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장례풍습에는 특이한 게 하나 있다.
내가 초등학교 3학년 때 바로 밑에 초등학교 1학년 여동생이 갑자기 죽었다.
그러자 아버지는 이른 아침 해가 뜨기 전에 가마니로 둘둘 말아서 지게에 지고 산으로 가서 묻고 돌아오셨다.
이런 장례를 보고 ‘애창’ 이라고 불렀다.
인도를 여행할 때 ‘바라나시’ 라는 고대도시를 방문했었다.
도시 옆에는 갠지스강이 흐르고 있어 강가에서 다양한 의식이 행해지는 유명한 관광지이다.
이곳에서는 ‘수장’ 이라는 풍속이 있는데 어린이는 갠지스 강에 시신을 던짐으로서 장례는 끝이 난다.
조선시대 조정에서는 사람을 죽이는데도 아주 특별한 방식을 사용하였다.
산 사람을 그대로 물에 집어던져 익사시켜서 죽이는 거다.
천주교 박해 때 서울 절두산에서 한강으로 수많은 신자들을 던져서 익사시켰다.
병인박해 때는 나이에 관계없이 천주교신자들을 죽여 버렸다.
국법을 이유로 나이 15세(성인)에 이를 때까지 처형을 미루고 옥살이를 시키다가 15세가 지나면 처형하였던 거다.
전주에 가면 그 현장이 두 곳 남아 있다.
초록바위와 서천교이다.
도시개발로 그 흔적은 찾을 수 없지만 그 장소로 추정되는 곳에 순교모자이크를 설치하여 순교자를 기리고 있다.
초록바위는 남종삼의 큰 아들 남명희를 교수형으로 죽인 다음 전주 천에 수장시켰던 장소이다.
할아버지 남상교, 아버지 남종삼, 손자 남명희가 순교함으로서 3대가 순교의 영광을 얻은 집안이다.
서천교는 조윤호 성인의 순교터이다.
그의 나이 18세에 전주 서문 밖 서천교 사형장에서
모진 매를 맞고도 죽지 않자 노끈으로 목 졸라 죽이고 전주 천에 수장시킨곳이다.
순교현장이지만 도로가 개설되는 등 도시개발로 초록바위와 서천교는 없어지고
실개울로 변한 전주천만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순교당시를 모자이크 벽으로 만들어놓아서 그나마 당시의 순교상황을 그려 볼 수 있었다.
도대체 하느님이 누구인가?
온가족이 몰살죽음을 맞이하면서까지 천주를 찾았을까.
고대 그리스의 역사학자인 헤로도토스는 <신들의 계보>에서 그리스 신들의 가계도를 만들었다.
하느님은 그리스 신들 위에 존재하는 창조주이며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분이다.
세상 끝날 까지 나와 함께 하시는 분이다.
그래서 순교자들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던 거다.
하느님을 품고 살았으니 3대가 죽임을 당하는 멸문지화(滅門之禍)를 당해도
하느님을 배반하지 않고 현존을 드러냈던 거다.
현재는 박해시대가 아니다.
편리함과 세속의 물적 유혹이 하느님으로부터 단절시키려고 호시탐탐 노리고 있다.
이를 이겨내는 힘은 하느님을 찾아나서는 순례의 길에 있다.
순교성인들이 보여준 순교신앙을 본받아
그런 믿음으로 살겠다고 다짐하고 묵상하기 위해서 한 겨울에도 성지를 찾아나서는 거다.
새해 들어서 청주교구 야고보 성지순례단장 김계애 아가다 단장님께 감사를 드린다.
팔순이 지난 연세에도 불구하고
우리들을 순례의 길로 이끌고 계시니 하느님께서 건강을 주시고 지켜주시는 게 분명하게 맞다.
그 분의 열정을 보면서 임마누엘 하느님을 만나는 거다.
첫댓글 찬미 예수님!
잠자는 영혼 잠을깨우고
밈음없는 영혼에게 하느님께 가까이가겠금
길인도함니다~~*
청주 교구 사도 성 야고보 순례가족님들 정말 사랑해요♡♡
이 글 주신김병철 가브리엘 형제님~~!
하느님 말씀 전해주심에 깊이 감사함니다...♡
이 공동체를 사랑해주세요 아멘*♡*
아멘
범사에 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