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 웨이'로 6년만에 돌아온 강제규 감독 인터뷰
내 프로젝트로 할리우드 벽 깨고 싶었는데… 그래도 도전은 계속
한계에 맞닥뜨린 한·중·일 영화시장 함께 머리 맞대야
강제규(49)가 돌아왔다. 데뷔작 '은행나무침대'(1996), 한국 영화 르네상스의 포문을 연 '쉬리'(1999), 최초의 1000만 관객시대를 연 '태극기 휘날리며'(2004). 단 세 편의 영화로 충무로의 패러다임을 바꿨다는 환호와 지지를 받았지만 그는 이후 미국 LA에서 두문불출(杜門不出)했다. 숙원이었던 할리우드 진출 때문이었다.그리고 지난달 열린 부산국제영화제에서는 장동건·오다기리 죠가 주연하는 300억원 규모의 한·중·일 합작영화 '마이 웨이(My Way)'로 강 감독이 복귀한다는 소식이 발표됐다. 강 감독을 16일 만났다. 6년 만의 컴백과 6년 만의 공식 인터뷰. 그는 "'태극기…' 이후 언론 인터뷰를 사양해 왔다"면서 "내 영화로 다시 관객들을 만날 때까지 기다렸다"고 했다. 그가 처음으로 털어놓는 새 영화에 대한 설계도와 할리우드에서 얻은 교훈.
- ▲ 강제규 감독은“토니 스캇(탑건, 언스토퍼블)은 할아버지 감독이지만 아직도 10대 관객들이 열광한다”면서“중요한 건 나이가 아니라 감독이 얼마나 자기 변화를 시도하고 노력하느냐의 문제”라고 했다. /이진한 기자 magnum91@chosun.com
"단순히 할리우드가 제안하는 영화의 연출만 맡았다면 벌써 많은 영화를 찍었을 것이다. 올 초에 앤젤리나 졸리가 주연한 '솔트(Salt)'를 보면서 내가 그냥 할 걸 하는 생각도 들었다(웃음). 원래 '솔트'는 내게 연출 제안이 들어왔던 작품이었으니까. 하지만 나는 내가 준비한 프로젝트로 할리우드의 벽을 깨고 싶었다. '금의환향'이라…. 사실, 내가 제일 아쉽다. 하지만 끝났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거기에 바친 시간, 현재 내 심정, 앞으로의 계획을 볼 때 '할리우드'는 계속 진행 중이다."
―왜 실패했다고 생각하나.
"두 가지가 있다. 첫째, 2000년대 초반부터 할리우드에서는 미들 버짓(Middle budget·3000~7000만달러의 중간 규모 제작비) 영화 제작이 쉽지 않았다. 흥행에 계속 실패했던 것이다. 그 시기에 내가 미국에 갔고, 내가 원래 준비했던 SF '요나'(삼국유사에서 모티브를 따온 판타지)는 그 제작비 규모 안에 있었다. 둘째, 결국 할리우드 스튜디오는 자신의 룰과 틀로 움직인다는 것. 그리고 단순·명료한 영화들을 좋아한다는 것이다. 내 '요나'는 상업영화였지만 할리우드에서 볼 때는 조금 진지하거나 어려울 수도 있다. 처음 2년간은 설득할 수 있다고 믿었다. 하지만 점차 깨닫게 됐다. 강제규 개인을 원해서 자기들 프로젝트에 혹시 연출을 시킬지는 몰라도 내 프로젝트를 하려는 마음은 작다는 것을."
―'마이 웨이'를 하게 된 계기는.
"할리우드의 벽 때문에 이렇게 흔들리는 시기에 작가 김병인씨가 쓴 '마이 웨이' 시나리오를 보게 됐다. 처음에는 후배 감독에게 연출을 시키고 제작만 맡을 생각이었다. 그런데 한국에서 작가들을 (LA로) 불러들여 시나리오를 발전시키다 보니 상당히 매력적이었다. 우선 꾸며내더라도 힘든 이야기인데 실화라는 것. 일제 강점기 관동군으로 강제 징집되어 일본군·소련군·독일군으로 군복을 바꿔 입어야 했던 기구한 운명의 조선 청년이 있었다. 그는 노르망디 전투에 참여해 미군 포로가 된다. 영화는 극단적인 대립관계에 있던 조선 청년과 일본인 청년이 2차대전의 소용돌이 속에 인간을 이해하고 친구가 되어가는 이야기다. 또 상투적인 피해자·가해자 구조가 아니라 새로운 역사의식과 미래 지향적 메시지를 한·일관계에 던지고 싶다는 욕심도 있다."
―구체적으로 어떤 일정이 남아 있나.
"10월 15일부터 (전북) 새만금에서 촬영을 시작했는데, 현재 22회차 촬영까지 마쳤다. 모두 156회차 예정이다. 내년 6월에 촬영을 마칠 예정이다. 개봉은 내년 12월. 제작비는 순제작비가 260억5000만원, (마케팅비 등을 포함한) 총제작비는 300억원 규모다. 중국이 제작비 20%를 투자한다."
―제작비가 '놈놈놈'이나 '해운대'의 두 배 규모다. 그렇다면 도대체 몇 만명이 들어야 손해가 나지 않는 영화인가.
"이 영화는 한국 관객만 겨냥했다면 만들지 말아야 할 영화다. 1000만 관객이 들어야 이븐(본전)이 되는 영화니까. 그런데도 투자자들이 투자하는 이유는 한국과 중국과 일본을 아우르는 시장에서 가능성이 있다고 본 것 같다."
―'태극기…' 이후에 또 전쟁영화인가.
"정말로, 절대로, 다시는 전쟁영화 안 하겠다고 그렇게 말하고 다녔는데, 또 하리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사실 촬영 현장도 전쟁만큼 힘들다(웃음). 장르는 유사할지 모르지만 시각이 다르고 주제가 다르다. 분명 새로움을 느낄 수 있는 영화가 나올 것이다."
―20대 초반 관객에게 이제 '강제규'라는 이름은 낯설 것이다.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미소 지으며) 간단하다. 그 친구들이 열광할 수 있는 영화를 만들면 된다. 10·20대 관객이 특정 재미만을 원한다고 판단하는 건 편견이다. 사실 그들은 '맛있는 음식'을 먹을 준비가 되어 있는데, 우리가 제대로 요리를 못 만드는 것일 뿐이다. 감독이 끊임없이 자기 변화를 시도하고 노력하면 해결할 수 있다."
―'은행나무 침대'(1996) 이후 14년 동안 겨우 세 편 만들었다. 한국 영화 침체기에 직무 유기 아닌가.
"나는 개인적으로 긍정적인 성향이 강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데, 영화를 들여다보는 눈은 부정의 시선이 컸던 것 같다. 마음을 조금 비우면 외부의 시나리오나 프로젝트에도 장점이 많이 보일 텐데. 결국은 마음을 못 비운 것이다. 얼마 전 김용화 감독('국가대표' '미녀는 괴로워')과 '디렉터스'라는 회사를 만들며 약속했다. 2년에 한 편씩 10년 동안 두 사람 합쳐 10편을 만들기로. 약속, 꼭 지키겠다."
―'쉬리'(1999) 이후 한국 영화가 소위 가내수공업에서 산업시스템으로 바뀌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시장의 한계에 직면한 지금 다시 그 패러다임이 한계에 부딪혔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어떻게 돌파할 것인가.
"한국뿐만 아니라 중국과 일본도 마찬가지다. 중국 영화시장은 지금까지 매년 30~40%씩 성장했지만 그들도 알고 있다. 곧 한국처럼 한계에 부딪힐 것이라는 것을. 어떤 특정 국가의 영화가 지배구조를 가진다는 관점으로 '한류'를 봐서는 곤란하다. 한·중·일이 끈끈하게 접점을 찾아야 하고, 같이 머리를 맞대고 답을 찾아야 한다. 시장은 커졌는데, 잘못하면 파이는 고스란히 할리우드로 넘어간다. 그 지점에서 '마이 웨이'가 한 역할을 했으면 좋겠다는 소망이 분명히 있다."
☞ 영화 ‘마이 웨이’는…
일제 강점기 제2차 세계대전에 휩쓸린 한국과 일본의 두 젊은이의 기구한 운명과 그들이 꿈을 찾아가는 전쟁 드라마.
어린 시절 아버지를 따라 조선에 이사 온 소년 다쓰오는 자신처럼 달리기를 좋아하는 조선인 소년 준식을 만난다. 마라톤 라이벌이 된 두 청년. 올림픽 마라톤 선발전에서 준식은 간발의 차이로 다쓰오를 따돌리지만 일본육상연맹의 계략으로 다쓰오가 우승한다. 하지만 2차대전이 격화되며 준식은 관동군으로 강제 징집당하고, 다쓰오는 새로운 수비대장으로 부임한다. 이후 일본군·소련군·독일군으로 군복을 바꿔 입어야 했던 기구한 운명의 조선 청년 준식과 그의 파란만장한 여정을 함께 하는 일본 청년 다쓰오. 장동건, 오다기리 죠, 판빙빙 주연. 제작비 300억원의 초대형 전쟁영화이자 한·중·일 3국의 아시아 프로젝트다. 2010년 10월 15일 촬영 시작. 2011년 12월 개봉 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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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동건 헐리우드 영화 개봉하든데 내년에 또 개봉 되는 영화가 있군요~한국영화 화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