 함께 이야기합니다. 하지만 하이라인 성공 뒤에 있는 젠트리피케이션에 대해서는 그리 주목하지 않는 듯합니다. 하이라인이 지나가는 지역은 과거 육가공 공장과 창고, 소규모 제조업, 서민주거지가 밀집한 공간이었습니다. 하지만 하이라인의 성공은 주변 부동산 가격을 천정부지로 솟게 만들었고 결국 그 부동산 가격을 감당할 수 없었던 기존 주민 대신 고급 레스토랑, 전시공간 등이 자리를 차지했습니다. 한 칼럼니스트는 가디언에 기고한 글에서 하이라인을 두고 “환경적 젠트리피케이션(environmental gentrification)”의 완벽한 사례라고 규정짓기도 합니다.
하이라인을 모델로 만들어진 서울로7017은 어떨까요? 서울역을 등지고 서면 대우빌딩, 미생빌딩으로 불리는 서울스퀘어, 세브란스빌딩, 포포인츠 쉐라톤 등 거대하고 화려한 빌딩들이 눈에 들어옵니다. 하지만 그 뒤로는 도심 주변의 몇 남지 않은 서민 주거지와, 봉제 작업장 등 소규모 제조업 시설이 밀집한 공간이기도 합니다. 서울로7017이 많은 유동인구를 끌어들이고 부동산 가치가 상승하고 나면 과연 이들이 계속 남아있을 수 있을까요?
서울시는 서울로7017의 필요성 중 하나로, 2008년부터 계획되었으나 금융위기 등의 이유로 지지부진한 상태에 있는 서울역 북부역세권 개발사업의 “최대한 빠른” 추진을 들고 있습니다. 북부역세권 외에도 서울역 주변엔 동자동과 서울역 남측 코레일 부지 등 크고 작은 개발계획들이 산재해 있습니다. 서울역7017의 성공이 개발에 추진력을 제공하리라는 사실은 자명합니다. 그 외에도 이미 서울역 서측 중림동 지역과 동측 동자동 지역의 개별 건물 소유주들은 낡은 건물을 고쳐 카페와 게스트하우스를 들이기 시작했습니다. 이미 경제 전문 언론에서는 인근지역 부동산 가치 상승을 이야기하며 투자가치를 따지기 시작했습니다.
서울시가 제시하는 서울로7017 개발의 ‘필요성’(서울로7017 홈페이지)
낙후한 지역의 ‘재생’을 위해 공공이 마중물 격의 대규모 사업을 벌이고 민간 자본이 그에 호응하여 자연스럽게 물리적 환경이 개선되는 것. 공공 재원으로 모든 개선을 할 수 없는 상황에서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는 재생의 공식입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의 이익이 어떻게 배분되고, 그 과정에서의 고통이 어떤 집단에 집중되는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합니다.
서울로7017을 공원시설로 보든, 거대한 보행로로 보든 공공에 의한 대규모 토건사업은 주변 부동산 가치를 상승시킵니다. 서울숲이 들어선 후 주변이 저층 주거지는 하나 둘 씩 아파트단지로 탈바꿈하고, 인근 대학생과 성수동에서 일하는 사람들에게 싼 값의 방을 제공하던 주택의 지하와 1층은 카페와 식당으로 바뀌어 갔습니다. (아마도)서울시민에게 사랑받는 장소 중 하나인 청계천 개발은 지지부진하던 도심재생을 가속화시킨 ‘공신’입니다. 하지만 그 뒤에는 대화와 합의의 시간표가 아닌 행정과 정치의 시간표대로 졸속 추진되는 과정이 있었고, 청계천에서 밀려난 상인과 영세 제조업 종사자들은 아직도 서울 곳곳에서 고통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서울시는 서울로7017의 계획과정에서 상품 운송로를 잃은 주변 봉제산업 종사자들과 충분히 협의하고, 남대문 상인들에게 자동차가 아닌 보행인구의 증가가 매출 증가를 가져올 것을 인지시켰다고 합니다. 그 결과 봉제지원센터 건립 등 봉제산업을 위한 지원책을 내놓기도 하고, 공원유입인구가 주변 상권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상인조직과 꾸준히 소통하고 있음을 밝혔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부동산 가치 상승에 따른 저소득층의 이탈을 막을 방법은 보이지 않습니다. 부동산 재산권이 지상최고의 가치처럼 여겨지는 한국에서 결코 명쾌한 결론이 있는 걱정은 아닐 것입니다. 하지만 계획부터 완공까지 걸린 3년의 두배, 세배 혹은 더 긴 시간이 걸리더라도 세입자를 포함한 거주민, 종사자, 전문가 그리고 시민들이 머리를 맞대고 대안을 마련했어야 하는 문제이기도 합니다. 개장과 동시에 이미 부동산 가격이 꿈틀대고 있는 상황에서는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선택지도 훨씬 줄어들게 될테니 말입니다.
서울로7017은 계획과정에서부터 논의과정의 거버넌스에 대한 논란을 시작으로, 조경 측면에서의 논란, 브랜딩에 대한 논란 등을 겪어왔고 겪고 있습니다. 분명 지금의 서울시 정부는 이전의 정부보다 시민과의 대화를 중시하는 정부임은 틀림 없습니다. 하지만 계획부터 완공까지 3년이라는 시간 속에 논란이 된 어떤 문제도 종결되지 못했습니다.
개장한 서울로7017이 누군가에게 ‘불편함’을 느끼게 하는 공간이 아니라 모든 시민에게 사랑받는 장소가 되기 위해서는 서울로7017 개발의 여파로 고통 받는 사람들의 목소리와 미래에 주목해야하지 않을까요? 동료 시민의 고통을 담보로 한 공간은 결코 편한 마음으로 거닐 수 없으니까요. 앞으로 서울로7017로 촉발될 서울역 인근의 재생 과정을 면밀히 지켜봐야하는 이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