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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반열반경(大般涅槃經)(D16)-47
부처님의 마지막 발자취들
Mahāparinibbāna Sutta(D16)
여래의 마지막 유훈
6.1. 그때 세존께서는 아난다 존자를 불러서 말씀하셨다. "아난다여, 그런데 아마 그대들에게 '스승의 가르침은 이제 끝나 버렸다. 이제 스승은 계시지 않는다.'라는 이런 생각이 들지도 모른다. 아난다여, 그러나 그렇게 봐서는 안된다. 아난다여, 내가 가고난 후에는 내가 그대들에게 가르치고 천명한301) 법과 율이 그대들의 스승이 될 것이다. "302)
6.2. "아난다여, 그리고 지금 비구들은 서로를 모두 도반(āvuso)이라는 말로 부르고 있다. 그러나 내가 가고난 후에는 그대들은 이렇게 불러서는 안된다. 아난다여, 구참(舊參) 비구는 신참 비구를 이름이나 성이나 도반이라는 말로 불러야 한다. 신참 비구는 구참 비구를 존자(bhante)라거나 장로(āyasmā)라고 불러야 한다. "303)
6.3. "아난다며, 승가가 원한다면 내가 가고난 후에는 사소한[雜碎]304) 학습계목들은 폐지해도 좋다. "305)
6.4. "아난다여, 내가 가고난 후에 찬나 비구306)에게는 최고의 처벌307)을 주어야 한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어떤 것이 최고의 처벌입니까?"
"아난다여, 찬나 비구가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말하더라도 비구들은 결코 그에게 말을 해서도 안되고, 훈계를 해서도 안되고, 가르쳐서도 안된다."
6.5. 그리고 나서 세존께서는 비구들을 불러서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 어느 한 비구라도 부처나 법이나 승가나 도나 도닦음308)에 대해서 의심이 있거나 혼란이 있으면 지금 물어라. 비구들이여, 그대들은 '우리의 스승은 면전에 계셨다. 그러나 우리는 세존의 면전에서 제대로 여쭈어 보지 못했다.'라고 나중에 자책하는 자가 되지 말라." 이렇게 말씀하셨지만 비구들은 침묵하고 있었다.
두 번째로... 세 번째로 세존께서는 비구들을 불러서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 어느 한 비구라도 부처나 법이나 승가나 도나 도닦음에 대해서 의심이 있거나 혼란이 있으면 지금 물어라. 비구들이여, 그대들은 '우리의 스승은 면전에 계셨다. 그러나 우리는 세존의 면전에서 제대로 여쭈어 보지 못했다.'라고 나중에 자책하는 자가 되지 말라." 이렇게 말씀하셨지만 비구들은 [여전히] 침묵하고 있었다.
그러자 세존께서는 비구들을 불러서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 만일 그대들이 스승에 대한 존경심 때문에 묻지 않는다면 도반들끼리 서로 물어보도록 하라." 이렇게 말씀하셨지만 비구들은 [여전히] 침묵하고 있었다. 그러자 아난다 존자가 세존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6.6. "세존이시여, 참으로 경이롭습니다. 세존이시여, 참으로 놀랍습니다. 세존이시여, 이 비구 승가에는 부처님이나 법이나 승가나 도나 도닦음에 대해서 의심이 있거나 혼란이 있는 비구는 단 한명도 없다고 제게는 청정한 믿음이 있습니다."
"아난다여, 그대는 청정한 믿음으로 말을 하는구나. 아난다여, 참으로 여기에 대해서 여래에게는 '이 비구 승가에는 부처님이나 법이나 승가나 도나 도닦음에 대해서 의심이 있거나 혼란이 있는 비구는 단 한명도 없다.'는 지혜가 있느니라, 아난다여, 이들 500명의 비구들 가운데 최하인 비구가 예류자이니309) 그는 [악취에] 떨어지지 않는 법을 가지고 [해탈이] 확실하며 정등각으로 나아가는 자이다."
6.7. 그리고 나서 세존께서는 비구들을 불러서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 참으로 이제 그대들에게 당부하노니, 형성된 것들은 소멸하기 마련인 법이다. 방일하지 말고 [해야 할 바를 모두] 성취하라!310)"
이것이 여래의 마지막 유훈이다.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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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1) 주석서에 의하면 여기서 ‘가르치고 천명한’은 법과 율에 모두 다 적용되어, '내가 가르치고 천명한 법'과 '내가 가르치고 천명한 율'로 해석해야 한다고 한다. (DA.ii.591)
302) 세존의 마지막 말씀 가운데 제일 처음이 '법(dhamma)과 율(vinaya)이 비구들의 스승'이라는 귀하고도 귀한 말씀이다. 그러면 어떤 것이 법이고 어떤 것이 율인가? 주석서에서는 다음과 같이 구체적으로 경·율·론 삼장으로 법과 율을 설명하고 있다.
"나는 그대들에게 '이것은 가벼운 것이다. 이것은 무거운 것이다. 이것은 회과(悔過)할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은 회과할 수 없는 것이다. 이것은 일반적인 잘못이다. 이것은 개념적인 잘못이다. 이러한 범계(犯戒)는 개인의 앞에서 [참회하여] 벗어난다. 이러한 범계는 승가의 앞에서 [참회하여] 벗어난다.'라고 확정하였다. 이처럼 중생의 범계의 무더기를 갖춘 사건들에 대한 『칸다까」(犍度,品)와 『빠리와라』 (附錄, 주석서들과 복주서들에서는 이 둘을 아비위나야(Abhivinaya)라고 이름하기도 한다)와 더불어 두 가지 『위방가』 (비구계와 비구니계에 대한 분석)인 율(vinaya)을 설하였다. 이 전체 율장이 내가 반열반하고 나면 그대들의 스승의 역할을 할 것이다.
나는 그대들에게 '네 가지 마음챙김의 확립[四念處], 네 가지 바른 노력 [四正勤], 네 가지 성취수단[四如意足], 다섯 가지 기능[五根], 다섯 가지 힘[五力], 일곱 가지 깨달음의 구성요소[七覺支], 여덟 가지 구성요소로 된 성스러운 도 [八正道]'라는 이러한 가르침을 확정하였다.(이 37보리분법에 대해서는 "청정도론』 XXII.33 이하와 아비담마 길라잡이」 7장 §§ 24~33을 참조할 것) 이처럼 이러한 법들을 분석하고 분석한 뒤에 경장을 설하였다. 이 전체 경장이 내가 반열반하고 나면 그대들의 스승의 역할을 할 것이다.
그리고 나는 그대들에게 다섯 가지 무더기들[蘊], 12가지 감각장소들[處], 18가지 요소들[界], 네 가지 진리들[諦], 22가지 기능들[根], 아홉 가지 원인들[因], 네 가지 음식[食], 일곱 가지 감각접촉[觸], 일곱 가지 느낌[受], 일곱 가지 인식[想], 일곱 가지 의도[思], 일곱 가지 마음[心]을 확정하였다. 여기서 이러한 법들은 욕계에 속하고, 이러한 법들은 색계에 속하고, 이러한 법들은 무색계에 속하고, 이러한 법들은 [세속에] 속하는 것이고, 이러한 법들은 [세속에] 속하지 않는 것이고, 이러한 법들은 세간적인 것이고, 이러한 법들은 출세간적인 것이라고 확정하였다. 이러한 법들을 분석하고 분석한 뒤 24가지 전체 빳타나(paṭṭhāna, 상호의존, 『아비담마 길라잡이』 8장 §11 이하 참조)를 끝이 없는 방법으로 큰 빳타나로 장엄하여 논장을 설하였다. 이 전체 논장이 내가 반열반하고 나면 그대들의 스승의 역할을 할 것이다."(DA.ii.592)
303) 세존의 두 번째 마지막 유훈은 호칭에 대한 것이다. 세존이 살아계실 동안은 존자(bhante)라는 호칭은 은사 스님 등에게도 사용되었지만 대부분 세존을 지칭하는 호칭으로 쓰였다. 이제 세존께서 반열반에 드시면 신참 비구들은 구참 비구들을 모두 존자(bhante)로 불러라는 말씀이시다.
한편 bhante는 예외 없이 호격으로만 쓰이고 있고 āyasmā는 거의 대부분 장로 스님들의 이름 앞에 쓰여서 āyasmā Ānando(아난다 존자), āyasmā Sāriputto(사리뿟따 존자) 등으로 나타나고 있다. 본서에서는 bhante와 āyasmā 둘 다를 모두 '존자'로 옮기고 있다. 단 bhante가 세존께 대한 호칭일 때는 '세존이시여'로 구분해서 옮기고 있다. 그리고 thera 는 장로로 옮겼다.
304) 사소한 것[雜碎, khudda-anukhuddaka]은 비구계목의 일곱 가지 항목 가운데서 4바라이죄(pārājikā)를 제외한 나머지들이라고 설명한다.(DA ii.592) 여기에 대해서는 「청정도론」 1.27의 주해를 참조할 것. 그러나 주석서는 『밀린다왕문경』에서 나가세나 존자가 어떤 것이 사소한 것인지 결정하기 힘들다고 한 것을 덧붙여 소개하고 있다.(Ibid)
한편 세존이 입멸하신 뒤 마하깟사빠(대가섭) 존자를 위시한 일련의 스님 들이 아난다 존자를 비난한 것 가운데 하나가 세존께 어떤 것이 사소한 계인지 여쭙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처럼 초기부터 어떤 것이 사소한 계인지를 결정하는 것은 비구 승가 안에서도 논란거리였음이 분명하다.
305) “그러면 왜 세존께서는 '폐지하라(samūhanatha)'고 전적으로 말씀하시지 않고 '원한다면... 폐지해도 좋다(samūhantu)'라고 말씀하셨는가? 세존께서는 '폐지하라'고 해도 결집 때 깟사빠(가섭) 존자가 폐지하지 않을 것이라고 아셨기 때문에 이렇게 선택할 수 있는 말씀(vikappa-vacana)을 하셨다."(DA.ii.593)
복주서에서는 "만일 원하지 않는다면 버리지 않아도 된다."(DAT.ii.238) 는 말씀이라고 적고 있다. 비록 부처님께서는 이렇게 사소한 것은 버려도 된다고 하셨지만 마하깟사빠 존자 등의 직계제자인 장로 스님들이 부처님이 제정하신 계를 얼마나 귀중하게 여겼는지를 알 수 있다. 이런 전통은 지금까지 면면히 이어져 남북의 모든 불교 교단에서 계목은 하나도 버리지 않고 그대로 지니고 있다. 한편 『청정도론』 1.98에서는 비구들은 세존에 대한 믿음으로 받아 지녀 학습계목을 철저하게 수지한다고 적고 있다. 사소한 계목이라 할지라도 모두 지키려고 노력하는 것이 바로 세존에 대한 절대적인 믿음의 표시이기 때문이다.
306) 부처님이 출가할 때 마부였던 찬나(Channa)이다. 그는 부처님께서 성도 후에 까빨라왓투를 방문하셨을 때 출가하였다. 장로게 주석서에 의하면 그는 부처님과 법에 대한 집착과 자만심이 너무나 강해서 출가의 이익을 체득할 수 없었다고 한다. (ThagA.i.155) 율장에는 그의 자만심과 제멋대로 하는 성질을 언급한 곳이 몇 군데 있다.(Vin.ii.23ff.; iv.35; 113; 141 등)
307) '최고의 처벌'로 옮긴 원어는 brahmadaṇḍa이다. 이 문맥에서도 보듯이 이 처벌은 일종의 집단 따돌림으로 원어 그대로 최고(brahma)의 처벌 (daṇḍa)이다. 그래서 PED에서도 'temporary deathsentence(한시적 사형선고)'라고 적고 있다. 세존께서는 찬나와의 인연을 중히 여기시어 임종시의 마지막 침상에 누우셔서도 그를 구제할 방법을 찾으셨다. 그래서 유훈으로 그에게 최고의 처벌을 내리라고 말씀하고 계신다. 율장에 의하면 찬나 비구는 이 처벌을 받고 정신이 들어서 자만심과 제멋대로 하는 성질을 꺾고 홀로 한거하여 열심히 정진하였으며 마침내 아라한이 되었다고 한다. (Vin.ii.292) 부처님의 대자대비를 실감케 하는 대목이다.
308) '도'로 옮긴 원어는 magga이고 '도닦음'으로 옮긴 원어는 paṭipadā이다. 이 둘의 차이는 본서 제1권 「마할리 경」 (D6) §14의 주해를 참조할 것
309) "최하인 자(pacchimaka)'란 덕(guṇa)에 의해서 최하인 자이다. 아난다 존자를 두고 한 말이다."(DA.ii.593) 아난다 존자는 아직 예류자에 머물고 있기 때문이다.
310) 이 말씀은 부처님의 최후의 유훈으로 모든 불자들 가슴에 남아 있는 말씀이다. 세존께서는 석 달 뒤에 열반에 드실 것을 예고하신 후에도 이 말씀을 하셨다.(본경 $3.51 주해 참조) 주석서는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방일하지 말고 [해야 할 바를 모두] 성취하라.'는 것은 마음챙김의 현전 (sati-avippavāsa)을 통해서 해야 할 바를 모두(sabbakiccāni) 성취하라는 말씀이다. 이와 같이 세존께서는 반열반하시는 침상에 누우셔서 45 년 동안 주셨던 교계(敎誡, ovāda) 모두를 불방일(不放逸,appamāda) 이라는 단어에 담아서 주셨다."(DA.ii.593)
복주서에서는 "그런데 이것은 뜻으로는 지혜를 수반한(ñāṇūpasañhitā) 마음챙김이다. 여기서 마음챙김의 작용(vyāpāra)은 굉장한 것(sātisaya) 이기 때문에 그래서 마음챙김의 현전이라고 설명하였다. 전체 부처님의 말씀을 다 포괄하고 있기 때문에 '불방일(appamāda)이라는 단어에 담아서 주셨다."(DAT.ii.239)고 설명하고 있다. 한편 현전(現前)으로 옮긴 avippavāsa는 a(부정접두어) + vi(분리해서) + pra(앞으로) + √vas(to stay)에서 파생된 명사 혹은 형용사인데 '부재중이 아닌'이라는 문자적인 의미에서 '주의 깊은, 유념하는, 현전하는' 등의 의미로 쓰인다. 한편 『장부 주석서」의 다른 곳에서는 "불방일이란 마음챙김의 현전(마음챙김에 의한 현전)을 말한다.(appamādo vuccati satiyā avippavāso)" (DA.i. 104)라고 해석하고 있다. 그래서 마음챙김의 현전으로 옮겼다.
여기서도 보듯이 불방일과 동의어인 마음챙김(sati)의 현전이야말로 부처님 45년 설법을 마무리하는 굉장한(sātisaya) 가르침이라고 주석서와 복주서는 강조하고 있다.
311) 불방일(不放逸), 즉 마음챙김의 현전을 통해서 성취해야 할 것을 성취하라는 것이 세존께서 마지막으로 하신 말씀이다. 이것은 앞 $3.51에서 비구들에게 석 달 뒤에 입멸할 것이라고 말씀하시면서도 하신 말씀이다. 한편 아비담마에서는 불방일을 구경법으로 간주하지 않는다. 여기서 보듯이 불방일은 마음챙김(sati)의 동의어로 간주하기 때문이다. 아비담마에서는 마음챙김을 유익한 마음부수법으로 분류하고 있는데, 이처럼 비구들이 성취해야 할 열반을 성취하게 하는 가장 중요한 심리현상이기 때문이다. 『아비담마 길라잡이』 2장 <도표 2.1>과 §5의 해설 2를 참조할 것
[출처 - 초기불전연구원]
Ciraṁ tiṭṭhatu lokasmiṁ sammāsambuddhasāsanaṁ.
(이 세상에 부처님 교법이 오래 오래 머물기를!)

첫댓글 사두 사두 사두
사두 사두 사두 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