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
이사는 생각만 해도 번거롭고 버거운 일이다. 그래서 나는 그동안 살고 있던 집을 다시없는 안식처로 여기며 이곳을 떠나지 않기로 다짐을 하면서 살아왔다. 그런데 늦바람이 나서 그 다짐이 어이없이 허물어지고 말았다.
올해 나의 신상에서 일어난 가장 큰 변화를 든다면 역시 대전으로 이사 온 일을 들지 않을 수 없을 것 같다. 요즘은 집을 늘리는 수단으로 이사를 밥 먹듯 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고 한다.
그뿐 아니라 이제는 이민도 이웃집 마을 가듯 하는 세상이 아닌가. 그런데 비하면 나의 경우는 모처럼 엎드리면 코 닿을 데로 이사한 것이 무슨 이야깃거리가 되느냐고 하면 그럴지도 모른다. 그러나 성격이 고식적이라고나 할까. 텃새처럼 한자리에 오랫동안 머물러 살다 보니 이사하는 일이 번거롭기 이를 데 없었다.
그동안 나는 한 20년쯤 전에 집을 옮긴 것이 마지막 이사였다. 허나 그때는 같은 시내에서 이웃이나 다름없는 지척의 거리여서 대수롭지 않게 짐을 옮겼던 것이다. 그때는 또 집을 늘려가는 경우여서 이삿짐을 줄이고 말고 할 것이 없어서 별로 신경을 쓸 일이 없었다.
이번에는 그때와는 반대의 경우여서 묵은 세간은 처음부터 미련을 갖지 않기로 했다'가구도 가족'이라는 업계의 선전문구가 아니더라도 그동안 우리 관습은 가구에 대해서 유별난 애착을 가졌던 것은 사실이다. 가재도구는 대개 대를 이어 물려주고 물려받는 것으로.
그런데 이제는 우리의 사정이 많이 달라진 것 같다. 기호나 유행이 자주 바뀌기 때문에 묵은 세간은 숫제 골동품 취급을 하기가 일쑤다. 그래서 나도 이번에 이들을 별 미련 없이 과감하게 도태시켰던 것이다. 좁은 집이었으므로 과감하지 않고서는 별수 없는 노릇이었다.
그밖에 오랫동안 취미삼아 가꿔온 관상용 화훼 등은 친지나 이웃에게 나눠주었다. 그동안 꼬박꼬박 모아두었던 신문이며 각종 수집물들은 대부분 고물상에서 가져가서 짐을 많이 덜어주었다.
그리고 몇 상자나 되는지도 잘 알지 못하는 편지 뭉치는 함부로 내돌릴 성질의 것이 아니어서 모조리 태워버렸다. 많은 사연들이 흔적도 없이 연기로 사라졌다. 이것도 일종의 현대판 ‘분서사건‘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 잠시 쓴웃음을 지었을 뿐이다.
그동안 나는 신문이나 팸플릿 한 장까지도 허술하게 여기지 않고 꼬박꼬박 모았었다. 그런데 동기나 이유도 시답잖은 한 번의 이사가 사람의 성격을 송두리째 뒤집어 놓은 것이 아닌가. 이제는 변해봤자인 늙은이의 그것에 지나지 않지만 말이다.
사실 이번의 나의 이사는 불가피한 사정이 있는 것은 아니어서나 자신도 모르게 늦바람이 난 것으로 여기고 있는 터였다. 그리하여 한동안 망설임 끝에 일단 자리를 뜨기로 결정을 했던 것이다. 그동안 내가 봉직했던 직장은 집에서 도보로 10분 남짓 걸리는 지척의 거리였다. 이 거리를 나는 날마다 자전거로 통근을 했기 때문에 공직생활을 그지없이 편하게 한 셈이다. 그런데 비 개이면 우산은 모르쇠 하는 격으로 정년을 하고 나자 생각이 좀 달라졌다. 이제는 굳이 물러난 직장 가까이에서 사는 것이 의미가 없는 것으로 여겨졌던 것이다. 남들에게는 몇 가지 구실을 내세워서 탈 고향(故鄕)의 변명을 늘어놓기는 했지만. 사실은 그대로 머물러 있는 것이 노후에 마음 편하게 사는 길이고 정든 고향을 지키는 일일는지도 모르는데……
하여간 정년으로 현직을 물러나면서 이내 가대를 중개업자에게 내놨다. 1975년도에 헌집을 털어내고 그 자리에 내 손으로 지은 남향받이의 아늑한 집이었다. 이 집을 뜨는 것이 서운하기는 했지만 나이가 들수록 넓은 정원이며 온실의 관리가 힘겨웠다. 그리고 그런 일에 소요되는 시간은 순전히 낭비처럼 생각되어 아까운 마음 그지없었다.
한편 집을 지은 지가 15년이 넘어서 난방용 배관이 신경을 쓰게 했다. 그때만 해도 파이프의 질이 그다지 우수하지는 못했다. 그래서 이 노후한 파이프를 모조리 교체하려면 이만저만 번거로운 일이 아닐 것 같았다. 또 근년에 와서 밤손님이 가끔 넘실거리는 것도 그 집에 대한 정을 떼게 했다.
집을 내놓은 지도 2년이 훨씬 넘었다. 그동안 중개인들은 주살나게 드나들었지만 적극적으로 덤벼드는 전주를 물지 못하는지 번번이 함흥차사였다. 안 팔리면 그대로 머물러 살 셈으로 느긋하게 생각하고 있는 참인데 지난 5월 초이던가 중개인이 한꺼번에 세 사람을 물어왔다. 공유지분으로 사서 연립주택을 짓는다는 것이었다. 이렇게 해서 오랜 과제가 풀린 것이다. 나는 《공주소식》지의 웅진춘추 칼럼 ‘고향을 뜨면서’에서 이런 사연들을 다음과 같이 간략하게 언급한 일이 있다. ‘그동안 숙제로 남아 있던 가대가 갑자기 정리되어서 사정이 급변하게 된 것이다’ 라고.
그 시각부터 이사할 일로 머릿속이 꽉 차기 시작했다. 옮겨 앉을 방향은 미리부터 정해놓고 있었지만 우선 집을 되잡는 일이 급했다. 옷 한 벌, 구두 한 켤레 고르는 데도 나는 한동안 망설이는 성미다. 주택의 경우에는 더 말할 나위도 없는 일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미흡하나마 지금의 집으로 옮기기로 내외가 합의를 하고 이내 짐을 꾸리기 시작했다.
집의 규모를 줄였기 때문에 가구며 수집품들을 과감하게 도태한 경위는 앞에서 밝힌 바와 같다. 그런데 끝까지 결정을 못짓고 망설인 문제는 서책이었다. 비좁은 집에 책을 모조리 끌고 갈 것이냐 아니면 일부 또는 전부를 도서관에 넘길 것이냐 하고.
젊은 시절에는 나름대로 책벌레를 자처하면서 욕심을 내며 수집한 것들이다. 이제 와서는 이것들이 거추장스러운 애물단지가 되리라고는 상상도 못했던 일이다. 대학 강단에서 물러난 어떤 저명한 학자가 언젠가 :기증도서가 고맙기는 하지만 귀찮다“고 푸념하는 말을 들었다. 소생도 물러난 처지이기는 하지만 한때는 집장의 처지였다. 이제와서는 그분의 말이 수긍이 가는 것 같아서 그분의 선언지명(先言之明)에 공감했다고나 할까.
다른 가족들은 한결같이 기증 쪽으로 기울어 있었다. 그것도 집요하게. 세월이 지나면 앞으로는 책들을 받아줄 도서관도 없을 거라는 가공스러운 말까지 튀어나왔다. 나도 그 말에는 반박할 자신이 없었다. 요즘 세상은 온통 기계화, 자동화의 추세로 치닫고 있는 느낌이다. 그리하여 이제는 활자를 한 자 한 자 주워 읽는 독서 따위는 아예 무시하는 경향인지도 모른다. 독서(讀書)가 독서(瀆書)가 된 세상이라고나 할까. 그러나 아무리 세태가 그렇다 하더라도 나의 속셈으로는 서재 없는 만년이 너무 허전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그동안도 그러했듯이 책은 서가에 치장으로 꽂아만 놓는 한이 있더라도.
그래서 나는 대강 책을 추려가며 짐을 꾸리기 시작했다. 언젠가는 꼭 읽으리라고 마음먹고 사놓은 책들인데 그 결의가 무색하게 오랫동안 먼지 속에서 낮잠 자는 책들이 많았다. 책이 생명이 없는 무생물이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만일 살아있는 생명체라면 그 속에서 얼마나 지루하고 진절머리를 냈을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 일말의 가책이 없지는 않았다. 그런데도 나는 기어이 그 책들을 송두리째 끌고 왔으니 '내 마음 나도 몰라라' 라고나 할까.
이삿짐의 정리가 대강 마무리되었기에 몇 분 선배들에게 차례로 전화를 걸었다. 이사 온 보고를 할 셈이었다. 어떤 분은 출타중이어서 부인이 대신 받았다. 오래 못 만났지만 잘 아는 분인데 지난날과 다름없는 차분하고 나직한 목소리가 반가웠다. 나의 취미까지도 잊지 않고 있는지 수인사가 끝나자 수집물들을 지금까지 어떻게 간직하고 있느냐고 물어왔다. 이사올 때 대부분 처분했노라고 사실대로 말하자 대뜸 아주 잘한 일이라고 추어준다. 전에는 나의 수집취미를 매우 부러워하는 눈치였다. 이제 와서 그런 말을 하는 것이 뜻밖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기분을 읽기라도 한 듯이 곧 이어서 반문을 해왔다. “이제는 피차 홀가분하게 떠날 준비를 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어쩌면 그 부인은 자신에게 다짐하기 위해서 별 생각 없이 한 말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비록 면대해서 하는 말은 아니지만 오랜만의 대화로서는 다소 지나친 표현이 아닌가 하는 느낌이 들었다. 그 일에 관해서는 나도 평소에 어느 정도는 자각하고 있는데 이제 다른 사람의 입을 통해서 듣는 기분은 다소 찜찜했다. ‘피차’라면 물귀신 작전처럼 분명히 이쪽도 싸잡아서 끌고 들어가는 말이 아닌가.
이번의 이사를 계기로 아껴온 많은 소장 자료들을 정리했으므로 나의 주변도 한결 홀가분해졌다. 그러나 그 부인의 말은 그런 뜻은 아닐는지 모른다. 먼 곳으로 떠나기 위해서 우리는 다 같이 마음을 홀가분하게 비워야 한다는 뜻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러고 보니 그동안 잠시 잊고 있던 일을 다시 한 번 확인한 셈이다.
이제는 어쩔 수 없이 위치나 방향도 모르는 그 큰 이사가 그리 멀지 않은 곳에 다가오고 있음을.
어떤 성직자의 말씀처럼 그곳이 슬픔도 괴로움도 없는 우리 모두의 고향인지 모르지만 이 속물에게는 너무 벅차기만 하다. 어차피 누구나 한 번은 치러야 하는 그 큰 이사의 의미가.
(충남문학,1991)